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을 우체통에 넣으면 답장이’, 판타지가 현실로

2021.04.16 09:00

사람이 ‘온기’, 그러니까 따뜻한 기운이 될 수 있을까. 이메일도, SNS 메신저도 아닌 손글씨가 그 온기를 퍼뜨리는 통로가 될 수 있을까. 일반 우편물은 자취를 감춰가는 시대에 말이다. 디지털 문명의 속도를 거슬러, 느릿느릿 다정하게 그런 시도를 하는 사람이 있다. 4년여 간 그가 세상에 흘려 보낸 편지가 1만 통. 말 못 할 고민 한 자락을 써서 넣어두면 며칠 뒤 답장을 받을 수 있는 ‘온기우편함’을 만든 조현식(31) ‘온기’ 대표다. 그러나, 그도 한때는 속도전의 삶을 살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야 ‘공부란 걸 해야겠구나’ 마음먹고 성남에서 서울로 전학까지 가 ‘압축 학습’을 했고, 대학에 가서는 좋은 회사에 취업하려 조기졸업이 가능할 정도로 학점을 따며 내달렸다. ‘높은 곳에 빨리 당도하는 것’이 인생의 지향점이었다. 그 삶에 쉼표를 찍어준 사건이 일어났다. 할머니의 죽음. 어릴 적 5년이나 함께 살았던 할머니는 그에겐 어머니의 어머니를 넘어서는 존재였다. 투병하는 할머니의 마지막 6개월을 그가 함께했다. 틈날 때마다 병실을 찾아 할머니가 살아온 시간을 들었다. 막노동에 ‘함바집’ 같은 육체 노동을 하며 어렵사리 생계를 꾸리면서도 어떻게 4남매를 번듯하게 키울 수 있었는지 같은. 그러면서 할머니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정말 중요하다. 내가 이제까지 이만큼 살 수 있었던 건 많은 사람들의 도움 덕분이야.” 생의 마지막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할머니는 가쁜 숨으로 말했다. “죽고 싶지 않아.” 그가 ‘사람’과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2주 동안 집 밖에 나가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그리고 이런 고민을 했죠. 어떻게 살아야 후회하지 않을까, 내일 내가 만약 죽는다면 나는 오늘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이후 그의 삶은 느려졌다. 방황이 길어졌다. 야학교사, 위기가정아동 방과후 돌봄, 루게릭병 환우 지원 같은 일들을 했다. 답을 찾지 못한 채 군에 입대해 본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이 그에게 영감을 줬다. 둘 다 과거에서 온 편지에 주인공이 답장을 하면서 생기는 일이 줄거리다. “내 고민에 귀를 기울여주는 편지를 써주는 사람이 실제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제대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온기우편함을 제작했다. 2017년 2월 25일 서울 삼청동 돌담길에 처음 세운 우편함은, 현재 여덟 군데로 늘어났다. 삼청동을 비롯해 덕수궁 돌담길, 노량진ㆍ신림동 고시촌, 혜화동, 서울어린이대공원이다. 명동 우표박물관 내에는 우체국콜센터 감정노동 종사자들을 위한 온기우편함이 있다. 답장을 써주는 자원봉사자인 ‘온기우체부’도 10명에서 150명이 됐다. 소설과 영화 속 판타지는 그렇게 현실이 되어 지금에 이른다. 다른 이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일이 한때는 그의 인생에 가장 큰 고민이었다는 조 대표를 12일 서울 강남구의 온기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무실이 산뜻해요. “이사한 지 한 달쯤 됐어요. 이게 네 번째 사무실이에요.” -처음엔 사무실이 없었죠? “네, 온기우체부님들과 주로 카페에서 만나서 편지를 모아 읽고, 답장을 썼어요. 한 군데에만 너무 오래 있을 수 없으니 카페를 전전하며 다녔죠. (미소)” -군 복무 때 온기우편함 아이디어를 구상했다고요. “네, 맞아요.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다가, 이런 게 현실에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죠.” -그때가 대학 재학 중이었잖아요. 원래 졸업 후 무슨 일을 하고 싶었나요. “군대 가기 전에 방황을 많이 했어요. ‘뭘 하며 살아야 될까’ 하는 고민이 길어졌거든요. 대학 2학년 때까지는 학점을 잘 따려고 공부 열심히 했고 아르바이트도 여러 가지를 했어요. 과외, 택배, 노점상까지요. 그러다가 야학 교사, 굿네이버스의 위기가정 아동 방과후 돌봄, 루게릭 환우 단체 봉사 같은 활동도 했죠.” -돈도 벌고 봉사도 열심히 했네요. “네, 저는 공부란 걸 늦게 시작했어요.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공부를 해본 적이 없을 정도였죠. 하하. 그러다가 고1 담임선생님이 지나가는 말로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신 적이 있는데 그게 마음속에 남았어요. 따로 선생님을 찾아가서 상담도 했죠. 환경의 중요성을 조언해주시더라고요. 그때 (성남시) 분당구에 살았는데 서울로 이사를 가서 학교도 전학을 했죠. 제가 부모님께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드렸거든요. 그리고는 정말 공부만 했어요. 2년으론 부족하더라고요. 그래서 재수를 했고 대학(한양대 국제학부)에 진학했죠.” -대학에 가서는 어땠나요. “그때 제 삶의 방향은 경쟁에서 이겨 좋은 학점을 따고, 외국계 IT 기업이나 금융회사 같은 좋은 기업에 입사하는 거였어요. 