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 분홍 유도선? "아이들 색칠놀이 보다가..."

2020.09.30 14:00

언젠가부터 고속도로에 빠져서는 안 될 '안내꾼'이 있다. 교차로와 분기점, 나들목, 졸음쉼터 등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색깔로 방향을 안내해주는 노면 색깔 유도선이다. 우회전 에는 분홍색, 직진이나 좌회전 길에는 녹색 선이 칠해져 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내비게이션을 봐도 헷갈리는 길에서 색깔 유도선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교통사고를 줄이는데도 탁월한 효과를 보고 있다. 한국도로공사가 고속도로 분기점과 나들목 76곳에 대해 색깔 유도선을 칠한 후 사고를 분석한 결과 도색 전인 2010년과 비교해 2017년 교통사고가 31%가량 감소했다. '길치들의 축복'이라는 이 색깔 유도선은 누가, 어떻게 만들었을까. 베일에 싸여있던 색깔 유도선 개발자가 최근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그 정체를 드러냈다. 올 초 '이건 대체 누구 아이디어일까'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영상이 조회 수 96만 7,000여건을 기록하더니, 8월엔 TV 토크쇼에 출연한 유명 인사가 됐다. 주변 사람들마저 색깔 유도선이 그의 '작품'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는데, 9년 만에 '비밀'이 밝혀진 셈이다. 색깔 유도선을 개발한 한국도로공사 윤석덕(51) 안성용인건설사업단 설계차장을 전화로 만났다. 도로공사 경기 군포지사에서 근무하던 2010년부터 서해안 고속도로 안산분기점은 늘 그의 마음 속의 돌덩이였다. 노선이 헷갈리는 탓에 운전자들이 길을 잘못 드는 일이 허다했고, 사고도 잦았기 때문이다. 2011년만 해도 한 해 평균 25건이 발생했을 정도니, 도로 관리자들에겐 가장 골치아픈 과제였다. 그러던 중 2011년 3월 안산분기점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우회전 인천, 좌회전 강릉으로 가는 차들이 엇갈리는 지점에서 화물차와 승용차가 실랑이를 벌이다 화물차가 콘크리트 시설물을 들이받은 것. 이에 "초등학생도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쉬운 사고 방지책을 만들어오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내일까지 대책을 마련해오겠다"고 답하고 집으로 돌아온 윤 차장은 고민에 빠졌다. 나름 사고 방지를 위해 노력했지만, "사고로 숨진 운전자를 생각하면 많이 부족했다"는 생각에 죄책감도 밀려왔다. 머리를 쥐어짜며 구상하던 그의 눈에 여덟살 딸과 네 살 아들이 들어왔다. 아이들이 크레파스로 그림 그리고 색칠하는 모습을 보며 도로에 색을 칠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떠오른 것. "항상 도로 기술자의 눈으로만 사안을 바라보니 갖가지 안전 시설물이나 표지판을 설치해도 도저히 해결이 안 됐구나 생각이 들더군요. 지사장 말대로 초등학생 입장으로 사안을 바라 보니 탁하고 떠오르더라고요. 그야말로 '유레카'였다니까요." 하지만 색깔 유도선이 실제 도로 위에 그려지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무엇보다 도로위에 알록달록한 색을 입히겠다는 생각 자체가 벽에 부딪혔다. 기술사 등 여러 전문가에게 자문을 해봐도 "너무 앞서간다" "위험한 발상"이라며 대부분 고개를 저었다. 현행 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도로교통법 시행 규칙 8조 2항에 따르면 도로에는 노랑색, 하양색, 파랑색, 빨강색 이외의 색을 칠할 수 없다. 여러 색깔이 섞이면 자칫 운전자가 헷갈릴 수 있어서다. 몇몇 이들은 법 위반으로 형사 입건이 될 지 모른다며 말렸지만, 윤 차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색깔 유도선을 칠하면 교통 사고가 줄어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또 갈림길에서 머뭇거리는 차들이 사라지면, 교통 정체도 감소할 것이란 판단이 섰다. "단순히 경고를 적은 안내판을 크게 설치한다고 따르고 싶은 마음이 들까요? 도로관리는 감성적으로 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운전자가 거부감 없이 안내를 따르고 싶게끔 사람을 설득해 감정을 움직여야 하죠. 색깔 유도선이 그런 방법이라 믿었고요." 급기야 그는 같은 해 4월 인천경찰청 11지구대에서 안산분기점을 담당하던 임용훈 경사(현 인천경찰청 경감)에게 전화를 걸어 색깔 유도선을 시범적으로 그릴 수 있게 해달라 요청했다. 안산분기점의 잦은 사고로 역시 골머리를 앓던 임 경사는 윤 차장의 설득에 "교통 사고를 줄일 수 있다면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며 시범 설치를 해보자고 용기를 줬다. 임 경사는 공무원이 업무를 적극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공익성이 인정되면 발생한 손실 등 문제에 대해 책임을 감경해주는 적극행정면책제를 활용해 도색 작업을 승인했다. 