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장님, 억울하게 갔다" 광장서 대성통곡한 지지자들

2020.07.13 10:42

"아이고, 아이고. 우리 시장님 억울해서 어쩐데." 13일 오전 9시 40분쯤 서울 종로구 서울시청 정문으로 고(故) 박원순 시장의 유족이 박 시장의 영정을 품에 안고 시민들 앞에 등장하자 광장에 운집한 수백여 명의 지지자들이 오열하기 시작했다. 한 남성은 "시장님, 나는 시장님 못 보내"라며 영정을 따라 운구차까지 뛰어가기도 했고, 한 50대 여성은 자리에 주저 앉아 "우리가 억울함 풀어드리겠다"라며 대성통곡을 했다. 검은 색 셔츠를 입은 한 여성은 도로 한 복판에서 큰절을 하며 박 시장을 배웅했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5일간의 서울특별시장(葬) 마지막 날이었던 이날, 박 시장의 지지자들과 서울시민들은 이른 아침부터 박 시장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기 위해 서울광장 앞으로 하나 둘 모여들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예정됐던 영결식이 온라인으로 변경됐지만, 수백여 명의 시민이 분향소를 찾았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을 마친 박 시장의 시신이 영결식을 위해 서울시청으로 들어가자, 시민들은 조금이라도 박 시장의 모습을 보기 위해 서울시청 유리창 앞에 서기도 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김모(74)씨는 "흠결이 없는 분이 이렇게 돌아가시다니 안타깝다"라며 "조금이라도 시장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떠나질 못하겠다"고 눈물을 흘렸다. 주말에 조문을 하지 못했다며 출근길에 시민분향소를 찾은 시민도 많았다. 경기 의정부에 사는 직장인 김지혜(31)씨는 "마지막 가시는 길 보러왔다"라며 "분향소에 오지 못했는데, 오늘 출근길에 와 조문을 하고 방명록에 '감사합니다'라고 적었다"고 말했다. 우산도 내팽개친 채 박 시장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서울 행당동에 사는 양수열(79)씨는 "이 정도 비는 우산을 안 써도 괜찮다"라며 "우리 시장님 가시는 길에 비가 그쳤으면 좋겠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지지자들은 서울시청 내부에서 오전 8시 30분부터 소규모로 진행된 영결식을 스마트폰으로 시청하며 박 시장의 관이 나오길 기다렸다. 박 시장의 영정이 등장하자 대부분 눈물을 흘리거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가지마세요"를 외치며 오열했다. 유족이 차에 올라타는 과정에서 일부 지지자들이 "못 보낸다"며 차 앞을 가로 막기도 하는 등 소란도 벌어졌다. 신종 코로나 확대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아무리 온라인 영결식을 진행했다고 해도 광장 앞에 모여든 시민들을 제지했어야 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직장인 김모(31)씨는 "저렇게 수백명이 모여 있으면 당연히 위험할 거 같은데, 시청에서 왜 사람들을 해산시키지 않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금융계 종사자 이모(45)씨는 "집회도 다 금지하면서 저건 자발적으로 모이는 거라 막을 수 없다는 입장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영결식을 마친 뒤 박 시장의 시신은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을 거친 뒤 장지인 경남 창녕으로 향할 예정이다.