그게 제가 생각한 성공이었고, 빨리 이루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 지향이 바뀐 건가요? “네,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사건이 일어났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셨거든요.” -어릴 때 할머니와 꽤 오래 살았다고 했으니, 정말 남다른 존재였을 텐데. “네, 6개월 동안 입원하셨는데 틈만 나면 할머니를 찾아가서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일주일에 3, 4일은 갔죠. 돌이켜보니 그러면서 조금씩 제가 변한 것 같아요. 정말 가까운 사람이 죽음을 앞둔 때였고 그 시간을 함께했으니까요.” -할머니와 어떤 얘기를 나눴나요. “대화라기보다 제가 할머니 말씀을 들어드리는 쪽이었어요. 처음에는 막연히 자주 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맛있는 거나 꽃을 사갔죠. 산책도 하고요. 언제부터인가 할머니가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말씀을 하시기 시작했어요. 처음 듣는 얘기도 많았죠.” -예를 들면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참 어렵게 사셨거든요. 두 분 다 막노동을 하셨어요. 할머니는 건설현장에서 ‘함바집’ 일도 하셨고요. 그렇게 힘들게 4남매를 키우신 얘기를 계속 하셨죠. 할머니가 자주 하신 말씀이 ‘사람이 중요하다’는 거였어요. 그때는 흘려들었는데 돌아가신 뒤 그 말씀, 특히 ‘사람’이라는 단어가 강렬하게 남더라고요.” -기억에 남는 장면도 있나요. “가장 힘들었던 때가 있었어요. 돌아가시기 얼마 전이었죠. 기력이 없으셔서 말씀도 제대로 하지 못하셨어요. 할머니께 저 왔다고 인사를 드리니까 우셨어요. 그러시면서 죽고 싶지 않다고 하셨죠. 그때는 말없이 안아드리기만 했는데 나중에 후회가 됐어요.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제가 옆에 있을게요’라고 해드리고 싶어요.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많이 힘들었겠어요. “네, 한 2주 동안 집 밖에 나가질 않았죠. 삶과 죽음, 또 어떻게 살아야 후회가 없을지, 나는 왜 살고 있는 건지, 지금 과연 잘 살고 있는지 같은 생각을 진지하게 하게 됐죠.” -할머니와 함께 산 기간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나요. “어릴 때 집이 어려워진 적이 있어서 5년 정도 할머니 집에서 살았어요. 할아버지 기억은 거의 없는데 할머니와 얽힌 추억은 좀 있죠. 두 분 다 매일 아침 나가셔야 하니까, 할머니가 저 먹으라고 밥을 해두시고 쪽지를 남겨두셨거든요. ‘맛있게 먹어라’ 같은 내용이었죠.” -할머니의 쪽지가 어쩌면 처음 받은 손편지일 수도 있겠어요. 떠올리면 어떤가요. “아쉬움이에요.” -왜 아쉬움이죠? “할머니가 쪽지를 남기셨을 때 저는 한 번도 ‘잘 먹을게요’ 같은 답장을 쓴 적이 없거든요.” -할머니 글씨도 생각이 나나요. “글씨를 잘 쓰시진 않았어요. 그런데 떠올리면 애정이나 따뜻함 같은 느낌이 떠올라요. 제가 기억을 미화한 건지 모르겠지만요. 글씨도 그 사람의 냄새를 담잖아요. 그 쪽지를 쓸 때 할머니가 저를 떠올리셨을 테니까 그런 감정이 드나 봐요.” -그래서 돈 버는 아르바이트가 아닌 자원봉사도 하게 된 거군요. “네, 맞아요. 그런 고민을 거치면서 서서히 삶의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한 거죠. 적어도 누군가를 제치고 높은 위치에 올라가는 게 행복한 삶은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랐어요.” -그럼 어떨 때 행복을 느끼던가요. “생각해보니 누군가 제게 ‘참 힘들었지’ 같은 공감과 위로의 말을 해줄 때 저는 행복하더라고요. 그렇다면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도 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누군가의 마음이나 삶에 귀를 기울이는 봉사활동을 해보기 시작한 거네요. “맞아요. 그땐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까진 못했지만, 막연히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었죠.” -그러다가 군대에서 온기우편함 아이디어를 떠올렸고요. “네, 그래서 제대하고 바로 시작했어요.” -어떻게요? “일단 우편함을 스케치해서 목공소에 갖고 가서 제작을 했어요. 그게 첫 우편함인데 바로 저거예요.” 그가 사무실 한편에 세워둔 우편함을 가리켰다. 분홍 지붕에 몸통은 하얀색이다. 그는 “뭣 모르고 만들어 열쇠도 달지 못했다”며 웃었다. 현재 온기우편함은 색깔도 노란색으로 바뀌었다. -첫 우편함을 왜 삼청동 돌담길에 세웠어요? “삼청동 길을 걸을 때마다 마음이 여유로워지는 듯한 느낌이었거든요. 서울시에 문의를 해보니 비영리 목적이라 설치가 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다만 세운 뒤 민원이 제기되면 철거해야 하고요.” -이름을 ‘온기우편함’이라고 지은 이유는 뭐예요? “따뜻함을 주는 단어를 넣고 싶었어요. 궁리를 하던 중에 책을 읽다가 ‘온기’라는 단어를 보고 ‘이거다’ 싶었죠.” -처음부터 익명으로 편지를 받았나요. “네, 맞아요. 신상이 드러나면 고민을 털어놓기가 부담스러울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온기우편함에는 이런 안내 문구가 있다. “소중한 고민을 익명으로 넣어주시면, 느린 손걸음으로 답장을 보내 드립니다.” 그렇게 쓴 데에는 의미가 있을 거다. -먼저 ‘소중한 고민’에 담긴 뜻은 뭔가요. “고민이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해서 붙인 수식어예요. 내가 하는 고민은 적어도 내게는 절대적이잖아요. 고민으로 하루 혹은 며칠이 꽉 채워지기도 하고요. 고민 때문에 몸도, 마음도 영향을 받죠.” -‘느린 손걸음’은요? “SNS를 떠올리며 썼어요. SNS가 상징하는 건 빠른 소통, 빠른 손놀림이잖아요. 