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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味·樂(휴·미·락)

생명력 넘치는 봄의 미식, 주꾸미

주꾸미와 낙지처럼 형제지간으로 보이는 해산물이 또 있을까. 생김새는 물론 다리 개수까지 같다 보니 이 둘은 종종 함께 언급된다. 하지만 주꾸미는 낙지보다 다리가 더 짧고 몸집도 작다. 그래서 '꼬마낙지'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이 때문인지 사람들은 기왕이면 주꾸미보다는 낙지를 우선으로 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춘곤증이 솔솔 몰려오는 봄이 오면 판세는 달라진다. 쓰러진 소도 벌떡 일으켜 세우는 낙지라 해도 이 계절만큼은 주꾸미의 맛과 영양 효능을 당해낼 수 없다. '봄 주꾸미, 가을 낙지'라는 말이 봄철 주꾸미의 저력을 보여준다.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주꾸미의 다양한 이름이 소개된다. 주꾸미의 꿈틀거리는 모습 때문인지 구부린다는 뜻의 '준(蹲)'자를 써서 '준어(蹲魚)'라 불렸다. 또한 대나무 순이 나올 때 가장 맛있다 하여 속명으로 '죽금어(竹今魚)'라 칭하기도 했다. 이후 '죽금어'가 '주께미'를 거쳐 '주꾸미'라는 이름으로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주꾸미는 봄이 되면 머리에 소복하게 알을 이고 있다. 머리같이 생긴 부위는 실제로는 몸통인데, 봄이 되면 산란기를 맞아 알이 꽉 찬다.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서는 주꾸미에 대해 "초봄에 잡아 삶으면 머릿속에 흰 살이 가득 차 있는데 살 알갱이들이 찐 밥과 매우 비슷하다"고 기록했다. 이 밥알 같은 모양 덕에 주꾸미 알을 '주꾸미쌀밥'이라 부르기도 한다. 잘 익은 알을 오독오독 씹으면 입 안에서 톡톡 터지는 식감과 함께 진득한 크림으로 변한다. 비린 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며 고급스러운 고소한 맛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그야말로 봄에만 맛볼 수 있는 귀한 미식이다. 주꾸미는 어떻게 먹는 게 가장 맛있을까. 1948년 손정규가 지은 '우리음식'에서는 주꾸미를 '어회(魚鱠)'로 먹었다고 적혀 있다. 생회나 숙회로 손질한 뒤에 주로 초고추장을 찍어 먹었다. 맛과 영양이 무르익은 주꾸미는 거창한 요리법보다는 그 신선한 맛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단순한 조리법이 최고다. 이 외에도 맑은 국에 넣어 주꾸미 본연의 맛을 해치지 않는 요리를 즐겨 먹었다고 한다. 주꾸미는 피로 개선을 돕고 간 기능을 보호해 주는 타우린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주꾸미의 타우린 함유량은 무려 낙지의 2배, 문어의 4배, 오징어의 5배나 된다. 주꾸미는 특히 돼지고기와 함께 요리하면 궁합이 좋다. 주꾸미의 타우린 성분이 돼지고기 콜레스테롤을 낮춰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주꾸미와 돼지고기를 활용하여 맛과 영양 모두 2배로 올려주는 '주꾸미 동그랑땡'을 소개한다. 살짝 데친 주꾸미는 식감이 씹힐 정도의 크기로 작게 다진다. 마늘, 고추, 양파 역시 잘게 다진다. 돼지고기는 잘게 다지거나 아예 다짐육으로 준비해도 좋다. 손질한 재료를 한 곳에 모두 넣고 접착제 역할을 하는 계란, 전분 가루를 풀어 섞는다. 이제 한 입 크기의 동그랑땡 모양을 빚어 기름을 넉넉히 두른 팬에서 잘 구워내면 완성이다. 재료가 다 익어갈수록 탱글탱글한 탄력이 생겨 앞뒤로 뒤집는 손길에 경쾌함이 묻어난다. 노릇노릇 잘 구운 주꾸미 동그랑땡을 한 입에 쏙 먹어보자. 봄의 생명력을 가득 담은 보양식으로 이만한 맛이 또 없다.

