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찌꺼기 에너지바'… 네덜란드 대사관이 손 내민 푸드 회사

2021.01.16 09:00

산지에서 버려진 '못난이' 전복과 마늘, 양파가 모여 전복 리조또가, '못난이' 당근과 고기, 토마토가 모여 라구 파스타가 됩니다. 식혜와 맥주에서 버려지는 찌꺼기들이 모여 에너지바가 됩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해마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40억톤의 음식 중 3분의 1이 버려지고 있습니다. 식량의 생산, 유통, 소비 과정에서 생산되는 온실 가스 배출량은 137억톤에 달합니다.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26%에 해당하는 양이죠. 여기에 버려진 음식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전체 배출량의 8%에 달하는 온실가스가 나오고 있죠. 그런데 궁금할지 모르겠네요. 버려지는 식량과 기후 변화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말이죠. 기후 변화로 지구 평균 온도가 섭씨 2도 상승할 경우, 약 1억8,900만명이 지금보다 더 심각한 식량 위기 상황에 놓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식량이 버려지면서 온실가스가 발생하는데 이에 따른 온도 상승으로 식량 위기까지. 버려지는 식량이 식량 위기를 불러오는 악순환입니다. 특히 지난해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부터 호주와 미국 서부의 산불과 아시아의 이례적 폭우 등의 기후 변화까지. 2020년은 우리 모두를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그래서 버려지는 음식을 통해 지구와 환경을 지켜내는 데 공감, 머리를 맞댄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주한 네덜란드대사관과 친환경 유통사 올가홀푸드입니다. 14일 주한 네덜란드대사관에서 겔라레 나더르 주한 네덜란드대사관 농무참사관과 강병규 올가홀푸드 대표를 만났습니다. 이들은 처음 만난 사이가 아닌 듯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15일 시작하는 제로 푸드웨이스트 캠페인을 위해 몇 차례 만난 적이 있다고 해요. 무슨 캠페인이냐고요? 15일 올가 방이점에서 '제로 푸드웨이스트 캠페인'이 열렸어요. TVN 식벤져스에서 제로웨이스트 식당을 운영하는 것으로 출연한 송훈 요리연구가가 이날 못난이 식재료들로 전복 리조또와 라구 파스타를 만드는 법을 선보였습니다. 또 '올가의 키친'이라고 나물 반찬 등을 파는 매대에서 일반인 150명 선착순으로 밀패키지와 리너지바를 나눠줬습니다. 리너지바란 리사이클링과 에너지바의 합성어로, 식혜와 맥주 부산물 등을 재활용한 가루로 만들어진 에너지바를 뜻합니다. 이날 나더르 참사관은 영상을 통해 "남고 버려지는 음식을 줄여 우리 지구를 살리는 데 동참해달라"고 호소했고, 강 대표도 "버려지는 식량 자원이 없도록 일상 속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자"고 당부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네덜란드대사관과 올가홀푸드가 만나게 된 걸까요? 먼저 손을 내민 건 주한 네덜란드대사관이었습니다. 나더르 참사관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음식의 질이 정말 좋았고 외식 문화도 잘 돼 있어서 만족스러웠다"면서도 "그런데 정말 많은 음식들이 버려지는 것을 알게 됐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는 "농업이 발달해서 음식물을 정말 아끼는 네덜란드에서 와서 그런지 어떻게 하면 덜 남기게 할 수 있을지 책임감을 느끼게 됐다"며 "한국도 분리 수거, 비닐봉지 필수 구매 등 잘하고 있는 부분이 있어서 '음식물 낭비 줄이기'를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고 전했습니다. 