그렇게 3,000만원을 들여 2011년 5월 안산분기점에 대한민국 1호 색깔 유도선이 그려졌다. 처음 윤 차장은 도로 위에 입힐 색으로 주황색과 녹색을 떠올렸다고 한다. 흰색, 빨강 등 운전자에게 익숙한 색깔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진 과정에서 주황색은 빠졌다. 당시 윤 차장의 아이디어를 지지했던 도로 가드레일 보수업체 소장의 조언이었다. 주황색과 비슷한 느낌의 노랑색의 중앙선이 도로에서 차가 침범하지 못한다는 규제의 의미로 이미 쓰이고 있기 때문에, 자칫 운전자가 혼동하고 도로에 진입하지 않으려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운전자들이 평소 노랑색 선을 넘어가는 걸 두려워해 비슷한 계열인 주황색을 보면 거부감이 들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윤 차장은 "다른 색을 찾기 위해 아이디어 회의도 해보고 여러 사람에게 물었지만 뾰족한 답이 없더라"며 "그러다 딸이 좋아하는 분홍색으로 하면 운전자의 부담이 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문제는 또 있었다. 2011년 도로용 페인트 중에는 분홍색과 초록색이 없었다. 하양색, 주황색 등 차선에 쓰는 도로용 페인트는 마모에 강하고 반사가 잘 되도록 하는 '유리알'과도 결합이 잘 된다고 한다. 덕분에 밤에 잘 보이고 차가 많이 다녀도 덜 지워지는데, 일반 건축·실내 내장용 페인트는 내구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어쩔 수 없이 페인트 업체에서 분홍색 일반 페인트를 사다가 도로에 칠했다. 윤 차장은 "2017년 국토교통부에서 정확히 어떤 색을 써야 할지 기준을 만들자 다음해부터 페인트 회사들이 분홍색 도로용 페인트를 개발했다"며 "지난해 도로공사가 더 오래갈 수 있도록 페인트의 기준을 높이면서 이에 맞춘 도로용 페인트가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산분기점의 색깔 유도선은 등장하자마자 효과가 나타났다. 해마다 평균 25건의 교통사고가 나던 곳이었는데 선이 생기고 6개월 동안 딱 3건으로 줄었다. 이어 도로공사 수원지사에서도 경부고속도로 판교IC에 분홍색 선을 칠했다. 그러나 이 때까지도 색깔 유도선을 전국으로 확대하지 못했다. 관련 규정도 없었고, 법의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았던 것. 이렇게 사라질 위기에 처한 찰나, 2014년 도로공사 본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효과가 입증된 아이디어가 사라지는 것이 아깝다며 도로공사 차원에서 관련 지침을 만들고 확대 해보자는 제안이었다. 이후 전국 곳곳에 색깔 유도선이 그려져 2017년엔 76곳으로 늘었다. 도로공사는 색깔유도선을 그린 이후 교통사고가 31% 감소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같은해 말 국토교통부도 움직였다. 우회전은 분홍색으로, 좌회전이나 중앙선에서 가까운 쪽은 녹색으로 칠하라는 내용의 '노면 색깔 유도선 설치 및 관리 매뉴얼'을 만들었다. 색깔 유도선을 그릴 수 있도록 독려하고 나선 것이다. "어찌보면 법 위반인데, 교통사고가 줄어드는 게 보이니 안할 수가 없잖아요. 도로공사에서 내부 방침이라도 만들어서 확대시키자 했는데, 그 덕에 국토부도 움직이고 전국에서 잇따라 실현되는 계기가 생겼죠." 이후 색깔 유도선은 본격적으로 전국에 확대 시행돼 지금까지 고속도로 분기점과 주요 나들목 등 364곳에 그려졌다. 단 이와 관련 도로교통법 개정은 아직 진행 중이다. 윤 차장은 여전히 고민이 깊다. 도로마다 매뉴얼과 다르게 노면 색깔 유도선을 설치한 사례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분홍색, 녹색이 아닌 다른 색깔을 쓰거나 엉뚱한 방향에 색칠하는 경우다. 도로 시설물은 "단순하고 직관적이어야"하는데, 운전자에게 또 다른 혼란을 안겨줄까 걱정된다고 했다. 윤 차장은 "우회전은 분홍색, 중앙선과 가까운 쪽은 초록색인데 반대로 칠해져 있거나 파란색을 쓰는 경우도 있다"며 "우회전하는 운전자는 갑자기 분홍색이 아닌 초록색 선이 나타나면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관련 규정을 일관성 있게 운영하도록 하는 것이 윤 차장에게 남은 숙제인 셈이다. 그는 "법이 개정될 때까지 각 지사의 도로관리자들에게 색깔 유도선 그리는 방법과 관리 방법 등을 가르치는 교육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색깔 유도선의 효과로 보람을 느낀 윤 차장은 퇴직 전까지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 겨울철 눈 때문에 발생하는 터널 사고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다. 윤 차장은 "터널 앞에 눈이 쌓여 차가 미끄러지면서 사고가 많이 난다"면서 "강풍기, 풍차로 눈이 쌓이지 않게 날리거나, 아크릴 지붕을 설치하면 눈도 녹이고 운전자가 앞에 눈이 있다는 것을 인지할 시간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해 여러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공무원 재해보상 업무 총괄에 민간 출신 첫 임용

