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담

유승민 "이재명 포퓰리스트… 경쟁력 내가 가장 높아"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언론사와 따로 만나는 인터뷰가 1년 1개월만”이라고 했다. 18일 문을 연 희망22 사무실을 “대선 캠프라 부르지 않는다”면서도 “그동안 활동이 없었으니 남보다 더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2월 불출마 선언 후 국민의힘 현안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앞으로 접시 깨지는 소리가 들리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과 불화했던 여당 원내대표, 보수 개혁 정당을 창당했다가 실패하고 돌아온 정치인, 중도를 품은 보수 대선후보에 재도전하는 유 전 의원을 25일 서울 여의도 희망22 사무실에서 만났다. -본격적으로 대선을 향한 여정을 시작한 셈이다. 내년 대선까지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서울시장 선거가 갑자기 나왔다. 누구든 우리 후보가 되도록 도와드리겠다. 그 결과가 대선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내년 4월 보궐선거 후 바로 대선 경선 레이스가 시작할 것으로 생각한다. 현직 국회의원도 아니고 해서 국회 가까운 곳에 사무실을 내고 경제 행보를 많이 하려 한다. 경제에 대한 비전, 정책을 계속 발표할 것이다. 여기(사무실 벽 플래카드) 보면 ‘결국은 경제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희망을' 이렇게 적어놓았다. 이 장소 첫 토론회 주제는 부동산이었고, 두번째 토론회는 청년실업으로 예고했다. 복지 노동 주택 교육까지 포함하는 경제 문제를 살피겠다. 제 강점이 경제라고 생각하니까. 검찰개혁이다 적폐청산이다 공수처다 온갖 이슈들이 있지만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결국 경제가 부각될 것이다. 코로나가 오래 가면서 더 어려워지고 있다. 다음 대통령은 경제를 다시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계속 전하겠다. 그 동안 활동이 워낙 없어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할 생각이다.” -서울시장 선거 얘기했으니, 당내에 어떤 후보를 꼽을 수 있나. “좋은 후보들 많다. 김선동 전 사무총장, 이혜훈 전 대표가 출마선언했고, 나경원 전 대표도 생각이 있는 것 같다. 서울 지역구의 초선의원 중에서도 생각이 있는 것 같다. 권영세 의원도 생각이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 민주당에서 장관, 국회의원 하고 있는 사람들이 커 보이고 우리 당 후보들을 작게 생각하는 경향이 우리 스스로도 있는데 그럴 필요 전혀 없다. 완전히 실패한 정부의 장관, 거수기 의원들이 대단한 자랑인가. 스스로 낮추지 말고 나가자는 생각이다.” -여권에 유력한 대선주자는 두 분이 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를 어떻게 평가하나. “역시 너무 고평가돼 있다. 한 분은 굉장히 위험한 포퓰리스트고 한 분은 대통령이 되면 어떤 나라를 만들어 갈지 분명하지 않다. 이낙연 대표의 경우 생각이 뭔지 모르겠다. 정치하는 사람이 오래 고민해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이런 나라 만들겠다는 게 있어야 하는데 어떤 나라를 만들겠다는 거지? 성향이 진보인가, 보수인가? 점잖고 신사인 건 알겠는데 비전이나 정책은 모르겠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말하는 기본소득, 기본주택, 기본대출까지 모든 이야기가 너무 위험하다. 악성 포퓰리스트다. 트럼프 미 대통령하고 굉장히 비슷한 느낌이다. 대통령이 되면 나라 살림을 5년 안에 거의 다 탕진할 그런 사람 아닌가 생각한다. 두 분 지지도가 높다지만 정체상태고, 민주당 지지도를 2분의 1씩 나눠 가진 모양이다. 민주당에서도 이야기가 나오던데 제3후보가 안 나올 수 없는 구조라고 본다. 이 지사가 친문들한테 잘 보이려고 노력하지만 통할지 모른다. 친문들이 만들고 싶어 하는 제3의 후보가 나와 여당 경선 판도가 요동 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홍준표 의원 아니었나? “우리 쪽 후보를 폄하할 생각은 없는데…. 홍 전 대표가 그런 별명이 있다. 이번에 트럼프 실패하는 거 보고 실망하셨을 것 같다. (웃음) 홍 전 대표는 저보다 훨씬 보수적인 분이고 그래서 보수 표는 자기가 많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어쨌건 다 들어와서 당신 같은 후보가 과연 정권교체 할 수 있는지 이야기해 보자는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경쟁자로 어떻게 보나. “정치를 할지 안 할지 모르겠다. 여권 후보인지 야권 후보인지 모든 게 불확실하다. 정치 해보면 어렵다. 정치를 한 점 부끄럼 없이 깨끗하게 하면서 비전과 정책을 이야기하기가 진짜 힘들다. 