다만 외국 대사관으로서 할 수 있는 일에 제한을 느꼈다는 나더르 참사관. 이런 상황에서 올가홀푸드의 지난해 제로웨이스트 캠페인을 알게 되면서 함께 손 잡자고 제안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습니다. 올가홀푸드는 지난해부터 환경부의 녹색특화매장 시범사범을 선보였다고 합니다. 먼저 포장재를 생분해되는 비닐 등으로 바꾸고, 소분 판매 등으로 녹색 소비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 것이죠. 그렇게 해서 손을 잡게 된 네덜란드대사관과 올가홀푸드. 사실 이들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닌 듯합니다. 강 대표는 2007년 즈음 네덜란드, 독일, 영국 등을 방문해서 동물복지와 선진 농법, 지속가능한 개발, 스마트팜 등을 배우고 온 적이 있다고 해요. 당시 네덜란드의 양계 농가, 돼지 사육장 등을 다녔는데 밀집 사육을 해오던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너무 평안한 곳에서 사육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강 대표는 전했습니다. 또 네덜란드의 슈퍼마켓 체인인 에코플라자를 보고 강 대표는 "그곳에서는 냉장 시설이 다 여닫이 문이더라. 그렇게 하면 에너지 효율과 품질 모두를 높일 수 있다"며 "우리도 그걸 보고 도입했다"라고 전했습니다. 이 때문에 강 대표는 네덜란드대사관 측의 연락을 받고 '이게 무슨 우연인가'라고 생각했고, 대사관 측은 첫 미팅 때 대표가 직접 나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해요. 언뜻 보면 유통사와 '제로 푸드웨이스트'와는 거리가 멀 것으로 보이죠. 더 많은 식품을 팔아야 수익을 내는 회사가 음식을 쓰레기를 줄인다니요. 강 대표는 어떤 마음이었을가요. 강 대표는 "당장의 효율성만 보면 오히려 손해일 수 있지만 좀 더 멀리 보고 큰 흐름을 감안하면 지속 가능성이 더 중요한 것으로 봤다"며 "고객들도 그런 믿음 때문에 올가를 찾아 오는 것이라는 교감이 있어서 믿고 나섰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최근 젊은 층에서도 환경 이슈에 대한 관심이 커지다 보니 주로 중장년층이 많았던 고객 구성도 젊은 층으로 넓어지고 있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고 강 대표는 전했습니다. 실제 회사가 공을 들이고 있는 녹색 특화 매장 운영에 대한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댓글을 보면 젊은 층의 반응이 더 뜨겁다고 해요. 이날 방이동 매장을 시작으로 올가는 캠페인 대상을 전국의 86개 매장까지 확대하려는 마음도 먹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올가는 반찬 등을 적은 양으로 나눠 덜어갈 수 있는 '델리존'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강 대표는 "(제로웨이스트 관점에서) 포장 단계에서 시작해 음식물 단계까지 왔다"며 "이제는 무엇이 됐든 더 넓은 범위에서 '제로 웨이스트'를 실현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런데 네덜란드는 왜 음식물쓰레기를 포함해 제로웨이스트에 큰 관심을 갖는 것일가요. 특히 네덜란드의 핵심 산업인 농축산업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네덜란드 농업부는 유엔의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 달성을 위한 실천 방안으로 2030년까지 현 농업 시스템을 순환 농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나더르 참사관에 따르면, 국가 차원에서 먹거리의 불필요한 손실을 최소로 줄이는 공급 사슬을 핵심으로 하는 순환 농업에 집중한다는 것이죠. 먹을거리가 남아돌고 낭비되는 것을 제로에 가깝게 줄이는 것이 목표입니다. 농업과 식품 공급 사슬에서 발생한 잔여물을 재사용하거나 재처리 과정을 거쳐 새로운 제품으로 탄생시키는 푸드 업사이클링도 이에 속하죠. 