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숙 교수의 헬시 에이징

100세 건강을 좌우하는 시기는?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다. 건강도 마찬가지다. 세 살 때는 아니지만 40·50대의 생활 습관이 노후 건강을 좌우한다. 40·50대 중년에 건강을 적절히 관리하면 노년기 삶의 질도 크게 올라간다. 반면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는 이 시기에 건강을 소홀히 하면 심·뇌혈관 질환이나 당뇨병·고혈압·암 등에 노출될 위험이 매우 커진다. 이와 관련, 진행된 ‘젊은 피 늙은 피’ 연구에서는 중년 이후 쥐가 젊은 쥐의 피를 수혈했을 때 노화 예방 효과가 뛰어났다. 이 연구는 젊은 쥐의 혈액이 노화된 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중년기에 건강 관리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너무 나이가 많은 쥐의 경우 젊은 쥐와 혈관을 연결했을 때 노화 인자가 젊은 쥐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면서 치료 효능이 없었다. 이는 인간에게도 비슷하게 적용될 수 있어, 노화를 지연시키고 건강한 노년을 보내기 위해서는 중년의 건강 관리가 핵심적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헤바드 메디컬 스쿨의 바딤 글라드이셰프 교수가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중년 이후 쥐의 생명 연장에 젊은 쥐의 피가 뛰어난 효능을 보였으며, 생명 연장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나이에 있어서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음을 보여준다 (Bohan Zhang et al., Nature Aging, 2023). 특히 워싱턴대 의대 연구에서는 eNAMPT라는 효소를 젊은 쥐로부터 얻어 노화된 쥐에게 보충했을 때 건강 상태가 개선되고, 수명이 16% 연장됐다. 이 효소는 세포가 에너지를 생성하는데 중요한 단계를 조절하며 나이 들면서 효소가 감소하고 건강 문제가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WashU Med). 특히 중년기에는 치매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서서히 생기기 시작한다.이는 건망증과 초기 치매 증상을 혼동해 발생하는 ‘건강 염려증’과 관련이 있다. 인간 뇌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현상을 주로 ‘작업 기억의 과부하’로 볼 수 있다. 작업 기억은 다양한 정보를 동시에 처리하고 조절하는 데 사용되는 ‘정신적 작업대’라고 할 수 있다. 중년기에는 젊을 때보다 더 많은 일과 책임을 관리해야 하기에 처리해야 할 정보량이 늘어나 뇌의 작업 기억 영역에 부담을 준다. 이는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가 과부하돼 오류가 발생하는 것과 비슷하다. 뇌의 작업 기억 용량이 한계를 초과하면 정보 처리 과정에서 오류가 생길 수 있다. 이는 장기 기억을 활성화하거나 새로운 정보를 저장하는 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데 뇌 과학에서는 이를 ‘인지 과부하’라고 한다. 스트레스·수면 부족·질환 등 다양한 요인으로 메모리 문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년기 건망증을 관리하려면 작업 기억 부하를 줄이는 전략과 함께 적절한 휴식, 스트레스 관리, 건강한 생활 습관을 실천하는 게 좋다. 그러면 건망증과 초기 치매 증상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건망증은 일시적인 기억 상실로, 특정 정보나 사실을 잠시 잊어버리는 것을 뜻한다. 반면 초기 치매는 인지 기능 저하가 더 심각하고 지속적이다. 건망증과 치매 초기 증상을 구분할 수 있는 차이점이 몇 가지 있다. 건망증은 간단하고 일시적인 정보를 잊어버리지만 나중에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 있다. 반면 초기 치매는 중요한 정보나 최근 사건을 계속 까먹고 다시 생각나지 않을 때가 많다. 건망증은 일상생활을 하는데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으며, 잊어버린 정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면 초기 치매는 기억력 손실로 일상적인 활동을 하기 어렵고, 대화 도중 할말을 잃어버리거나, 맥락에 맞지 않는 말을 사용하는 등 의사소통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행동도 성격 변화, 우울증, 불안, 이상 행동 등 기분 및 행동 변화가 두드러진다. 반면 건망증의 경우는 기분 변화는 일반적으로 경미하거나 곧바로 안정을 되찾게 된다. 한 가지 조심해야 할 점은 건망증 현상이 길어지고 스트레스와 신체 활동 저하까지 더해지면, 즉 뇌신경을 과다 사용하면 뇌 건강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브린더 브라운 박사 연구에 따르면, 적절한 신체 활동을 하면 뇌 속 치매 유발 물질로 알려진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 농도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양한 연구 결과 등을 종합하면 40대부터 신체 활동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뇌 건강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운동은 두뇌 건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유산소운동은 뇌 혈류를 증가시켜 신경세포 생성을 촉진하고 신경 연결을 강화한다. 근력 운동도 뇌 기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적지 않다. 또한, 적절한 식습관도 신경세포 생성과 뉴로시냅스 가소성(可塑性)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과도한 지방 섭취는 뇌 염증을 유발할 수 있어 오히려 인지 기능을 떨어뜨릴 수 있다. 따라서 40대부터 과일·채소·전곡류·단백질 풍부한 식단 등으로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 오메가-3 지방산이 많은 생선·호두·아마씨 등도 염증을 줄이고 뇌 세포 생성을 촉진한다. 