"흠결 없는 분" "억울함 풀겠다" 대성통곡한 박원순 지지자들

"아이고, 아이고. 우리 시장님 억울해서 어쩌나." 13일 오전 9시 40분쯤 서울시 청사 정문으로 고(故) 박원순 시장의 유족이 박 시장의 영정을 품에 안고 시민들 앞에 등장하자, 광장에 운집한 수백여 명의 지지자들이 오열하기 시작했다. 한 남성은 "시장님, 나는 시장님 못 보내"라며 영정을 따라 운구차까지 뛰어가기도 했고, 한 50대 여성은 자리에 주저 앉아 "우리가 억울함을 풀어드리겠다"라며 대성통곡을 했다. 검은 색 셔츠를 입은 한 여성은 도로 한 복판에서 큰절을 하며 박 시장을 배웅했다. 박 시장을 추모하는 5일간의 서울특별시장(葬) 마지막 날이었던 이날, 박 시장의 지지자들과 서울시민들은 이른 아침부터 박 시장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기 위해 서울광장 앞으로 하나 둘 모여들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예정됐던 영결식이 온라인으로 변경됐지만, 수백여 명의 시민이 분향소를 찾았다.  앞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을 마친 박 시장의 시신이 영결식을 위해 서울시청으로 들어가자, 시민들은 조금이라도 박 시장의 모습을 보기 위해 서울시청 유리창 앞에 서기도 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김모(74)씨는 "흠결이 없는 분이 이렇게 돌아가시다니 안타깝다"라며 "조금이라도 시장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떠나질 못하겠다"고 눈물을 흘렸다. 주말에 조문을 하지 못했다며 출근길에 시민분향소를 찾은 시민도 많았다. 경기 의정부시에 사는 직장인 김지혜(31)씨는 "마지막 가시는 길 보러 왔다"며 "분향소에 오지 못했는데, 오늘 출근길에 와 조문을 하고 방명록에 '감사합니다'라고 적었다"고 말했다. 우산도 내팽개친 채 박 시장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서울 행당동에 사는 양수열(79)씨는 "이 정도 비는 우산을 안 써도 괜찮다"라며 "우리 시장님 가시는 길에 비가 그쳤으면 좋겠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지지자들은 서울시청 내부에서 오전 8시 30분부터 소규모로 진행된 영결식을 스마트폰으로 시청하며 박 시장의 관이 나오길 기다렸다. 박 시장의 영정이 등장하자 대부분 눈물을 흘리거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가지마세요"를 외치며 오열했다. 유족이 차에 올라타는 과정에서 일부 지지자들이 "못 보낸다"며 차 앞을 가로 막기도 하는 등 소란도 벌어졌다. 신종 코로나 확대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아무리 온라인 영결식을 진행했다고 해도 광장 앞에 모여든 시민들을 제지했어야 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직장인 김모(31)씨는 "저렇게 수백명이 모여 있으면 당연히 위험할 거 같은데, 시청에서 왜 사람들을 해산시키지 않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금융계 종사자 이모(45)씨는 "집회도 다 금지하면서 저건 자발적으로 모이는 거라 막을 수 없다는 입장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결식을 마친 뒤 박 시장의 시신은 오전 10시 50분 서초구 원지동 서울추모공원에 도착해 10시 57분부터 12시 17분까지 1시간 20분에 걸쳐 화장된 뒤,  오후 1시쯤 아들 박주신씨의 품에 안겨 박 시장의 고향이자 장지인 경남 창녕군으로 향했다. 유족의 뜻에 따라 묘소는 얕고 살짝 땅 위로 솟은 봉분 형태로 마련된다. 추모공원에 찾아온 100여명의 지인들과 지지자들은 유족들이 탑승한 차량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고개를 숙여 배웅했다.

