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걸의 필동멘션

모든 사람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13>다가온 어제의 세계 습도 65%의 밋밋한 밤이었다. 책상에 겨우 앉아 미루었던 소설을 긁적이고 있는데 갑자기 “짜악!” 소리가 나면서 불이 나갔다. 채찍이 유기체를 코브라처럼 휘감았다 당길 때 접착적 원심력으로 살이 딸려 나가면서 나는 소리랄까. 듣기만 해도 영원히 상처가 아물 것 같지 않은 차가운 소리였다. 밖을 보니 주거지 전체가 틈 없는 먹지 색으로 덮여 있었다. 이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크고 작은 스케일에 물린 지 오래지만 정전은 또 처음이었다. 언어가 완전히 사라진 세상을 상상한 적은 있었으나 빛이 없는 세상이라니. 그러나 런던 대공습처럼 온통 캄캄한 도시는 오히려 뒤늦게 찾은 놀이터 같았다. 그때 아래층에서 엄마가 다급하게 나를 찾았다. 호랑이도 무섭지 않다는 사람 목소리가 초조로 긁혀 있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기어가듯 달려갔다. “양초 어디 있니?” 검은 형체가 채근했다. 나는 엄마를 위해 뭐든 찾아줄 두 개의 팔이 있었지만 양초는 안 될 말이었다. 우리 집에는 작황 좋은 가지처럼 우람한 양초가 열 개나 됐는데, 친구들 올 때 향초나 피웠지 그 양초에 불 붙일 일은 없었다. 교실 나무 바닥에 초를 먹일 것도 아니고, 정전은 상상도 못하는 요즘 삶이라. 그런데 공교롭게도 보름 전, 신발장에서 천덕스럽게 웅크리고 있던 양초 더미를 내다버린 터였다. 엄마는 초가 없다는 말에 뭐든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는 나의 부주의를 탓했다. 나는 우물쭈물 서재로 올라와 반쯤 탄 향초를 찾았다. 일회용 플라스틱 라이터는 롤러에 손을 대자 마자 햇빛 쬔 미이라처럼 부스러졌다. 나는 책상 서랍에서 친구가 선물해 준 듀퐁 라이터를 찾아 반들반들한 옆구리를 딸깍 눌렀다. 점화된 가스 불은 소형 토치 램프 정도가 아닌 로켓 같은 화력을 내뿜었다. 향초 세 개가 밝히는 빛 속에 마주 앉아 있어도 어둠을 꺼리는 엄마의 두려움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근현대사의 희비극 속에서 수시로 B29의 출몰을 회상하던 시대적 공포 때문인지, 눈을 희번덕거리며 비상 사태를 포고하던 옛 정부의 제한된 삶 때문인지, 단지 생활의 불편함 때문인지. 한전에 전화했더니 이 부근 정전 건은 이미 여럿 접수되었다고 했다. 무념무상의 상태로 밖에 나왔다. 형광의 조명은 수프처럼 끼얹은 어둠 사이로 전신주 위에서 작업중인 남자들을 비추고 있었다. 도시의 삶은 복합적이다. 어떤 때는 사회적 진화를 보여주는 활기찬 실험실 같고, 다른 때는 기능을 잃어버린 채 경화된 거대한 기계처럼 보인다. 천만의 사람들이 욱여 넣어진 채 서로 떠밀고 같이 시달리는 시대에 부족한 한 가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사회의 강한 의무감인 줄 알았다. 그런데 동네 주민들이 그 밤에 모여 두런거리며 빛을 기다리는 광경은 우리 모두 어떤 식으로든 이어져 있다는 아늑한 감정을 주었다. 동일한 가치관과 동등한 자격을 지닌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감각. 과장하면 나는 더 이상 나이든 미숙아가 아니라 한 사람의 시민이 된 것 같았다. 최소한 아주 그렇게 이상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집에 들어오고 30분도 안 돼 불이 들어왔다. 엄마는 다시 찾아온 빛을 반기지 못하고 뭔가 기진맥진해져선 곧바로 잠드셨다. 마음은 질서 정연한 평온함을 찾았지만 자꾸 서성거려졌다. 머리 속은 어떤 대비로 나뉘어 있었다. 양초와 향초, 네온 불빛과 정전, 검약과 우쭐거림. 엄마의 그 시절에는 오렌지를 사먹거나 근사한 새 소파를 살 수 없었다. 휴일은 옵션이 아니었고 천운이 있어야만 해외 여행을 갈 수 있었다. 지금처럼 그때도 돈이 적다는 것은 자유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았다. 극단적으로 실용적인 것을 선택하거나 아무 것도 고르지 않거나…는 아니었다 해도. 그 세대의 금욕주의에는 종교적인 요소가, 혹은 종교적 결핍에 대한 보상의 요소가 있는지도 몰랐다. 어느 일요일에 죄를 털어놓지 않는다면, 결혼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다면 기쁨을 주는 자제의 규율을 놓치리라는. 어렸을 때 엄마는 하늘색과 진청색 체크가 섞인 천을 끊어 IDR 재봉틀로 직접 내가 입을 셔츠를 만드셨다. 