주로 행복하고 기쁜 일을 빠르게 올리는 소통의 도구고요. 생각해봤어요. ‘과연 SNS에 힘들고 아픈 이야기도 쉽고 빠르게 올릴 수 있을까.’ 저는 못 하겠더라고요. 그럼 온기우편함이 나만의 아픈 이야기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창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붙인 문구죠. 그리고 그렇게 보내주신 고민에 오랫동안 진심으로 고민해서 답장을 드리겠다는 뜻도 담았고요.” -온기우편함을 처음 세운 뒤 홍보도 했나요. “안 했어요. 시작했을 때는 한 주에 고민 편지가 10통만 와도 좋겠다고 생각했죠. 답장을 써줄 온기우체부도 온라인 카페에 글을 올려서 모았는데 처음엔 10명이서 시작했어요.” -편지가 예상 외로 많이 왔다고 들었어요. “첫 주에 60통이 담겼어요. 저도 놀랐어요.” -무슨 고민이 많던가요. “지금도 많이 오는 내용이에요. 특히 20, 30대 중에서 이직한 분들의 사연이 많았죠. ‘이 일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일까’ 하는 고민이에요.” -취업하고도 진로 고민이 이어지는 거군요. “네, 저도 방황을 하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답장에 제가 겪은 일을 쭉 쓰곤 해요. 그리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질문을 많이 던지죠. 제가 저한테 했던 질문들이에요. ‘나는 왜 살까, 좋아하는 건 뭘까, 어떤 순간에 행복한가, 언제 살아 있음을 느끼나’ 같은 것들이죠. 이런 질문에 답을 하다 보면 그 안에 하고 싶은 일이 있을 수도 있으니 함께 찾아나가 보자고 해요.” -답장을 쓸 때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계속 소통을 이어나가려 하는 느낌이네요. “온기 일을 하면서 갖게 된 원칙이 있어요. ‘정답을 드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내가 생각할 때 이게 정답이어도, 다른 사람에게는 아닐 수 있잖아요. 그러니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같은 명령조의 답장은 하지 않아요. 대신 온기우체부들의 경험을 많이 적어요. ‘저도 그랬어요. 혼자가 아니에요. 우리 함께 정답을 알아가 봐요’ 하는 식이죠.” -답장을 쓸 때 뭐라고 시작하나요. “고민을 남겨주신 분들을 ‘온기님’이라고 부르거든요. 대개 ‘소중한 온기님께’라고 써요.” -‘온기님’이라고 칭한 이유가 있나요. “익명으로 받는 편지니까 통칭하는 말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온기우편함에 편지를 남기는 분들이니 ‘온기’라고 하면 어떨까 싶었죠. 부를 때마다 따스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유치원생이든, 성인이든 ‘온기님’이라고 부르고, 편지도 모두 존댓말로 쓰죠.” -답장을 쓰기가 힘들었던 편지도 있을 텐데요. “네, 최근 보낸 답장도 그중 하나예요. 한 온기님이 생일날 남긴 편지였어요. 그 외에 나이나, 직업 같은 신상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죠. 생일인데 혼자서 길을 걷다가 너무 울적하고 쓸쓸해서 남긴다는 내용이었어요.” -내용이 아주 우울했나요. “손편지가 참 신기해요. 쓴 사람을 모르는데도 글씨에서 묻어나는 게 있거든요. 그 글씨조차 정말 외롭게 느껴지더라고요.” -답장을 어떻게 썼나요. “이틀간 고민을 했어요. 최대한 그 온기님의 처지가 되어 보려고 노력했어요. 덕수궁 돌담길에 있는 우편함으로 보낸 편지였거든요. 그래서 그날 나도 그 길을 함께 걷는 심정으로 썼죠. 그때 날씨는 어땠을지, 홀로 걷는 걸음에 어떤 고민이 담겼을지, 그 길 초입 와플집에서 나오는 와플 향기를 맡으면서 어떤 기분이었을지, 걷다가 온기우편함을 발견하고 쓸지 말지 고민하다가 편지를 쓴 마음은 어땠을지, 정동교회를 지나면 보이는 카페에 들르진 않았는지. 그러면서 저도 생일이 되면 우울할 때가 있는데, 생일이 특별해야 한다고 기대하니 그런 거 같다고 적었죠. 그날 제가 온기님과 함께 있었다면 그 옆을 함께 걸어드리고 싶었다고요.” -답장이 왔나요. “네, 진짜 그 카페에 갔었다고, 편지를 읽으면서 그날 누군가 나와 함께 걸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아 감사하다는 내용이었죠. 생일엔 우울했지만, 그날을 떠올리는 지금은 우울하지 않다고요.” -그런 답장을 받으면 어떤가요. “가슴이 찡해요.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하고요. 저는 그분을 생각하며 편지를 쓴 것밖에 한 게 없는데, 이렇게까지 위로가 됐다니 ‘정말 이 일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죠. 다른 온기우체부들도 마찬가지예요. 이 일을 하는 가장 큰 동력은 우리 답장을 받은 온기님들의 회신이죠.” -답장이 갖는 의미도 되새길 것 같아요. “네, 처음에는 공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혼자 있는 것 같은 누군가에게 선물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죠. 지금은 마음의 안전망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정혜신 선생님이 쓴 ‘당신이 옳다’를 보고 적정심리학을 알게 됐거든요. 심리전문가나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보다 내 옆 사람의 공감에 더 큰 치유의 힘이 있다는 내용이잖아요. 어쩌면 우리가 하는 일에 그런 힘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온기우편함이 안전망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라요. 