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뿌리 찾고 싶어" 한국계 유명 모델, 친부모 찾아 나섰다

2021.09.22 09:00

케빈 크라이더(Kevin Kreider)는 미국의 젊은 인플루언서다. 잘생긴 아시아계 미국인이다. 키가 180센티미터를 넘고, 기회만 있으면 근육질의 몸을 자랑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힘들어 하는 자신과 같은 미국인들에게 건강을 유지하고 긍정성을 잊지 말라고 설파한다. 올 초 미국에서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넷플릭스 리얼리티 쇼 '블링블링 엠파이어(Bling Empire)'는 '돈이 넘쳐서 주체를 못하는' 캘리포니아의 아시아계 부유층을 출연시켰는데 여기서 케빈의 역할은 이들을 관찰하는 '평범남'이다. 그런데 이 쇼는, 얼핏 보면 고민 하나 없을 것 같은 이 남자의 다른 면을 비춘다. 그는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태진(Kim, Taejin)이기도 하다. 그가 네 살 때, 그를 돌보던 할아버지가 그를 한국에서 미국 필라델피아의 가정으로 입양시켰다. 당연히 그에게 한국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그는 쇼에서 유전자 검사를 하고, 생물학적 부모에 관한 단서를 찾으며 번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케빈은 15일 줌(Zoom)을 통해 한국일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부모를 찾는 이유를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알고 싶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가족력이 있는지만 알아도 도움이 될 것이고 형제가 있는지도 알고 싶다"며 "무엇보다도 내 얼굴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내가 밤중에 갑자기 깨어나 아침까지 잠들기 힘든 이유도 술을 즐기는 이유도 알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그는 '아시아인이되 충분히 아시아인이지 못하고, 미국인이되 충분히 미국인이지 못한' 처지를 고민해 왔다고 했다. 그는 이것이 "내가 늘 고민하는 것이자 내 불안감의 원인"이라며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나는 고래들 사이에서 사는 연어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만화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 '울버린'에 자신의 처지를 빗대기도 했다. 만화 속 울버린도 '과거 기억 되찾기'가 삶의 주요한 목표로 나온다. "울버린은 실험의 대상이 돼서 기억을 잃고 자기 본명이 뭔지도 모르다보니 불안을 느끼고 항상 화가 나 있다"며 자신도 이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블링블링 엠파이어'의 에피소드 4 '가슴 아픈 사랑'에서는 그가 자신의 과거를 찾으려는 여러 노력들이 그려졌다. 그는 "나는 한국인(I'm Korean)"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이어 "늘 남들과 다르게 겉도는 기분을 느끼며 컸다"며 "아이들한테 괴롭힘을 당했고 아시아인으로 살기 싫었다"고 털어놓는다. 대신 "늘 백인이 되고 싶어 했죠"라고 했다. 그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자신의 혈통과 문화적 뿌리를 찾으려 한다. "살면서 친부모님을 찾고 싶은 생각이 든 적은 없었다"는 케빈은 "그런데 요즘 들어 신경이 쓰인다"고 말한다. 그는 그 이유를 "내 인생의 잃어버린 조각이 아닐까 싶어서"라고 고백한다. 케빈은 자신의 유전자 검사 결과를 입양 센터에 메일로 보냈고, 친부모에 대한 정보가 있는지 물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케빈은 친부모를 찾을 단서를 얻었다. 그가 밝힌 기록에 따르면, 그는 수원에 위치한 아동 보호시설 '경동원'에 있다가 1986년 입양됐다. 조부는 수원 구천동에 거주하던 '김화경'씨로 기록돼 있다. 김태진은 입양 이전에 시설에서 사용된 이름이다. 그는 "재밌는 건 할아버지는 내게 음력 생일을 남겨서, 나는 한동안 정확한 날짜도 몰랐고, 별자리(점성술에 따라 생일별로 배정되는)도 전혀 다르게 알고 살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면요법으로 과거의 기억을 되짚는 시도도 한다. 애초에 그는 이런 요법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이었지만, 결국 그는 '태어날 때 어머니로부터 무엇을 받았다고 느꼈느냐'는 질문에 원치 않는 임신을 한 모친의 불안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정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몸으로 기억하는 것을 되짚은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워낙 어렸을 적이라, 그가 떠올릴 수 있는 구체적인 기억은 없다. 한국에 살던 시절 있었던 몇몇 장면에 대한 '느낌'뿐이다. "아버지였던 것 같은 사람인데, 화장실에 갈 때 내게 '덩(똥)'이라고 말한 것은 기억이 난다"며 "한국어에 실제로 있는 단어냐"고 묻기도 했다. 케빈은 어쩌면 만날 수 있을 부모에게 자신이 입양된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해 말했다.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고도 했다. "그분(부모)들이 만났고, 그래서 내가 이 세상에 나왔고, 그 결과로 좋은 일이 일어났다"는 케빈은 "그분들이 지금의 나에 대해서 자랑스러워 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은 미국에 비해 미혼부모의 자녀, 이혼자녀, 혼외자녀 등을 '부끄럽고 나쁜 것'으로 여긴다고 들었다"며 "그분들이 자신의 입양에 대해서 부끄럽거나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입양은 오히려 나에게 '두 번째 삶'의 기회가 됐다"며 "내 삶에 결국 좋은 일이 일어났고, 그건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만나고 나서 듣고 싶은 이야기도, 묻고 싶은 질문도 많다. "지금 미국의 (양)부모님이 내게 내 유년시절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처럼 그들이 기억하는 내가 어땠는지를 이야기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우리는 대화를 나누면서 몇 가지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다"며 "그분들이 원한다면 더 가까워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주호 현대두산인프라코어 기술부장, '대한민국 명장' 영예

