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동물도 보호받는데, 배움도 생업도 막힌 우린…"

2021.10.26 04:30

케냐 남부 해안, 탄자니아 국경에 인접한 콸레주 시모니 마을에 사는 펨바족 어부 므왈리무 음카샤(46)씨는 이제 고기잡이를 하지 않는다. 낚시가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하는 활동에 편입되면서, 신분증(ID카드)이 없는 무국적자 음카샤씨는 졸지에 '무허가 어부'가 됐다. 날로 커가는 7명의 자녀를 건사해야 하는지라 경찰에 잡혀갈 위험을 감수하긴 힘들었다. 디고족 사람들 도움으로 관광객 스킨스쿠버 체험 등을 도와 밥벌이를 이어가게 된 것만도 다행이다. 조상 대대로 생업으로 삼았던 어업을 접기란 쉽지 않았다. 자신이 나고 자란 케냐의 국적을 받기만 한다면 사업을 키우겠다는 포부가 컸기에 더욱 그랬다. 신분증이 있어야 어업 허가도 받고 은행 계좌도 만들 수 있을 텐데, 출생증명서조차 없는 음카샤씨에게 시민권 획득의 벽은 너무나도 높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국적이 없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뼈저리게 느꼈어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케냐에서 살았지만, 그분들이 무국자였기 때문에 나도 무국적자라고 하데요." 펨바는 스와힐리어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펨바족은 케냐와 탄자니아를 자유로이 오가면서 고기를 잡아 생계를 꾸렸다. 그러다 식민 지배로 케냐와 탄자니아 국경이 갈리면서 부족이 쪼개졌고 일부는 무국적자 신세가 됐다. 부족의 본거지였던 펨바섬이 탄자니아 영토로 편입되면서 탄자니아 출신 펨바족은 그 나라 시민권을 받았지만, 케냐 출신 펨바족은 어느 쪽에서도 국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무국적자로 전락한 펨바족은 7,000여 명에 이른다. 1980년대 케냐 정부가 일시적으로 신분 등록을 허용했지만 문은 금세 닫혔다. 부족 갈등이 첨예한 케냐의 정치 현실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음카샤씨는 도중에 옥살이의 고초도 겪었지만 시민권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신분을 증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교육, 의료, 구직은 물론 이동의 자유까지 제한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다. 그는 "무국적자로 산다는 것은 상자에 갇혀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음지에 살아야 하고, 밖으로 나갈 수도 목소리를 낼 수도 보호받을 수도 없다"고 호소했다. 케냐의 무국적자 문제는 펨바족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파레·누비안 등 또 다른 소수민족, 아시아·브룬디·르완다계 후손 등이 시민 자격을 얻지 못한 채 소외돼 있다. 케냐가 1963년 영국에서 독립한 후 제때 시민권 등록을 못했거나 국적법이 아우르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아프리카 식민지배 역사가 60년에 가까운 무국적 신분 대물림이란 개개인의 비극을 초래한 셈이다. 케냐 정부는 자국 내 무국적자를 3,221명으로 집계하고 있지만, 유엔난민기구(UNHCR)의 추산치는 지난달 기준 최소 1만6,000명에 달한다. 어느 쪽도 정확한 조사에 기반한 통계는 아니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 만난 테니스 선수 드루브 카비아(17)군은 '성인이 되기 전 시민권을 받고 싶다'는 간절한 소원을 두 달 전에야 풀었다. 테니스 선수 중 노박 조코비치와 로저 페더러, 한국의 정현을 좋아한다는 카비아군은 일곱 살 때 테니스를 시작한 신동이다. 열두 살이던 2016년 국제테니스연맹에서 주최한 동아프리카 주니어 챔피언십 우승을 포함해 수십 개의 상을 거머쥐었다.그가 프로 테니스 선수가 돼서 '조국' 케냐를 빛내겠다는 꿈을 갖게 된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11세 때 국가대표에 처음 선발된 카비아군은 국제 대회 출전 과정에서 자신이 무국적자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경기를 하려면 해외에 나가야 했지만 여권을 신청할 수가 없었다. 