언제든 마음을 털어놓고 위로받는, 그렇게 나를 지킬 수 있는 안전망요.”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신호는 충분히 마음의 안전망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안전망을 꾸리는 사람의 생계는 어떻게 하나. -온기우편함도 운영비가 들 텐데요. “처음에는 사비로 우편함도 만들고, 편지지나 편지봉투, 우표를 샀어요. 그런데 규모가 커지면서 제 돈으로 충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죠. 그래서 비영리단체로 설립 신고한 뒤에는 온기우체부들 총회를 거쳐서 한 달에 1만 원씩 회비를 걷기 시작했어요. 그 돈으로 사무실 월세를 내고, 편지지와 편지봉투도 사고 있죠. 작년 하반기부터 우표는 한국우편사업진흥원에서 지원해주고 있어요.” 맞다, 우표. 편지를 보내려면 우표를 붙여야 한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사실을 발견한 듯 반가운 마음. 그런데 우표가 요즘 얼마더라. -우표 값도 들었겠네요. “한 달에 400통 정도 답장을 보내니까 우표 값도 상당했거든요.” -일반우표가 요즘 한 장에 얼마죠? “380원이에요. (미소)” -운영은 그렇게 한다고 하지만, 생계는 어떻게 꾸리나요. “그래서 저도 큰 고민의 시기를 거쳤어요. 단순하게 시작한 일이 커지면서 ‘이 일을 평생 할 수 있을까’ ‘내 직업으로 삼아야 하나’ 고민이 됐죠. 누구보다 부모님이 강하게 반대하기도 했고요.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자격증 따고, 군대 가서까지 컴퓨터공학 독학사 딴 게 다 무슨 소용이냐는 말씀이셨죠. 부모님과 갈등이 컸어요. 저도 한편으로는 ‘그게 맞는 건가’ 싶었어요.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죠. 중간에 그래서 IT 기업에 입사해 온기 일과 병행한 적도 있어요.” -힘들었겠어요. “네, 회사 출근하고 퇴근하면 온기 사무실에 와서 온기 일을 하고 집에 가서 다음 날 다시 출근하는 생활의 반복이었죠.” -회사는 결국 그만뒀나요. “네, 그 생활을 1년 반 동안 하다 아내와 고민을 나눈 게 결심의 계기가 됐어요. ‘어떻게 살면 우리가 죽기 전에 후회하지 않을까’란 말에 아내는 ‘하고 싶은 일을 해라. 그게 나도 행복한 거다’라고 해줬죠. 제 답은 온기 일이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이 일이 가치 있다고 강하게 느끼거든요. 특히 답장을 받은 온기님들이 블로그에 와서 남기는 댓글이나, 보내주는 회신에 많은 힘을 받아요.” -그래도 온기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릴 수도 있어야 하는데요. “그간엔 유지만 되면 좋겠다고 여겼지 이 일을 업으로 삼을 생각은 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결론을 내고 나서 이 일도 직업이 될 수 있게 만들어 보자 싶었죠.” 현재 그는 ‘온기’를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설립 허가 신청을 하고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통과되면 기부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현재도 일반인의 후원이 가능하다. 그 수는 50명 남짓으로 아직 많지 않다. -온기우체부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다양해요. 20대 대학생부터 60대 이상 한 가정의 어머니까지요. 직업도 간호사, 소방관, 교사, 심리상담사, 디자이너, 주부로 각양각색이죠.” -공통점이 있나요. “있어요. 살면서 아파 본 적이 있는 분들이 지원하세요. 삶의 힘든 시기를 겪은 아픔이 있는 분들이죠. 일주일에 한 번씩 우편함의 편지를 제가 모두 수거해오면 다 같이 의견을 나누거든요. 그때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나같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런 바람을 담아서 온기님들에게 답장을 쓰는 거죠.” -온기우편함에도 코로나19 영향이 있나요. “편지가 20% 이상 늘었어요. 코로나 때문에 생기는 고민, 우울감, 갈등이 많아요.” -지금까지 우편함에 들어온 편지가 대략 몇 통인가요. “4월 둘째 주를 기준으로 지금까지 온기님들의 편지에 보낸 답장이 9,192통이더라고요. 답장을 받을 주소를 남기지 않은 분들도 일부 있어서, 그걸 고려하면 대략 1만 통쯤 될 것 같아요.” -굉장히 위태롭게 느껴지는 편지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죠. 혼자 두면 위험할 수도 있겠다 싶은 느낌이 들죠. 그럴 때는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을 꼭 알려드려요.” -30대 초반이지만, 많은 이들의 고민과 인생이 포개지면서 나이의 밀도가 높아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수학을 잘하고 싶다’는 어린이의 고민부터, 학업 스트레스, 취업이나 진로 고민, 이별의 아픔, 번아웃의 위기, 삶에 관한 고민까지 정말 다양한 내용의 편지들이 오거든요. 제가 느낀 건 결국 고민의 시작점은 자기 자신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누구든 자신의 고민이 가장 힘들다는 거죠. 이 일을 하면서 좀 달라진 게 있어요.” -뭔가요.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것. 예전에 저는 내 신념과 다르면 ‘어떻게 그래, 그럴 수 없어’라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누구나 안고 있는 고민이나 처한 상황이 다르더라고요. 