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하" vs "불가" 탄핵심판 변수된 임성근 '임기 만료'

2021.03.02 04:30

헌정 사상 첫 법관 탄핵소추를 당한 임성근(57)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지난달 28일 임기 만료로 법복을 벗게 된 사실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임 전 부장판사 측은 “이미 ‘법관’이 아닌 이상, 탄핵심판은 각하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반면 국회 소추위원 측은 “탄핵심판엔 각하 규정이 없다”며 맞서고 있다. 향후 헌재 심리에서도 ‘각하’ 여부를 둘러싼 양측 신경전이 팽팽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임 전 부장판사 측 대리인인 윤근수 변호사는 1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임 전 부장판사 탄핵심판 사건은 (헌재가) 각하해야 하는 사안으로 본다”고 밝혔다. 윤 변호사는 “더 이상 공직자가 아닌 사람을 대상으로 파면을 위한 탄핵심판을 하는 건 의미가 없다”며 “출발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임 전 부장판사 측의 ‘각하’ 주장은 이미 예상돼 온 수순이다. 다만 지금까지는 탄핵심판 각하 가능성에 대해 뚜렷한 입장 표명을 자제해 왔다. 지난달 22일 헌재에 낸 30쪽 분량 답변서에서도 탄핵 소추 사유인 ‘재판 개입’ 행위를 변론하기만 했을 뿐, ‘탄핵심판은 각하돼야 한다’는 의견을 담진 않았다. 임 전 부장판사의 법관 임기 만료를 계기로, 향후 진행될 변론 절차에선 ‘탄핵의 실익이 없다’는 주장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현직 판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탄핵 심판이 각하될 순 없다’는 국회 소추위원 측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국회 측 대리인인 양홍석 변호사는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탄핵심판에선 인용ㆍ기각 결정만 있을 뿐, 각하와 관련된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탄핵심판이 국회법에 따라 의결됐고 헌재가 사건을 접수한 이상, 소추 자체는 적법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헌법재판소법은 일반 국민이 청구할 수 있는 헌법소원심판 절차에만 각하 규정을 두고 있다. 다른 법률에 구제 절차가 있거나, 심판 청구가 부적법한 경우 등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했을 땐 재판관 3명으로 구성되는 지정재판부에서 전원일치 의견으로 심판청구를 각하한다. 그러나 위헌법률심판과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은 각각 법원과 국회, 정부,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 등이 심판을 청구하기 때문에, 따로 각하 결정과 관련한 규정이 없다. 법조계 의견도 엇갈린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탄핵심판은 일반인이 아닌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의결을 통해 소추하는 것”이라며 “헌재가 이를 함부로 각하하는 건 권력분립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명문 규정이 없어도 각하가 가능하다’는 견해도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 심판은 상세한 규정이 없더라도 형사ㆍ민사소송법을 준용하는 게 널리 인정된다”면서 “(자연인 신분인) 임 전 부장판사가 탄핵 대상이 되는지에 대해선 헌재가 1차 판단을 내리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정 나온 건 69만명분 뿐…커지는 4월 백신 공백 우려

'다른 국가보다 시작은 늦었지만, 접종 속도는 더 빠를 것이다' (정세균 국무총리 1월 27일 외신기자 정책토론회 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종식을 위한 정부 예방접종 계획의 핵심은 '속도전'이다. 검증된 보건의료 역량 등을 바탕으로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대규모 접종을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목표는 빨라야 6월부터나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그 전에는 속도를 내고 싶어도 백신 물량을 확보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백신 공급이 3분기 이후에 집중될 경우 의료체계에 부담을 줘 오히려 접종 속도가 더뎌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1일 0시 기준 코로나19 백신 누적 접종자는 2만1,177명으로, 전날 하루 동안 765명이 접종을 마쳤다. 