위에서 얘기했던 '못난이' 재료로 만든 고품격 파스타와 리너지바가 그 예입니다. 나더르 참사관은 "네덜란드는 인구의 10%가 농업 분야에서 일 하고 농업 분야에 대한 사회적 지위도 한국과 비교해 훨씬 높다"면서 "음식을 버리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전했는데요. 제로웨이스트에 대해 그는 "한국에서는 많게는 10가지 반찬이 한꺼번에 나오는데, 네덜란드는 조금씩 직접 가져다 먹는 것을 선호한다"며 "한국은 제로웨이스트도 음식물 자체보다는 플라스틱 같은 포장재에 초점을 맞추는 데 비해 네덜란드는 음식물 자체를 핵심으로 여기는 푸드웨이스트부터 시작한다"고 전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네덜란드에는 오렌지 껍질을 모아서 세제로 만드는 기업도 있고,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 곤충들에게 주고, 그렇게 먹인 곤충들은 닭의 사료로 쓰는 기업도 있다고 합니다. 정말 신기하죠? 나더르 참사관은 "한국은 기후변화 얘기를 하면 주로 자동차 얘기를 하는데 사실 농업 분야가 (온실가스 배출의) 25%가량 책임이 있다"며 "이제 보다 적극적으로 이 얘기를 해야 할 때가 됐다"고 덧붙였습니다. 네덜란드 대사관과 올가홀푸드의 공동 작업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22일에는 '푸드 뱅크'를 통해 기부 나눔까지 할 예정입니다. 나더르 참사관은 "순환 농업의 마지막은 음식 나눔"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네덜란드에서는 푸드 뱅크가 잘 돼 있다고 하네요. 강 대표도 "올가에서도 푸드뱅크에 음식 기부를 해왔다"고 덧붙였습니다. 정말 버려지고 남는 것 하나 없이 완전히 모두 사용하는 것 같지 않나요? 나더르 참사관과 강 대표는 모두 입을 모아 "지구 온난화 등 기후 변화 이슈는 이제 소비자뿐만 아니라 모든 이해 관계자들이 다같이 힘을 합쳐 대응해야 할 때"라며 "앞으로는 전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어떤가요. 이제 제로 푸드웨이스트 실현을 위해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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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이 휩쓴 'CES 혁신상'… "평균 경쟁률은 3대 1"

올해 사상 처음 온라인으로 열린 세계 최대 소비자가전박람회 'CES 2021'에서는 특히 한국 기업들의 선전이 돋보였다. 주최국 미국 다음으로 많은 기업(341곳)이 참여한 건 물론, CES 주관사인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TA)가 주는 '혁신상(Innovation Awards)' 리스트에도 우리 기업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마침 국내 참여기업들도 CES 수상 실적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이 상을 받는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지난 11일 개막한 CES 2021은 14일 막을 내렸다. 세계 각지 기업들이 첨단 기술을 과시하는 이번 CES 기간 동안 2,000여곳의 기업이 신제품을 출시했다. 자연히 기업들 입장에선 주최측이 주관하는 'CES 혁신상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혁신상은 말 그대로 혁신적인 제품에 주어지는 상인데, 컴퓨터·사진·가전·스마트시티 등 28개 제품 항목에서 수상자를 선정한다. CES 심사위원은 총 66명으로 모두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로 꾸려진다. CES 언론담당자는 "수상자는 수상 사실 자체만으로도 혁신 제품을 만들었다는 걸 인정받은 셈이어서 업계는 물론 전 세계 미디어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는다"며 수상의 의미를 설명했다. 