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예 부대를 반란군으로 전락시킨 윤 대통령이 반국가세력"

2024.12.13 11:30

"다시 백수가 됐지만 마음 하나는 편안합니다. 그날 밤 바로 계엄이 해제돼서 망정이지 안 그랬어봐요. 제가 이렇게 돌아다닐 수 있겠어요? 지금쯤 어디 붙잡혀가서 얻어 맞고 있을지도 모르죠." 지난 11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 본사에서 만난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낮게 웃었다. 지나고 나니 이렇게 웃는 거지, 만에 하나 계엄이 성사됐다면 케이블 타이 수갑 차고 지하 벙커에 끌려갔을지도 모른다. '감히 사표를 던진 반국가세력'으로 표적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12월 3일 '비상계엄'이란 군부독재 시절의 망령이 좀비처럼 되살아난 그 직후 류 전 감찰관은 "계엄과 관련된 일체의 지시나 명령에 따를 수 없다"며 법무부에다 사표를 던졌다. 홍장원 당시 국가정보원 1차장은 국회의원 체포 대상자 리스트를 듣고는 '미친 X'이라 생각하고 응하지 않았다. 국군방첩사령부의 법무장교들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압수수색을 무산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의 충격적인 계엄 선포 이후, 질문 하나가 우리 머리 속에 똬리를 틀 수밖에 없다. 나랏일을 하는 공무원이란 대체 무엇인가. 한나 아렌트의 냉소 어린 표현 '악의 평범성'에 걸맞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로 이름을 얻었지만 온갖 격노를 통해 오직 자신에게만은 사람에게 충성할 것을 요구한 대통령, 그리고 그렇게 충성한 조직원들이 벌이는 시시하고도 진부한 진실 게임을 대면해야 할 시간이다. 그래서 류 전 감찰관을 만났다. -백수가 됐다. 사표 낸 뒤 어떻게 지냈나. "예전에 실업자 여러 번 해봤는데, 이번만큼 마음 편한 실업자는 처음인 거 같다. 계엄이 유지됐으면 반국가사범이라고 어딘가 끌려가 취조받고 있을지도 모르지 않나." 서울대 전자공학과 87학번인 류 감찰관의 첫 직장은 삼성전자였다. 회사 다니다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이후 검사를 하다 삼성전자에서 다시 일하는 등 몇 차례 이직을 했다. 업을 바꿀 때마다 생계를 비롯해 이런저런 걱정이 없을 수 없었지만, 내란을 박차고 나온 이번만큼은 사표를 던지고 난 이후가 너무나 홀가분하다 했다. -사표 내고 주변 반응은 어땠나. "친구들, 선후배님들 다들 격려해주셔서 고맙다. 이제 조용히 내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점이라 생각한다. 국회에서도 불렀는데 이제 와서 굳이 나까지 말을 얹기가 그래서 사양했다." -3일 계엄의 밤, 그날 상황을 설명해준다면.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법무부로 다 들어오라 해서 과천으로 갔다. 모두들 그러셨겠지만 가짜 뉴스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현실감이 없었다. 헬기가 뜨고 어쩌고 하는 라디오 뉴스 속보를 들으니 '아, 진짜구나' 싶었다. 고민하던 중에 1979년 전두환·노태우 등 하나회 장성들의 12·12 군사반란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생각났다. 계엄의 불법성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그렇기에 법무부에 도착해 회의실에 들어가자마자 장관에게 계엄 관련 회의냐, 묻고는 그렇다면 아무것도 따를 수 없으니 사표를 내겠다고 하고 바로 돌아나와서는 옆에 있는 용지에다 사표를 써서 냈다. 그때 시계를 보니 12월 4일 0시 9분이었다." -12·12사태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어떻게 알고 있었나. "내가 초임검사로 서울지검에서 근무한 게 1997년이다. 그해 4월 12·12 군사반란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확정 판결이 있었다. 아무래도 법률가들이니까 그 판결문을 두고 검사들 사이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알다시피 그 사건은 검찰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뭉갰다가 김영삼 당시 대통령 지시로 수사와 처벌이 이뤄졌다. 검사들 사이에선 '이런 사안에 대해 검찰이 미리 몸을 사린 것은 잘못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많았다." -그때는 어떤 입장이었나. "그때 제일 이야기를 많이 나눈 선배 중 한 명이 지금 국민의힘 의원인 박형수 선배다. 