공무원 재해보상과 관련 심사 업무를 총괄하는 인사혁신처 재해보상정책관에 김정민(45) 충북 청주의료원 직업환경의학과장이 임용됐다. 공무원 재해보상 기능을 전담하기 위해 2018년 신설된 재해보상정책관을 민간 출신이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인사혁신처는 “의사출신이면서 직업환경ㆍ보건관리 전문가인 김정민 과장을 정부 민간인재 영입 지원 정책에 따라 선발했다”며 “다음달 1일부터 재해보상정책관으로 일하게 될 것”이라고 29일 밝혔다. 정부 민간인재 영입 지원은 공직 경쟁력 강화를 위해 각 부처ㆍ기관의 요청에 따라 민간 우수인재를 인사처가 직접 조사ㆍ추천하는 맞춤형 인재 발굴 서비스다. 2015년 도입된 뒤 지금까지 52명의 민간전문가가 임용됐다. 김정민 신임 재해보상정책관은 산업의학과 전공의와 전문의를 거친 전문가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업무상 질병 여부를 심의하는 위원회 위원으로 10년간 활동했으며, 대한직업환경의학회 제도개선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제도개선을 이끌어왔다. 그는 재해보상정책관으로서 공무상 재해의 예방ㆍ보상, 재활ㆍ직무복귀 관련 제도 운영, 재해보상 급여심사 업무 등을 총괄하게 된다. 김 재해보상정책관은 “모든 공무원이 안심하고 직무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악의 꽃' 이준기 "감당 못 할 것 같던 서스펜스 멜로, 배우 인생 전환점 됐죠"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든 생각은 '지금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였어요." 28일 배우 이준기(38)는 tvN 드라마 '악의 꽃'의 도현수 역을 처음 접했을 때 받은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럴 법도 했다. '딸 바보', '아내 바보'로만 산 게 도현수였다. 형사인 아내 차지원(문채원)이 남편을 연쇄살인마로 의심하기 전까지는. 숨막히는 서스펜스에다 절절한 멜로를 얹은, 낯선 장르물이었다. 도현수는 이걸 떠받쳐내야 할 인물이었다. '악의 꽃'을 연출한 김철규PD 말처럼 "대단히 골치 아프고, 그렇기에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이준기도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 작품을 "배우 인생의 전환점"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상대 배우 문채원과도 "잘만 하면 '서스펜스 멜로'라는 새로운 장르를 우리만의 독특한 감정선으로 그려낼 수 있겠다"는 얘기를 나눴다. 시청자 평가는 "이준기가 해냈다"는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워낙 압도적인 긴장감 탓에 "매 회가 마지막회 같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섬세한 감정 연기도 살려냈다. 이준기도 바짝 긴장했다. 서스펜스만 부각되면 도현수가 "자칫 감정이 없는 사이코패스로만 보여질 수 있어서 작은 표현부터 리액션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고 집중했다"고 했다. 감정 연기 때문에 그렇게 좋아하던, 대역 없이 제 몸을 던져 해내던 액션 연기도 줄였다. 물론 이번에도 아파트 베란다 난간에 매달리는 것 같은 어려운 장면에서도 몸을 사리진 않았다. 하지만 액션을 하더라도 화려하거나 거친 액션 그 자체보다 "얼만큼의 동선을 만들고 액션을 취해야 시청자들이 이 장면에서 나오는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지난 23일 막을 내린 '악의 꽃'은 자체 최고 시청률이 7.3%에 그쳤다. 수작이란 평가에 비해 아쉬운 성적이다. 이준기 또한 아쉬운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모든 스태프가 작품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해주신 마니아분들이 있어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특히 함께 한 배우들에게 각별한 고마움을 나타냈다. 범죄수사극 '크리미널 마인드(2017)' 이후 3년 만에 만난 문채원에 대해서는 "마지막엔 차지원을 떠올리기만 해도 먹먹해질 정도로 서로가 서로를 채워주는 좋은 연기 합이었다"고 말했다. 도현수의 친구 김무진 역을 맡은 배우 서현우에 대해서도 "기대 이상으로 잘 맞아서 생각지도 않았던 브로맨스 장면들이 제법 나왔다"고 말했다. 출연을 결심하기 직전 '이 모든 것이 지금 나에게 다가온 운명과도 같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는 이준기. "이번 작품은 또 한번 저에게 좋은 자양분이 되었고, 인간 이준기를 한층 더 견고하고 풍성하게 만들어줬다고 생각해요.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구나' 또 생각합니다."