다만 주관사인 CTA가 수상 기업을 직접 찾아 상을 주진 않는다. CTA는 매년 CES 개최 3개월 전쯤 혁신상 후보작을 출품하라는 공지를 내고, 이후 출품작을 평가해 수상자를 뽑는다. 수상자 목록은 CES 개최 첫날 공개된다. 일종의 흥행을 위해서다. 기업이 CES 기간에 수상 실적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이유다. CTA에 따르면 올해는 1,200여개 출품작이 제출됐고, 이 중 400여개 작품이 혁신상을 받았다. 대략 평균 3대 1의 경쟁률이다. 다만 일정 점수 이상을 받으면 주어지는 일반 혁신상과 달리 각 분야 톱에만 주어지는 최고의 혁신상(27곳) 경쟁률은 훨씬 치열하다. CES 혁신상은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아무나 참여할 순 없다. 혁신상 후보작을 출품했다면 반드시 해당 제품을 CES 개막일 기준 3개월 안에 시장에 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혁신상을 받았다고 해서 제품 성능까지 뛰어나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심사위원은 제출된 자료만 갖고 평가하지 실제 해당 제품을 테스트하거나 하진 않기 때문이다. 제품을 곧바로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는 점에서 아무래도 대기업이 혁신상 수상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들엔 CES 혁신상이 일종의 '등용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세계 최초로 충전식 지문인식 기술을 적용한 자물쇠로 2017년 CES 혁신상을 받은 미국의 벤지락은 수상 이후 주요 언론의 관심을 받으면서 거액의 투자금을 유치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올해 CES에선 국내 전자업계 쌍두마차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각각 44개와 24개의 혁신상(최고 혁신상 포함)을 가져가며 상을 휩쓸다시피 했다. 현지 미디어들이 주는 상까지 포함하면 삼성은 173개, LG는 139개에 달한다. IT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이 상을 휩쓴다는 건 그만큼 세계에서 우리 기업의 위상이 올라갔다는 걸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름 아는 여성과학자가 왜 마리 퀴리밖에 없나 '띵꺼밧!'

과학과 페미니즘을 동시에 이야기하기란 참으로 난감하다. 대학원에서는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공부했고, 같은 시기 거리에서는 페미니스트 활동가로 지냈다. 상아탑 속의 과학을 상상하는 사람에게 페미니즘이라는 사회 운동이 과학 활동에 영향을 준다는 생각은 다소 낯설 것이며 심지어 반감이 들 수도 있다. 한편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과학을 말하기도 쉽지 않다. 성차별적 설명이 과학의 이름으로 둔갑해 여러 차원에서 여성을 배제한 역사가 너무 오래되다 보니 과학, 특히 진화생물학 이야기만 나와도 진절머리를 내는 페미니스트가 많다. 페미니즘 담론에서도 과학은 유독 빈칸이 많은 분야다. 그러나 과학과 젠더 혹은 여성 혹은 페미니즘의 만남은 내게 가장 흥미로운 주제다. 이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재미난 세계를 만들어냈는지를 설명하려면 나와 과학과의 관계를 거슬러 올라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중학교 시절 어느 날 학원에 묘한 외모의 과학 선생님이 새로 왔다. 옷차림은 늘 화려했고 치아는 삐뚤빼뚤했고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과학 이야기를 하다가 젊은 시절 자기가 삭발한 이야기도 하고 클럽이 너무 좋아서 만날 갔더니 한 달 만에 십 킬로가 빠졌다는 이야기도 하는 사람이었다. 선생님 수업만 되면 마음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그가 침을 튀기며 열심히 강의하면 맨 앞자리에 앉아 간혹 얼굴에 침을 맞아가며 열심히 들었다. 