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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味·樂(휴·미·락)

조성진의 서른, 브람스

조성진은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연주자다. 또래와 달리 과묵하고 신중하며 깊이 있다. 그러면서도 내면에 뜨거운 불을 지녔다. 6년 전 스물 넷이었던 그의 인터뷰를 상기하자면, 이미 서른 이후를 계획하고 있어 흥미롭다. “30대가 되면 거장도 아니고, 더 이상 젊은 연주자도 아닐 테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그리고 돌연 서른이 되어 만나고픈 작곡가로 브람스를 호명한다. “브람스를 정말 좋아하는데 아직은 연주 경험이 부족합니다. 더 깊이 연구해서 온전히 내 것으로 숙성시킨 후 무대에 올리고 싶습니다.” 올해 30대에 진입한 조성진은 11월 20일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선보인다. 6년 전 약속이 실현된 셈이다. 협주곡은 오케스트라와 솔리스트라는 두 개의 판이한 음향체를 지니고 있다. 음량과 음색이 어느 한쪽으로 편중되지 않도록 다루는 능력에서 작곡가 역량이 드러난다. ‘교향악적 협주곡’이라 일컫는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에서 피아니스트는 마치 다윗과 같다. 골리앗처럼 육중한 오케스트라에 용감히 맞선다. 오케스트라의 압도적 음량에 피아노가 물러서지 않고, 오케스트라도 독주자의 왜소한 몸집을 배려하지 않는다. 이 곡이 처음 등장한 1881년부터 143년이 지나는 동안, 연주자들이 몸소 겪은 시행착오가 켜켜이 쌓여 수많은 비급이 내려온다. 그러나 여전히 피아니스트들은 근원적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이 공포는 초연 당시 혹평을 상기시킨다. “협연자가 거대한 관현악에 잡혀 먹히지 않고 생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흥미롭게도 조성진은 6년 전 인터뷰에서 이 기울어진 음량의 운동장을 ‘체중’으로 돌파하겠다고 선언했었다. “브람스를 연주하려면 지금보단 살을 찌워 몸무게를 늘려야겠죠.” 과묵하고 신중한 성격의 브람스는 달변보다 눌변에 가까웠다. 조성진의 언어습관도 그와 닮아서 누군가 질문을 던지면 나지막한 음성으로 찬찬히 곱씹어 대답한다. 브람스는 유행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사색에 천착했었다. 조성진의 연주도 그와 다르지 않아 허영과 무관하게 우직하게 나아갈 길을 개척한다. 게다가 브람스와 조성진 공히 내면에 뜨거운 불을 삼키고 있다. 다른 음악가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밖으로 연소시키기에 급급할 때 조성진과 브람스는 더 강력한 화력을 내장에 품어 절제하고 조율한다. 여타 음악가들이 표현의 가짓수를 늘리는 데 급급할 때, 브람스와 조성진은 밀도와 깊이로 자신을 증명한다. 서른의 조성진이 들려줄 브람스가 기대되는 까닭이다.

초선의원이 말한다

교육위 정쟁, '갑질' 피해 교사 이슈도 묻었다

22대 국회 첫 국정감사에 거는 기대가 컸다. 국정감사는 야당의 시간이라는 말이 있지만 정부와 더 긴밀히 소통할 수 있는 여당 의원이 오히려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국회 교육위원으로 첫 국정감사에 책임감도 컸다. 2025년에는 우리 교육의 미래를 좌우할 큰 변화가 예정되어 있다. 영유아 유보통합, 초등학생 늘봄학교, 초중고 AI 디지털 교과서, 대학교의 라이즈 사업이 본격화된다. 의대정원 문제도 교육계의 큰 현안이다. 하나같이 막대한 국가예산이 들어가고 이해관계자들의 갈등 조절이 쉽지 않은 사안들이다. 우리 의원실은 이번 국정감사에서 정책질의에 집중했다. 의평원에 대한 인증평가기관 재지정 문제, 의대생 휴학 인정 필요 등 의대증원 과정에서 발생한 현안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정부 정책을 무조건 방어하기보다 국민 불편을 줄이기 위한 합리적 대안 도출에 노력했다. 다문화 학생에 대한 중장기계획 수립과 3D프린터 수업에 헌신했던 과학고 교사의 순직 불인정에 대한 해법 마련을 교육부에 촉구했다. 학교 비정규직 교무실무사의 갑질 피해 사망에 대한 서울시교육청의 무책임한 태도를 지적하거나 교대생의 중도탈락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교원전문대학원 등 양성체계 개편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정감사가 마무리된 후 국민께 너무 죄송스러웠다. 산적한 교육계의 주요 현안들이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건희 여사 논문, 국가교육위 내부 갈등, 현 정부에서 임명한 기관장들에 대한 색깔공세 등 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제기한 정쟁이 정책현안들을 뒤덮었다. 정쟁사안이라도 국정감사에서 이를 제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7분과 5분의 시간이 주어진 주 질의와 보충질의 대부분을, 그것도 민주당 거의 모든 의원이 비슷한 내용의 정쟁용 질의로 소모했다. 국정감사 본연 역할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현안들은 시간에 쫓겨 3분 재보충질의 시간에 형식적으로 이뤄졌다. 기관장인 증인들에 대한 모욕 주기도 반복되었다. 기관장 대부분이 학자 출신인데, 민주당 의원들은 이들 중 일부의 학자 시절 글이나 발언을 거론하며 무조건 뉴라이트라고 규정하고 질타했다. 사상과 표현, 학문의 자유를 억압하는 질의들이 국정감사장에서 공공연하게 이뤄지면서 정작 해당 기관들에 대한 정책감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22대 개원 직후 정쟁으로 파행을 겪는 타 상임위를 보며 교육위는 그래도 낫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정쟁이 오갈 때도 있었지만, 협의를 중시하는 교육위 풍토는 지켜졌다. 여기에는 김영호 위원장의 노력과 공이 컸다. 민주당 김영호 위원장의 균형감 있는 회의 진행으로 교육위는 국회 보좌진들 사이에서 22대 모범 상임위라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국정감사를 거치며 이러한 자부심마저 무너지고 있다. 동행명령장 발부, 기관장에 대한 망신 주기성 고발, 여야 협의를 무시한 단독 의사일정 등 법사위나 과방위에서 일어났던 상황들이 교육위마저 감염시켰다. 11월 장외투쟁까지 선언한 민주당 태도를 볼 때 예산과 각종 법안 심사를 앞둔 교육위 상황은 더 암울해 보인다. 아이들의 미래가 달린 교육위만큼은 대화와 타협의 정신이 지켜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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