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25년…'커피 장수 모델' 원빈·이나영 부부, 동서식품과 긴 인연 끝맺다

2024.04.26 19:10

약 17년 동안 '맥심 티오피'(T.O.P)의 광고 모델로 활약해 온 배우 원빈이 동서식품과 긴 인연을 끝맺는다. 1월 모델 계약 종료 이후 재계약을 맺지 않으면서다. 앞서 아내인 배우 이나영도 약 25년 활동을 끝으로 '맥심 모카골드' 모델 계약을 매듭지어 부부가 나란히 동서식품과 헤어지게 됐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동서식품은 그동안 1년 단위로 원빈, 이나영과 모델 계약을 연장해왔지만 올해는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T.O.P의 경우 당장은 광고를 만들 계획이 없고 후임 모델 발탁도 정해진 내용이 없다. 맥심 모카골드는 3월 배우 박보영이 새 모델로 광고 촬영까지 마쳤다. 동서식품 관계자는 "특별한 이슈 없이 자연스럽게 계약이 끝났다"며 "원빈과 이나영은 제품이 출시된 초기부터 브랜드 이미지 구축에 큰 도움을 줘 감사하다"고 전했다. 원빈은 2008년부터, 이나영은 2000년부터 각각 T.O.P와 맥심 모카골드의 모델로 활동하면서 브랜드 영향력을 키워나갔다. '원빈하면 T.O.P' '이나영하면 모카골드'가 떠오르도록 각인 효과를 주면서 브랜드에 대한 신뢰감을 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원빈은 "네가 그냥 커피였다면, 이 사람은 티오피야"라는 광고 대사를 유행시키기도 했다. 두 사람은 2015년 결혼 이후에도 모델 자리를 지켰다. 반면 배우로서 활동은 뜸했다. 원빈은 2010년 영화 '아저씨'를 끝으로 별다른 작품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이나영은 결혼 후 긴 공백기를 가지다 2019년 tvN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에 이어 지난해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에 출연했다. 한편 동서식품은 계약을 맺는 모델과 오랜 인연을 이어가기로 유명하다. 배우 안성기는 38년 동안 '맥심'의 모델로 활동했으며 공유는 2011년부터, 전 피겨선수 김연아는 2012년부터 각각 '카누'와 '맥심 화이트골드' 모델을 맡고 있다.

정진석 등장... 호위무사 우려 걷어내고 쓴소리 할 수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의 쇄신카드는 정진석 비서실장이었다. 관료 출신인 기존 비서실장과 달리 정무형 정치인을 선택했다. 기대는 엇갈린다. 신문기자 출신에 충청에서 5선을 한 정 실장을 두고 여당은 윤 대통령의 ‘소통 의지’가 담긴 인사라고 반색했다. 야당은 다르다. 동갑내기 '친구 비서실장' 기용을 두고 '호위무사' '윤핵관' 인사라고 비판했다. 이전과 다른 모습을 정 실장이 입증해야 한다. 취임 첫 일성으로 그는 "오로지 국민의 눈높이에서 대통령께 객관적인 관점에서 말씀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호위무사가 아닌 쓴소리까지 가감없이 전달할 수 있는 비서실장이 될 수 있을까.

코로나에 울던 손님 위해 드럼 친 호프집 사장님 "죽는 날까지 스틱 안 놓을래요"

“힘들었던 하루, 사장님 덕에 스트레스 다 날아갔어요!”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옆 골목길에서는 저녁마다 흥겨운 드럼 소리가 울려 퍼진다.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건물 2층에 있는 테이블 10개 남짓한 작은 호프집 ‘꼬꼬방’이 나온다. 특별한 것 없어 보이지만 평일 오후 6시면 대기줄이 좁은 골목길을 한 바퀴 두를 만큼 ‘핫플레이스’가 된 지 오래다. 드럼 소리의 주인공은 이 가게 사장인 기채옥(61)씨. 손님들 사이에선 ‘사장님이 드럼 치는 호프집’으로 유명한 곳이다. 기씨는 보통 오후 7시에서 8시 사이에 드럼 연주를 한다. 정해진 곡은 없다. 이글스의 ‘호텔캘리포니아’부터 김태우의 ‘사랑비’까지, 그날그날 기씨의 ‘느낌’에 따라 선곡한다. 무아지경으로 드럼을 치는 그의 모습에 손님들 입에서 감탄이 나왔다. 노래가 하이라이트에 이르자 드럼 박자에 맞춰 일제히 박수가 터졌다. 기씨가 드럼 스틱을 들기 시작한 건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이다. 하필 다른 곳에서 장사를 하다가 세운상가 쪽으로 가게를 옮긴 직후 코로나19가 터졌다. 기씨뿐 아니라 인근 자영업자들 모두 매출이 줄어 힘든 시간을 겪었다. 꼬꼬방을 찾는 손님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그들의 입에서 “죽고 싶다“ “망했다“ “어떻게 사느냐” 등 한탄이 쏟아졌다. 소주를 마시며 우는 손님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싶어 기씨는 드럼을 시작했다. 그는 “드럼 소리에 잠시나마 웃음 짓는 손님들의 모습이 열정적으로 드럼을 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고 미소 지었다. 드럼 연주는 기씨의 오랜 꿈과도 무관치 않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음악 대회에서 상을 휩쓸고 방송국에서도 찾아올 만큼 ‘노래 신동’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한문 교사인 아버지는 “딴따라(연예인을 낮잡아 부르던 말)가 웬 말이냐”며 가수를 반대했다. 마음 한편에 늘 음악을 품고 살던 기씨는 6년 전 가장 친한 친구가 사고로 죽고 난 뒤 남은 인생은 후회 없이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음악을 하지 않겠다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며 살았지만 이제 나를 위해 뭔가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집 안 구석에 묵혀 있던 기타의 먼지를 조심스레 털어냈다. 취미로 기타를 치던 기씨는 손님 소개로 거리 공연을 하기 시작했고, 드럼도 이때 배웠다. 기씨 연주가 손님들의 마음을 울리는 건 ‘위로’와 ‘교감’이 있어서일 것이다. 그렇다고 손님만 위로받는 건 아니다. 음악은 기씨에게도 위로가 된다. 사실 기씨 역시 자영업자로 자리 잡기까지 우여곡절이 적잖았다. 그는 남편의 잦은 도박과 사업 실패 탓에 27년 전 처음 장사에 뛰어들며 실질적인 가장이 됐다. 경기 광명시 조그마한 치킨집이 세 자녀를 포함한 다섯 식구의 전부였다. 장사는 잘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시련이 찾아왔다. 3년 동안 한 푼 두 푼 모은 돈을 친구에게 빌려줬다가 떼이고 만 것이다. 기씨는 나쁜 생각을 품고 비통한 심정으로 고향을 찾았다. 그러나 그가 16세 때 돌아가신 아버지 산소를 방문하며 마음을 바꿨다. 그는 “산소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며 아버지 역시 가정을 이끄느라 많은 고통을 감내하셨음을 깨달았다”며 “아무리 힘들더라도 자식들을 위해 일어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떠올렸다. 그 길로 서울로 돌아와 남편과 헤어졌고 동묘 인근에 새로 호프집을 열어 재기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기씨는 장사 시작 후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꾸준히 기부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 역시 바닥까지 주저앉았다가 일어선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 드럼 연주를 시작한 지 7년째. 장사하랴 드럼치랴 손가락부터 팔꿈치까지 성한 곳 없지만 그래도 파스까지 붙여가며 연주하는 그는 “멀리서 찾아오는 분들을 위해 드럼을 치다 보면 아픔도 잊을 정도로 보람차다”고 했다. 이어 “내가 즐겁자고 시작한 음악이 이제는 봉사가 되었다”고 활짝 웃었다. “단 한 분이라도 제 음악을 듣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면, 죽는 순간까지 꼬꼬방에서 손님을 위해 드럼을 칠 겁니다.”