인구 대비 접종률은 0.041%다. 요양병원 입소자와 종사자, 고위험 의료기관 종사자에 이어 119구급대원·역학조사원 등 코로나19 1차 대응요원에 대한 접종은 이르면 이달 7일부터 시작된다. 정부는 1월 말 '코로나19 예방접종 시행계획'을 발표하며 1분기 130만명, 2분기 900만명, 3~4분기 3,325만명을 접종하겠다고 밝혔다. 1분기 당초 목표치(130만명) 중 현재까지 백신 공급이 확정된 물량이 80만여명분(아스트라제네카 75만명분, 화이자 5만8,500명분)에 그치는 점을 감안하면 2분기에 1,000만명 가까이 접종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2분기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도 구체적인 백신 공급 일정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현재까지 2분기 중 공급이 예정된 백신은 약 480만명분으로, 정부 목표치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화이자와 개별 계약한 350만명분과 국제 백신 공동구매기구 '코백스 퍼실리티'로부터 받기로 한 아스트라제네카 129만8,400만명분이 여기에 해당된다. 문제는 이 물량 중 상당수가 6월 이후에나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현재 2분기 물량 중 공급 일정이 가시화된 것은 화이자 백신 50만명분과 아스트라제네카 19만명분 정도다. 정부는 이르면 3월 중 들여와 4월부터 접종한다는 방침이지만, 그동안의 백신 수급이 계획보다 길게는 한 달가량 늦춰졌던 점을 감안하면 최악의 경우 4~5월을 69만명분만으로 버텨야 하는 상황이 현실화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5월까지 접종자는 약 150만명으로, 2~5월 동안 인구의 단 4%만 접종을 마치게 된다. 9월까지 인구의 70%(약 3,500만명)가 1차 접종을 마치고 11월에 집단면역을 형성하겠다는 정부 계획을 감안하면 6~9월에 나머지 약 3,350만명의 접종이 몰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아직 변수는 많이 남아 있다. 정부는 노바백스 백신 2,000만명분과 얀센 600만명분, 모더나 2,000만명분을 모두 2분기부터 순차적으로 공급하겠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분기 중 공급이 '시작'된다는 의미일 뿐 구체적으로 언제 얼마나 들어올 지는 명확히 제시된 적이 없다. 전문가들의 전망도 밝지 않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백신에 대한 안전성이 입증되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며 "정부가 백신 제조사들과 선구매 계약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와서 공급 시기를 앞당기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신을 맞은 사람의 체내에 항체가 생성돼도 얼마나 지속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이 때문에 되도록 접종 속도를 끌어올려야 한다. 코로나19 유행 장기화에 따라 경각심이 떨어지거나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하며 확진자가 다시 급증할 우려도 있다. 그 전에 백신을 최대한 많이 접종해야 집단면역이 가능하다. 그런데 현재 상황으론 우리 국민 대다수가 하반기에나 백신을 맞게 된다. 접종자가 하반기에 몰리면 방역이나 의료체계에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백신을 한 번만 맞아도 어느 정도 예방 효과가 있기 때문에 2분기에 가장 많은 사람이 접종을 하는 게 좋은데, 대부분 물량이 3분기에 집중돼 있어 걱정된다"고 말했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의료체계 부담을 줄이려면 접종이 골고루 분산돼야 하는데, 하반기에 몰려 있다"며 "코로나19 재유행과 맞물리면 접종에 차질이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이날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개별 계약으로 확정된 화이자 백신 50만명분 도입이 이달 말 예정돼 있고, 다른 2분기 공급 물량은 아직 일정을 구체화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단독] 수도권 성범죄자 10명 중 9명 학교 근처 살고 있다