그때 공안 업무를 맡고 있던 박 선배는 '대통령 지시 하나로도 너끈히 구속하고 기소해서 유죄받을 사건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검찰을 비판했다. 비교적 온건한 입장이었던 나를 두고는 '명백한 군사반란인데 너는 왜 그렇게 미온적이냐, 너도 군부 쪽이랑 똑같은 사람이냐'고 혼냈던 기억이 있다." -사태 초기 모두가 긴가민가할 때 어떻게 보면 가장 먼저 '내란'이라 선언한 셈이다. 하지만 지금도 내란이 성립하네 마네, 내란이긴 한데 미수에 그쳤네 하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엉터리 주장이다. 12·12 판결문을 보라. 인터넷 검색만 해도 다 나온다. 내란죄의 국헌문란 행위란 폭력 행위로 국가 기능의 전부 또는 일부를 곤란하게 한 경우다. 무력을 동원하는 등 비합법적인 방식으로 헌법기관을 통제하는 순간 내란죄는 성립한다. 출동 명령받고 헬기 타고 나간 군인이 국회에 내리는 순간, 경찰이 국회 문을 걸어 잠그고 통제하는 순간 이미 내란이다. 성공이냐 실패냐 여부, 얼마나 강한 폭력을 행사했느냐 여부, 어느 순간 '이건 아니다' 싶어서 철수를 했느냐 여부 같은 건 아무 상관없다. 군경 동원 때 이미 내란죄는 성립했다." -지휘관들은 국회 장악까진 사전에 몰랐고, 나중에 알고서는 주저했다고들 한다. "말이 안 되는 변명이다. 전쟁에서야 작전 지시를 무조건 따라야 한다. 그런데 국회에 진입해서 국회를 차단하고 국회의원을 강압적으로 몰아내거나 체포하란 지시를 받았다? 그 자리에서 바로 명령을 거부했어야 했다. 소극적인 태도였다 한들 그 명령을 받아들인 것 자체가 문제다. 홍장원 국정원 1차장을 보라. 그분도 육사를 나왔는데 국회의원 체포 리스트를 전달받고는 묵살했다. 계급이 낮은 일선 군인도 아니고, 여차하면 생사의 갈림길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주요 지휘관들이 그 정도 판단도 못 했다는 건 정말 시시한 변명이다. 내게는 자신들의 준비 부족을 마치 주저한 것인 양 둘러대는 것처럼 들린다." -우리가 탄 헬기가, 차량이 국회로 간다는 걸 아는 순간, 혹은 국회에 내려준 순간 작전을 거부해야 했다? "그렇다. 그 순간 항명했어야 한다. 참된 군인이라면 '명예로운 항명'을 택해야 했다. 항명을 함으로써 오히려 그 명령을 내린 사람이 반란죄를 저지르고 있음을 확정적으로 보여주는 기회로 삼았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군 같은 폐쇄적인 집단에 대해서는 전반적인 민주주의 교육을 처음부터 다시 시켜야 한다." -'김용현에게 이용당했다'며 울먹이던 707특임단장 김현태 대령의 기자회견은 짠했다. "특전사 내의 특전사라 불리는 707특임단은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최정예 부대다. 유사시 최고난도 작전에 투입될 그런 부대를 저런 식으로 망쳐놓은 윤석열 대통령이야말로 반국가세력이자 간첩 아니냐고 되묻고 싶다. 분통 터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군이나 검찰 등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이들에 대해서는 민주주의 교육을 다시 시켜야 한다." -국무회의는 어떤가. 계엄 선포 전 11인의 국무회의 참석자 가운데 2명만 명시적으로 반대했다, 아니다 다들 반대했다로 말이 엇갈린다. 그 가운데 특히 박성재 법무장관은 법무행정의 수장인데. "규명돼야 할 부분이다. 상징적인 것은, 가장 반대한 사람이라고 알려진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스스로 반대했다는 말을 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은 자기가 반대했다고 한다는 점이다. 박 장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때 법무부 회의 분위기를 보면 꼭 그랬을 것 같지도 않다." -들어가자마자 사표를 낸 그 회의 말인가. "그렇다. 내가 회의실에 막 도착했을 때 장관이 무슨 말씀 중이었는데 내가 중간에 자르고 '동의할 수 없으니 사표 내겠다' 했더니 그러라 했다. 출입국 관련 논의를 하던 중이었던 것 같았는데, 그때 장관의 말투나 회의장 분위기는 계엄을 반대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은 더 많지만, 앞으로 많은 고초를 겪으실 걸로 보여 더 이상 말하고 싶진 않다. 다만 국무위원은 대통령에게 듣기 좋은 소리나 하는 대통령의 부하가 아니다." -사표 내고 돌아서면서 이런저런 걱정은 되지 않았나. "그런 건 없었다. 12·12도 1979년에 일어난 일이 1997년에 가서야, 무려 18년 만에 '군사반란'이라 확정지어졌다. 