월급 받는 임명직 공무원 하다가, 그것도 부하직원들 막 거느리다가 정치 뛰어들어서 뭘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지금 발심단계일 거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잘 할 수 있겠나, 이걸 왜 해야 하지…. 괴로운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정치를 하게 된다면 웰컴이다.” -윤 총장이 가장 강력한 야권 후보라는 건 현실적으로 국민의힘이 지지를 끌어모으지 못한다는 얘기다. “국민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해 그런 측면이 있겠다. 탄핵 이전과 달라진 게 뭐 있냐, 소위 태극기부대라는 극우 세력에 휘둘리는 것 아니냐, 총선 뒤에도 개혁이나 혁신이 약하지 않았느냐 이런 시각이 있다. 반성할 부분이다. 최근에 확인한 민심 즉 총선결과를 보면 253개 지역구 득표율이 41.5%이고 민주당은 49.9%로 8.4%포인트 차이가 난다. 박근혜 전 대통령 득표율은 51.6%였다. 다시 51.6%로 올리는 게 우리가 할 일이다. 어디서 가져올 거냐. 수도권 중도층 젊은층이다. 링 위에 다 올라오라고 계속 이야기하는데, 지금부터 중도+보수에서 드라마틱한 대선 레이스를 보여야 한다. 윤 총장이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든 홍 전 대표든 다 불러놓고 단일후보를 내자. 운동장을 넓게 쓰자. 국민의힘이 문호를 다 개방해서 경선 룰이든 당 혁신이든 다 들어줄 테니 제일 경쟁력 있는 사람 뽑아서 정권교체를 꼭 하자는 것이다. 대선은 보나마나 박빙으로 간다. 투표율도 높을 것이다. 탄핵 이후 떠난 유권자를 누가 누가 모셔올 거냐. 그런 점에서 본선 경쟁력은, 경제 면에서나 정치적으로도, 제가 누구보다 강하다고 자신한다. 경제로 승부를 걸겠다.” -룰을 만드는 과정에 진통이 있을텐데. “상식적으로 하면 된다. 만약 국민의힘 보수 당원들이 대선 후보 결정하는 룰이라면 누가 들어오겠나? 홍 전 대표는 좋아할지 몰라도.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예선은 국민 100%, 본선은 국민 80% 당원 20%를 반영하는데, 대선후보 경선도 거의 같을 것으로 예상한다. 재보궐선거 후 새 지도부가 투명하고 공정하게 관리를 해 나가면 국민들이 하루 만에도 마음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내 지지층을 결집시킬 자신은 있나. 이제는 배신자 프레임을 벗어날 수 있다고 보는 건가. “당원들과 화해가 필요하다. 영남, 보수 색채 강한 당원들에게 ‘우리가 정권교체하고 집권해야 하고 수도권에서 이기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와서 네가 잘했다 내가 잘했다 따져봐야 소용없으니 국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고 설득하겠다. 지역적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 호남 유권자들이 저한테 거부감은 없지만 안 찍어준다. 선거 막판에 가면 전략적 투표를 한다. 보수 영남 유권자들도 제발 전략적으로 투표해 주시라는 것이다. 선거가 가까울수록 설득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왜 안 변하나.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추구하는 방향이 지금 말씀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저 앞에서 혼자 깃발 흔들고 당은 안 따라오는 모습이다. “김 위원장의 노력을 평가한다. 그런데 현역 의원들, 당원들, 지난 총선에서 실패한 위원장들이 비대위원장과 같이 안 가는 문제가 있는 것같다. 예컨대 의원총회를 하면 비대위원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참석해 공정경제3법이 됐든 중대재해처벌법이 됐든 검찰개혁에 대한 입장이든 예전 국가보안법·사학법 개정 때처럼 방문 걸어 잠그고 결론 날 때까지 토론해야 하지 않겠나. 총선 직후 당선자들이 당이 가야 할 방향과 리더십에 대해 결정할 때도 교황선출 비슷하게 만장일치될 때까지 토론해 결정하라 했는데 급하게 비대위원장 모시는 쪽으로 절충하더라. 위원장이 당의 방향이나 중요한 입장을 정할 때 의원들과 더 소통해야 하고, 의원들도 지난 총선에서 우리가 어떻게 졌는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21대 국회 시작하자마자 약간 움직임이 있더니 지금 공동묘지 비슷하다. 양쪽 다 노력할 부분이 있다. 지금 비대위는 문제가 있다. 김 위원장 리더십 자체를 흔들 형편은 아니고 사람을 전부든 일부든 바꿔서 2기 비대위로 당의 총력을 모아야 한다. 또 우리가 중심이 돼야 하는 건 맞지만 외부 누구든 같이 할 수 있게 유연하게 나가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김 위원장한테 건의하겠다.” -변화하려는 의지가 있기는 있나. 초선의원들은 좀 다른 듯하나 구심점이 없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의원 103명 중 초선의원 58명은 과거 친이·친박 공천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영남 초선을 포함해 개혁 보수, 당 혁신의 방향으로 가야 된다는 생각이 강하다. 