선생님은 자기를 “띵꺼밧”이라고 불러달라 했다. 자신의 수업은 늘 '싱크 어바웃(think about)'하는 수업이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실제로 그분의 수업은 이전 선생님과는 매우 달랐다. 지식을 바로 알려주지 않고 매번 질문하라고 했다. 달의 모양은 왜 시기마다 달라질까? 띵꺼밧! 계절의 변화는 왜 일어날까? 띵꺼밧! 대화를 주고받으며 알아가는 과학은 참으로 재미가 있었다. 무엇보다 띵꺼밧을 자꾸 외쳐대니 평소에도 눈에 보이는 모든 현상에 띵꺼밧을 외치게 됐다. 뜨거운 음식에서 김이 나는 건 왜일까? 차가운 얼음에서도 김이 나는 건 왜일까? 선생님이 늘 옳은 답을 냈던 건 아니다. 돌이켜보면 굉장히 엉뚱한 대답도 했다. 이를테면 뜨거운 욕조에서 뱃살을 열심히 주무르면 지방이 빠져나간다는 대답 같은 것. 믿기지 않으면서도 혹해서 대중목욕탕 열탕에 들어가 열심히 뱃살을 주물렀다. 띵꺼밧 선생이 남긴 유산은 세 가지였다. 하나는 최초의 과학 선생님이 여성이었다는 것. 둘째는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도 언제나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것. 셋째는 고심해서 내놓은 답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 질문을 던지는 게 비단 과학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회 선생님이 띵꺼밧이었다면 사회학을 전공으로 삼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사회는 암기 과목이고 과학은 띵꺼밧 과목이다, 라는 게 머릿속 고정관념이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자연스럽게 이공계를 택했다. 문제는 내가 굉장히 신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면서 생겼다. 오전 주일 예배가 끝나면 오후 예배에 가고, 수요 예배에도 가고, 부흥회에서 찬양하고 기도하다가 방언 터지는 수준이었다. 교회 안에서도 띵꺼밧은 계속됐고 그럴 때마다 신의 섭리를 깨닫는 듯했다. 가령 이런 것이었다. 우리 집 보일러는 왜 동파된 걸까? 띵꺼밧... 하나님이 날 추위에 단련시키기 위해서. 과학 띵꺼밧과 교회 띵커밧은 자꾸 부딪쳤다.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는 과학계의 슈퍼스타로 보였는데 무신론 운동을 열심히 벌이는 데다 신앙을 가진 사람을 조롱했다. 과학의 세계에서는 초월적 존재에 관한 믿음이 촌스럽게 여겨지는 듯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성경에 나온 이야기를 조목조목 반박하는 과학자들에게 경도되어 교회를 그만 다니겠다고 선언했다. 과학을 도구로 삼아 신 없는 세계를 좀 더 탐구해보고 싶었다. 방언 터진 기독교인이었다가 갑작스레 무신론 과학주의자가 되었다. 짧은 문장으로 말했으나 대단히 충격적이고 혼란스러운 경험이었다. 오랫동안 형성해 온 기독교적 세계와 질서가 통째로 사라졌으니까.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책을 열심히 읽었다. 비슷한 경험을 한 선배들이 역사적으로 수두룩하게 빽빽했다. 이때의 경험이 남긴 유산은 다음과 같다. 누군가는 목숨을 걸 정도로 완고하고 간절하게 믿는 신념도 다른 세계에서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것. 한 순간에 확신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 확신이 무너진 세계에서도 그럭저럭 잘 살아진다는 것. 순진하게도 대학에 가서 처음 배정된 지도교수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명색이 지구과학을 전공한 교수이니 과학적으로 안심이 되는 대답을 해주리라 기대했다. 이야기를 들은 교수는 안쓰럽게 쳐다보더니 사실은 자기가 목사랬다. 원래 자신도 과학 공부를 하며 교회에 냉담했는데 아버지가 위중한 병을 앓게 됐다. 밤새 아버지 곁을 지키며 한 번만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신께 기도했다. 