엄혹한 독재가 이어졌고 그 뒤에도 '구국의 결단'이니 '고도의 통치행위'니 요란스럽게 포장도 했지만 결국 내란으로 결론지어졌다. 마찬가지로 12월 3일 밤의 그 일 또한, 만약 성공한다 해도, 그 때문에 몇 년이 걸린다 해도, 또 실패한 뒤 지금처럼 이런저런 논쟁과 논란이 벌어진다 해도 결국 내란으로 결론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군인이든 그 누구든 절대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그간 우리 사회가 그나마 쌓아온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 같은 거다. "맞다. 내가 사표 낸 게 대단한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동료 공무원들보다 판단이 좀 더 빨랐을 뿐이라 생각한다. 처음에 이게 뭐지, 싶은 시간이 지나면 모두들 결국은 나와 같은 선택을 했었으리라고 본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상식적으로 이런 계엄을 받아들일 사람 누가 있겠나." -역사는 기이한 방식으로 반복된다. "정말 그렇다. '민주주의를 어떻게 되돌리냐'라고 믿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주 시대착오적 생각을 가진 대통령이 '1979년의 전두환'을 고스란히 반복했다. 그것도 오직 자기를 위해서다. 그래서 죄질이 너무나 나쁘고 악질적이다. 대통령이 그러는 것도 충격적인 일인데,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들, 여전히 유신헌법 시대 가치관을 가진 유신잔당 같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여전히 많다는 사실이 더 놀랍고 분하다." -'12·12 전두환'보다 '12·3 윤석열'의 죄질이 훨씬 더 나쁘다? "당연하다. 12·12의 경우 하나회가 자신들의 주도권 상실을 우려했다는 점이 컸고, 여러 시위 소요 사태도 있었고, 당시 우리 사회의 전반적 수준 자체가 낮지 않았나. 그런 점에서 보면 12·12는 명백한 잘못이긴 해도 최소한 시대착오적이란 말은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무려 45년이 지났고 그간 대한민국이 얼마나 발전했고 달라졌나. 이번 계엄 사태를 일으킨 사람들은 아직도 1970년대 유신시대에 살고 있다고 자백한 거나 다름없다." -계엄 같지 않은 계엄이란 의미에서 박원호 서울대 교수는 이번 계엄을 '생활형 계엄', 유시민 작가는 '참으로 프라이빗(사적인)한 계엄'이란 표현을 쓰더라. "개인적 욕구를 그대로 반영한, 말 그대로 개인 맞춤형 계엄인 것 같다. 미운 국회의원들, 미운 언론들, 미운 의사들 혼내주겠다는 거다. 그러니까 12·12보다 죄질이 더 나쁘다는 거다. 이런 게 무슨 계엄인가 싶을 정도다." -너무 놀라워서인지, 윤 대통령의 정신감정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오래된 얘기다.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 대통령실에 근무했는데 내려오는 지시가 하나같이 피해망상, 과대망상적인 것이어서 너무 괴로워서 그만뒀다 한다. 그때는 그냥 그렇게 듣고 말았는데, 자기 말 안 듣고 반대하는 사람은 모두 반국가세력이라는 피해망상, 그리고 내가 한번 확 뒤집으면 다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과대망상이 결국 계엄으로 치달은 것 같다." -검사 시절엔 그게 정의와 공정으로 포장됐다. "어떻게 보면 대통령은 '나는 100% 정의로우니까 내 멋대로 하겠다'는 점에서는 참 일관된 삶을 살아온 셈이다. 예전에야 직위도 낮고 말려줄 사람이라도 있었지만 대통령이 되면서 그 한계가 모두 없어졌고 그냥 폭주한 것 같다." -검찰 경찰 공수처 등 경쟁적 수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번 계엄 세력들의 발언을 보면 현실 인식조차 엉망이지만 아주 치사하다. 이런 사람들은 나중에 법정에 가서도 온갖 절차상 하자 문제까지 다 물고 늘어진다. 그러니 책 잡히지 않게 잘 진행하는 게 좋다고 본다. 기관 간 협의나 특검 같은 건 그런 방향으로 잘 정리되리라 믿는다." -검찰이 윤석열을 잡아서 뒤늦게 정의로운 척하려 한다는 불편한 시각도 있다. "윤 대통령을 엄벌에 처한다 한들 이제 와서 검찰이 박수 받기 힘들다는 거는 검찰 스스로가 제일 잘 안다. 동시에 그런 상황에서 엄벌조차 못하면 정말 큰일 난다는 위기감도 있다. 보는 사람마다 평가는 다를 수 있겠지만 누가 됐든 이런 사건을 소홀히 할 수 있는 기관은 이제 없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국가란, 공직자란 무엇일까. "거창한 얘기들이 있지만 나는 그런 것보다는 우리 개개인이 살아가는, 소소한 자유와 행복을 국가가 함부로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부분을 강조하고 싶다. 