당이 살려면 초선의원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재선, 3선 의원들 이상한 소리에 주눅들지 말고 패기를 갖고 고민해서 정치를 어떻게 할지 정하라고 말한다. 곧 젊은 초선의원들이 모여 목소리를 낼 것 같다. 당에서 내 역할이 있다면 이런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좀 시끄럽더라도 우리가 집권하면 어떤 가치를 만들지 전략과 정책에 대해 치열하게 치고 받고 토론한다면 김 위원장도 환영할 것이다. 당내 문제에 대해 이제부터는 목소리를 내겠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3년을 넘어 막바지로 향하고 있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박근혜 정부보다 더 못한 정권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당 대표 시절에 입만 열면 이명박·박근혜 정부 비판했다. 여당 의원으로 굉장히 마음이 아팠다. 그 9년 동안 이대로 가면 집권 못한다는 비판을 누구보다 많이 했으니까. 2017년 문 대통령 취임식에 갔었는데, ‘국민의 서러운 눈물 닦아드리겠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지 않나. 말이 굉장히 멋있었다. 그 분이 또 잘 생겼다. 선하게 생겼다. 국민들이 다 속은 거다. 저렇게 비겁하고 위선적이고 속된 표현으로 광 파는 자리에 나와 사진만 찍고 국가 지도자, 국군 통수권자가 꼭 있어야 할 자리, 국민들한테 설명하고 잘못했으면 사과해야 할 자리에는 한번도 안 나온다.” -이 정부가 잘 한 일은 없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노무현 대통령을 인간적으로 좋아한다. 솔직하고, 당당하다. 한미 FTA나 이라크 파병, 제주해군기지 보면 자기 지지층을 배신하다시피 하면서 국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면 했다. 검찰에서도 손 떼고 검찰 스스로 개혁하는 게 검찰 개혁이라고 믿었다.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하고 전혀 다르다. 비겁하고 위선적이고 숨고 무능하다. 문 대통령 현직 울산시장과 관계를 볼 때 부정선거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상당하다. 이건 노 전 대통령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민주당 좀 지지해줘’ 한마디 했다가 탄핵당한 것과 차원이 다르다. 복지는 돈을 많이 쓴 거고, 교육엔 관심 없고, 민노총 한국노총 그렇게 친하면서 노동개혁 하나도 안 했다. 안보는 서로 생각이 워낙 달라 제 입장에서 도저히 잘 했다고 생각해줄 수가 없다. 잘 한 게 뭐가 있나?” -코로나 방역은. “외국에서도 칭찬을 많이 하니까 약간의 점수를 줄 수도 있겠다. 그게 대통령이 잘 한 건가. 의사 간호사 국민들의 협조 덕분이다.” -메르스 때와 비교하면 정부가 전문가 의견 묵살 않고 잘 했다. 야당이 코로나 정국에 정부 발목잡기로 일관하니까 유권자들이 질리고 실망한 게 총선 결과로 나타난 것 아닌가. “메르스 때 박근혜 정부의 늑장대처에 비판은 있었지만 지금과 큰 차이는 없다고 본다. 총선 패배 이유는 따로 있다. 우리가 합치긴 합쳤는데 제대로 된 혁신을 보여주지 못한 점, 공천을 다섯 번 뒤집은 호떡 공천, 후보 몇 명의 망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재난지원금 100% 지급이다. 총선 전 황교안 당시 대표하고 김종인 당시 선대위원장이 다 100만원씩 주자고 할 때 나는 이런 걸로 경쟁하면 절대 못 이긴다고 했었다. 그런데 우리가 기름을 부어서 100% 지급됐다. 그 공이 전부 이 정권에 돌아갔다. 나는 100만원 안 받았지만, 우리 당의 철학으로는 그 돈으로 진짜 어려운 사람들 두 번 세 번 줘야 옳다.” -지금도 3차 재난지원금 3조6,000억원을 내년 예산안에 편성하자는 이야기가 야당에서부터 나왔다. “당연히 드려야 한다. 나는 계단식으로 주자는 입장이다. 소득 하위 20%에 150만원, 20~40%은 100만원, 40~50%는 50만원 슬라이딩 방식이다. 자영업만 골라 주자는 게 아니라 소득 하위 50%에 다 드리자는 거다. 1차 때 14조원이 들었는데 지금 3조6,000억원의 서너 배 아닌가. 재난지원금을 3차, 4차, 5차 계속 드려야 하면 다른 예산을 깎을 수밖에 없다. 뉴딜 예산 160조원 빼고 차라리 어려운 국민들 돕자고 선명하게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12월 예산심의에 합의해 줄 필요가 없다. 앞으로 실업자가 더 많이 나올 텐데 이제까지는 기업에 고용유지 지원금을 줬는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부실기업 나오면서 대량실업 발생할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실업급여 주는 고용보험 재정이 악화되고 있는데 이런 데 돈을 써야 한다. 