박원순 고소인 "법정에서 그분 향해 '이러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고소인이 "(박 시장으로부터) 4년 간 위력에 의한 지속적인 성추행이 있었다"며 "힘들다고 울부짖고 싶었다"고 밝혔다.  고소인 A씨 측 김재련 변호사와 A씨를 지원해 온 한국성폭력상담소장 등은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는 박원순 시장에 의해 위력에 의한 성추행을 당했다"며 "성추행은 4년 간 지속됐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 등에 따르면 박 시장은 A씨에게 여러차례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했다. 김 변호사는 "집무실 등에서 피해자의 무릎 멍을 보고 '호 해주겠다'며 입술을 접촉했다"며 "또 집무실 안 침실로 피해자를 불러 안아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박 시장은 A씨에게 본인의 속옷 차림 사진을 전송하거나 늦은 밤 텔레그램방 대화를 요구했다고 김 변호사는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박 시장은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을 열어 지속적으로 음란한 문자와 속옷 입은 사진을 전송하는 등 성적으로 괴롭혔다"며 "텔레그램방 대화 요구는 (A씨가) 비서실에서 부서를 옮긴 이후에도 지속됐다"고 했다. A씨는 이날 직접 쓴 입장문을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을 통해 공개하기도 했다. A씨는 입장문에서 "고인의 명복을 빈다"면서도 "너무 후회스럽다. 처음 그때 저는 소리 질렀어야 하고 울부짖었어야 하고 신고했어야 마땅하다"고 했다. A씨는 이어 "(박 시장이) 법의 심판을 받길 원했고 (박 시장으로부터) 인간적 사과를 받고 싶었다"며 "안전한 법정에서 그분을 향해 이러지 말라고 소리지르고 싶었다. 힘들다고 울부짖고 싶었다"고 호소했다.  A씨는 특히 "용기를 내어 고소장을 접수하고 밤새 조사를 받은 날, 저의 존엄성 헤쳤던 분께서 스스로 인간의 존엄을 내려놓았다"며 "죽음, 두 글자는 제가 그토록 괴로웠던 시간에도 입에 담지 못한 단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진실 왜곡과 추측이 난무한 세상을 향해 두렵고 무거운 마음으로 펜을 들었다"고 전했다.  A씨는 지난 8일 서울경찰청에 박 시장을 고소했으나, 박 시장 사망으로 사건은 '공소권 없음' 처리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성폭력 행위자가 죽음을 택하는 것이 피해자에 대한 사죄 뜻이기도 했다면 어떤 형태로라도 사과와 책임을 전한다는 뜻을 밝혔어야 한다"며 "'모두에게 미안하다'(유서 속 문장)는 말로 피해자는 사과받은 것이며 책임은 종결된게 아니냐는 주장은 피해자에게 엄청난 심리적 압박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미련했습니다. 너무 후회스럽습니다. 맞습니다. 처음 그때 저는 소리 질렀어야 하고, 울부짖었어야 하고, 신고했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랬다면 지금의 제가 자책하지 않을 수 있을까 수없이 후회했습니다. 긴 침묵의 시간, 홀로 많이 힘들고 아팠습니다. 더 좋은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 힘없고 약한 저 스스로 지키기 위해 공정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를 받고 싶었습니다. 안전한 법정에서 그분을 향해 이러지 말라고 소리지르고 싶었습니다. 힘들다고 울부짖고 싶었습니다. 용서하고 싶었습니다.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법의 심판을 받고, 인간적인 사과 받고 싶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고소장을 접수하고 밤새 조사를 받은 날, 저의 존엄성 헤쳤던 분께서 스스로 인간의 존엄을 내려놓았습니다. 죽음, 두 글자는 제가 그토록 괴로웠던 시간에도 입에 담지 못한 단어입니다.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실망스럽습니다. 아직도 믿고 싶지 않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많은 분들에게 상처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많이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5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의 호소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은 제가 그때 느꼈던 '위력'의 크기를 다시 한번 느끼고 숨이 막히도록 합니다. 진실 왜곡과 추측이 난무한 세상을 향해 두렵고 무거운 마음으로 펜을 들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지만 저는 사람입니다. 저는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저와 제 가족이 보통의 일상과 안전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박원순 시장의 '마지막 출근'... 50년 만에 귀향 '영면'