국가란 무엇인가, 공무원이란 무엇인가라는 건 굉장히 무겁고 어려운 질문이다. 하지만 국가와 공무원이 해야 할 일은 결국 개개인들이 일상에서 누리는 소소한 자유와 행복을 지켜주는 것이고, 지켜주지 못할 망정 함부로 침해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거다. 판단과 행동의 기준점이 거기에 있어야 한다." 백수가 된 류 전 감찰관은 이제 뭘 할까. 당분간은 좀 쉬면서 또 다른 일상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국가가, 공무원이 개개인의 소소한 일상을 함부로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 얘기이기도 하다. 한때 계엄을 선언했던 그 국가는 류 전 감찰관의 사표를 인터뷰 당일이던 11일 저녁 마침내 수리했다.

국내 첫 '자연분만 네쌍둥이' 서울우유 맘껏 마신다

국내 최초로 네쌍둥이 자연 분만에 성공해 화제를 모은 김환·박두레씨 부부의 다둥이들이 앞으로 서울우유를 먹게 된다. 서울우유협동조합은 12일 "김환·박두레씨 가정에 유제품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부부는 2023년 4월 국내 최초로 네쌍둥이 자연 분만에 성공했다. 네쌍둥이를 임신할 확률은 100만분의 1로 극히 희박하다. 게다가 네쌍둥이는 각각 여∙여 일란성 쌍둥이와 남∙남 일란성 쌍둥이. 이처럼 두 쌍의 일란성 쌍둥이를 동시에 임신할 확률은 7,000만분의 1에 달한다고 한다. 첫째에 이어 네쌍둥이가 동시에 태어나면서 부부는 다섯 아이의 부모가 됐다. 서울우유 측은 단순한 일회성 지원에 그치지 않고 이 가정에 유제품을 오랫동안 지원할 방침이다. 서울우유 관계자는 "김환∙박두레씨 부부의 네쌍둥이를 포함한 다섯 자녀에 대한 양육 부담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어 기쁘다"며 "서울우유는 '우유로 세상을 건강하게' 경영 이념에 따라 기업 차원의 다양한 사회적 지원 활동에 힘을 보탤 것"이라고 밝혔다.

포브스 '세계 여성파워 100인'에 이부진 85위, 최수연 99위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에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최수연 네이버 대표가 각각 85위, 99위에 올랐다. 포브스는 11일(현지시간) 재산과 언론활동, 영향력, 활동 범위 등 지표를 평가한 올해의 영향력 있는 여성 순위를 발표했는데 한국인 여성 중 100인에 선정된 사람은 두 사람이다. 지난해 같은 집계에서 이 사장은 82위, 최 대표는 96위로 각각 평가됐다. 포브스는 이 사장을 "서울의 최고 숙박·콘퍼런스 시설 중 하나인 호텔신라의 사장이자 최고경영자이고 호텔신라는 롯데에 이어 한국의 최대 면세점 사업자"라고 소개했다. 이어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장녀로 어머니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과 함께 '아버지의 제국'을 나눠 물려받았다"고 설명했다. 최 대표에 대해서는 "2022년 한국 최대의 인터넷 기업인 네이버의 최고경영자가 됐다"며 "네이버의 첫 여성 CEO이자, 창업자를 제외한 최연소 CEO"라고 소개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으로 3년째 1위를 지키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와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각각 2, 3위로 뒤를 이었다. 반면 지난해 3위였던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은 100인 명단에 없었다. 포브스는 "자리에서 물러날 예정이기 때문에 순위에서 빠졌다"고 설명했다. 올해는 기술 산업 분야 여성 리더가 두각을 보였다.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가(CEO)가 26위에 오른 것을 비롯해 루스 포랏 알파벳 최고투자책임자(CIO)가 12위, 새프라 캐츠 오라클 CEO가 16위, 에이미 후드 마이크로소프트(MS) CFO가 23위, 그윈 쇼트웰 스페이스X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가 25위, 수잔 리 메타 CFO가 41위, 콜레트 크레스 엔비디아 최고재무책임자(CFO)가 55위로 선정됐다.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와 비욘세는 각각 23위와 35위에 올랐다.