우리 당 정강정책에 기본소득이 제일 먼저 나오지만 경기지사의 기본소득은 말이 안 되는 발상이다. 1인당 50만원씩 기본소득을 주면 사회복지예산 통틀어도 안 된다. 작년에 노벨 경제학상 받은 에스테르 뒤플로 MIT 교수도 한국은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come·UBI)을 할 때가 아니라고 했다. 기계가 모든 걸 대체하고 실업률이 40~50% 될 때 하는 거다. 뒤플로 교수는 선택적 금융지원을 어려운 분들한테 해야 한다는데 제 말과 같은 거다. 이런 쟁점을 만들어서 민주당과 토론해야 한다. 정책적인 면에서 국민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우리 당이 선제적으로 치고 나갔으면 좋겠다.” -부동산 정책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정부의 정책에 문제 많지만 전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너무 많이 풀렸었고 지난 정부의 규제 완화가 영향을 미친 면도 있다. 말한 대로 정권교체 하면 바로 집값 잡을 수 있나. “자신 있다. 박근혜 정부 말기부터 전월세가가 들먹인 건 사실이다. 저금리에 유동성이 많았다. 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완화해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이 쉽게 됐다. 분명히 유동성 문제는 있다. 그렇지만 우리보다도 훨씬 화끈하게 돈이 풀린 다른 나라들이 부동산 가격이 이렇게 올랐느냐?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첫 단추부터 24번째 단추까지 엉망으로 꿰어서 그렇다. 우리나라 임대주택이 전부 830만호인데 공공임대 150만호, 등록임대 150만호 빼고 530만호가 집 두 채 이상 갖고 전세 주는 민간임대시장이다. 그런데 이 임대시장을 임대차 3법으로 마비시켜 놓고 입만 열면 공공 재개발, 공공임대다. 공공임대주택은 돈 한 푼도 없어 전세고 월세고 못 사는 저소득층, 빈곤층에게 필요한 거다. 그 외에는 처음에 월세 살다가 대출 받아 전세 살다가 전세 보증금이랑 대출로 내 집 마련하는 꿈을 갖고 주택 사다리를 올라가는 것 아닌가. 거기서 제일 중요한 게 가격이다. 매매가, 전월세가가 안정되어야 한다. 빚내서 집 사라 했다고 박근혜 정부를 비난하는데 상식적으로 빚 안 끼고 자기 집 사는 사람 몇 명이나 되나. 문제는 과도한 대출이 부실화되는 것이지만 LTV DTI 규제가 워낙 강해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상황과는 다르다. 나는 DTI는 좀 강하게 규제해도 LTV는 완화해 주자는 입장이다. 문재인 정부가 2017년 취임할 때부터 '유동성이나 저금리 문제는 수요에 반영되니 집값을 잡으려면 공급을 확대해야겠구나' 생각해서 택지 개발하고 아파트 짓게 했으면 지금 이렇게 됐겠나. 공급에 손 놓고 있다가 몇 년 뒤 난리가 날 것을 예측했어야 했다. 집권 3년 반 동안 엉터리 정책으로 망쳐 놓고 이제 와서 유동성 때문이라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 -당장 해야 할 정책은 뭘까. 공급은 시간이 걸린다. “재개발 재건축이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에서 제일 이슈가 될 부분이다. 재개발 재건축을 풀면 일단 기대심리가 있어서 지금 꼭대기라 생각하고 팔 것이다. 정책만 바꿔도 가격 변동이 오고 물량이 쏟아지면 분명히 바뀐다. 신도시 개발 같은 대규모 택지개발은 시간이 걸리지만 그것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88서울올림픽 후에 압구정동 아파트 등 서울 집값이 요즘처럼 겁나게 올랐을 때 노태우 전 대통령이 주택 200만호 건설했다. 분당에 9만7,000호를 건설하니까 강남 집값이 10년 동안 안 올랐다. 실공급의 위력이다.” -세금폭탄 논란이 있는 세제는. “부동산 관련 세금으로 재산세, 종부세가 보유세고, 취득세가 거래세, 또 양도차익에 대한 양도소득세가 있는데 다 합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세금부담이 높다. 거래세가 특히 높다. 보유세는 재산세로 통합하되 어느 정도 높아야 한다. 취득세와 양도소득세는 내려야 한다. 이렇게 세제개혁을 하면 국민을 설득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낙태죄 처벌과 차별금지법에 대해선 어떤 입장인가. “지난 대선에서도 낙태 금지를 폐지하자고 주장했고 욕을 좀 먹었지만 이후 헌재에서 헌법불합치 판단이 나왔다. 여성의 자기결정권, 건강권을 존중하되 태아의 생명권도 고려해 낙태 허용에 일부 제한은 필요하다. 의사나 낙태 여성에 대한 처벌은 조금 과하다고 보인다. 벌금형 정도면 모를까.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는 동성애자, 트랜스젠더에 대한 차별은 원칙적으로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직장 학교 등에서 차별은 금지돼야 한다. 다만 동성 간 결혼이나 동성 부부의 입양 등을 제도적으로 허용하는 것은 너무 빠르지 않나 한다. 