더 옛날에는 인장표 재봉틀로 할아버지의 목회용 마고자도 지으셨다. 또 작년 여름에는 집에서 입을 폴리에스테르 칠부 반바지를, 올 여름에는 삼베 조끼도 완성했다. 소매단과 깃이 없는 목에는 안 입는 당신 바지를 뜯어 테를 둘렀다. (엄마에게 재봉틀이 유일한 사치는 아니겠으나 얼마 전에는 준공업용 주끼 재봉틀을 선물했다. 야비한 속셈을 감추지도 않고. “파자마 만들어줘. 그럼 내년에도 후년에도 앞으로 쭉 입을게”) 어떤 때는 낡은 스웨터에서 실을 뽑아 푼 다음 그것들을 재배치해 셔츠를 만들기도 하셨다. 재활용은 엄마의 만트라였다. 그것이 행복한 단어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론적으론 공통의 개선을 위해 고안된 쾌활한 시민적 미덕 아닌가. 엄마는 이쑤시개 하나 쉽게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집에 우산이 스무 개, 양푼 그릇이 열 세 개, 벽돌이 열한 개, 프라이팬이 여덟 개, 커피잔이 서른 개가 되었다. 엄마는 늘 강조했다. “언젠가 필요할 날이 올 거야.” 그러나 나는 늘 “아니, 그런 날은 오지 않아”라고 대꾸하며 금욕을 소매했다. 내키는 건 모두 사들이면서 미래를 당겨 썼다. 모든 것이 그릇째 주어져 소중한 줄 몰랐다. 엄마의 정당성은 너무나 여러 번, 너무나 여러 방식으로 입증되었다. 그렇지만 어떤 면으론 무서웠다. 엄마가 집에 잡동사니가 너무 많다는 것을 인지하지 않는다면 그것들이 엄마를 먹어버릴 테니까. 사람은 불안을 느낄 때 수동적이 된다. 나는 수동성을 상쇄하기 위해 그 더미들 앞에 가서 “너희들. 이제 내가 끝장내겠어!”라고 엄포를 날리는 상상을 수 백 번도 더 했다. 평화로워 보이는 우리 집의 이면에는 혼돈이 숨어 있었다. 요즘 나의 후회는 우리 집을 지을 때 외부에 창고를 만든 것이었다. 그 안에는 엄마의 소중한 물건 예를 들어 아주 큰 대야, 큰 대야, 보통 크기 대야, 작은 대야들이 에일리언 알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다른 생활의 일습은 말할 것도 없었다. 결국 창고는 길고양이들의 은신처, 대야는 새끼들의 요람이 되었다. 게다가 공원에서 온 생전 처음 보는 벌레들이 게임방처럼 드나드는 것도 고까웠다. 군화 뚫는 전방 모기가 한 수 접힐 공원 모기도 그랬지만, 체르노빌에서 왔는지 당구공만 한 귀뚜라미가 제일 무서웠다. 나는 벌레들의 호텔을 없애고 싶었다. 그 때마다 엄마의 첫 마디는 “그 안에 있는 것들 어디다 치울래?”였다. 나는 “방법을 찾으면 돼. 우리 집 주인은 그 대야들이 아니잖아”라고 항변했다. 그것들을 다 내쫓고 집의 통제권을 되찾으면 공간이 그만큼 더 생길 것이다. 그러나 다음 말은 나를 위축시켰다. “그게 다 할머니 때부터 살림하던 증거야!” 그 순간 창고 안에서 번식하며 무심히 무시되던 것들은 망각의 가장자리에서 낚아 채여선 신묘한 지위를 차지했다. 엄마가 감정적인 애착 때문에 그릇들과 시간을 더 보내며 잃어버린 자신을 찾는다는 말은 고루할 뿐. 그것은 호경기 라이프 스타일의 부산물, 규모 있는 생활의 마지막 자취. 그러나 토템이 된 물건들은 오묘한 방식으로 엄마를 지치게 만들 것이다. 친구를 초대한 지 너무 오래 돼 그 멋진 도자기 세트가 부엌 수납장에 있는 것도 잊을 정도니까. 청빈함과 불확실함을 동일시하는 작위적 미학과 절대주의. 실망스럽고도 놀라운 세월. 진실만큼 초월적인 나날. 모든 사람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예전에 분포적이며 당연하던 것이 사치로 받아들여질 날이 올 줄은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자기 세대에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로마인보다 우울해져선 불안정하게 뒤척이며 질문하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것이 세상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어느 순간엔 전부 그릇된 것 같고, 방향을 찾을 수도 없다. 그래도 나는 예전 삶의 단순함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어떤 삶이든 좋고 나쁜 순간이 있고 우리는 단지 좋은 순간을 기억하면 될 테니까. 누가 우물에서 건져주지 않아도 미래의 문제들로부터 살아남을 거니까. 그날 밤 나는 알았다. 그 순간은 다가온 어제의 세계,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는 것을. (며칠 뒤 신발장에서 그때 미처 버리지 못했던 양초 하나를 발견했다. 나는 우리 집에서 가장 예쁜 종이에 싸서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얌전히 올려 두었다.) 에세이스트