#1. 어른 걸음으로 열 발자국.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나가는 이면도로를 사이에 두고 A씨가 거주하는 빌라와 B고등학교 후문은 마주 보고 있다. A씨 집에선 남녀 학생 900여명이 생활하는 교정이 창문 너머로 훤히 내다보인다. A씨는 2014년 19세 여성을 간음해 신상정보 공개대상자가 된 성범죄 전과자로, 출소 후에 경기도 대도시 주택가에 터를 잡았다. A씨를 포함해 세 명의 성범죄자가 살고 있는 학교 앞 골목은 놀랍게도 지자체가 '걷고 싶은 길'로 지정한 구역이다. B고등학교 반경 500m 내엔 A씨를 포함해 13명의 신상정보 공개대상 성범죄자가 살고 있다. 그중 7명은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주민들은 이곳이 "출퇴근 때를 제외하고는 인적이 드문 원룸촌"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업자들은 집세가 저렴한 다가구주택이 많고, 주민 중 독신 남성 비율이 높다고도 했다. #2. 상대적으로 치안 상태가 양호할 것 같은 주거지에도 신상정보 공개대상 성범죄자가 거주한다. 서울 강남 지역 역세권에 위치한 고급 아파트에는 미성년 연예인 지망생(연습생)들을 상습 성폭력한 혐의로 6년형을 선고 받았던 유명 연예기획사 전 대표가 살고 있다. 피해자가 여럿이었지만, 초범이라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받지 않았다. 이 아파트 단지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초·중·고 3곳에는 2,700여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대형 멀티플렉스도 가까워 밤낮으로 아동과 청소년들이 쉼 없이 오간다. 주민들은 "경비원의 깐깐한 검문을 통과해야 겨우 외부 차량 출입이 가능할 정도로 보안이 철저한 아파트라서 위험 인물이 살고 있을 거란 생각은 전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국민적 공분을 산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69)이 출소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성폭행범 거주지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은 여전하다. 특히 조씨 거주지 반경 500m이내에 어린이집 5곳과 초등학교 1곳이 자리하고 있어 주민들 불안이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경기 안산시가 인근 초등학교 전교생에 '안심 호루라기'를 지급하고 관내 초·중·고 학생들에게 호신술을 가르치겠다는 대책을 내놨지만, 주민들은 "3월 개학을 앞두고 걱정이 크다"며 우려하고 있다. 성범죄자와의 '불안한 공존'은 비단 안산시만의 일은 아니다. 한국일보가 법원으로부터 신상정보 공개 명령을 받아 '성범죄자 알림e'에 등록된 성범죄자 중 인구 밀집지역인 수도권에 거주하는 1,622명(2020년 말 기준)의 주거지를 전수 분석한 결과, 86.1%(1,397명)가 초·중·고교, 대학 등 교육시설에서 걸어서 7분(반경 500m) 이내 근접지에 살고 있었다. 500m는 조두순 출소를 전후해 국회에서 발의된 성범죄자 주거지 제한 관련법 개정안에서 제시된 기준값이다. 아동 안전 문제에 집중하는 옐로소사이어티 등 시민단체에서도 500m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500~2,000피트(150~600m)로 제한하는 미국 주요 주(州)들이 채택한 거리의 중간값이기도 하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서울의 경우 거주지가 공개된 성범죄자 522명 중 무려 508명(97.3%)이 학교 500m 이내에 살고 있다. 인천은 235명 중 211명(89.8%), 경기는 865명 중 678명(78.4%)이 학교 인근에 살았다. 2008년 초등학생을 납치·성폭행 하고 중상을 입힌 혐의로 12년을 옥살이했던 조두순이 출소하자, 시민들 불안이 커진 것이 막연한 공포심이 아님을 보여주는 결과다. 신상정보 공개대상 성범죄자의 주거지 500m 이내에는 평균 2.4개 학교가 자리하고 있었다. 서울에 사는 C씨의 경우 주거지 500m 이내에 초등학교 4곳을 포함해 무려 10개 학교가 있었다. 2012년 미성년자를 강간해 4년형을 살고 전자발찌 부착명령을 받은 C씨는 2012년 전에도 청소년 강간 등 두 번의 전과가 있었다. 경기와 인천에서도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자 거주지 주변에 각각 9개와 8개 학교가 자리 잡은 곳이 있었다. 이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제외한 수치로, 이를 포함하면 수십 개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거주지 500m 근방에 학교가 있는 성범죄자 중 절반 가까이(43.0%)는 19세 미만 청소년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렀다. 