자기한테는 그게 절대적이고요. 그래서 주변을 힘들게 하는 사람을 봐도 한 번 더 생각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왜 그럴까’ 하고 물어보고 싶어져요.” -묻는다는 건 애정이 있다는 뜻이죠. “언젠가 아내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진짜 같다’고요. 이 일을 하는 제 모습을 보고 한 말이었어요.” -의미 있는 말이네요. “네, 저는 원래 빠르고 효율적으로 목표점에 도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이 일을 하면서 그 전과는 다른 가치들이 제 삶을 채우고 있어요. 온기님들의 편지를 읽는 시간, 답장을 쓰는 시간, 우체부님들과 대화하는 시간, 아내와 있는 시간 같은 것들. 그리고 예전에는 보지 않던 하늘을 보면서 행복을 느끼고요. 삶을 의미 있고 충만하게 사는 방법을 알아가는 듯해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살면서 지키려고 해온 삶의 도가 있다면 뭘까요. “조금 생각해 봐도 되나요?” 10여 분쯤 뒤, 그가 입을 열었다. “늘 진심을 지키고 싶어요. 내 자신에게는 물론, 누군가와 얘기하고, 인연을 맺을 때도요. 온기 일도 진심으로 하려고 하죠. 그게 제 초심이기도 하고요.” 들어보니, 그가 시간을 달라고 한 이유는 뭐라고 답할지 생각하려 그런 게 아니었다. ‘늘 마음속에 있지만 잘 지키지 못한 것 같은데 과연 말해도 되나’ 고민이 돼서였다. 그런 게 ‘진짜의 마음’ 아닐까 생각했다. 진심을 담아 세상에 온기를 흘려 보내는 사람들, 그 진짜의 온기가 느리지만 세상을 따뜻하게 바꾸고 있다.

“쉽게 쓰고 버리는 에코백은 정말 에코한가요”

가방 디자이너인 김승희(26) ‘기시히’ 대표는 고등학생 때부터 안 입는 청바지로 가방을 직접 만들었다. “시장에서 돈 주고 원단 사면 아깝잖아요. 대신 안 입는 청바지를 잘라서 가방을 만들었어요. 워싱으로 나오는 색감도 정말 다양하고, 질감도 두껍고 빳빳해서 튼튼해요. 가방 소재로 쓰기 좋았어요. 화려하게 디자인하지 않아도 패션 포인트가 될 수 있고요.” 그렇게 만든 ‘청바지 가방’이 요즘 인기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기시히 가방’이 회자되면서 이달 초 10개 한정 맞춤 주문이 1분 만에 마감됐다. 그가 만든 청바지 가방은 모두 디자인이 달라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 그는 청바지 솔기를 모두 뜯어 해체한 뒤 만들고 싶은 가방의 형태와 크기에 맞춰 재단해 붙인다. 양쪽 대칭이 이뤄지도록 균형을 맞추고 주머니나 끈, 참, 버튼 등 장식을 어울리게 붙인다. 원래 청바지에 있던 지퍼나 로고, 주머니도 적절하게 배치한다. 색실을 활용해 자수를 넣기도 한다. 보통 가방 하나를 만드는 데 청바지 두 벌은 필요하고, 완성하기까지 꼬박 하루 이상 걸린다. “갑자기 SNS에서 화제가 되면서 지난달 말부터 주문이 밀려들고 있어요. 감사하지만 많이 만드는 게 목표도 아니고, 제가 감당하기도 어려워서 한정된 수량만 주문받고 있어요.” 청바지로 가방을 만드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시작한 일이지만 환경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요즘에는 친환경이라는 이유로 에코백을 많이 쓰잖아요. 비닐봉지 대신 쓰는 건 좋지만, 하나의 유행이 돼서 과잉 소비되고, 저렴하니까 또 쉽게 쓰고 버려요. ‘에코백이 정말 에코한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어요. 제 브랜드를 통해서 ‘재사용 해보세요’ ‘필요 없다고 함부로 버리지 마세요’ ‘좀 덜 사세요’라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청바지로 만든 가방은 비닐봉지로 포장하지 않고, 재사용하는 택배상자에 넣어 판매된다. 그의 목표는 ‘대구의 프라이탁’이다. 프라이탁은 트럭의 방수 천 등 재활용 소재를 활용해 가방을 만드는 스위스 브랜드다. “프라이탁처럼 못 쓰는 원단을 디자인적으로 보완해 충분히 아름답고 쓸모 있게 만들고 싶어요. 아무리 환경에 이로워도 안 예쁜 가방을 들라고 할 순 없잖아요. 지퍼가 고장나거나 얼룩이 묻었거나, 찢어져서 못 입게 된 청바지나 자주 입어서 너덜너덜해진 청바지를 버리는 게 아니라 다시 예쁜 가방으로 바꿨을 때 기쁨은 말도 못해요. 어떤 분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즐겨 입으셨던 청바지를 가방으로 바꿔 들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런 작업도 굉장히 의미 있었어요." 친환경이나 재사용이라는 취지에 맞지 않는 주문을 받고 딜레마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주문을 받아보면 가격표도 떼지 않은 새 청바지인데, 안 입거나 호기심에 가방으로 만들고 싶다는 분도 많으시더라고요. 그럴 땐 ‘이 청바지는 중고로 팔거나 기부하면 원래 용도로 잘 사용될 수 있을 텐데, 굳이 뜯어서 가방으로 만드는 게 낭비 아닐까’ 하는 고민을 해요.” 김 대표는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가게도 대구에 있다. “제가 하는 일로 환경에도 유익한 영향을 끼치고 싶지만, ‘패션섬유의 도시’인 대구 지역에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 프라이탁은 지역 생산자들이 개인 취향을 반영해 트럭 방수 천을 고른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저 혼자 하고 있지만, 지역 생산자와 협력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로컬 브랜드로 성장하고 싶어요.”