그는 "앞으로 선수로서 기회가 박탈될 거란 사실을 알고 억장이 무너졌다"며 당시의 막막했던 심정을 전했다. "해외 경기차 출국할 때 공항 심사를 통과하는 과정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내가 다른 선수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속상했고요. 집과 직업을 구하는 것부터 대학 진학, 하다 못해 은행 계좌를 개설하는 것조차 시민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 성인이 되기 전 시민권을 꼭 받고 싶었습니다." 카비아군 가족은 1850년대 인도를 떠나 케냐에 정착한 아시아계 후손이다. 당시는 인도와 케냐 모두 영국령이었기 때문에, 케냐에서 태어난 카비아군 부모는 영국 국적을 얻었다. 두 사람은 자녀에게도 당연히 영국 국적을 물려주게 될 거라고 여겼지만 오산이었다. 영국 국적법이 바뀌면서 영국 땅에서 태어나지 않은 경우엔 식민지에 부여했던 부모의 영국 국적을 이어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케냐 정부 역시 '카비아군은 케냐에서 태어났지만 부모가 둘 다 케냐인이 아니므로 시민권을 줄 수 없다'면서 국적 부여를 거절했다. 진퇴양난에 빠진 아들의 앞날을 걱정한 아버지 파레시 카비아(53)는 2012년 케냐에서 이중국적이 허용되자 케냐 국적을 신청했다. 자신과 부모, 조부모의 출생증명서와 노동증명서를 포함, 카비아 집안이 몇 대에 걸쳐 케냐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 2년이 걸렸다. 어렵사리 케냐 시민권을 얻은 아버지는 본격적으로 자녀들의 국적 취득에 나섰다. 하지만 신청은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한 달에 2, 3번씩 이민국 문턱이 닳도록 방문했지만, 서류가 미비해 반려됐다는 답변을 듣는 것조차 2년이 걸렸다. 해외 일정이 생긴 아들을 위해 무국적자에게 임시로 발급해주는 여권 대용 서류를 받는 데도 두 달간 매일같이 이민국을 찾아 요청해야 했다. 6년여에 걸친 노력 끝에 카비아군과 동생은 올해 7월 케냐 시민권을 받을 수 있었다. 무국적자는 스스로 자기 존재를 증명할 것을 요구받는다. 하지만 무국적 신분을 대물림해온 무국적자가 내놓을 수 있는 증빙서류는 애초에 없다. 케냐 소수부족 쇼나족의 일원인 노시지 듀베(21)씨는 15세 때 8년 과정 초등교육을 마치기 위한 졸업시험을 앞두고서야 자신이 무국적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시험에 응시하려면 출생증명서를 제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졸업시험을 보지 못하면 상급학교 진학은 불가능했다. 듀베씨는 "모든 꿈이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며 당시를 돌아봤다. 쇼나족 상당수는 1950년대 선교를 위해 짐바브웨에서 케냐로 온 이주민의 후손이다. 케냐 정부는 1963년 독립 이후 2년간 영주자의 시민권 등록을 허용했지만, 교통과 통신이 열악하던 시절이라 이런 사실을 아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듀베씨 조부모는 결국 시민권을 얻지 못했고, 쇼나족 대부분이 이런 과정을 거쳐 대대로 무국적자가 됐다. 그 탓에 쇼나족은 대부분 초등학교를 중퇴하며, 합법적인 직장을 구할 수 없어 남자는 목수, 여자는 바구니 제작에 주로 종사한다.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듀베씨는 유급을 택해 8학년을 한 해 더 다니며 길을 찾았다. 간신히 찾아낸 어머니의 산부인과 진료카드를 근거로 케냐 출생임을 입증해 겨우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1학년 때 전교 1등을 하면서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출생증명서가 다시 발목을 잡았다. "출생증명서를 가짜로 만들 수도 있었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어요. 무국적자여서 기회를 포기해야 한다는 게 가장 고통스러웠습니다." 대학 진학은 더 큰 난관이었다. 입학하려면 시민권자에게 발급되는 ID카드 사본을 제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듀베씨는 UNHCR과 케냐 인권위원회를 통해 고등교육을 받기 위한 신분상 제약을 완화해달라고 호소했다. 그의 사연은 케냐를 포함한 아프리카 11개국 장관 회의에서 언급될 정도로 국제적 이슈가 됐고, 케냐 명문 나이로비대는 예외를 적용해 듀베씨의 입학을 허가했다. 