그날 밤 하나님이 아버지의 장기를 꺼내 깨끗이 닦아내는 꿈을 꿨다. 아버지의 병은 기적처럼 나았고 교수는 신실한 신자가 되어 목사 안수를 받았다. 성경 자주 읽으라는 덕담을 듣고 교수 연구실을 나왔다. 이후로 무신론이나 종교 대 과학 같은 논쟁에는 흥미가 떨어졌다. 책 좀 읽었다 하는 이공계 애들 대부분은 무신론자였다. 모두가 종교에 회의적이니 되레 종교를 옹호하고 싶어지기도 했다. 강력한 무신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종교가 인간의 삶에 어떤 의미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외면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 뒤로 한동안은 진화론을 공부하는 데 열정을 바쳤다. 진화론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답하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원시 수프에서 태어난 생명이 한없이 다채롭게 진화해 나갔다는 것, 이들에겐 위계가 없다는 것. 인간이 만들어낸 통념과 직관의 뺨을 후려치는 생명의 이야기를 만날 때면 가슴이 뛰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합리성이 아니라 아름다움 때문에 과학에 빠져든다. 진화론을 공부하는 여정에서 만난 복병은 종교가 아니라 내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왔다. 성차별적 발언이 과학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강간이 진화의 산물이랄지, 수렵채집 사회의 영향으로 남성은 도전적이고 쟁취하는 성질이며 여성은 까다롭고 수동적인 성질이랄지. 여성으로서 겪어온 삶과 부합하지 않는 찜찜하고 불쾌한 과학 지식과 반복해서 마주쳤다. 되돌아보니 과학은 아주 여러 층위에서 여성을 배제하고 있었다. 왜 여성 과학자 이름은 마리 퀴리밖에 모르는가. 왜 온갖 임상시험은 70㎏ 백인 남성을 기준으로 두는가. 왜 똑똑한 여자 선배들이 자꾸만 학계에서 사라지는가. 진화론에서, 나아가 과학에서 느낀 배신은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았다. 종교도 버려봤는데. 내가 믿는 세계가 얼마나 허술할 수 있는지를 이미 학습한 뒤였다. 뜨거운 물에 뱃살을 짓누르는 띵커밧 선생이나 목사 안수를 받은 지도교수처럼 과학 안에도 무척이나 다양한 믿음의 양식이 있었다. 과학 또한 인간이 하는 일이며, 그 인간은 다양한 문화와 사회에 속한 존재다. 과학 기술의 세계에는 학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중학생을 가르치는 학원 선생도 있고 과학 기사를 쓰는 기자도 있고 연구 결과를 산업에 응용하는 사업가도 있고 연구실의 테크니션도 있다. 이 지면에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전에 이토록 기나긴 지적 여정을 소개하는 이유는 과학과 페미니즘의 만남이 전혀 엉뚱한 것이 아님을 말하기 위해서다. 사실 종교이건 과학이건 페미니즘이건 띵꺼밧 차원에서는 본질적으로 같다고 본다. 당연하게 여겨온 것에 질문을 던져본다는 점에서, 그것을 일상의 순간마다 지속하는 점에서, 한 번 이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되면 세상 모든 것이 그렇게 해석된다는 점에서. 앞으로 이어질 연재에서는 과학과 페미니즘의 경계에서 갈팡질팡했던 여정을 다룬다. 과학의 남성 중심성에 실망하여 떠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고쳐 쓸 수 있을지를 고민하여 취하고 싶다. 과학이 과학의 세계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편견에 의해 편향된 지식을 생산할 수 있다면, 구성원을 설득함으로써 더 나은 과학 지식을 생산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과학 지식이 불편부당한 객관을 보여주며 전문가만이 개입할 자격이 있다는 믿음부터 깨부숴야 한다. 그렇지 않나? 띵꺼밧.

