20억짜리 공군미사일 맞고 하늘나라로… ‘고프로 사망사건’의 전말
지난달 8일 서해의 한 무인도, 지하 벙커도 뚫는다는 원점타격 미사일이 꽂힐 바로 그 자리에 검은 물체가 얌전히 누워 있다. 5초 뒤 400㎞를 날아온 미사일이 표적에 명중하면서 생긴 고열과 화염, 파괴력에 이 물체는 산산조각이 났다. 이른바 ‘고프로(Gopro) 사망사건’이다. 고프로는 미국의 액션캠(움직이는 활동을 촬영하는 소형 캠코더) 브랜드다. 당시 표적 정중앙에 있던 검은 물체는 이 카메라로 드러났다. 도대체 고프로는 왜 그날, 그 자리에서 비극적 운명을 맞이하게 된 걸까. 문제의 사건은 공군 제11전투비행단이 장거리 공대지 순항미사일 ‘타우러스’ 실사격 훈련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당시 F-15K 전투기에서 발사된 타우러스가 표적에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확히 내리꽂히자 언론은 이를 중점 보도했다. 이날 실사격이 2017년 9월 이후 무려 7년 만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스텔스 기술을 적용해 레이더망에 잡히지 않는 이 미사일은 두께 3m의 철근 콘크리트를 뚫는 우수한 성능으로 북한 지하벙커 파괴에 최적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운명을 달리한 고프로를 주목한 이는 거의 없었다. 묻힐 뻔한 이 사건은 열흘 뒤 공군이 공식 유튜브 계정에 ‘고(故)프로의 회상’이라는 제목으로 2분 54초 분량의 추모 영상을 올리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고프로가 렌즈를 하늘로 향하고 누운 상태에서 타우러스 미사일을 정면으로 얻어맞는 장면을 1인칭 시점에서 생생하게 담아낸 이 화제의 게시물은 2주 만에 조회수 41만(2일 기준) 회를 넘겼다. 고열에 온몸이 녹아내린 고프로가 죽어가면서도 극적으로 메모리 카드를 살린 덕분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고프로는 죽으면 메모리를 남긴다”며 세상 어디에도 없을 이 귀중한 영상을 극찬하는 댓글이 1,700개 넘게 달렸다. 하지만 동시에 고프로의 죽음을 둘러싼 각종 의혹도 제기됐다. 가령 신형 카메라가 필요했던 공군이 멀쩡한 구형 카메라를 일부러 죽음으로 내몬 게 아니냐는 거다. 관련자 진술 등을 토대로 사건의 전말을 추적해 봤다. 가장 먼저 제기되는 의혹은 이번 영상을 제작한 공군 미디어콘텐츠과에서 새 장비를 구입하기 위해 멀쩡한 고프로를 고의로 파손, 국가 예산을 낭비한 게 아니냐는 것. 실제 영상 초반부에 공군 관계자가 고프로를 표적 정중앙에 설치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장면이 나온다. 최대 사거리가 500㎞에 달하면서도 정확도가 뛰어나 경쟁 기종에 비해 살상 확률이 높은 타우러스의 성능을 공군이 몰랐을 리 없다. 즉, 고프로가 산산조각이 날 것을 사전에 인지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취재 결과, 이번에 산화한 고프로는 미 공군이 주최하는 다국적 연합 공중훈련 레드 플래그는 물론 호주에서 진행되는 대규모 다국적 공군훈련 피치블랙 등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주요 현장에 투입됐다. 이미 쓸 만큼 썼다는 이야기다. 장비가 상하지 않도록 평소 관리도 철저하게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영상에는 공군 관계자가 고프로를 이불로 덮어주는 애틋한 장면이 나온다. 무엇보다 영상의 가치를 따져 정상을 참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독일산인 타우러스는 1발 당 20억 원(전투기 설치비용 포함)이 넘는 고가 미사일이다. 실사격이 7년 만에 이뤄진 이유 중 하나도 이 때문. 반면 자기 몸을 불살라 유일무이한 영상을 남긴 고프로의 대당 가격은 50만 원 안팎. 고프로가 이번에 찍은 영상은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제작되는 기존 미사일 발사 영상과 차별화된다. 누리꾼들은 “고프로 시점에서 보니 미사일 위력이 실감 난다”, “화염도 기막히게 담아서 북한에 압박이 될 것 같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와 경의선·동해선 폭파로 전쟁 위기를 우려하는 국민들에게 이 영상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됐을 거란 관측이다. 공군 관계자는 "적에게 우리 공군의 위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국민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이번 영상을 기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단순 재미뿐 아니라 의미 있는 요소도 고려했다는 것이다. 메모리 카드를 살린 고프로의 내구성에 감탄하던 누리꾼들은 갑자기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메모리 카드가 무사하다는 건, 그만큼 미사일 성능이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타우러스는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올라프 쇼츠 독일 총리에게 줄기차게 지원을 요구해 화제가 됐던 무기로, 특히 유럽에서 각광받는 미사일이다. 비유럽 국가 중 타우러스를 전력화한 유일한 국가는 우리나라로 현재 260여 발을 보유 중이다. 그렇게 성능이 뛰어나다는 미사일이 메모리 카드를 뚫지 못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공군 관계자는 “통상 훈련에는 미사일 정확도 파악과 안전을 고려해 폭약을 제거한 이너트(inert) 미사일을 쓴다”며 “실제 탄두가 탑재되면 폭발성이 워낙 커서 표적에 명중했는지 정확도 파악이 안 될 뿐 아니라 시험장으로 쓰는 섬(무인도)이 초토화될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2012년 뮤지컬 ‘레 미제라블’을 패러디한 ‘레 밀리터리블’로 이름을 날렸던 공군본부 미디어콘텐츠과는 올 4월 ‘적군에게 폭탄(bomb)을 안기겠다’는 메시지를 담은 ‘BOMB양갱’ 영상으로 화제를 모았다. 병사를 뽑을 때도 일반전형이 아닌, 영상 콘텐츠 제작 유경험자를 특별전형(포트폴리오 심사, 실기 평가, 면접)으로 엄선하는 등 능력 위주의 선발제도 덕분이다. 그런 베테랑들이 모인 촬영팀이라면 애초에 카메라 본체는 망가져도 메모리 카드는 생존할 거라고 확신했을까. 메모리 카드마저 손상됐다면 영상도 못 건지고 멀쩡한 카메라만 날리는 것일 테니. 하지만 촬영팀도 내구성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고 한다. 이에 고프로 메모리가 박살날 것에 대비해 근거리에 카메라를 추가로 설치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이번 영상의 최대 수혜자는 ‘비싼 광고’를 공짜로 찍은 고프로 제조사가 됐다. 광고 모델료만 20억 원인 타우러스 미사일을 공짜로 동원해 내구성을 증명한 셈이 됐으니 말이다. 영상이 화제가 되자 고프로 한국 지사격인 ‘고프로 코리아’는 해당 게시물에 “소문 듣고 헐레벌떡 뛰어왔다”는 댓글을 직접 남겼다. 다만 협찬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까지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