성전환 군인의 군복무 같은 문제도 군대라는 특수 환경에서 조직의 목적과 상충될 수 있으니 제한을 둘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니까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다는 건지. “차별금지법 안에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이 포함되면 이 법을 근거로 모든 데에 적용될 수 있다. 국회에 있다면 법안에는 찬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차별에는 반대하는데 차별금지법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논리적 모순 아닌가.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말했던 성 소수자 군복무 제한 등이 문제가 된다. 우리 사회의 인식에 맞춰야 하는 것 아닐까.” -본인의 리더십과 정치력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소신 있고, 원칙적이고, 합리적이고, 토론도 잘 하지만, 난맥상에서 돌파력이 떨어지고 사람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떨어진다는 평도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 2000년 2월에 여의도연구소장으로 정치를 시작해 21년 가까이 됐다. 처음 8년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야당을 했고 투사였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이 의미 있는 시간이었는데 대통령한테 굉장히 미움을 받은 국회의원이었다. 그래도 따뜻한 큰 집에서 평탄했다. 그런데 2015년에 새누리당 집권여당 원내대표를 하다가 임기를 못 채우고 그만뒀고, 2016년에 공천 학살을 당하고 탄핵이 있었다. 탄핵에 앞장섰고 바른정당을 만들었다. 바른정당 만들고 나서 올 2월에 들어올 때까지 3년 2개월의 시간은 ‘죽음의 계곡’이었다. 추운 겨울날 길바닥에 옷도 안 입고 나앉은 기분이었다. 자유한국당으로 많이 돌아가고 새로운보수당까지 남은 인력은 얼마 안 됐다. 사람에 대한 포용력, 흡인력 말씀하시는데 그래도 끝까지 뜻을 같이하면서 남아 있는 동지들이 굉장히 많다. 권력으로 공천해 본 적 없고 돈으로 사람 부릴 처지가 아닌데도 떠나지 않고 남아 있는 전·현직 의원, 위원장, 당 사무처 동지들, 국회 보좌진이 있다. 그들이 밤에 의자 조립하고 책상 조립하고 해서 꾸린 사무실이다. 지금 국민의힘에서 선거 나가려는 정치인 누구보다도 내 주변에 뜻을 같이 하는 오래 된 동지가 많다. 압도적으로 많다. 하여튼 마음을 잡는 노력을 더 하겠다.” -외연 확장에 한계가 있지 않나. 예컨대 바른정당을 만들어 나갔는데도 탈당사태를 못 막았다. 강한 메시지를 내고 설득하고 정치력을 발휘할 수 없었나. “사실 탈당할 때 진짜 개혁보수 정당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강했던 것은 저와 가까운 의원들뿐이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모시고 해보자는 기대로 나왔던 분들은 쉽게 돌아갔다. 2차 탈당도 있었다. 정의당처럼 제로(0)에서 시작해 국회의원 6명 만든 이런 정당이 아니라 법 마음대로 바꾸던 원내 1당에서 나와서 작은 정당을 하려니 쉽지 않았다. 저의 정치력, 설득력 부족도 있고, 그들 나름의 정치적인 이유도 있었겠다. 개혁보수로 가자는 이야기야 싫어할 정도로 했지만 동의를 안 한 거다.” -결과적으로 바른정당 창당과 실패에서 얻은 교훈은 뭔가. “바른정당은 실패했으나 올바른 시도였다. 새로운 가치, 새로운 정치로 철저하게 무장이 안 돼 실패했다. 계속 갔으면 보수정치가 변하는 데에 좋았을 것이다. 올 2월에 돌아오면서 다른 요구는 아무것도 없고 개혁보수로 가자고 이야기했는데 여전히 유효하다.” -영남권 유권자들이 전략적 투표를 안 한다, 바른정당이 시도는 좋았는데 아스팔트 위에서 못 견디고 실패했다고 말했는데, 아직도 기득권 집단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아닐까. “지금 여당은 어떤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권력을 주체 못 해 변하는 모습을 봤는데, 문재인 정부는 단 몇 년 만에 저렇게 타락해서 진보란 말을 어떻게 쓰나 생각이 들 정도다. 나라를 위해서 진짜 잘해주길 바라고 문 대통령에 대해서도 순진한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겪어볼수록 아니다. 이해찬 전 대표 말대로 20년, 50년 집권하도록 뒀다가는 나라가 절단 나겠다. 5년 만에 꼭 끝내야 된다. 원래 나쁜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운동권 출신, 법과 약속 안 지키고 어지간한 부패나 성범죄에 대해 자기들끼리는 굉장히 관대하다. 국민들이 속았다."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속성 아닌가. 민주당이 야당이었으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다시 야당 만들어 진보의 건강한 목소리를 내게 하고, 국정은 우리가 책임지고 해 나가야겠다.”