올해 선거도 집값 향방도... 인구구조 변화에 달렸다

<14>인구로 본 2021년 사회, ‘뒤틀린 구조 vs 시작된 압박’ 희망과 염려 속에 2021년이 시작됐다. 한해를 점쳐보고픈 욕망은 자연스럽다. 이때 인구통계는 미래예측의 유력한 열쇠다. 변화진폭이 큰 한국사회는 인구 힌트만 한 유의미한 진단 툴이 없다. 정치지형, 경제양상, 사회구조 등 모든 게 달라졌다면 이는 인구구조발 변화일 수밖에 없다. 모든 변화는 인구에서 비롯된다. 미래를 읽자면 인구를 통하는 게 기본이다. 2021년 정치권의 눈은 서울·부산 시장선거로 쏠린다. 예측은 엇갈리나 인구로 보면 성근 그림은 나온다. ‘진보위기 vs. 보수기회’로 정리된다. 예단은 어렵지만, 적어도 인구구조상 그렇다. 2020년 서울인구(967만명) 중 50세 이상(379만명)은 39.2%로 2010년의 29.2%보다 10%포인트 늘었다. 10세 구간별로 보면 40대까지는 감소했는데, 50대부터는 모두 증가했다. 30대는 187만명에서 148만명으로 줄었는데, 70대는 44만명에서 70만명으로 늘었다. 특히 50대 이상은 10년 새 78만명(301만명→379만명) 증가했다. 부산도 비슷하다. 2010~20년 총인구는 줄었지만(357만명→339만명), 50대 이상은 33만명(120만명→153만명) 늘었다. 50대부터라고 보수성이 짙어지진 않으나, 과거 선거를 감안할 때 경향성까지 부인하긴 어렵다. 2017년 대선에서 유권자 비중은 4050세대가 제일 많았으나, 그중에선 40대가 더 컸다는 점도 사실이다. 이들 일부는 현재 50대로 접어들었다. 연구 결과를 보면 보수 성향은 50대부터 34.2%~65.8%인데 비해 아랫세대는 19.7%~33.1%로 나타났다(2016년 한국의 사회동향). 선거란 게 변수가 많지만, 인구구조가 늙어갈수록 보수화되는 건 맞다. 일례로 일본의 보수집권이 간판만 바꿔가며 장기화되는 이유도 인구구조 없이는 설명하기 어렵다. 한국은 덜하지만, 세계 전역에선 인구 공학이 정치지형을 엇가른다. 미국 대선도 그랬다. 낮은 백인 지지에도 불구,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건 다른 인종의 압도적인 지지 덕이었다. 절정 판은 2016년 대선이었다. 당시 인구변수가 미국 대선의 중심에 있었다는 분석은 설득적이다. 트럼프 정권창출은 이민증가를 경계하는 백인몰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2020년 대선은 사뭇 달랐다. 다민족성을 깬 민족주의에 맞서 유리한 조건에도 정권이 바뀌었다. 인종구성 변화추이를 보건대 향후 백인 지지만으로 대통령에 당선될 확률은 낮다. 더구나 이민인구의 출산율이 높아 영향력은 더 거세질 전망이다. 2020년 아파트는 한국사회의 욕망·갈등이 배어난 공간이 됐다. 동시에 부동산 시세진단은 전 국민의 관심사로 부각된다. 그럼에도 좀체 알기 힘든 게 부동산값이다. 폭등이든 폭락이든 수요변화, 즉 인구변화가 자주 차용되나 그것만으로 결정되진 않아서다. 다만 큰 그림은 조심스레 그려진다. 고도성장과 인구증가가 끝난 판에 아파트만의 고공행진은 계속되기 힘들다. 시점이 문제지만, 공급·금리 등 기타변수와 함께라면 방향성은 간추려진다. 후속세대의 구매력을 능가할 결정변수는 없기에 당장은 혼조세를 보여도 길게는 조정기에 들어설 수밖에 없다. 수급이야말로 모든 걸 우선하는 법이다. 다만 미세판단은 필요하다. 대표적인 게 세대 숫자의 증가추세다. 