9년 동안 몸 담은 '직장'(서울시청)을 들러 고향(경남 창녕)으로 향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마지막 길을 일부 시민은 비를 맞으며 끝까지 붙잡았다. "시장님 못 보내" "아이고". 박 시장의 영정이 지나간 자리 곳곳에서 지지자들의 통곡이 터졌다. 박 시장의 유해는 13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의 발인을 시작으로 서울시청사에서 진행된 영결식을 거쳐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된 뒤 고향 선산에 안치된다. 이날 장례에서 '박 시장 서울특별시 5일장'을 두고 대립한 지지파와 반대파 사이 충돌이 우려됐으나 별다른 소동은 없었다.  최초의 '3선 서울시장'이었던 박 시장은 아침부터 시청으로 '마지막 출근'을 했다. 박 시장의 영정은 이날 오전 7시50분께 서울시청에 도착했다. 지난 8일 시청사에서 퇴근한 뒤 5일 만이다. 박 시장은 2011년 10월27일부터 2020년 7월9일까지 시를 이끌었다. 세상을 떠나 사진으로 3180일 동안 일한 직장을 다시 찾은 박 시장을 1층에서 맞은 건 그와 함께 일했던 동료와 지인 100여명이었다.  박 시장의 영결식은 이날 오전 8시30분부터 9시40분까지 70여 분 동안 시청사 8층 다목적홀에서 엄수됐다. 박 시장이 생전 시민들과 만날 때 민관 협력을 논의했던, 박 시장에겐 특별한 장소였다.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은 "소통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뜻깊은 곳에서, 시장님과 만남의 기억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곳에서 작별 인사를 하게 된 이 시간이 실감 나지 않는다"고 비통해했다. 현장에는 100여명이 참석했고, 서울시와 시 산하 교통방송(tbs)이  유튜브로 중계한 온라인 영결식을 약 3만5,000명이 시청했다. 영결식장 정면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엔 '시대와 나란히 시민과 나란히'라고 적힌 문구에 웃고 있는 박 시장의 사진이 떠 있었다. 박 시장의 생전 활동 모습을 담은 영상이 5분 동안 상영됐고, 그의 64년 간의 인생 여정은 파노라마처럼 흘렀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유년 시절부터 당당했던 인권변호사 시절 그리고 2011년 서울시장이 돼 초등학교 무상급식 지원 사업 첫 번째 결재를 하는 모습 등이 스크린에 돋을새김 됐다. 영상 끝 무렵에 "언제나 그랬듯 제 답은 시민입니다" "여러분이어서 행복합니다" 등의 박 시장의 생전 육성이 흘렀다. 바로 뒤 박 시장이 남기고 간 유서가 뜨자 영결식장에선 울음 소리가 터졌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현악 4중주로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연주해 박 시장을 배웅했다. 박 시장의 장례위원회 대표 3인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서 권한대행은 각자 추도사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백 교수는 "역사의 현장엔 늘 그가 있었다"며 박 시장과 시민사회와 다리를 놨다. 이 대표는 "40년 친구"로서, 서 권한대행은 "그간 헤아릴 수 없는 격려를 받은 부시장"으로서 고인을 애도했다. 박 시장의 마지막을 배웅하기 위해 출근길에 시민분향소를 찾은 시민도 많았다. 경기 의정부시에 사는 직장인 김지혜(31)씨는 "마지막 가시는 길 보러 왔다"며 "분향소에 오지 못했는데, 오늘 출근길에 와 조문을 하고 방명록에 '감사합니다'라고 적었다"고 말했다. 우산도 내팽개친 채 박 시장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시민도 눈에 띄었다. 서울 행당동에 사는 양수열(79)씨는 "이 정도 비는 우산을 안 써도 괜찮다"라며 "시장님 가시는 길에 비가 그쳤으면 좋겠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영결식을 마친 뒤 박 시장의 유해는 오전 10시50분 서울추모공원에 도착해 1시간 20분에 걸쳐 화장됐다. 한 줌의 재가 된 박 시장은 오후 1시쯤 아들 박주신씨의 품에 안겨 그의 고향으로 향했다.1970년 중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해 서울로 터전을 옮긴 뒤 50년 만의 귀향이다.  유족의 뜻에 따라 묘소는 얕고 살짝 땅 위로 솟은 봉분 형태로 마련된다. 박 시장은 유서에서 "화장해서 부모님 산소에 뿌려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