박준규의 기차여행, 버스여행

대구의 별미 진미…안지랑 곱창골목 vs 들안길 먹거리타운

주거와 상업시설이 밀집한 대도시는 관광시설을 새로 짓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기존 공간에 새로운 이야기를 입히고, 지역민이 즐겨 먹던 음식을 특화하는 방법을 시도한다. 대구의 먹거리 골목도 그런 경우다. 서울에서 고속열차를 타면 동대구까지는 약 1시간30분이 걸린다. 지하철 1호선으로 갈아타고 영대병원역에 내렸다. 첫 목적지는 앞산전망대, 남구 1-1번 시내버스를 타고 앞산공원으로 이동한다. 종점에 내리면 병정처럼 늠름한 나무의 행렬이 시골에 온 듯 정겹다. 그러나 겨울 초입의 산책로 옹벽은 삭막하면서도 칙칙하다. 앞산자락길의 일부인 충혼탑에서 낙동강승전기념관까지 문화생태 관광기반 조성사업, 이른바 ‘내츄럴 대구(Natural Daegu) 프로젝트'가 예정돼 있다고 한다. 다양한 조형물과 조명을 설치해 밝고 안전한 산책로를 만들 예정이라니 그때는 좀 달라진 풍경을 볼 수 있겠다. 낙동강전승기념관에서 조금만 걸으면 앞산케이블카 하부 정류장이다. 케이블카를 타면 약 5분만에 상부 정류장에 닿는다. 시시각각 변하는 풍광에 감탄할 새도 없이 내려야 한다. 정류장에서 조금만 걸으면 앞산전망대다. 전망대 입구의 거대한 액자 조형물이 시선을 압도한다. 도시와 자연, 역사와 미래를 표현했다고 한다. 조형물을 통과하자 거센 바람이 반긴다. 발 아래로 대구시내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외지인도 대충 낙동강과 금호강, 대구타워와 달성공원은 알아 볼 수 있다. 대구 사람이라면 앞산네거리와 수성못, 대구역과 시청, 대구스타디움 등은 물론이고, 살고 있는 집까지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케이블카 탑승료는 왕복 1만500원. 곱창은 대구를 대표하는 먹거리다. 안지랑네거리에서 안지랑골로 통하는 길 중간에 안지랑곱창골목이 형성돼 있다. 1979년 안지랑시장의 충북식당이 처음 시작했는데, 1998년 IMF 이후 하나둘 늘어나면서 지금은 안지랑시장부터 룸비니유치원까지 약 500m 거리에 41개의 곱창집이 성업 중이다. 곱창과 막창은 저렴한 서민 음식으로 시작됐지만 다양한 식재료가 더해지고 새로운 조리법이 개발되며 양념곱창, 치즈곱창 등 퓨전음식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안지랑곱창골목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전국 5대 음식테마거리, 한국관광 100선 등에 선정되며 대구시민뿐만 아니라 관광객도 즐겨 찾는 곳이 됐다. 골목으로 들어서면 곱창과 막창 굽는 냄새에 정신이 어질어질할 지경이다. 앞산 자락 수성못은 대구의 역사와 함께 해 온 저수지다. 일제강점기에 농업용수를 대기 위해 조성해 1940년 대구 부공원에, 1969년엔 유원지로 지정됐다. 이후 난개발과 환경오염으로 주민들로부터 외면받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2010년 생태복원사업을 마무리하며 도심 수변공원으로 거듭났다. 호수 둘레의 산책로와 숲길은 일상에 지친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오리보트는 낭만적인 데이트 코스로 사랑받고 있다. 그러나 방치된 시설도 더러 보인다. 특히, 1927년 축조된 취수탑이 그렇다. 2000년까지 인근 두산동 상동 황금동 들판에 물을 대는 역할을 했지만, 해당 지역의 급속한 도시화로 기능을 상실했다. 조만간 경관 조명을 설치하고 스토리텔링을 더해 미술작품으로 변신할 예정이라니 수성못의 새로운 명물이 될 수 있을지 기대된다. 수성못 인근에 들안길먹거리타운이 있다. 들안길은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배경이 된 수성들 가운데에 난 길이었다고 한다. 한적한 시골이었던 이곳이 1980년대 후반부터 교통체증과 주차난을 피해 시내 중심가의 대형식당들이 하나둘 이주해 오면서 지금은 대구의 대표 식당이 다 모인 ‘푸드스트리트’로 변모했다. 2.3km 도로 양편에 무려 120여곳의 대형식당이 포진하고 있다. 일식 한식 갈비 회 해장국 보쌈 장어 복어 낙지 등 식당마다 그 분야의 최고 요리사를 모셨다고 자랑한다. 어떤 음식을 먹어볼까 고민이 깊었는데, 대구의 또 다른 별미인 '뭉티기 생고기'로 결정했다. 뭉티기는 ‘뭉텅이’를 뜻하는 경사도 말이다. 생선살처럼 도톰하게 썬 쇠고기를 소스에 찍어 먹는 방식인데, 양념을 한 육회와는 다른 풍미가 있다. 생고기 특유의 식감이 살아있고, 씹을수록 차지고 고소한 맛이 입안에 착 달라붙는다. 반찬까지 푸짐하니 더할 나위 없다.