“MZ세대 노조 등장은 연공서열형 임금체계 종말의 신호탄”

“입사할 때 삼성만큼 성과급을 줄 수 있다고 했는데,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거죠?” 1월 SK하이닉스 입사 4년 차 김모 사원이 사장에게 보낸 이메일이다. 결국 최태원 SK 회장이 직접 나서서 달래야 했던 ‘SK하이닉스 성과급’ 논란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후 LG전자 현대차 금호타이어 등 대기업에서 ‘MZ세대’(1980년대에서 90년대 중반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중반에 태어난 Z세대를 아우르는 신조어) 사무직ㆍ연구직 노조 설립이 잇따르고 있다. 상명하복에 거부감이 강하고 개인 성과에 따른 공정성을 중시하는 MZ세대 노조의 출현이 노사 관계나 기업 문화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묻기 위해 김종진(48)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박사)을 만났다. -올 초 SK하이닉스 성과급 논란을 계기로 MZ세대 노조 설립이 잇따르고 있다. “SK하이닉스 논란을 계기로 MZ세대 노조 설립 움직임이 시선을 끌고 있지만 전조 현상은 3년 전부터 있었다. 네이버 카카오 넥슨 스마일게이트 등 IT기업 엔지니어나 소프트웨어 개발자 등 젊은 직원들의 노조 설립이 이어지면서, 노조 운동은 제조업체 생산직 위주로 일어난다는 고정관념이 깨졌다. 특히 이들은 전년도 회사 수익에 따른 공정하고, 투명한 배분을 요구했다. 지난해 임금 기준으로 인상 폭을 다투는 기존 노사 임금협상과의 틀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또 IT업체 젊은 직원들은 비교적 젊은 IT 창업자들의 노사 관념이 오히려 대기업보다 낙후된 점에 분노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SK하이닉스 젊은 직원이 당당하게 제 몫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IT업계에서 시작된 변화가 대기업 등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그렇다. 그 씨앗은 밀레니얼 세대가 기업에 입사하기 시작한 7년 전에 뿌려졌다. 이들이 신입 사원 시절에 보고 느꼈던 불합리한 직장문화에 대한 불만을 최근 입사하기 시작한 Z세대들과 공감하면서 표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업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이들 MZ세대, 즉 20ㆍ30대 직장인들이 이미 기업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공기업의 경우는 정년이 보장돼 다소 낮지만, 민간 기업은 3분의 2를 차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MZ세대는 이미 별도 노조를 구성하지 않아도 회사 내 의사결정에서 캐스팅보트를 가질 만큼 성장했다.” -외국에서는 어떤가. “서유럽 북유럽 국가에서도 MZ세대의 성장으로 개별화 개인화 성향이 강해지면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고 분배를 더 강하게 요구하는 건 우리와 비슷하다. 하지만 서구는 사회규범과 연대의식이 강해 우리 사회에서 더 도드라지게 보이는 것 같다. 최근 같은 주제를 놓고 러시아 청년 집단과 회의를 하면서, 러시아 대졸 2030세대도 연공서열 조직 때문에 자신보다 일을 적게 하는 선배들이 임금을 더 많이 받는 것에 대해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난달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지속가능사회분과 간담회에서 ‘MZ세대 공정성’에 대해 발표했다고 들었다. MZ세대 공정성은 무엇인가. “40ㆍ50대가 얘기했던 ‘공정’은 실제 이를 실천했느냐를 떠나 사회적 약자와 더불어 사는 가치였다. 그런데 MZ세대의 공정은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의한 성취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계층ㆍ학력ㆍ성별 등에 따라 출발점이 다른 사회 구조적 불평등을 외면한다는 점에서 편협하다. 기업의 성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의 이윤은 그 기업 정규직만의 힘으로 성취한 것이 아니다. 같은 직장 내 계약직 그리고 협력업체 등의 기여도 공정하게 배분해야 한다. 하지만 대기업 MZ세대 노조는 이런 점에 관심이 부족한 것 같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의 핵심도 공정성에 대한 문제 제기 아닌가. “조금 다르다. 인천국제공항은 정규직이 1,000명가량이고, 협력업체 직원이 1만 명이다. 이 중 7,000명이 전환되는 과정이었고 그들 가운데 다수는 보안ㆍ경비 등 중요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 가운데 34세 미만은 거의 없다. 즉 구직 중인 젊은이 일자리를 가로채는 정규직 전환이 아니었다. 하지만 구직의 어려움에 절망한 젊은 세대는 이런 것을 살펴보지 않고 분노했다. 전환을 단계적으로 진행했으면 이런 오해로 인한 분노를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래도 청년들 주장대로 인천공항공사 일자리를 모두 공채시험을 거쳐 선발한다면 그것이 과연 공정한 것인가. 사회적으로 좀 더 진지한 토론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문제를 놓고 젊은 세대와 토론해 봤는지. “정책기획위원회 분과 간담회에서도 젊은 세대 토론자와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최근 2년간 대학 강의에서도 이 문제로 토론을 많이 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기 위해 오랫동안 훈련한 한국 선수 일부가 대표팀에서 탈락한 것이 과연 사회 정의냐고 반문할 정도로 개인 노력에 의한 성취를 최우선 가치로 생각하는 20대가 많다. 