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 세상을 보는 균형

공사장에서 일하고, 어머니 김밥집 일 돕던 청년…4명 살리고 떠나

2023.09.26 07:42

평일엔 건설 현장에서 일하면서도, 주말에는 어머니가 운영하는 김밥집에 들러 일을 돕던 20대 남성이 네 명에게 심장 등 새 생명을 주고 숨을 거뒀다. 26일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 따르면 제주에서 세 남매 중 첫째로 태어난 구경호(28)씨는 평일에는 건설 현장, 주말에는 어머니 김밥집 일을 돕던 착실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들이었다. 자신의 사업체를 꾸리겠다는 꿈을 안고 성실히 일하던 구씨는 지난달 7일 제주 조천읍 소재 한 공장에서 일하다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 당시 닥터헬기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뇌사상태에 빠졌다. 큰 상심에 빠진 구씨의 부모는 꿈 많던 아들의 소지품 중에서 직접 작성한 버킷리스트를 발견하고 고심 끝에 장기기증을 결심했다. 버킷리스트에는 그의 꿈이었던 '자신의 사업체 꾸리기'와 함께, 죽음을 생각하기엔 이른 나이었건만 '장기기증'이 적혀있었다. 구씨의 어머니는 구씨가 네 명에게 심장과 신장, 간장을 주고 숨을 거두던 날 "경호야, 네가 떠나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게 너무 슬플 것 같아 기증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어 "속 한번 안 썩이고 착하게만 자라온 네가 고생만 하고 떠난 것 같아서 미안해.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지내야 한다. 사랑해"라며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문인성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원장은 "기증자 덕분에 네 명의 환자에게 새 생명의 기회가 주어졌다. 기증자와 기증자 유족에게 감사드린다"고 했다.

서울대생들 음란 전단지와 전쟁... 샤로수길 4주 만에 청정구역 됐다

"다들 손 놓고 있는 것 같아서 직접 나섰죠." 서울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2번 출구로 나가면 음식점이 즐비한 거리가 나온다. ‘샤로수길’로 명명된 이 거리 골목 곳곳에 올여름 낯 뜨거운 문구가 적힌 전단지 수십~수백 장이 매일 나뒹굴었다. 유흥업소의 한 종류인 ‘셔츠룸’을 홍보하는 종이였다. 골목 쓰레기 절반 이상이 전단지일 정도로 폐해는 심각했다. 유흥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홍보물로 치부할 법도 했다. 서울대 노어노문학과에 다니는 이정빈(19)씨 생각은 달랐다. 학생들도 많이 이용하는 공간이 성매매 홍보 전단지로 도배되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뭐라도 해봐야 했다. 서명운동을 시작하자 많은 학생들이 호응했고, 총학생회도 움직였다. 경찰도 합세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이씨는 이달 초 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 하나를 올렸다. "저속하고 불쾌한 성매매 업소 전단지가 샤로수길을 휩쓰는 건 정말 잘못됐다. 문제 해결을 위해 동문 여러분의 많은 서명을 부탁드린다"고 적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학생들은 "좋은 일 하신다", "파이팅이다" 등 댓글 응원을 보냈다. 무려 483명이 서명운동에 참여했다. 한 사람의 용기가 문제의식을 가진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이씨는 학교 총학생회에도 서명운동 인명록을 넘기며 공론화를 부탁했고, 총학 측은 관악구 주무열 구의원과 관악경찰서에 상황을 공유했다. 당국의 조치만 기다린 것도 아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학생들은 '전단지 수거 모임'을 결성해 직접 거리 청소에 나섰다. 모임은 경영대 이민호(25)씨가 주도했다. 그는 비슷한 문제를 해결한 해외사례를 찾아봤다. 이씨는 "일본, 프랑스에선 지역공동체가 노력하고 언론이 이를 홍보하는 선순환을 통해 (불법 전단지 문제가) 해결된 경우가 있어 한번 움직여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오픈채팅방을 개설하고 팔로우 1.5만 명의 본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활용해 홍보를 시작했다. 쓰레기봉투 등 청소에 필요한 도구는 직접 구매하거나 인근 행정복지센터에서 빌렸다. 매주 한 번씩 10여 명이 모여 전단지를 주운 지 4주. 50리터(L) 쓰레기봉투 두 개를 가득 채우던 전단지는 어느덧 거의 사라졌다. 그사이 경찰 수사에도 진척이 있었다. 경찰은 골목 폐쇄회로(CC)TV를 확인해 12일 전단지를 뿌리던 배달원과 이를 지시한 업주를 특정했다. 학생들과 지역주민들의 열띤 신고 덕이었다. 경찰은 경범죄처벌법 등 적용 법령이 있는지 검토 중이다. 경범죄처벌법 제3조는 공공장소에서 광고물 등을 함부로 배포한 사람에게 10만 원 이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로 처벌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인근 지구대, 파출소와 협조해 불법 전단지 살포 여부를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샤로수길은 이제 깨끗해졌다. 학생과 지역사회, 사법기관이 합심해 노력한 결과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불법 전단지와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장에서 살포 사실을 적발하거나 CCTV로 확인하지 않는 이상 "홍보물을 받은 사람이 버린 것"이라고 발뺌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정빈씨는 "법이 바뀌지 않는 한 비슷한 사례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확실히 해결되는지 계속 주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재현(22) 서울대 총학생회장도 "전단지 관련 민원이 들어오면 경찰과 공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멋지다" "시대착오적"... 환호·비판 엇갈린 국군의 날 시가행진