총인구가 줄어도 집이 필요한 세대수가 늘면 값은 뛴다. 2020년 1인 가구(906만호)는 39.2%까지 늘었다. 4년 만에 161만 가구 증가했다. 2인 가구까지 합하면 62.6%로 압도적이다. 물론 구매력은 별도다. 1인 가구의 상당수가 만혼·비혼의 청년인구란 점에서 이들의 고용불안·실업압력은 면밀히 고려될 필요가 있다. 베드타운화된 신도시도 인구통계로부터 자유롭진 않다. 한계수도에 맞선 탈(脫)서울화의 피로도는 깊다. 길게 봐 달라진 인구구성에 발맞춘 주거공급이 아닌 한 기존주택의 유령화는 불가피하다. 인구구조를 보건대 고려사항은 결국 차별화로 압축된다. 이대로면 서울은 공간적 절대우위를 독점할 수밖에 없다. 세계 어디를 봐도 경제력 집중공간의 재화가격이 떨어진 경우는 드물다. 일본만 해도 수도권 등 대도시 권역은 복합불황을 이겨냈다. 일자리가 서울에 존재하는 한 서울 집값은 신도시와 차별화될 수밖에 없다. 공급자가 돼야 할 고령인구가 새로운 수요자로 변심했다는 점도 주택 가격을 결정하는 변수 중 하나다. 증여든 차익이든 기성세대의 자산 매집은 각자도생에 가깝다. 탓할 일은 아니다. 신뢰 자본이 적고 정책조차 엇박자인 현실이 낳은 결과다. 후속 세대는 영끌하든 포기하든 스스로의 또 다른 각자도생에 임할 수밖에 없다. 당분간은 세대별 기 싸움의 승패로 엇갈릴 전망이다. 그럼에도 인구통계의 행간은 역시 한 방향을 향한다. 인구변화는 처음엔 느려도 한번 방향을 정하면 그쪽으로 무서운 속도로 내달린다. 최근 몇 년간의 출산통계가 뒷받침한다. 인류역사 초유의 0.8명대 출산율(2020년 3분기 0.84명)은 한국사회의 제반 구조를 과격하게 전환하라 요구한다. 아마도 2021년이 원년인 듯하다. 더는 과거 시스템을 고집하기엔 여유도 명분도 없다. 2020년 출산과 사망이 엇갈려 마이너스를 기록했듯 기존체계의 수급구조는 하나둘 역전되기 시작했다. 미스매칭의 현실화다. 인구변화에 부응한 새로운 균형 회복은 시급한 과제다. 반발·저항은 넘어야 할 산이다. 그 새로운 실험 시도가 이제 본격화될 수밖에 없다. 복지개혁이 대표적이다. 복지는 세대부조적 성격 탓에 부담자와 수급자가 구분된다. 낼 사람은 적은 데(저출산) 받을 이가 많아지면(고령화) 유지되지 않는다. 세금으로 벌충해도 결국엔 외상장부일 수밖에 없다. 2021년은 베이비부머의 선두주자인 1955년생이 만으로 65세에 들어선다. 국민연금 수급 연령이다. 부머(Boomer)란 말처럼 거대인구다. 반면 보험료를 낼 후속세대는 적어지는 데다 고용환경조차 불안해진다. 건강보험도 연간기준으론 적자에 들어섰다. 그렇다면 올해부터는 변화의 군불을 땔 수밖에 없다. 워낙 후폭풍이 커 당장 더 내라 말하긴 어려워도 루트는 정해졌다. 그나마 탄탄했던 정부 곳간도 나빠졌다. 증세의 저주에도 불구, 독배를 마셔야 할 시기는 다가오고 있다. 문제는 세계가 호평했던 한국 경제도 역동성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중위연령은 1997년 30.3세에서 2019년 43.7세로 늘었다. 2050년이면 56.4세까지 뛴다. 연령이 낮을수록 혁신·창의적이라면 한국은 정적인 사회에 가깝다. 어렵지만 묘책 동원에 사활을 걸 때다. 모든 걸 제로베이스에 두고 지속가능성 하나에만 집중해 재편하는 게 좋다. 인구정책의 새판을 짜자는 얘기다. 당장 원인부터 정확히 발굴하는 게 먼저다. 왜 인구구조가 이렇듯 변했는지 겉이 아닌 속을 봐야 진단·치료가 이뤄진다. 2021년 인구 병이 깊어질수록 간절한 건 환자를 생각하고 위하는 명의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