자박자박 소읍탐방

삼천포로 빠졌다… '울음이 타는' 노을 바다를 만났다

역시 ‘아’ 다르고 ‘어’ 다르다. 그냥 ‘삼천포로 빠졌다’고 하면 될 걸, 하필이면 앞머리에 ‘잘 나가다가’라는 단서를 달았다. 뭔가 잘못됐다는 부정적 뉘앙스가 확 풍긴다. 왜 이런 표현이 생겼는지에 대해 여러 설이 있다. 진주에서 멀쩡히 장사 잘하던 상인이 누군가로부터 삼천포가 더 낫다는 말을 듣고 자리를 옮겼다가 공을 쳤다는 이야기, 어느 고위 공무원을 태운 운전기사가 순천으로 가려다 길을 잘못 들어 삼천포까지 가는 바람에 아주 혼이 났다는 이야기, 휴가를 마치고 복귀하려던 진해 해군이 삼랑진역에서 마산행 열차로 갈아타야 하는데 깜빡 졸다가 삼천포역(진주~삼천포 구간 철로는 현재 없어진 상태)까지 갔다는 이야기 등이 전해지는데, 어느 하나 딱 부러지는 건 없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경남 서부지역 간선도로는 모두 진주에서 교차되는데, 순천이나 통영으로 갈 때 길을 까딱 잘못 잡으면 진주 서남쪽 삼천포로 빠지게 된다. 그 때문일까. 이제 삼천포라는 이름은 공식 행정지명에서 모두 사라졌다. 1995년 사천군과 통합하며 삼천포시는 사천시의 일부가 됐다. 시청은 사천읍과의 중간지점인 용현면에 새로 지었다. 이례적으로 면단위에 시청이 들어선 것인데, 균형발전이라는 대외적 명분 외에 지역 내 자존심 싸움이 그만큼 컸다는 뜻이기도 하다. 관광으로만 보면 삼천포만큼 자원이 집중된 곳도 드물다. 길을 잘못 들어 ‘빠지는’ 곳이 아니라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로 찍고 일부러 찾아가야 할 곳이다. 대표적인 곳이 사천바다케이블카로 연결된 각산(408m) 전망대다. 사천의 진산으로 불리는 와룡산에서 볼 때 바닷가에 뿔처럼 오뚝하게 솟은 봉우리라는 뜻이다. 정상 부근에 설치한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삼천포에서 남해군으로 연결되는 4개의 해상교량(삼천포대교ㆍ초양대교ㆍ늑도대교ㆍ창선대교)을 중심으로 쪽빛 바다에 무수한 섬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거제 지심도에서 여수 오동도까지 이어지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이다. 지리산에 이어 1968년 국내 두 번째로 지정된 국립공원이자 최초의 해상국립공원이다. 전망대 아래쪽에 백제 무왕 때 세웠다는 각산산성이 자리하고, 뒤편에는 봉화대가 남아 있다. 섬들 사이 바닷길이 오래전부터 해상교역의 중심이자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교량으로 연결된 늑도에서는 1979년부터 2001년까지 3차례 발굴 조사에서 패총과 무덤, 주거지 흔적과 함께 청동기에서 삼한시대로 이어지는 유물이 다량 출토됐다. 중국계와 일본계 토기, 중국 한나라 때 사용한 화폐인 변량전과 오수전, 거울 등 1만3,000여점의 유물은 이곳이 고대에 한ㆍ중ㆍ일 동아시아 해상교역의 거점이었음을 보여 준다. 안타깝게도 늑도에서 출토된 유물은 모두 타 지역 박물관으로 옮겨지고, 현장에는 유적지 표지판만 세워져 있다. 바로 옆 마도는 세종실록지리지에 국내에서 최초로 전어를 진상한 곳으로 기록돼 있다. 흔히 구워 먹는 가을 전어를 최고로 알지만, 지역에서는 뼈째 회로 먹는 초여름 전어가 더 고소하다고 입을 모은다. 마도 어부들이 전어잡이용 그물에 갈물을 먹이는 작업을 할 때 부르던 ‘갈방아소리’는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돼 있다. 갈은 면사 그물을 오래 사용하기 위해 그물에 막을 입히는 재료를 말한다. 처음에는 풋감 즙을 사용했지만 대형 그물에 전부 먹이기는 부족해 이웃 하동에서 소나무 껍질을 구해 사용했다. 갈물을 내기 위해 큰 절구통에 넣고 메를 든 장정 4∼6명이 서너 시간 찧었다고 하는데, 그 고단함을 잊게 해 주는 노래가 바로 갈방아소리다. 삼천포 앞바다는 예나 지금이나 풍성한 어장이다. 동해와 서해안의 항구는 이른 아침에만 어선들로 붐비지만, 삼천포 앞바다에는 섬들 사이를 오가는 어선의 궤적이 하루 종일 끊이지 않는다. 좁은 물목에 대나무를 세우고 그물을 쳐서 물고기를 잡는 죽방렴 또한 삼천포 바다의 상징물이다. 물살이 빠른 바다에 커다란 빨래집게 모양으로 설치한 그물에 남해의 대표적 어종인 멸치를 비롯해 꽃게 갈치 오징어 꼴뚜기 등 온갖 해산물이 걸려 든다. 죽방렴은 현재 사천 해안에 21개, 남해 지족면에 28개가 설치돼 있다. 삼천포 죽방렴은 갈방아소리의 본고장 마도와 닥나무가 많았다는 저도 사이에 여러 개가 분포하는데, 각산 아래 실안동 해안도로에서 바라보면 오래된 과거와 마주한 듯 아득하다. 특히 해질녘 섬들 사이로 바다와 하늘이 동시에 붉게 물드는 ‘실안낙조’는 사천에서 으뜸으로 꼽는 풍광이다. 