스트레스를 적절히 관리하는 것도 뇌 건강 유지에 중요하다.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인지 기능을 떨어뜨리고 신경 가소성을 손상하기 때문이다. 건강 유지 비결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가족·친구 등과 적절히 소통해 심리적 안정을 유지하고, 매일 일정하게 휴식 시간을 둬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취미·명상·호흡 운동·심리 치료 등으로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다. 건강한 수면도 뇌 건강에 필수적이고, 정기적인 사회 활동을 하면 고독감을 줄여주고 인지 기능 저하 위험을 줄여줄 수 있다. 독서·퍼즐 풀이·새로운 기술 학습 등으로 두뇌 활동을 활발히 하면 인지 기능 저하를 늦출 수 있다. 초고령화 시대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40~50대부터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해야 ‘100세 시대’에 걸맞은 건강한 삶을 기대할 수 있다.

여론 속의 여론

낙태죄 폐지 5년, 혼란 여전… 자기결정권 우선" 54% vs "태아 생명권" 35%

현재 대한민국에서 낙태(이하 임신중단)는 합법일까? 불법일까? 2019년 4월 헌법재판소는 낙태죄(형법 269조)가 헌법의 뜻에 맞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형법상의 낙태죄는 폐지됐지만, 모자보건법과 모자보건법 시행령에는 임신 24주 이내인 경우 일부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임신중단을 허용한다는 법조문이 여전히 남아 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 이후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임신중단에 관한 법령이 정리되지 않아 혼란은 여전하다. 그동안 형법 개정안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됐지만,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여전히 계류 중이다.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팀은 지난 3월 8~11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임신중단에 대한 인식 조사를 진행했다. 임신 단계 중 어느 시기부터의 태아(배아)를 생명체로 보아야 하는지 물었다. 전체의 54%는 임신 7주 이하도 생명체라고 보고 있다. 임신 7주 이하의 수정체는 태아라고 부르지 않고 ‘배아’라고 칭하며 크기는 3cm, 무게는 1g 정도다. 임신 8~11주는 초음파로 심장박동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기이며, 이 시기부터 생명체로 본다는 응답은 23%이다. 태아를 생명으로 보는 시기가 ‘임신 12~15주’라는 응답은 12%, ‘임신 16~23주’라는 응답은 6%이다. 임신 24주가 지난 태아는 모체 밖에서 생존이 가능해지는데, ‘임신 24주 이후’에야 태아를 생명체로 볼 수 있다는 사람은 전체의 6%에 불과했다. 모체 밖에서 생존이 가능한 시점보다는 수정(受精)이 이뤄진 시점이나 심장이 뛰는 시점부터를 생명체로 인식하는 사람이 더 많다. 임신중단과 관련한 논쟁은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임신중단을 둘러싸고 두 가지의 가치가 충돌한다. 태아의 생명권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비록 세상에 나오지 않았지만 태아도 하나의 생명체로 보아 존엄한 생명의 가치를 수호하고자 한다. 한편 자기결정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인간에게는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일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 임신을 지속할지에 대한 결정에 대해서도 예외 없이 자기결정권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본다. 조사 결과 태아의 생명권이 더 우선시돼야 한다는 사람은 35%,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더 우선시돼야 한다는 사람은 54%로 자기결정권을 지지하는 사람이 더 많다. 임신중단에 대한 인식은 태아의 생명권과 자기결정권 중 어떤 가치를 더 지지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경향을 보인다. ‘임신중단의 법적 허용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일이다’, ‘임신중단의 법적 허용은 불법적이고 안전이 검증되지 않은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시술(수술) 및 약물로부터 여성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다’와 같이 임신중단 허용에 대한 긍정적 측면을 언급하는 진술에 대해서는 전체의 4분의 3 이상이 동의하며, 특히 자기결정권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10명 중 9명이 동의한다. 하지만 임신중단의 부정적 측면에 대한 진술에 있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임신중단의 법적 허용은 우리 사회가 생명을 가볍게 여긴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진술에 대해 태아의 생명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중에서는 68%가 동의한 반면, 자기결정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중에서는 35%만이 동의한다. ‘임신중단이 합법이라고 하더라도 임신중단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행위이다’라는 진술에 대해서도 태아의 생명권을 보다 지지하는 사람 중에서는 76%가 동의한 반면, 자기결정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중에서는 49%만이 동의한다. 임신중단이 어느 범위까지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지 물었다. 