이들이 중시하는 가치는 연공서열이 지배적인 우리 조직문화에 직무성과급제 도입을 앞당기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앞에서 지적했듯이 비정규직 문제나 성차별 등 사회 구조적 차별에 대해 둔감한 부분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이 생각하는 공정을 적용한다면, ‘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에 지방대 50% 채용’ 같은 지역균형발전 정책도 불공정한 발상이다.” -MZ세대의 능력주의 사고는 노조 활동에 적합하지 않은 듯하다. 노조의 목적은 연대를 통해 약자가 교섭력을 높이는 것인데, 능력 있는 사람이 더 큰 성과를 받으려면 노조 활동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반은 사실이고 반은 사실이 아니다. 기존 대기업 노조도 경제적 이해가 중요하기 때문에 성과의 분배에서 협력업체나 비정규직을 배제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장차 MZ세대가 이런 대기업 노조에서 다수가 된다면 앞으로 노동운동은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 -MZ세대 독자 노조는 기업 입장에서도 내심 반길 것 같은데. “그렇다. 피고용자 간에 이질성이 생기는 것은 교섭에서 고용자 입지를 강화한다. 만일 대기업이 MZ세대 노조의 요구대로 성과급을 주면서 그 대가로 일정 비율의 저성과자 퇴출제 도입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는 능력주의를 중시하는 MZ세대가 오히려 환영할 만한 제도 아닌가.” -저성과자 퇴출은 법이 금지하고 있지 않나. “현재 법은 분명히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저성과자란 표현을 쓰지 않는 대신 권고사직 제도라는 우회로가 있다. 권고사직에는 조직 내 업무 부적응 등 광범위한 사유가 담겨 있어 현실적으로 저성과자 퇴출은 언제든 실행할 수 있다. MZ세대 노조 조직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결국 스스로 발목 잡히는 결과가 될 수 있다.” -MZ세대 노조라 하더라도 소속 기업의 규모나 업종별로 차이가 있을 텐데. “업종별 임금 현황을 살펴보면 제조업과 정보통신업에서 MZ세대 노조 결성이 활발한 이유가 드러난다. 최신 자료인 2019년을 기준으로 볼 때 대졸이 다수인 기능직의 월평균 총액 임금은 243만 원으로 생산라인에서 근무하는 장치기계ㆍ조작조립직의 258만 원보다 오히려 낮다. 정보통신 업종의 경우도 사무직이 241만 원으로 장치기계ㆍ조작조립직의 267만 원보다 낮았다. 이는 학력이 상대적으로 높은 사무ㆍ기능직이 기존 노조의 보호망 밖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들 사무ㆍ기능직이 MZ세대 노조의 주축을 구성하나. “제조업, IT 업종에서 상대적으로 보상이 낮고 조직 내 목소리도 약한 집단이다. 그런데 이들 중 다수가 능력주의 가치를 중시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사회 가치 관련 인식조사 결과 20대에서 능력주의 성향이 급속히 강화하고 있는 것이 드러난다. ‘노력에 따른 소득 격차를 인정한다’에 동의 비율이 20대 초반 남성의 경우 2016년 65.7%에 2019년 79.3%로 늘어났고, 여성은 56.2%에서 74.2%로 늘었다.” -연공서열 질서가 지배적인 기업문화에 불만이 큰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직군별 청년 노조 가입 현황을 보면 제조업과 정보통신, 전문과학기술 업종의 기능직에서 노조에 자발적으로 가입하지 않은 비율이 각각 10.5%, 18.2%, 22.2%로 높다. 이들 업종의 MZ세대가 향후 별도 노조를 만들거나,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확률이 높다.” -MZ세대 직장인은 선배들을 ‘갓술’이라고 부른다는데. “기술직 고령 그룹을 낮춰 부르는 은어로, 일은 많이 하지 않으면서 연봉은 많이 받는 상급자를 의미한다. 이런 표현이 언론에까지 등장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인천공항’이 아니라 굳이 ‘인국공’으로 줄여 색깔론을 입히려는 의도와 마찬가지로 불필요한 갈등을 증폭시킨다. 젊은층의 눈에는 자기보다 일을 많이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이 오랜 경험으로 쌓은 암묵지는 대응 매뉴얼조차 없는 위기 순간에 큰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더라도 연차에 따라 지나치게 임금 격차가 큰 우리 사회 임금체계는 조속히 개선돼야 한다.” -기존 노조가 반대하는데, 직무성과급제로 전환이 가능할까. “유럽은 노동조합 주도로 수십 년 동안 싸우면서 이미 1940년대에 직무급제로 전환했다. 독일은 노사 단체협상을 통해 직무수행요건이나 직무난이도에 따라 임금 그룹을 12그룹까지 나눈다. 같은 간호사들도 응급실 간호사 임금이 병동보다 높다. 임금 그룹이 올라가려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대신 같은 직무 그룹이라면 다른 직장이라도 임금이 비슷하다. 베를린에서 청소하는 사람과 뮌헨에서 청소하는 사람의 기본급이 같다. 우리도 그렇게 변해야 한다. 지금 정부도 직무급제 도입을 국정과제로 삼고 있지만, 노조 반대로 공공기관에서만 천천히 도입 중이다. MZ세대의 성장 속도를 고려하면 10년 이내에 민간 기업으로 확산도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모두 처음 MZ세대 노조 결성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환영하는 입장이었는데, 지금은 방향을 못 잡고 있는 것 같다. “초기에는 노조 활동에 부정적인 세대와 직종이 노조를 결성하는 것을 반겼다. 