아침을 열며

선거와 스포츠

스포츠는 일반적으로 개인 또는 팀이 경쟁적 환경에서 규칙에 따라 신체적 능력을 사용하여 목표를 달성하는 활동을 말한다. 선거는 대의 민주주의의 핵심적 요소로, 유권자들이 투표를 통해 공직자를 선출하거나 특정 정책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는 공식적인 절차를 말한다.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스포츠와 선거는 서로 경쟁하고 승부를 본다는 점에서 종종 비교되기도 한다. '경마 저널리즘'이라는 용어가 대표적이다. 이는 스포츠인 경마와 저널리즘이 결합한 용어로, 선거 뉴스 보도가 마치 경마를 보는 것처럼 누가 앞서 나가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 보도 방식을 말하는데, 정책이나 실질적 이슈보다는 여론조사 결과, 후보 간의 경쟁 순위, 선거에서의 승리 가능성 등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을 비판적으로 설명할 때 쓰이는 용어이다. 그렇다면 스포츠나 선거처럼 승부를 보는 행위에 왜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가 쏠릴까.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동일시(Identification)와 모호성(Ambiguity)의 개념을 통해 두 현상 간의 중요한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겠다. 동일시는 개인이 다른 사람 또는 집단과 자신을 동일하게 느끼는 심리적 과정을 말한다. 스포츠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팀이나 선수와 강한 동일시를 한다. 이러한 동일시를 통해 팬들은 팀의 승리를 자신의 승리로 간주하며, 팀이나 선수의 성취를 통해 개인적인 자긍심을 높인다. 선거과정에서도 많은 유권자들이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과 강한 동일시를 한다. 유권자는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나 정당의 승리를 개인적인 성공과 직결되는 것으로 여기며, 이는 투표 행위를 통해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동기를 부여하기도 한다. 모호성은 승부에 대한 불확실성을 의미하는데, 스포츠 경기에 흥미와 긴장감을 주기 때문에, 팬들이 경기를 보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 선거 결과 역시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어, 선거 캠페인 동안 유권자들의 관심을 유지시키는 요소로 작동한다. 모든 사회적 현상들이 그러하듯, 스포츠나 선거에서도 이러한 동일시와 모호성이 지나친 경우에 문제가 생긴다. 자신이 지지하는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동일시가 지나치면 객관적인 판단을 흐리게 하고 비현실적인 기대나 태도를 조장할 뿐만 아니라 경쟁하는 상대방을 근거 없이 비난하고 저주하게 된다. 최근 우리 사회, 특히 스포츠 분야에서 '국뽕'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이 용어는 '국가'를 뜻하는 '국'과 마약을 의미하는 '뽕'(필로폰의 속어)을 결합한 말로, 마약처럼 국가나 민족에 대한 과도한 자부심과 열정이 마치 중독된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는 의미다. 과도한 국뽕은 스포츠를 통한 경쟁을 개인이나 국가 간의 대립으로 확대 해석할 수 있으며, 이는 개인이나 국가 간에 불필요한 긴장을 유발할 수 있다. 또 성공과 승리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면, 스포츠의 가치와 정신을 왜곡시킬 위험이 있다. 선거에서도 일종의 '국뽕'에 취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난 10일 총선에서도 당연히 승자가 있고 패자도 있었다. 자신이 응원하고 지지하는 후보나 정당이 승자가 되었을 수도 패자가 되었을 수도 있다. 승자에 대한 축하와 패자에 대한 격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국뽕에 취해 상대를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 페어플레이, 존중, 정직, 그리고 동료 및 상대 선수에 대한 존중을 의미하는 스포츠맨십을 우리 정치판도 보여주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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