이 중 13세 미만 아동을 강간하거나 추행하는 등의 성적 학대를 한 사람도 223명(16.0%)에 달했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11세 여아를 포함한 5명의 신도들에게 성행위를 강요한 후 범행 장면을 촬영하고 협박한 경기도 모 교회의 목사 출신 D씨도 현재 8개 학교 옆에 살고 있다. 시민들은 성범죄자를 구별하고 정부가 이들을 감시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전자발찌를 떠올리지만, 거주지 500m 근방에 학교가 있는 성범죄자 1,397명 중 전자발찌를 착용하지 않은 인원은 '최소' 619명(44.3%)에 달한다. 전자발찌 착용 여부가 2013년 6월부터 성범죄자 알림e에 공개돼, 그 이전에 '미공개' 처리된 전자발찌 착용자는 통계에 안 잡힌다. 성범죄자 알림e를 통해 명확히 전자발찌 착용자로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은 18.2%에 불과하다. 학교 인근에 거주하는 성범죄자에 대한 우려가 특히 큰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6년 1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성범죄로 전자발찌를 착용한 이들의 성폭력 재범 건수는 292건으로, 이 중 절반 가까이인 44%(129건)가 거주지 500m 이내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구체적으로 △100m 이내 33%(96건) △100~500m 11%(33건) △500~1㎞ 28건(10%) △그 외 46%(135건) 등이다. 법무부의 '2020 성범죄 백서'를 살펴봐도 신상정보 등록 대상자 중 자신의 주거지가 범행장소였던 191건 가운데 또다시 주거지에서 범죄를 저지른 비율은 37.2%(71건)에 달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18년 한 해 동안 신상정보 등록 대상이 된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10건 중 5건(54.7%) 이상이 가해자의 거주지 인접 지역에서 발생했다. 시민들이 성범죄자와의 공존을 유독 두려워하는 것은 범죄 피해자가 겪는 정신적·신체적 후유증이 광범위하고 장기적이기 때문이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가 2015년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성범죄 피해자가 겪는 트라우마는 전쟁 경험과 거의 유사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논문은 "성폭력 피해자들의 외상 경험은 불안을 다룰 수 있는 자아 방어 능력 전체를 혼란시킬 만큼 강력한 외상"이라고도 짚었다. '국내 1호 프로파일러'인 권일용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원 교수는 "성범죄는 도박 같은 중독성이 있어 범행 동기가 쉽게 소멸하지 않는다"며 "특히 아동 성범죄자의 경우 다른 성범죄자와 달리 먼 거리를 이동해 피해자를 물색하는 걸 힘들어 한다는 점에서 면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두순 같은 성범죄자 주거 제한, 우리나라서 힘든 이유

"어떤 성범죄 피해자가 가해자랑 가까운 공간에 사는 걸 감당할 수 있겠어요. 보복의 두려움을 떠나 그건 트라우마의 문제예요." '조두순 사건' 피해자 심리치료를 도왔던 신의진 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1일 지난해 11월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피해자 가족은 한 달 뒤 조두순이 출소해 경기 안산시에 다시 정착한다는 이야기가 들리자 고향과 같은 이곳을 떠났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가해자와 같은 생활권에 머문다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신 교수는 이사 비용 마련을 위한 시민 모금을 도왔고, 피해자 가족은 다른 지역에 전셋집을 얻었다. 신 교수는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조두순 출소 후 3개월이 돼 가지만,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방법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미흡하다"며 답답해했다. 성범죄자가 출소할 때마다 한국 사회는 두려움과 공분으로 들썩였다. 조두순 출소가 예고됐던 지난해 말에도 그를 사회와 격리하고 거주지를 제한해야 한다는 논의가 잇따랐다. 하지만 정치권이 국민적 공분에만 편승해 현실성이 떨어지는 법안을 쏟아내면서 사회적 논의는 오히려 후퇴했다. '가해자가 피해자 거주지와 같은 동네로 돌아가는 것만은 막아야 하지 않겠냐'는 최소한의 사회적 공감대를 담은 법안마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여야 정치권은 지난해 조두순 출소를 앞두고 국민 불안감이 커지자 앞다퉈 각종 '조두순 방지법'을 쏟아냈다.