하지만 새로 결성된 노조가 기존 노조를 약화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어, 적극적으로 포용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입장이다. 게다가 MZ세대 노조는 성향상 양대 노총에 가입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그렇다고 기존 노조가 이들 젊은 세대를 포용하지 못한다면 지속하기 힘들 것이다. 딜레마다.” -MZ세대 노조가 기존 노조와 다른 것은 이들의 직장에 대한 생각이 이전 세대와 차이가 큰 것도 원인으로 보인다. 이전 세대는 회사의 정체성과 자신의 정체성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강했고, 이런 성향이 노조 활동에도 나타났다. 하지만 MZ세대에게 직장은 자신이 속한 여러 집단 중 하나일 뿐이다. 이런 이유에서 정치투쟁에 매달리는 산별 노조나 양대 노총 활동에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 “MZ세대의 생각이 더 바람직한 것 아닌가. 기존 세대는 회사나 노조와 자신을 지나치게 동일시한 결과 회사나 노조 활동에 비판 없이 순응해왔다. 특히 노조가 없는 직장에 근무하는 경우 일방적 복종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얽매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MZ세대는 ‘왜 회사에 복종해야 하는가, 열심히 일한 만큼 보상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젊은 세대가 회사에 불만을 느낄 때 선택하는 해결책은 순응과 노조 결성ㆍ가입보다 퇴사나 이직을 더 적극적으로 고려한다. 기존 세대가 노조를 생명보험으로 생각했다면, 젊은 세대는 실손보험 정도로 생각한다. MZ세대 노조가 얼마나 지속성을 가질지 궁금하다.” -MZ세대 등장으로 향후 노동시장은 어떻게 변화할까. “성과연봉제가 더 늘어날 거고, 특히 팀이나 조직이 아니라 개인별 인사평가가 더 강화될 확률이 높다. 지금 MZ세대가 요구하는 건 개인별 성과에 대한 보상이라, 이는 조직 전반에 성과주의 경영 전략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며, 사회 전체는 노동시장이 파편화할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고용형태의 변화로 이어져 정규직ㆍ비정규직의 구별도 사라질 것이다. 비정규직이 정규직화하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이 비정규직화하는 것이다.” -MZ세대는 다른 세대들보다 양극화가 극심한 세대다.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활약하며 억대 연봉을 받는 전문직도 등장하지만, 장기 실업자나 취업 포기자도 많다. “최근 10년간 우리 사회 청년 노동시장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니트(Not currently engaged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증가다. 니트는 정규 교육을 마친 후에 상급 학교 진학이나 직업 교육도 받지 않아 노동시장 밖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니트는 통계상 실업자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는 ‘취업 준비’ ‘자기 모색’ ‘그냥 쉼’ 등이 그 대표적 범주다. 우리나라의 대졸 이상 니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많다. 생산가능인구는 빠르게 줄어드는데, 청년 니트도 세계 최고 수준인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학업을 마친 지 4개월 이내 청년에게 정부가 나서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직업훈련 기회를 제공하는 ‘청년보장제도’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유럽연합(EU)은 2014년 이 제도를 도입해 청년 실업자 비율을 상당히 낮췄다.” 성공회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을 마친 후,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비정규직 문제 등 청년 노동시장 문제를 연구하며, 서울시, 고용노동부 등 정부 단체에 자문 활동 등 정책 수립에도 활발히 참여해 왔다. 현재 국무조정실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실무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올해 박종철인권상은 ‘미얀마 시민들’

올해 박종철인권상 수상자로 군부의 폭압에 맞선 미얀마 시민들이 선정됐다. 14일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측은 “미얀마 시민들은 수십 년에 걸친 민주항쟁의 역사를 거스르는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여 자신들이 삶의 주인임을 외쳤다”며 “그들의 피 속에 쓰여진 항쟁의 역사는 우리 시대에 피와 눈물로 지켜내어야 하는 소중한 가치들을 일깨운다”고 이들을 수상자로 결정했다. 사업회는 이어 “미얀마와 우리 모두의 인권과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는 미얀마 시민들의 항쟁에 끝까지 연대하며 세상을 바꾸어 내는 힘이 되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업회는 상금 500만원과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미얀마 시민들에게 전달한다. 모금 참여자들의 이름을 시민시상자로 기재한 영상도 제작한다. 모금 일정은 1차가 이달 31일까지, 2차가 다음달 1일부터 30일까지다. 시상식은 1987년 6ㆍ10민주항쟁 24주년 기념일에 맞춰 6월 10일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