그의 투쟁은 더 큰 변화를 이끌어냈다. 케냐 정부가 지난해 12월 쇼나족에 대한 시민권 허용을 결정했고, 이에 따라 쇼나족 1,649명이 올해 7월 ID카드를 발급받은 것이다. 쇼나족은 이달 1일 나이로비의 우후루(스와힐리어로 '자유') 공원에 모여 시민권 획득을 축하하는 행사를 열었다. 경제와 국제관계를 공부하면서 무국적 문제를 알리고 싶다는 듀베씨는 이 자리에서 "시민권을 얻은 날은 무국적자로 묶여있던 사슬을 푼, 새로 태어난 날"이라고 말했다. 그는 "펨바족, 르완다계 등 다른 무국적자 친구들로부터 축하를 받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어려움에 처해있다"며 "무국적자라는 말 자체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기습적인 손준성 구속영장 카드…승부수일까 무리수일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인물인 손준성(47) 검사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신속한 수사를 강조해온 공수처가 손 검사의 반복된 소환 불응에 강수를 둔 것으로 보이지만, 대선 일정을 염두에 두고 성급하게 신병 확보에 나섰다는 지적도 나온다. 25일 공수처와 손 검사 측 입장을 종합하면, 손 검사는 이달 초부터 공수처가 여러 차례 출석을 요구했지만 응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는 이달 4일 손 검사에게 처음으로 '10월 14일 또는 15일'로 소환조사 계획을 통보했지만 불발됐다. 이후 19일까지 양측은 거의 매일 일정 조율을 시도했지만, 손 검사는 '변호인 선임이 늦어지고 있다'는 이유로 출석일자 확정을 미뤘다. 손 검사는 이후 공수처에 '22일 출석하겠다'고 알렸지만, 합의된 조사 날짜 하루 전날인 21일 변호인을 통해 '내일은 변호사 일정상 어려우니 11월 2일 또는 4일 이후 출석이 가능하다'고 통보했다. 앞선 20일 공수처는 손 검사에 대해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손 검사가 어차피 출석을 미룰 것으로 예측했다는 게 공수처 설명이다. 법원은 그러나 "출석 요구에 불응할 우려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체포영장을 기각했다. 공수처는 22일 손 검사 측에 '납득 안 되는 해명으로, 수사 회피 목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어 강제수사에 의할 수밖에 없다'며 영장 청구를 시사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수사 절차 지연 방법을 잘 아는 손 검사와의 수싸움에서 더는 밀리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공수처는 문자 발송 하루 뒤인 23일 전격적으로 손 검사에 대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1차적 신병 확보 수단인 체포영장이 기각된 상황에서 곧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몇몇 공안 사건이나 2014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등 일부 소환 불응자에 대해 체포 절차를 생략하는 전례가 있긴 했지만, 이는 '소환에 응하지 않겠다는 뜻이 명백한 경우'였다. 검찰 안팎에선 이를 두고 공수처가 손 검사의 혐의 입증을 자신할 만큼 구체적 증거들을 확보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원이 체포영장보다 구속영장 발부 기준을 훨씬 엄격하게 적용하기 때문이다. 수도권 검찰청의 현직 부장검사는 "윤석열 전 총장 연루 여부를 밝히기 위한 수사의 관건은 손 검사의 신병 확보"라며 "공개되지 않은 증거들을 상당수 확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모험수를 던졌다는 건 그만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법조계 일각에선 공수처가 대선 정국을 의식해 성급하게 영장을 청구했다고 비판한다. 공수처가 이날 "영장심사를 통해 법관 앞에서 양 측이 투명하게 소명해 법원 판단을 받는 것이 더 객관적이고 공정한 처리 방향"이라 밝혔지만, 손 검사 진술도 받지 않고 영장을 청구한 것 자체가 "무리하게 인신 구속을 노리는 것으로 비친다"는 지적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공수처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커질 수 있다. 