"14주내 임신중지 허용, 낙태죄 존치와 다름 없어"

“임신중지(낙태) 결정을 여성의 자유의사에 맡겨두고 의료진을 처벌하지 않으면 아이를 낳을지 여부를 훨씬 빨리 결정할 수 있어요. 지금은 처벌이 두려워 낭비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요.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면 낙태가 급증한다거나 후기 낙태가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빈약합니다.” 지난해 4월 11일 헌법재판소의 형법상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대안입법을 마련해야 하는 시한이 채 100일도 남지 않았다. 28일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 행동의 날’을 맞아 2005년 호주제 폐지 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여성계 원로 100명은 공동선언문을 내고 ‘여성의 결정을 신뢰하는 바탕 위에서만 변화가 가능하다’며 형법 제27장 ‘낙태의 죄’는 반드시 삭제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선언문에 함께 이름을 올린 시인 노혜경(62ㆍ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씨는 이날 한국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호주제보다 낙태죄는 취약계층 여성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준다는 점에서 훨씬 절실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노씨는 “돌봄이 부재한 여성 청소년이 방치된 상태에서 성매매의 길로 빠지게 됐을 때, 피임과 출산에 대한 지식 없이 아이를 가진 채 임신 사실도 모르고 시간을 보내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임신중지를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비혼 상태에서 여성이 아이를 낳는 순간 일상을 영위할 수 없고 당장 사회 밑바닥으로 굴러 떨어져 아기와 함께 생존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판단해서입니다. 국가는 안심하고 여성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대신 임신중지만 단속하려고 듭니다." 현재 낙태죄 폐지를 둘러싼 가장 치열한 쟁점은 임신 주수(週數) 제한 여부다. 노씨는 “정부는 임신 14주 이내에는 임부 요청에 의한 임신중지 허용, 22주 이내는 사회경제적 이유가 있을 경우 임신중지 허용, 22주 이상은 기존대로 임신중지 금지로 초안을 잡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러한 주수 제한은 사실상 낙태죄 존치와 다름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14주’라는 주수 제한의 기준이 불명확하다고 지적했다. “여성이 임신 여부를 명확히 파악하는 때는 보통 마지막 생리일 이후 10주 뒤입니다. 생리를 한 두 번 건너 뛰어 임신 테스트기를 사용했더니 두 줄(임신)이 나타나 고민 끝에 병원을 찾아가면 12, 13주는 금세 지나가죠. 14주 이내 임신중지를 결정하고 시행해야 한다는 건 비현실적입니다.” 사회경제적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는 “임신중지 사유를 국가가 판단한다는 건 바뀌지 않는다. 개인과 국가의 '임신을 중지해야 할 사회경제적 이유'는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종교계는 ‘여성의 행복추구권이 태아의 생명권에 앞설 수 없다’며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지만 여성의 삶을 고려하지 않은 기계적인 입장이라는 게 노씨를 포함한 여성계의 주장이다. “낙태죄 때문에 감당할 수 없는 아이를 혼자 양육하는 여성은 실제 생명권을 위협받는 게 아닌가요. 낙태죄 논의에서 당사자인 남성의 책임은 빠져있어요. 결국 낙태죄는 여성만 잠재적인 범죄자로 옭아매는 법일 뿐이기에 반드시 폐지돼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