전체의 66%는 특정한 경우에 한해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경우라도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람은 20%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허용하지 않는 편이 바람직하다는 사람은 10%로, 어떠한 경우라도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응답보다 10%포인트 낮다. 임신중단 관련 법률 개정안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쟁점은 임신중단의 허용 범위다. 이제까지는 모자보건법 제14조 및 모자보건법 시행령 제15조에 근거하여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한 임신인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인척 간 임신인 경우 ▲임신의 지속이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중 하나에 해당하면서 임신 24주 이내인 경우에만 법적으로 임신중단이 가능했다. 이들 각각의 사유를 제시하고 임신중단 허용 동의 여부를 확인한 결과, 모든 사유에 대해 임신중단을 23주 이내까지, 혹은 주수와 관계없이 전면 허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80%를 넘는다.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대해서는 대체로 절반가량이 임신중단을 허용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모자보건법상 허용 사유와 비교하면, 23주 이내까지만 임신중단을 허용해야 한다는 응답이 임신 주차와 상관없이 허용해야 한다는 응답보다 더 많으며, 아예 임신중단을 허용할 수 없다는 응답도 적지 않다. ‘허용 불가’ 응답은 태아의 성별이 부모가 원하는 성별이 아닌 경우(71%), 자녀 계획에 어긋난 임신인 경우(43%), 출산 및 육아를 경제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31%), 파트너와 결별하게 된 경우(29%), 미성년자의 임신인 경우(16%)의 순으로 높다. 임신중단의 허용범위 이외에, 법률 개정안의 주요 쟁점으로는 임신중단 진료가 가능한 의료기관의 범위, 의료인의 임신중단 진료거부권, 의료보험 적용 여부, 낙태약 허가 여부 등이 있다. 임신중단 진료가 가능한 의료기관의 범위와 관련하여 두 가지 방안이 있다. 하나는 모든 의료기관에서 진료가 가능하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정된 의료기관에서만 임신중단 관련 진료‧시술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2020년 11월 조해진 의원, 2020년 12월 서정숙 의원이 대표발의한 모자보건법 개정안). 후자의 방식처럼 별도로 지정된 의료기관에서만 임신중단 진료‧시술을 가능하게 할 경우, 임신중단 관련 진료를 원치 않는 의료기관의 뜻을 반영할 수 있다. 두 가지 방안 중 임신중단의 진료‧시술 등이 가능한 병원을 별도로 지정하여 운영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사람은 58%로 더 우세하다. 모든 병원에서 임신중단 진료‧시술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는 사람은 32%이다. 지정 병원 형태로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더 우세한 것은 의료인이 임신중단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보는지 여부와 관련이 있다. 전체 응답자의 59%가 의료인이 임신중단 진료를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는데, 이 중 67%가 지정된 병원에서만 임신중단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한편, 전체 응답자의 33%는 의료인의 진료거부권 인정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 집단에서는 지정된 병원에서만 진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보는 사람이 48%, 모든 병원에서 임신중단 진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보는 사람이 47%로 의견이 양분된다. 2021년 1월 남인순 의원이 대표발의한 모자보건법 개정안에는 임신중단의 국민건강보험 급여화가 포함되어 있다. 조사 결과, 임신중단에 의료보험을 적용하는 데 동의하는 사람은 53%,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40%로 의견이 갈려 사회적 합의가 좀 더 필요해 보인다. 캐나다, 태국, 우즈베키스탄 등 해외 약 60개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경구용 낙태약(미프진, 미소프로스톨 등)을 한국에 도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도입 찬성이 57%로 반대(28%)에 비해 두 배가량 높다. 임신중단이 이뤄지기 전 24~72시간의 숙려 기간을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것에는 전체의 82%가, 학교교육에서 피임교육을 의무화하는 것에도 전체의 87%가 동의한다. 이번 조사에서, 3명 중 1명은 낙태죄가 헌법재판소로부터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은 것을 몰랐다고 답했다.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 만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3분의 1이 이를 모른다는 것은 법 개정을 위한 사회적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법은 사회 구성원의 행동양식의 준거가 된다. 임신중단이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놓임에 따라 의료현장은 혼란스럽고 편법적인 임신중단 등으로 여성의 건강권이 위협받고 있다. 생명의 무게는 무겁지만 임신과 출산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 역시 중요하다. 임신중단과 관련한 법 규정을 조속히 마련하되 생명을 존중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역시 함께 정비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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