손 검사 측은 공수처의 영장 청구에 강하게 반발했다. 손 검사 측은 이날 "공수처는 명시적으로 ‘대선 경선 일정’을 언급하며 출석을 종용했다"며 "공수처가 정치적 중립 의무를 저버리고, 명백히 야당 경선에 개입하는 수사를 하겠다는 정치적 의도 때문에 피의자의 헌법과 형사소송법상 방어권이 침해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어느 수사기관의 어떤 수사에서도 이미 출석 의사를 명확히 한 피의자에 대해 아무런 조사 없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법원에 출석해 소환 과정 및 강제수사 절차의 위법성에 대해 설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위드 코로나 스타트' 전국 지자체 관광객 모시기 시동

정부가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 기점을 11월 1일로 공식 선언함에 따라 전국 각 지자체들이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지만, 코로나19로 위축됐던 관광산업을 조속히 복원시켜 지역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전략이다. 25일 전남도에 따르면 최근 GS홈쇼핑을 통해 신안 홍도·흑산도, 목포를 여행하는 1박2일(18만5,000원), 2박3일(26만5,000원) 상품을 판매한 결과, 1억2,000여 만원의 판매고를 올렸다. 유미자 전남도 관광과장은 “예상치보다 3배가량 많은 판매 실적"이라며 "전남 대표 섬여행 상품을 연말까지 홈쇼핑을 통해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도는 세계적으로 흥행한 ‘오징어 게임’에 등장한 제주 콘텐츠를 활용, 관광 이벤트를 연다. 도 관계자는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제주를 ‘한국의 하와이’라고 소개했다"며 "해외 관광객 수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방역 안전 국가 간 '트래블 버블'(여행안전권역) 도입과 지난해 중단됐던 무사증 입국을 재개하고, 다음 달에는 국내외 유명 인플루언서를 초청해 MZ세대 대상 홍보를 통해 국내 청년들도 끌어들인다는 계획이다. 각 지자체들의 공략 대상은 내국인에 한정되지 않는다. 충북 청주시는 해외 여행사들을 상대로 팸투어를 재개한다. 오는 29일부터 이틀간 중국과 우즈베키스탄 등 여행·무역업 종사자 10명을 초청해 청남대와 세종대왕 초정행궁 등 주요 관광지를 둘러본다. 청주시 관계자는 "이들 일정에 최신 시설을 갖춘 치과·피부과 방문도 포함돼 있다"며 "부가가치가 높은 의료 관광객 유치에도 힘을 쏟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특히 한국 관광의 큰 손님인 일본과 중화권, 동남아 관광객 유치전도 눈에 띈다. 지난해 3만 명 중국 관광객 유치 목표가 좌절된 충남도는 내년 중국 관광객 10만 명 유치를 목표로 내걸었다. 중국, 일본 등 외국인 전문 여행사와 서해안 관광 코스를 개발하고, 고급 숙박시설 홍보 영상을 일찌감치 중국 현지 여행사에 보내기도 했다. 경북도도 중화권, 일본, 동남아권을 대상으로 대구경북 여행 전세기를 띄우는 등 해외관광객 유치를 위한 특별상품을 개발한다. 전통유산, 레포츠, 캠핑 등을 연계한 사계절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봄 행락철에는 KTX, 고속버스 등 주요 교통수단 할인, 시군 관광지 대개방, 숙박할인권, 전국 근로자 휴가비 지원 등 대대적 관광객 유치에 나선다. 코로나19로 제주와 함께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서울시도 26일부터 ‘서울국제트래블마트’ 행사를 세빛섬과 3차원 가상행사 플랫폼인 버추얼 서울을 통해 온·오프라인에서 동시 개최한다. 관광과 마이스, 의료관광, 관광스타트업 등 참가사들에 홍보기회를 제공해 활로를 뚫어주자는 취지다. 서울시 관계자는 “코로나19 장기화로 국내외 네트워크가 단절되고 판로개척에 어려움을 겪는 등 관광시장이 부침을 겪었다”며 “다양한 관광사업들이 일상을 회복하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업계 "물 들어왔는데, 노 저을 사람이 없어요"