늑도와 함께 교량으로 연결된 초양도는 조선시대에 군마기지였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서쪽 산비탈에 빨간 지붕으로 단장한 민가가 옹기종기 모여 있고, 뒤편 언덕에는 아담한 공원이 조성돼 있다. 보는 방향에 따라 각산과 늑도, 삼천포대교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덩치는 작지만 이국적인 풍광을 자랑하는 섬이다. 삼천포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각산 정상까지는 등산로가 나 있지만 대부분 케이블카를 이용한다. 사천바다케이블카는 각산 아래 대방정류소를 출발해 바다 건너 초양도를 왕복한 후 산 정상으로 올라간다. 초양도를 오갈 때 바다 전망이 특히 시원하고 아찔하다. 성인 왕복 1만5,000원, 바닥이 투명한 크리스털 캐빈은 2만원이다. 각산에서 시내 쪽으로 이동하면 삼천포의 소소한 매력이 숨겨져 있다. 거창하지도 크게 이름난 곳도 아니지만 나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삼천포의 보물이다. 우선 케이블카 정류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대방진굴항이 있다. 포구에서 연결된 물길이 굴을 파놓은 것처럼 마을 안쪽으로 휘어져 있다. 숨겨 놓은 옹달샘 같이 아담한 포구에 소형 고깃배 서너 척이 그림처럼 정박해 있다. 제방을 따라 수령이 200년 가까이 된 팽나무와 소나무가 숲을 이룬 채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어 오래된 원림 못지않게 멋스럽다. 대방진은 고려시대부터 왜구의 침범과 노략질을 막기 위해 조성한 수군 진지였다. 조선 세종 때 군영이 인근 고성으로 옮겨가 소규모 선진(船鎭)으로 남았다가, 순조 때인 1820년경 굴항 조성과 함께 부활했다. 굴항 축조에는 진주목 관하 73개면에서 수천 명의 주민이 동원됐다고 한다. 당시 대방진에는 전함 2척과 300명의 수군이 상주했고, 주변에는 수군장의 집무실인 동헌과 관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곡식 2만섬을 저장할 수 있는 창고도 있었다. 이 정도면 일대가 해군기지나 마찬가지인데, 지금은 고만고만한 민가에 둘러싸인 굴항만 돋보인다. 인근 청널공원은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생사진 명소로 등장하는 곳이다. 특별할 것 없는 동네 공원인데, 풍차전망대를 세우고 야자수를 심어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풍차전망대에 오르면 정면으로는 섬과 어우러진 바다가, 왼편으로는 삼천포항이 정겹게 내려다보인다. 삼천포항은 일대에서 가장 큰 어항이다. 남해군이 목적지인 여행객 중에서도 뭘 좀 아는 사람은 이곳 삼천포항 용궁수산시장에서 횟감을 구입해 간다. 청널공원에서 삼천포항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노산공원이 있다. 역시 작지만 오래된 동네 공원이다. 바닷가 언덕 팔각정에서 해안을 따라 짧은 구간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상괭이를 비롯해 사천을 대표하는 어종인 참돔 볼락 전어를 형상화한 물고기 조각과 ‘삼천포아가씨’ 조각상이 마주보고 있다. ‘삼천포아가씨’는 반야월이 작사하고 은방울자매가 부른 노래다. 부산 마산 통영 여수로 떠나는 연안여객선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여인의 모습이 조금은 토속적이다. 바닷가에서 언덕으로 오르면 아담한 동백숲이다. 남부와 중부지역 간 기온 차는 겨울에 도드라진다. 붉은 꽃송이가 군데군데 환하게 피어 있다. ‘아직’이라 해야 할지, ‘벌써’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동백숲을 지나면 삼천포를 대표하는 시인 박재삼(1933~1997) 문학관이 있다. 전통 서정시의 계보를 잇는다고 평가받는 시인이다. 어떤 이는 그의 대표작 ‘울음이 타는 가을 강’에 삼천포의 깊고 그윽한 풍경이 숨어 있다고 해석한다. ‘…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을 보것네 / 저것 봐, 저것 봐, …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 소리 죽은 가을강을 처음 보것네’. 눈이 멀 정도로 아름답다는 실안해안도로의 노을이 자꾸 시어에 겹친다.

더 알고 싶은 이야기

한국일보의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