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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20시간 노동과 여성인력의 퇴출

예전 참 성실한 여성 후배가 술자리 적응력도 업무 능력으로 보는 남성 팀장 때문에 거의 매일 술을 마시며 힘들어 몰래 울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조언한 적이 있다. “취재원과 저녁 약속 있다고 거짓말하고 집에 들어가. 나도 그랬었어. 잘못하는 게 아니야. 그래야 니 방식으로 일을 잘할 수 있다.” 진심이었다. 한번은 정보기술(IT) 대기업에서 일하는 남성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일이 몰릴 때는 퇴근 안 하고 며칠 밤을 새우면서 일합니다. 남자들은 그럴 때 자기 것 끝내면 남의 일 돕기도 하는데 여자들을 보면 이기적이어서 자기 것만 하고 돕질 않아요.” 그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비아냥거릴 때, 난 며칠 밤을 새워서 도저히 남의 일을 도울 여력이 없는, 퀭한 정신의 그 여성 노동자의 얼굴을 보는 듯했다.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의 과로를 부르고, 수시로 목숨을 앗아가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여성, 장애인, 그리고 남성 중 체력이 강하지 않은 이까지 직업 세계에서 아예 퇴출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육아 책임까지 전가받은 여성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악명 높은 밤샘 근무가 관행이었던 방송계에선 입사 후 몇 년이 지나면 여성 PD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내 기자 생활 초기에는 주 6일제였는데, 유일한 휴일이었던 토요일에 당직이 걸리면 13일 연속 일했다. 그런 시절이 지속됐다면, 지금까지 기자 일을 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장시간 근무 시대는 전반적으로 직장문화의 비효율을 높여 놓았다. 일을 다 마치고도 상사 눈치를 보면서 퇴근을 못하는 한국 직장인의 풍경은 ‘일에 미친 나라’인데도 노동생산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크게 못 미치는 이유와 무관치 않다. 많이 개선되긴 했지만, 회식과 폭음 문화는 부록이다. 이런 문화 속에서 패배감을 안고 떠나는 여성 노동자에게 나오는 반응은 반성이 아니라, “여자들 뽑아봐야”라는 뒷담화이다. 유력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름이 끼쳤다. 논란이 되자 “노사 간 합의하에”, 즉 ‘근로자가 원할 경우’라는 단서를 달았다. 우스운 대목이다. 주 52시간 근무를 적극 지지하는 나도, 때론 휴일을 온통 기사 구상에 쏟거나 카페에 가서 업무처리를 하며 보내기도 한다. 업무 스트레스와 별도로, 일을 잘 해내고 싶어서다. 많은 노동자들이 그렇다. 이를 “휴일에도 자발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있으니 휴일을 법정 근무일로 만들어 출근하게 하자”로 받아들인다면, 대체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또 초과근무가 노사 합의라고 해도 ‘을’의 입장인 노동자의 동의가 과연 진정한 동의겠는가. 일부 임금을 더 받기 위해 장시간 근로를 선호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건 열악한 임금조건과 노동환경에서 기인한 것이지 자발적인 선택일 수 없다. 여성 노동자에 대해 썼지만, 남녀의 이해가 다르지 않다. 상대적 약자에 기준이 맞춰질 때, 제도의 혜택은 모두에게 돌아간다. 무엇보다 일부 남성 인력이 장시간 노동을 견딜 수 있다고 해서, 그래도 된다는 건 아니다. 퇴출해야 할 것은 그렇게 만든 상품, 그런 생각을 하는 경영자와 정치인이 아니겠나.

기고

위기의 도쿄올림픽 감상법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팬데믹의 한가운데 도쿄올림픽이 시작되었다. IOC가 공급하고 개최도시가 연출하는 올림픽은 한 국가의 대표로서 뛰는 선수들의 땀과 열정을 통해 많은 감동을 준다. 이 감동은 방송을 통해 전파되고, 기록적인 시청자 수는 글로벌 기업이 거액의 후원을 마다하지 않게 한다. 이들은 핵심적인 IOC의 파트너이자 올림픽을 지속적으로 운용해 나갈 수 있는 재정의 원천이다. 이 때문에 도쿄올림픽 개최에 일본보다 IOC의 의지가 더 강한 것은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이런 자본의 지배로 200여 개 국가의 선수는 주사를 맞고 불안한 지역을 향해 희망을 안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 명의 선수라도 안전과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IOC는 세계 올림픽 무브먼트를 책임지는 기관으로서 IOC 회원국과 차기 올림픽 개최도시, 그리고 방송사와 스폰서 기업에게 무기한 연기 화두를 던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IOC는 위원장 한 사람의 힘으로 움직일 수 없고 권력과 자본의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 오히려 한 나라의 민감한 이슈를 스포츠의 정치관여라고 일방적으로 몰아세울 수 있는 데까지 왔다. 올림픽은 200여 개 나라가 참여하지만 1,000여 개에 달하는 메달은 경제 부국들이 70% 가까이 가져간다. IOC의 고민은 현실적으로 이해가 된다. 오늘날의 세상은 올림픽을 즐기기에는 놀 게 너무 많다. 게임, 유튜브, 넷플릭스 등 혁신적인 IT 발명품은 현대 올림픽의 가장 큰 경쟁자이다 올림픽 개최국으로서 많은 희망을 갖고 출발한 일본의 입장도 안타깝다. 무관중 경기로 1조 원에 가까운 입장 수입 손실을 입은 일본은 중계권과 스폰서 권리를 알뜰히 챙긴 IOC가 야속할 것이다. 어려운 위기 상황에서 개최되는 만큼 무사히 치러져서 일본 선수들의 선전과 아울러 멀리 아프리카 대륙에서부터 가까이는 한국에서 참가한 선수들을 통해 일본 국민들도 위로받고 세계인에게 감동을 주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일본 사회의 중요한 미덕인 화합의 와(和)를 세계로 확장하여 전 세계인의 와를 표현하는 행사가 되길 바란다. 역사적인 아픔이 있는 아시아 선수들이 특정 이슈에 불편해 하면 그를 헤아려서 진정한 화합을 보여주길 대회기간 동안 기대해 본다. 우리나라도 국제 민간 비영리 스포츠 기구 행사에 정부와 정치인들은 먼저 나서지 말고 스포츠의 세계를 존중해 줘야 한다. 대한체육회만이 아니라 국내 경기 종목 협회들도 엄연한 국제 스포츠 무브먼트의 위상 있는 단체로서 각자의 목소리로 IOC와 개별 국제경기연맹과 활발한 소통이 있어야 한다. 무관중이지만 역대 여느 올림픽보다 새롭고 혁신적인 기술을 통해 방송과 디지털 플랫폼으로 수십억 청중에게 전파될 도쿄올림픽이 긴장과 설렘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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