‘발품 파는 소설가’ 장강명 “尹 킬러 문항 배제, 잔인한 코미디"

소설가 장강명은 누군가를 끊임없이 만난다. 부동산과 전세사기에 관한 단편 소설을 준비하면서 전세사기 피해자를 대면한다. 알파고와의 대국으로 ‘인공지능(AI) 쇼크’가 다른 분야보다 앞서 찾아온 바둑계를 다루기 위해 바둑계 인사도 찾아다녔다. 그가 이번에는 교육 현장을 파헤쳤다. 최근 이기호, 염기원, 서유미 등 소설가 13명과 함께 한국의 교육 실태를 단편 소설로 풀어낸 '킬러 문항 킬러 킬러'를 출간한 그를 지난달 25일 만났다. 아래는 일문일답. -교육 소설 기획한 이유는. "수능을 불과 150여 일 앞두고 대통령의 말로 ‘킬러 문항’을 없애겠다는 과정이 어리석고 잔인한 코미디처럼 보였고, 어떤 측면에서는 한국 교육정책의 역사이자 현주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부모들의 혼란과 사교육 시장의 대응, 그걸 감당할 소년·소녀들을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떠오른 풍경을 글로 옮겼다. 혼자 단편소설을 쓰기보다는 여러 작가가 이 주제로 짧은 소설을 연재하는 게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봤다." -소설가가 사회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는 이유는. "지금 한국문학에 부족한 것이 발품이다. 작가, 평론가들은 현실을 책으로 배우고, 그 책조차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지 않는다. 사회관계망서비스의 글이나 기사, 책을 보고 이를 현실로 체화하면서 그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종의 확증 편향이다. 실제로 현실은 나쁜 빌런과 정의로운 히어로로 딱 갈라지는 게 아니다. 모두가 저마다의 욕망과 두려움이 있다. 대기업 노조를 약자라 할 수 있나. 세상은 변하는데, '관념 좌파'는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소설가로서 한국문학과 현실 관계를 진단한다면. “평론만 보더라도 ‘한국문학이 현실에서 멀어졌다’는 내용이 많다. 남의 얘기를 빌릴 것도 없이 현장에서 본 바로도 그렇다. 예전에 사회의 큰 사건을 소설로 써낸 소설가에게 기자가 ‘취재했나’라고 묻자 ‘취재 대신 오래오래 생각했다’고 답하더라. 물론 그런 식의 소설에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그건 사회파 소설이 아니라 '관념 소설’이다. 현실이 아니라 개인의 생각이 반영된 거다. 그런 소설이 한국문학에는 많다.” -동시대 작품이 문학성이 떨어진다거나 소재의 차용에 그친다는 지적도 있다. “소설가가 쓰는 건 모두 소재로서의 차용이다. 역사적 사건이든 지인이나 자신의 이야기든 다 마찬가지인데 현실의 일을 쓴 작품에만 유독 차용이라고 얘기하는 건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있지 않나 싶다.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 등 현실을 다뤄 불멸의 자리에 오른 문학 작품이 수도 없이 많다. 그럼 과연 몇 년이 지나야 어떤 사안에 관해 소설로 쓸 수 있게 되는 건가.” -작가에서 기획자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본업은 아니지만 2~3년 전부터 조금씩 기획을 하고 있다. 엄청난 사명감이 있어서는 아니다.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싶은데 혼자할 때보다 함께한다면 운동으로서 힘이 실릴 것 같았다. 언론에 글을 싣는 것도 마찬가지다. 기사로 나간다면 더 많은 독자에게 읽힐 수 있다. 또 하나는 지금 쓰고 싶어도 필력과 에너지가 없어 못 쓰는 이야기들이 있어서다. 매일 한 명 이상이 죽는 한국의 산업재해는 내가 아니더라도 ‘월급사실주의 동인(뜻 맞는 작가들과 당대 현실 문제를 다루려 만든 모임)' 중 한 분이 쓰면 좋겠다. '때로는 찢어지는 비명이 다가오는 재난을 경고할 수 있고, 그것 역시 예술의 힘이다.'(월급사실주의 동인 '기획의 말'을 대신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