"우와! 우리 군인들 멋지다!" "비까지 오는데 뭣하는 짓인지···." 26일 오후 4시 서울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10년 만에 부활한 국군의 날 시가행진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평가는 엇갈렸다. 한쪽에선 첨단무기를 앞세운 우리 군의 위용에 환호를 보냈고, 다른 한편에선 무력을 통해 국력을 뽐내려는 정부 발상을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했다. 장시간 교통통제에 볼멘소리를 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이날 건군 75주년 국군의 날을 맞아 열린 시가행진은 전차, 장갑차, 미사일 등 첨단무기와 함께 군 장병 4,000여 명이 참가했다. 행진 두 시간 전인 오후 2시가 되자 광화문광장과 시청역 인근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옥상 등에 구경꾼이 몰리기 시작했다. 이순신 장군상 앞에서 만난 고교생 안건(17)군은 "군에 관심이 많아 경기 부천에서 2시간 걸려 왔다"고 말했다. 베트남전 파병 용사 김순일(78)씨도 "국군의 날 행사를 한다는 소식에 옛날 생각이 나 보고 싶었다"고 했다. 가족 단위로 구경 나온 시민들도 많았다. 7세 손자 손을 잡고 행사를 기다리던 최광산(75)씨는 "어릴 때 국군의 날 행사를 감명 깊게 봐 어린이집도 조퇴시키고 손자를 데려왔다"며 웃어 보였다. 여군 문지현(30)씨는 "현직 군인으로서 부모님을 모시고 왔다"면서 "훈련하느라 고생한 동료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일부 관중은 시청역 인근 국방부 부스에서 나눠준 태극기를 양손에 들고 행진 군인들을 반겼다.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대규모 군 시가행진은 귀한 볼거리였다. 독일에서 온 마크(49)는 "한국인 친구가 알려줘 행사장을 찾았다. 국가를 막론하고 군의 중요성이 커진 만큼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오후 4시 본행진이 진행되면서 환호성은 더 커졌다. 화려한 태권도 시범단 기술에 "멋지다" "수고했다"는 감탄사가 연발했다. 거리에 굉음을 울리며 탱크와 전차, 탄약운반차량이 줄줄이 등장하자, 가족과 친구 이름을 연호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일부 시민은 행사에 참여한 주한미군을 향해 "파이팅"을 외치기도 했다. 오후 5시 행진 종료와 함께 각 부대가 퇴장할 땐 다른 군인들이 우렁찬 함성으로 배웅했다. 그러나 환호 뒤로 보여주기식 국력 표출이 영 못마땅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직장인 조모(29)씨는 "소음 공해에 교통흐름을 방해하면서까지 힘을 과시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했다. 김모(63)씨도 "갑자기 안 하던 훈련을 하는 데는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언짢아 했다. 참여연대와 녹색연합, 전쟁없는세상 등 시민단체활동가 10여 명은 서울도서관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미현 참여연대 정책기획국장은 "힘을 과시하는 것이 진정으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정부에 묻고 싶다"며 "한국이 갈등을 야기하는 교란지대가 되지 않으려면 외교와 평화에 더 힘을 쏟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교통통제가 이어지면서 대중교통 이용에 혼란을 겪는 시민들도 다수 눈에 띄었다. 광화문광장에서 만난 정대욱(66)씨는 "비를 맞으며 종로3가에서 경복궁역까지 30분이나 걸어서 왔는데, 여기도 버스가 다니지 않아 막막하다"고 울상을 지었다. 시청역 12번 출구 앞에선 인파가 갑자기 몰려 경찰관들이 "자칫하면 압사사고가 나니 멈추지 말고 얼른 들어가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경찰은 이날 교통통제 전 구간에 교통경찰, 군사경찰 등 1,000여 명을 배치했다.