현대두산인프라코어는 최근 김주호(56) 기술부장이 기계정비 분야 대한민국 명장에 선정됐다고 22일 밝혔다. 김 부장은 1985년 1월 현대두산인프라코어의 전신인 대우중공업에 입사해 중기계정비 및 시험을 담당하며 전문성을 쌓았다. 1999년 기계가공 기능장 취득을 시작으로 2016년 건설기계정비 기능장과 중기계정비 분야 우수숙련기술자 자격을 획득했다. 2018년에는 대한민국 산업현장 교수로 선정돼 인하대 건설기계공학 대학원에서 석사를 취득하는 등 끊임없는 자기 계발을 통해 명장으로 올라섰다. 김 부장은 "기술 연마를 지속해온 노력이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다"며 "후배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해 현대두산인프라코어의 기술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대한민국 명장은 숙련기술인에게 최고의 영광이다. 해당 직종에서 15년 이상 종사한 기술인을 대상으로 서류와 면접 심사를 거쳐 선발한다. 올해 11명을 포함해 1986년부터 총 663명이 명장의 영예를 안았다. 현대중공업그룹은 김 부장까지 31명의 명장을 배출했다. 현대두산인프라코어에서는 2014년 컴퓨터응용가공 분야 홍기환 기장 이후 7년 만에 나온 두 번째 명장이다.

'머드맥스'로 '인싸'된 오지리 어촌계장 "손주에게 보여줄 게 생겨 좋네요"