국내 조선 3사가 올해 연간 수주 목표치를 ‘조기’ 달성했다. 2013년 이후 8년 만의 기록이다. 수주 규모로는 10월 기준 국내 조선업이 초호황이던 2008년 이후 13년 만의 최대 규모다. 그러나 조선소가 밀집한 울산, 부산, 경남 지역의 조선업계는 웃지 못하고 있다. 수년간 이어진 불황에 숙련공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생긴 극심한 인력난 탓이다. 현지에선 “물 들어왔는데, 노 저을 사람이 없다”는 푸념 섞인 우려가 나온다. 25일 울산지역 조선업계에 따르면 한국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 3사는 9월 말 기준, 1,368만CGT(표준선환산톤수)를 수주했다. 2013년 한해 (1,403만CGT) 기록에 근접한 실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달 들어서만 조선 3사가 16척을 수주했다”며 “이미 올해 2013년 실적을 갈아치웠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삼성중공업은 버뮤다 선사로부터 LNG 운반선 4척(3조 원)을 수주, 올해 목표 23%를 초과 달성했고, 같은날 현대중공업그룹(한국조선해양)도 중동 소재 선사와 대형 PC선 4척(3,800억 원)을 수주했다. 7년 만에 수주 목표를 달성한 대우조선해양도 지난 21일 오세아니아 지역 선주로부터 LNG 운반선 1척(2,300억 원)을 수주했다. 구체적인 CGT 수는 밝히고 있지 않지만, 업계는 이달 들어 수주한 이들 선박의 톤수는 171만CGT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전체 톤수는 1,500만CGT를 크게 상회한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오염물질 배출 기준 강화로 대체선박과 친환경 선박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올 초부터 발주량이 크게 늘었다”며 “향후 10년은 전망이 밝다”고 말했다 잇따른 수주로 비었던 독(dock)이 차고 있지만, 문제는 선박을 건조할 인력 부족이다. 조선업종노조연대에 따르면 5월 말 기준 조선소 노동자 수는 원하청 포함 9만771명으로 2019년 5월(10만3,289명) 대비 12%(12,518명)가 줄었다. 한 협력업체 대표는 “예전에는 위험해도 돈이 되니까 서울에서도 조선소 일을 하겠다고 내려왔는데 요즘은 모집공고를 내도 지원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조선업 기피 현상은 현대중공업이 1년여 만에 재개한 기술연수생 모집 경쟁률에도 그대로 드러났다. 선박 건조에 투입될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과정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4~5개월만 교육을 받으면 취업이 되기 때문에 보통 5대 1을 기록하고, 조선업 호황기였던 2008년에는 15.8대 1을 기록하기도 했다”며 “그러나 올해는 2대 1에 그쳤다”고 말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이런 흐름이라면 수주한 물량을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하는 내년에는 울산에서만 최대 6,000명, 부산과 울산, 경남, 전남까지 합치면 8,000명 이상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조선업이 예전만큼 인기가 없다는 이야기다. 국내 조선산업이 오랜 잠에서 깨어나 다시 ‘세계 1위’ 타이틀을 거머쥐었음에도 조선 일이 인기를 끌지 못하는 배경은 복합적이다. 우선 선박 건조 과정이 하청, 재하청, 재재하청을 거치면서 실제 근로자들이 받는 저임금 등 열악한 처우, 부실한 안전 대책이 꼽힌다. 2018년 10년 동안 하던 조선소 일에서 손을 뗀 김진호(50)씨는 “건설 현장과 비교해도 일은 훨씬 힘들고 위험한데 하청에 재하청으로 갈수록 수익이 낮아지는 구조에서 처우가 더 열악해졌다”며 “밖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공기 단축과 비용 절감을 위해 각종 안전사고가 비일비재한 현장 근로 조건도 인기 하락 요인”이라고 말했다. 반면 조선업계에서는 급락한 조선업 인기의 원인을 주 52시간 근무제 탓으로 돌린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야외 작업이 많은 조선업 특성상 날씨에 따라 작업시간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데 기계적으로 주 52시간을 맞추라는 건 현실에 맞지 않다”며 “특근이 사라지면서 연봉도 1,000만 원 이상 줄어 신규 인력 유입은커녕 기존 인력도 이탈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