이런 2막!

젊은 팀장과 어르신 팀원 "은퇴 후 알게 된 노동의 기쁨"

현대, 삼성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을 거친 뒤 직접 사업체를 운영했던 박남일(64)씨. 30여년 간 땅보다 배 갑판을 더 많이 밟아왔던 선장 출신의 이태성(64)씨. 평생 만날 일 없을 것 같은 동갑내기 두 사람이 함께 일을 시작한 건 지난해 봄 무렵이다. 은퇴 후 1년반쯤 쉬면서 여행 같은 취미생활이 신물나기 시작한 무렵, 꿈에 그리던 전원생활도 심드렁해질 무렵, ‘워라밸’을 맞추고 싶어도 워크가 없어 동창모임에서 할 말도 줄어들 그 무렵, 동네에 들어선 작은 공장이 박씨와 이씨 같은 ‘어르신’들을 줄줄이 채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장 이름은 ‘차모아’. 이름처럼 자동차코일매트부터 도어커버, 카시트까지 다양한 자동차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곳이다. “출근 첫 날, 날아갈 거 같더라고요. 은퇴하고 ‘관리 안하는 삶’을 살다가 규칙적인 생활을 찾게 됐으니까요. 배 탔으니 제 자식들은 평생 아버지가 집에 오면 쉬고 먹고 자는 거 밖에 본 적이 없는데, 요즘 꼬박꼬박 출근하는 거 보면서 그렇게 신기해하데요” 정년 후 오랜만에 출근이 힘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뜸 이태성씨의 말수가 많아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기승을 부린 최근 일터에서 만난 이씨는 시종일관 마스크를 꼭 쓴 채로 조심스레 대답했는데 ‘출근 첫 날'을 떠올리니 긴장이 풀린 듯했다. 애초 이씨가 꿈꾼 은퇴 후 ‘2막’은 지금과는 거리가 먼, “적게 쓰고 편하게 사는” 전원생활이었단다. 젊은 시절 이씨가 몰았던 배는 상선, 그 중에서도 화학선이었는데 한번 물건을 싣고 출항하면 반년간 땅을 밟지 못하고 오대양육대륙을 누비는 생활을 37년간 해왔던 터였다. 경기 포천시에 새 집까지 짓고 꿈에 부풀어 2막을 시작했건만, 돌아온 건 부부싸움이었다고. “한 1년 전원생활 하다보니까 가족하고 갈등이 생기는 거에요. 그전까지 수십년간 한두달 쉬다가 수개월씩 떠나고 다시 집에오면 한두달 쉬는 생활을 반복했는데 (은퇴하고) 집에 너무 붙어 있던거죠(웃음). 일이 없으니 무기력증도 생기고 건강도 악화되고 그래서 일자리를 찾았는데, 일반 직장 경험이 없으니 이것도 쉽지 않더라고요.” 마침 예전 동네에 공장이 들어서면서 면접을 봤고, 한 직장에서 37년간 일한 끈기를 높이 사 최종 합격! 지난해 5월부터 출근을 시작했다. 박남일씨는 한달 후 같은 직장에 입사했다. 젊은 시절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에 근무했던 그는 직원 120명의 분사업체를 직접 경영하기도 했다. 10여년 전 관련 사업을 정리하고 한 외식 프랜차이즈업체 본부장으로도 근무해봤다. 본부장마저 그만두고 “진짜 은퇴”한 시기는 2016년 하반기. 박씨 역시 평소 마음먹었던 여행과 새 취미생활을 시작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갖고 ‘2막’을 시작했건만 반년쯤 지나자 이태성씨처럼 무기력이 몰려왔다. “동창들이랑 만나도 일이 있던 예전하고 다르더라고요.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일자리센터를 알아보고 구직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도 했는데, 처음에는 쉽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1년 반만에 찾은 ‘진짜 2막’이 지금의 직장이다. 두 사람이 하는 일은 차종별 코일매트를 모양에 맞춰 절단하는 일이다. 얼핏 위험해보이지만, 코일매트가 일반 부직포보다 훨씬 두껍고 질겨 레이저로 잘라야 해 오히려 안전하단다. “젊은 팀장”들이 기록해둔 자동차 모델별 매트 사이즈를 컴퓨터에서 꺼내 기계에 입력하고 매트커버를 기기에 올려두고 뚜껑 닫고 기다리면 저절로 잘린다.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점심시간을 제외한 8시간. 이 공장 면접임원들이 ‘어른신 직원’을 뽑을 때 1순위로 보는 ‘스펙’이 건강인 이유다. 두 사람이 꼽는 가장 좋은 점은 ‘어르신 친화’적인 근무 환경이다. 고령자가 상대적으로 많아 관련 근무 매뉴얼이 잘 갖춰져 있고, 20대 젊은 팀장-60대 나이든 팀원이 함께 일하니 모두가 존댓말을 써 저절로 ‘수평 조직’이 됐다. 90년대 생과 50년대 생 직원들이 많다보니 6시 퇴근 후에 ‘한잔’하며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일도 없다. 