충남 서산시청에서도 차를 타고 한참(약 40분) 들어가야 나오는 어촌 마을인 대산읍 오지리에 사는 이진복(69) 어촌계장은 이번 추석 연휴를 손꼽아 기다렸다. 서울과 서산에 떨어져 사는 손자(15) 손녀(6, 12세)들에게 꼭 보여줄 게 있어서다. 오지리 주민들이 참여한 한국관광공사의 '머드맥스(MUDMAX)' 영상이 1,290만뷰(19일 오후 4시 기준)를 기록할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누린 뒤 관광공사가 자신을 비롯한 일부 주민들을 추가로 인터뷰해 만든 미공개 후속 영상을 직접 보여주고 싶어서다. 그는 17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머드맥스 영상이 처음 나왔을 때 손자 손녀가 '할아버지 동네 텔레비전 나왔어. 뭐 재밌는 일 있어?'라고 묻길래 '뭐 재밌는 게 나왔디?'라고만 하고 별 얘기 안 했었다"며 "관광공사에서 먼저 보내준 1분 남짓 분량의 미공개 후속 영상에서는 내가 순식간에 지나가는 머드맥스 본편 영상보다는 길게 나와 손자들과 같이 보면서 할 얘기가 좀 더 많을 것 같다"며 웃었다. 지난해 '범 내려온다'로 전 세계에 한국을 알렸던 한국관광공사가 수십 대의 경운기가 갯벌을 달리는 시즌2 홍보 영상, 머드맥스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이 영상을 찍은 오지리도 함께 떴다. 관광공사는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Feel the Rhythm of Korea) 서산편'에서 바지락을 잡으러 경운기를 타고 갯벌로 향하는 어부들의 모습을 영화 '매드맥스(madmax)'를 패러디해 만들었다. 7월 31일과 8월 1일 이틀 동안 진행된 촬영에는 경운기 30대와 주민 90명가량이 참여했다. 평균 연령이 70세 안팎인 오지리 마을 주민 약 300명 중 상대적으로 젊은(?) 60, 70대 주민 위주로 3분의 1이 나설 정도로 참여율이 높았다. 그는 "(제작진의) 지시에 따라서 바다에 바지락 잡으러 나갈 때처럼 경운기가 한 줄로 쭉 들어갔는데 훌륭한 영상이 나와 주민들 모두 '어떻게 영상이 이렇게 나왔나'라고 놀랐다"며 "마을이 뜨고, 분위기가 '업'돼서 주민들도 웃는 얼굴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마을 대표나 다름없는 어촌계장 이씨는 연일 인터뷰로 바쁘다. 한동안 뜸했던 지인들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며 오랜만에 연락이 오고, 대전MBC YTN 등 방송국 촬영은 물론 라디오 인터뷰까지 벌써 10곳가량 소화했을 정도다. 오지리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가 속된 말로 단박에 '인싸'가 된 셈이다. 그는 "벼농사, 밭농사에다 지금 한창 바지락 캘 때인데 손이 모자라, 서산시내에 사는 아들한테 SOS를 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귀농 귀어 문의도 쇄도하면서 오지리의 몸값도 오르고 있다. 그는 "도시에서 오래 거주한 나이 든 분들 중에 '머드맥스' 영상을 본 뒤 '시골에서 살아보고 싶다'며 귀농 귀어를 문의해 오고 있다"며 "전에는 마을에 빈집도 있었는데 1년 전에 외지인 7명이 정착해 살면서 현재는 빈집이 없다"고 했다. '머드맥스' 인기로 한껏 분위기가 달아오른 오지리도 추석 연휴에는 차분한 분위기가 될 것 같다. 여느 때라면 마을잔치라도 열었겠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회포를 풀기 어려워서다. 이 계장은 "서울에 사는 딸네 식구들과 서산에 사는 아들네 식구가 찾아올 예정이라 쓸쓸하지는 않겠지만 동네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는 것은 어려워졌다"며 아쉬워했다. 이어 "머드맥스 촬영 때도 거리두기와 관광공사 사람들이 다음 촬영 때문에 바쁘다고 그냥 가서 뒤풀이를 못 했다"고 뒷얘기를 털어놨다. 유명세를 탄 오지리는 아쉬움을 털고 마을의 경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우선 관광상품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계장은 "어제(16일) 서산시 관광과에서 나와 '1,000만 뷰를 돌파했으니까 경운기를 모델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제안했다"며 "우리 시는 물론 오지리도 홍보할 수 있어 고맙다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영상의 배경이 된 서산 가로림만도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숲에 이슬을 더하는 바다'라는 뜻의 가로림만은 충남 서산·태안에 걸쳐 있고, 전체 해안선의 길이가 162㎞에 이른다. 조석 간만의 차이가 심하고 수심이 얕아 간조 때는 전체 면적의 3분의 2가 드러날 만큼 넓은 갯벌이 특징이다. 만 안에는 고파도, 웅도, 저섬 등 30개 가까운 섬들이 퍼져 있다. 특히 점박이물범은 가로림만의 마스코트다. 천연기념물 33호 점박이물범은 2005년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2급으로 지정됐다. 대부분 백령도에서 관찰되던 점박이물범은 드물게 동해안과 서해안 일대에서 관찰되는데, 2012년 6월 오지리 가로림만 안에서 쉬고 있던 점박이물범 다섯마리가 발견됐다. 이후 가로림만은 점박이물범의 중요한 여름 서식지로 꼽히고 있따. 그는 이어 "백령도 서해안과 함께 점박이 물범이 나올 정도로 환경이 깨끗하다"며 "(머드맥스에 캐는 장면이 나온) 바지락은 전국에서 다 생산돼도 여기서 나온 바지락은 오염이 안 됐다"고 자랑했다. 쇼맨십과 입담도 수준급으로 늘었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2시간도 안 걸려요. 머드맥스 영상 보고 찾아왔는데 칼국수 한 그릇 주세요라고 하면 한 그릇 대접할 정도의 정이 넘쳐나는 곳이니까 코로나19 괜찮아지면 놀러오세요. 제가 쏠테니."