기각이냐 발부냐 '단판승부'... 단식에 기력 쇠한 이재명도 혼신의 항변

헌정사상 최초의 제1야당 대표에 대한 구속을 두고 검찰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6일 형사법정에서 치열하게 맞섰다. 백현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의혹을 수사한 검찰은 "공적 권한을 사익 추구의 도구로 남용한 중대 비리 사건"이라며 이 대표의 구속 필요성을 강조했다. 반면 검찰 수사를 '조작'으로 규정하며 조사에 소극적이었던 이 대표는 장기간 단식으로 건강이 나빠진 상태에서도, 변호인의 주장을 보충하는 등 혼신의 힘을 다해 맞불을 놓았다.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서관 321호 법정에서 이 대표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혐의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했다. 검찰은 김영남 서울동부지검 형사1부장(수사 당시 수원지검 형사6부장)과 최재순 공주지청장(수사 당시 서울중앙지검 반부패1부 부부장) 등 검사 8명을 심사에 투입해 맹공을 펼쳤다. 1,500여 쪽의 의견서, 500장 분량의 파워포인트(PPT)에 더해, 위증교사 혐의 관련 통화녹음이나 이화영 전 경기도평화부지사 접견기록 등 이 대표 혐의를 입증할 주요 증거들이 동원됐다. 유 부장판사가 추가적인 수사 자료를 요구하자 검사들이 검찰청사와 법정을 바삐 오가는 모습도 보였다. 검찰은 백현동 의혹과 대북송금 의혹을 각각 '권력형 토착비리 사건'과 '후진적 정경유착 사건'으로 규정하면서 "중형 선고가 불가피한 중대 범죄인 만큼 구속 수사와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대표의 증거인멸 우려를 거듭 강조했다.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이 대표가 지시하고 하급자가 실행에 옮긴 범행의 구조, 공범 대부분이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점 등을 설명하면서 "불구속 재판은 증거인멸로 직결될 수 있다"고 호소했다. 이 대표의 검사 사칭 관련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위증교사 혐의도 구속이 필요한 근거로 제시됐다. 이 대표가 도지사직을 상실할 위기에 처하자 '백현동 브로커' 김인섭 전 한국하우징기술 대표의 측근 김모씨에게 허위증언을 시켜 무죄 판결을 받아낸 사례를 들며, 위증교사 혐의의 핵심 물증인 이 대표와 김씨의 통화녹음을 재판부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대북송금 의혹과 관련한 이 전 부지사를 압박한 이 대표 측 관계자들과의 구치소 접견기록을 제출하며 "증거인멸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 측은 고검장 출신 박균택(사법연수원 21기) 변호사, 부장판사 출신의 김종근(18기)·이승엽(27기) 변호사 등 6명의 변호인단과 함께 검찰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날 오전 아무런 입장 발표 없이 법정으로 향했던 이 대표는 영장심사에서 비교적 적극적인 태도로 재판부 질문에 직접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변호인단은 백현동 의혹과 관련해 김인섭 전 대표와 이 대표의 유착 관계를 부인하며 "기부채납을 충분히 받은 만큼 경기도시개발공사까지 참여시켜 이익을 환수할 필요가 없었다"는 주장을 폈다. 또 대북송금 의혹에 대해선 검찰의 표적수사를 문제 삼았다. "김성태가 북한으로 보낸 돈은 쌍방울 등 본인의 사업과 이익을 위한 것"이라거나 "이 전 부지사로부터 자세히 보고받지 못했다"고 맞대응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의 증거인멸 주장에 대해선 △이 대표가 현직 당대표 신분이라는 점 △백현동ㆍ대북송금 의혹에서 본인이 취한 사익은 없다는 점 등을 근거로 불구속 수사와 재판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