이태성 씨는 “예전 직장에서는 상명하복 문화가 강했는데, 여기는 그런 게 없다. 각자 맡은 일 하는 굉장히 자유로운 분위기”라며 “예전 직장에서는 같은 또래가 없었는데 지금은 같은 또래끼리 일하니, 휴게시간 10분 동안 각자 살아온 얘기만 들어도 재밌더라”고 말했다. 박씨는 “처음에 공장 나간다니 자식들이 걱정을 좀 했다. '제조업에 일한다니까 위험하지 않냐'고. 이제는 즐겁게 사는 거 같아서 좋다고 한다”고 했다. 인터뷰 자리에 함께한 박노철 차모아 전무는 “회사는 폭발적으로 성장하는데, 장기근속할 일손이 늘 부족했다. 여러 제도를 알아보다 생각한 방안이 ‘고령자 친화기업’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령자 친화기업은 고령 인력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채용하는 기업에 1억원에서 최대 3억원까지 사업비를 지원하고 교육과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 지원 제도다. 2018년 20명이었던 차모아 직원이 2년 만에 86명으로 늘었는데, 제조부분에 종사하는 26명이 60세 이상 ‘어르신’ 직원이다. 대다수가 쌍용자동차, 삼성중공업, GM대우 등 대기업에서 정년퇴직 후 재취업한 베이비부머 세대다. 박 전무는 “어르신 직원의 장점이 있다. 다들 직장생활 수십년 씩 해본 터라 업무 설명을 반복할 필요가 없고, 준비부터 청소 같은 마무리까지 시키지 않아도 본인 일이라는 걸 아신다. 무엇보다 안정적으로 인력수급이 가능해 신규사업에 투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이 회사는 올해에만 30명을 추가 채용했다. 은퇴 후 재취업에 대해 두 사람은 “자신감을 가지라”고 입을 모았다. 박씨는 “제 또래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원하는 거 같다”면서 “내가 할 수 있을까 싶어 주저할 때가 많은데, 어떤 일이든 직접 부딪쳐 보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이씨 역시 “평생 배만 탔던 제가 은퇴 후 제 2의 직업을 찾겠다고 생각하니 처음에는 막막했다”면서 “공공기관, 일자리센터를 찾으니까 의외로 괜찮은 소개를 받을 수 있더라”고 덧붙였다. 다만 눈높이는 낮추라고 귀띔했다. 박씨는 “처음에는 기계가공 같은 이전 직장과 연관된 일자리를 주로 찾았는데, 시간이 가니까 무리한 기대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전 직장, 직책의 연장선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건 힘든 만큼, 생각을 바꾸고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호기의 굿모닝 2020s

책임윤리와 균형감각...정치적 리더십의 방향

미래는 절로 열리지 않는다.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선택이 요구된다. 근대 이후 국민국가 차원에서 이 선택을 담당했던 것은 정부와 정당으로 대표되는 정치다. 그리고 이 선택의 제도적 바탕을 이룬 것은 민주주의다. 국민의 의사결정권이 선거를 통해 대리인인 정치가에게 위임되는 것이 근대 대의민주주의의 요체다. 바로 이점에서 어느 나라든 정치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우리 인류의 삶을 결정짓는 데 정치가가 이렇게 중요하다면, 정치가의 역할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2020년대를 전망하는 이 기획에서 적절한 주제다. 정치가에게 부여된 소명을 그렇다면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정치가의 존재적 의미와 사회적 역할을 선구적으로 다룬 것은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다. 이 책은 본래 강연문이다. 베버는 1917년 11월 뮌헨대학의 진보적 학생단체 ‘자유학생연합’ 초청으로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강연했다. 1919년 1월 다시 초청받아 맡은 강연이 ‘직업으로서의 정치’였다. 이 강연에서 베버는 정치란 무엇이고, 정치가의 덕목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선보였다. 사회학자 전성우는 ‘직업으로서의 정치’가 ‘직업으로서의 학문’과 함께 베버의 ‘학문적 유언장’ 같은 위상을 가진다고 평가했다. 