이재용 "이렇게 사는 분들 처음 봐 머릿속 하얗다"…20년 몰래 쪽방촌 치료 병원 도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쪽방촌의 극빈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에 20년 넘게 남몰래 후원을 이어온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 회장의 선행이 '쪽방촌의 성자'로 불린 선우경식(1945~2008) 요셉의원 설립자의 삶을 정리한 신간 '의사 선우경식'(위즈덤하우스)에 소개되면서다. 1987년 문을 연 요셉의원은 순수 민간 후원으로 운영되는 노숙인 자선의료기관이다. 이 회장과 선우 전 원장의 인연은 '쪽방촌 실상에 눈물을 삼킨 삼성전자 이재용 상무' 부분에 나와 있다. 2001년 귀국해 삼성전자 경영기획실에서 경영 수업을 받던 이재용 회장은 2003년 상무로 승진했다. 선우 원장은 같은 해 13회 호암상 사회봉사상을 받았고 이후 이 회장이 요셉의원을 후원할 생각이 있어 방문하고 싶다는 전화를 받았다. 6월 27일 이 회장은 선우 원장의 안내로 병원 구석구석을 둘러봤다. 주방과 목욕실, 세탁실, 이발실을 살피며 병원 안에 이런 시설이 있다는 걸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고 한다. 선우 원장이 "쪽방촌이라는 데를 가보셨습니까?"라고 물었다. 이 회장은 "제가 사회 경험이 많지 않고 회사에 주로 있다 보니 가보지 못했습니다"라고 했고 선우 원장을 따라 요셉의원 단골 환자의 집을 들렀다. 단칸방에는 술에 취해 잠든 남자와 얼마 전 맹장 수술을 받은 아주머니, 아이 둘이 있었다. 선우 원장 어깨 너머로 방 안을 살펴본 이 회장은 신음 소리를 내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동행한 삼성 직원은 이 장면을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모습을 처음 본 이 회장이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은 것'이라고 회고했다. 작은자매관상선교수녀회가 운영하는 '영등포 공부방'까지 둘러본 이 회장은 굳은 얼굴로 "이렇게 사는 분들을 처음 본 터라 충격이 커서 머릿속이 하얗다"고 털어놨다. 그는 "사비로 준비했으니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된다"며 1,000만 원이 든 봉투를 건넸다. 이후 다달이 월급의 일정액을 기부하고 있다. 이 회장은 두 번째 방문부터는 검소한 티셔츠 차림으로 왔다. 이후 가난한 이들을 위한 밥집을 지어달라는 선우 원장의 요청으로 이 회장은 몇 년 동안 '밥짓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삼성전자가 철도청 소유 공유지에 들어설 밥집 건물 설계도까지 준비했지만 "왜 밥집을 지어 노숙인을 끌어들이냐"고 반발한 영등포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삼성전자 본관을 찾아 시위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이런 선행은 이 회장의 당부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다가 이번에 책이 출간되며 알려졌다. 가톨릭대 의대를 나온 선우 원장은 미국에서 내과 전문의로 활동하다 한국으로 돌아와 1987년 8월 서울 신림동에 요셉의원을 개원했다. 평생 무료 진료를 해온 그는 급성 뇌경색과 위암으로 고통받으면서도 마지막까지 환자들을 위해 노력하다 2008년 6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새 책 '의사 선우경식'은 이충렬 작가가 각종 자료와 관련 인물 인터뷰를 바탕으로 쓴 선우 원장에 관한 유일한 전기다. 이 책의 인세는 전액 요셉나눔재단법인 요셉의원에 기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