"사라져가는 한약업사…. 제조 비방이 끊길까 걱정돼요"

“처음에는 부담이 돼 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제는 2권, 3권을 내고 싶어요.” 지난해 초부터 전국을 다니며 한약방 주인을 만나 그들의 삶을 기록해온 하도겸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최근 출간한 ‘약재 한 첩에 담긴 정성, 한약방 한약업사의 하루’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약업사는 자격시험에 통과해 주로 의사와 약사가 없는 무의촌, 무약촌 등에서 한약방을 차린 이들을 말한다. 과거에는 한약을 지어주는 일 외에 관습적으로 침과 뜸을 놔주기도 했지만, 지금은 이를 불법 의료행위로 봐 침이나 뜸은 놓을 수 없다. 하도겸 연구사가 이들을 조사하고 나선 건 한약업사가 사라져가는 직종이기 때문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사라져가는 직업군과 관련해 근현대 생활문화 조사 보고서를 매년 발간하고 있다. 한약업사 충원은 1958년부터 1973년까지 간헐적인 시험에 의해 이뤄지다 1983년부터는 아예 중단됐다. 하 연구사는 “한약방은 매년 감소 추세로 현재는 전국에 700곳도 남지 않았다”며 “한약업사의 평균 연령도 80세 정도 된다”고 설명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필요가 줄면 자연스레 사라지는 게 맞지 않을까 말할 수도 있지만, 하 연구사의 생각은 달랐다. 하 연구사는 한약업사의 소멸로 오랜 임상의 결과인 비방(祕方) 등이 후대에 전해지지 않고 끊길 것을 우려했다. 한약업사들은 좋은 약재를 선별하고 독극물을 제거하는 방법을 터득해 오랜 기간 고객들의 신뢰를 받아온 터였다. “강원도 원주에 있는 황중원한약방의 류황림 한약업사가 공개해주신 수은과 유황에서 독성을 제거하는 방법 등을 책에 담았어요. 앞으로 2권, 3권을 내고 싶은 것도 이 같은 방법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기 때문이에요.” 하 연구사는 얼마 남지 않은 한약업사들이 맡은 역할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예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한약업사는 국민 건강 지킴이 역할을 해왔을 뿐만 아니라 학교나 장애인 시설 등을 건립해 지역 사회에 공헌한 이들도 많았다. 하 연구사는 "일제강점기 때는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 한약방도 많았다”며 이들의 공로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실제 경남 진주 소재 남성당한약방의 김장하 한약업사는 한약방을 운영해 번 돈으로 학교를 지어 기부했다. 아프고 괴로운 사람들을 상대로 돈을 벌었으니 함부로 돈을 쓸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최근 첩약(한약) 건강보험 적용 시범사업에서 이 분들이 배제돼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어요. 이들이 국가를 원망하며 돌아가시는 일이 생기질 않길 바랍니다. 그중에는 장사꾼도 있겠지만, 환자를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사회 공헌에 힘쓴 분들이 많아요. 이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