정치란 한 사회 안에 있는 가치와 자원의 합리적 배분을 최종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앞서 말했듯 이 최종 결정이 선거와 투표를 통해 정치가에게 위임된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어느 나라든 정치에는 서로 다른 가치와 이익이 경쟁하고 대립한다. 이 점에 주목해 베버는 정치를 천직(天職)으로 부여받은 이들을 정치가로 파악하고, 이들은 ‘악마적 수단’을 가지고 ‘천사적 대의’를 실현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악마적 수단이란 은유는 강제력 등 목표 달성을 위해 활용하는 다양한 방식을 포괄한다. ‘직업으로서의 정치’가 널리 읽혀온 까닭은 베버가 정치가에게 필요한 윤리와 자질을 제시했다는 데 있다. 먼저 베버는 정치가에게 요구되는 두 가지 윤리로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강조했다. 신념윤리가 선과 악의 구별에서 도덕적 선을 선택하고 행동하는 태도를 말한다면, 책임윤리는 정치적 선택의 결과에 대해 무제한적 책임을 지는 태도를 의미한다. 바람직한 정치가는 모름지기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모두 갖춰야 한다. 정치가 결국 ‘결과’로써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특히 책임윤리에 대한 베버의 통찰은 날카로운 것이었다. 베버는 무책임성을 정치의 치명적인 죄악으로 파악했다. 이어 베버는 정치가에게 필요한 자질로 ‘열정·책임감·균형감각’을 들었다. 정치가에게 부여된 기본적인 역할은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가치와 이익을 대표하는 데 있다. 이 정치적 대표성에 헌신하려는 태도가 열정이라면, 그 대표성에 책임을 다하려는 태도가 책임감이다. 그리고 이러한 열정과 책임감 사이에서 요청되는 게 균형감각이다. 균형감각은 사물과 사람에 거리를 둘 수 있는 태도이자 주어진 현실을 수용할 수 있는 역량을 뜻한다. 베버가 열정·책임감·균형감각을 특별히 강조한 까닭은 정치가 국가의 운영을 떠맡는다는 점에 있다. 어느 나라든 국가의 운영은 국민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베버에 따르면, 정치의 치명적인 두 가지 죄악은 ‘객관성의 결여’와 앞서 말한 ‘무책임성’이다. 객관적 조건을 무시한 채 주관적 판단에만 의존하고 결과를 고려하지 않은 채 무책임하게 국가 정책을 추진할 경우 그 정책이 국민 다수에게 불행을 안겨준다는 점을 생각할 때, 정치 실패에 대한 베버의 통찰은 결코 작지 않은 교훈을 안겨준다. 2020년의 현 시점에서 100년 전 베버의 정치가론을 소환한 까닭은 포퓰리즘에 있다. 21세기에 들어와 포퓰리스트라는 새로운 유형의 정치가들이 대거 등장해 왔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대표적인 포퓰리스트 정치가들이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과 프랑스 마리 르 펜 국민전선 대표도 여기에 속한다. 포퓰리스트 정치가들은 기득권에 맞선 국민을 불러내는 ‘엘리트 대 국민’의 균열을 부각시켰다. 이들은 이 반엘리트주의를 무기로 기성 정치사회를 비판함으로써 집권에 성공했다. 그리고 세계화를 거부하고 반이민 정서에 부응하는 포퓰리즘 정책을 구사했다. 세계화가 낳은 불평등의 강화가 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정치·사회적 토양을 제공했다. 문제는 이 포퓰리스트 정치가들, 다시 말해 스트롱맨들의 리더십에 있다. 정치학자 얀 베르너 뮐러가 지적하듯, 포퓰리즘의 그늘은 반다원주의에 있다. 포퓰리스트 정치가들은 자유주의적 다원주의를 거부하고,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내세워 기성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한다. 베르너 뮐러는 ‘누가 포퓰리스트인가’(2016)에서 포퓰리스트들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포퓰리스트가 집권하면 오직 자신만이 국민을 대표한다는 사고에 충실하게 통치할 확률이 높다. 국가를 통째로 접수하고, 후견주의와 부정부패에 빠지고, 비판적인 시민사회를 탄압할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포퓰리즘적인 정치적 망상으로부터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받음으로써 공공연히 이루어진다.” 