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동 성범죄 전과자를 자신의 주거지에서 200m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같은 당 정춘숙 의원도 가해자 접근거리를 피해자 집으로부터 1㎞ 이상으로 하는 법안을 냈다. 하지만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는 법안들이라 국회 논의는 진전되지 못했다. 국회 통과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포퓰리즘성 법안 발의는 20대 국회(2016~2020년) 때도 다르지 않았다. 당시 발의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 72건 중 43건(59.7%)이 제대로 논의조차 못한 채 자동폐기됐다. 현실적 숙고가 부족했던 탓이다. 신 교수는 "이름 난 성범죄자들이 출소할 때마다 엉성한 법안들이 줄줄이 발의되지만 결국 실현 가능한 대책으로 이어진 적은 손에 꼽는다"고 지적했다. 성범죄자 재활을 돕고 치료를 해본 전문가들도 정치권의 여론몰이식 '성범죄자 거주지 제한법' 발의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다. 재범 방지 효과가 떨어지고 되레 피해자에 대한 증오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 생활조건이 마련돼 있지 않으면 출소자들이 심리적 압박을 받아 오히려 재범 우려가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30개 이상 주(州)에서 성범죄자 주거제한법을 마련해 시행 중인 미국의 사례는 본보기가 된다. 성범죄자가 학교와 공원 주변 600m 이내에서 살 수 없도록 한 '제시카법'이 가장 강력한 법인데 일부 지역에선 성범죄자만 몰려 있는 외곽지역에 마을이 생겨나기도 한다. 학교와 공원을 피해 성범죄자가 살 수 있는 곳은 거의 없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구밀도가 워낙 높아 이를 그대로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 중론이다. 전국 곳곳에 자리잡은 교육시설을 피해 그들만의 특수한 거주지를 찾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의 경우 전체 면적 605.5㎢ 중 녹지 등을 제외한 주거지역 넓이는 325.9㎢로, 신상공개 대상 성범죄자 522명(2020년 말 기준)의 활동지(반경 500m 기준) 합계 면적인 409.8㎢보다도 좁다. 특정 지역에 몰아넣지 않는다면 성범죄자 격리 수용은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다. 이 때문에 성범죄자 거주지를 일괄적으로 제한하기보다는 최소한 피해자 거주지와 같은 동네로 돌아가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성범죄자 주거 문제와 관련해 피해자가 가해자 출소 후 2차 피해를 입지 않도록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2019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을 통해 분석한 결과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의 절반 이상(54.7%)은 거주지역과 범행지역이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3건 이상 성범죄를 저지른 연쇄 성범죄자의 절반 정도는 행정구역상 주거지와 동일한 지역에서 범행을 이어가는 경향을 보인다는 한국공안행정학회의 연구 결과도 있다. 국회에도 현재 출소한 성폭력사범이 피해자 주거지와 같은 시·군·구에 거주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법률안이 발의돼 있다. 하지만 조두순이 대중적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구체적인 논의는 실종된 상태다. 전문가들은 피해자 안전을 도모하고 재범률을 낮추기 위해선 거주지 제한 하나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심리치료 강화를 포함한 근본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성범죄 출소자를 교육하는 코사코리아(COSA Korea)의 박정란 대표는 "사회에서 격리시키면 증오심을 키울 수 있고, 재범 위험성을 낮추려는 목표와도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리치료나 교화 프로그램으로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한 진정한 뉘우침을 얻게 해야 보복 등 위험성도 사라진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