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소음이 좋아졌다, 내 소리의 팔레트도 넓어졌다"
"예전엔 잡음이 없는 고운 소리만 찾으려고 했거든요. 이제는 악기의 소음이 더 좋아요."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30)는 요즘 잡음이 섞인 바이올린 소리에 꽂혀 있다. '부드럽고 따뜻한 음색'(보스턴 글로브)으로 정평이 난 양인모에게는 소리가 작다는 평가가 종종 따라붙곤 했다. 지난 6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양인모는 "볼륨이 작다는 비평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고민하던 중 2023년 경남 통영시에서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와 함께한 실내악 연주에서 해답을 찾았다"고 했다. 음반으로 수없이 접한 좋아하는 연주자인 카바코스의 바이올린 소리가 가까이에선 '이 사람의 소리가 이렇게 지저분했구나' 싶을 정도로 잡음이 많았다. 양인모는 "소음처럼 느껴지는 이 소리가 멀리 객석에서는 코어만 남아 다르게 들리는 것임을 깨달았다"며 "그동안 내가 악기 소리의 일부만 좋아했다는 사실도 함께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내 귀 바로 앞에서 들리는 예쁜 소리만 선호하다가 연주 경험이 쌓이면서 전달력 강한 소리를 구분할 수 있게 된 것"이라며 "악기 소리의 70% 이상이 소음이고, 그 소음까지 듣고 더 좋아할수록 무대에서의 내 소리도 좋아진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음악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심은 6세 때 취미로 바이올린을 시작한 양인모가 음악가의 길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소리를 가꾸는 과정이 재미있었다"고 했다. 7세 때 파가니니 '24개의 카프리스'를 처음 듣고 반했고, 파가니니의 화려한 기교가 궁금했지만 바이올린 소리는 생각처럼 잘 나지 않아 조바심으로 짜증을 부리기도 했다. 2015년 파가니니 콩쿠르, 2022년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해 주목받으면서 소리에 대한 철학적 사유도 깊어졌다. 양인모는 입상을 계기로 다양한 연주 일정을 소화하면서 "음악을 보는 시야가 더 넓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양인모는 그렇게 확장한 "소리의 팔레트"를 2년 만에 여는 국내 리사이틀에서 펼쳐 보인다. 코리아타임스가 주최하는 3월 1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공연을 비롯해 대전, 울산, 대구, 경기 고양시까지 총 5개 도시에서 선보인다. 미국인 피아니스트 조너선 웨어가 함께 무대에 오른다. 연주 프로그램은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전원 춤곡 Op. 106,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티나 마장조 Op. 80,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3개의 소품 Op. 116과 슈베르트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티나 D.384, 론도 브릴란테 나단조 D.895 등이다. 2022년 시벨리우스 콩쿠르 참가 때부터 구상한 프로그램이다. 양인모는 "바이올린 협주곡뿐 아니라 많은 바이올린 소품을 남긴 시벨리우스의 음악을 한국에 알리고 싶어 시벨리우스와 감정선이 비슷한 슈베르트도 함께 골랐다"고 소개했다. 양인모에게 두 작곡가는 "숲에서 길을 잃은, 중심에서 벗어나 있는 작곡가"다. 그는 "두 작곡가의 음악을 통해 주류만 역사를 설명하는 게 아니라 역사의 다양한 지점이 현대인에게 영감을 준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두 작곡가의 일기 같은 음악을 숲에서 길을 잃고 빠져나오지 못하는 청중에게 헌정하고 싶다"며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난 음악가들이야말로 정치나 법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을 어루만질 수 있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양인모에게 올해는 "음악적 발전의 큰 부분을 이뤘던 미국에서의 음악가 경력이 재개되는"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미국 보스턴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미리암 프리드 문하에서 공부한 양인모는 2020년 독일 베를린으로 이주하며 활동 거점을 유럽으로 옮겼다. 다음 달 11일 뉴욕필 협연 데뷔를 시작으로 3월에는 리치몬드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6월에는 LA필하모닉이 여는 '서울 페스티벌' 참여를 앞두고 있다. 양인모는 바이올린을 "친구"로 표현하며 "나에게 항상 어떤 질문을 하게 해 주는 존재"라고 말했다. 그런 그의 꿈은 바이올린이 준 중요한 질문 중 하나인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며 연주 생활을 오래 이어가는 것이다. "거창한 말을 하기보다 지금 하는 일을 평범하게 오래 하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이 직업을 최대한 오래 하는 게 목표예요. 연주홀에 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하는 고민도 늘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