이러한 뮐러의 분석은 2010년대 후반에 들어와 현실화돼 왔다. 포퓰리스트들은 국민주권을 앞세우지만 국민 분열을 시도하고, 결국 국민통합을 저해한다. 이와 연관해 주목할 것은 베버의 민주주의론이다.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베버는 독특한 민주주의론을 내놓는다. 베버에게 민주주의란 시민의 직접투표로 대표를 선출하는 ‘국민투표제적 원리’에 기반하고 카리스마적 리더가 정치를 이끄는 ‘지도자 민주주의’다. 베버가 이러한 민주주의론을 제시한 데에는 당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후발 국가였던 독일의 역사적 특수성이 반영돼 있었다. 영국 등 앞선 나라의 발전을 독일이 추격하기 위해 베버는 정치사회 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오늘날 세계화가 강제한 불평등과 소외를 해결하기 위해 포퓰리스트 리더십이 부각되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2020년대 정치가의 미래에서 그렇다면 베버의 통찰이 갖는 의미는 뭘까.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첫째는 정치가의 책임윤리다. 오늘날 어느 나라든 국민 다수가 소망하는 정치는 포퓰리즘적 통치가 아니라 자신들의 삶의 질을 제고하는 정책적 성과 및 결과다. 정치는 레토릭 이상의 것이다. 결과로써 말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는 균형감각이다. 사회의 복합성이 크게 증대한 2020년대 현재, 국가가 직면한 문제들의 해결에서 유일한 정답은 없다. 여러 해법들이 공존한다. 예를 들어, 오늘날 어느 나라든 제1의 정책 과제인 일자리 창출에서 보수적 경제성장 전략도 중요하고, 진보적 일자리 나누기 정책도 중요하다. 이러한 ‘이념적 통섭’에 대한 균형감각을 발휘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현대사에서도 정치가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했다. 후발산업화와 민주화 국가였던 만큼 빠른 산업화와 민주화를 위한 일차적 조건의 하나는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이었다. 우리 사회를 대표해온 리더십으로 어떤 이들은 박정희의 리더십을, 다른 이들은 김대중의 리더십이나 노무현의 리더십을 떠올릴 것이다. 2020년대를 맞이한 현재, 정치가의 리더십이 갖는 중요성에는 변함이 없다. 저성장을 극복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며, 나아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선 정치가의 리더십과 국민의 팔로워십이 생산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그런데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의 리더십을 잇는 새로운 리더십이 눈에 잘 띠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오늘날 지구적 차원에서 포퓰리즘 리더십의 도전이 거세다. 포퓰리즘 리더십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포퓰리즘에 담긴 반엘리트주의와 국민주권주의는 21세기적 정치의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포퓰리즘의 반다원주의적 경향은 민주주의를 훼손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2020년대 우리 사회 정치적 리더십은 새로운 변화가 요구된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의 대처에서 볼 수 있듯, 국민 다수는 유능하면서도 섬세한 리더십을 원하고 있다. 바람직한 리더십이란 국민의 목소리에 늘 귀 기울이되 때로는 국민에 앞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국민주권주의를 존중하되 다원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변화하는 세계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하는 정치적 리더십을 기대하고 또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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