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눈물, 감동…다 있는데 마음 흔들지 못하는 '싱크홀'

서울 올라와 11년 만에 집을 샀다. 이제 막 지은 빌라다. 동원(김성균) 가족은 입주만으로 행복하다. 하지만 집이 심상치 않다. 바닥에 구슬을 두면 알아서 한 방향으로 굴러간다. 부실시공일까. 동원은 입주자들을 모아 대책을 모색하나 다들 못 들은 척한다. “집값 떨어뜨릴 일 있냐”는 것. 제목이 예고하듯 재난이 결국 일어난다. 거대한 싱크홀이 생기며 빌라가 통째로 지하로 떨어진다. 동원의 직장 동료 김 대리(이광수)와 은주(김혜준)는 집들이를 위해 놀러 왔다가 동원 등과 함께 지하 500m 아래로 추락해 고립된다. 이삿날부터 동원과 신경전을 벌이며 기이한 교류를 이어가던 이웃 만수(차승원) 등도 재난을 맞는다. 과연 이들은 어떻게 살아남을까. 배우만으로 ‘싱크홀’의 온도를 예상할 수 있다. 차승원과 이광수는 엄숙, 근엄, 진지보다는 웃음에 더 가깝다. 악역을 종종 맡는 김성균은 코믹에도 능통하다. 예상대로 ‘싱크홀’은 비장미나 극한의 긴장으로 관객을 몰아붙이지 않는다. 앞부분은 아예 코믹에 방점을 찍는다. 작정한 듯 밝고 활기차거나 장난스러운 음악이 깔린다. 능청스러우면서도 인간미를 지닌 만수가 웃음의 6할 정도를 책임지고, 동원과 김 대리가 나머지 웃음을 채운다. 후반부는 재난에 집중하나 역시 웃음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비극이 끼어들지만 밝은 분위기를 누를 정도는 아니다. ‘싱크홀’에 대한 적절한 수식은 ‘코믹 재난 영화’다. 한국 재난 영화의 특징은 ‘골고루’다. 재난 영화는 제작비가 많이 들기 마련이고, 돈을 회수하기 위해선 많은 관객과 만나야 하니까. 웃음 한 스푼, 눈물 한 스푼, 감동 한 스푼을 볼거리나 서스펜스와 버무려 관객의 여러 욕구를 만족시켜 주려 한다. 1,000만 영화 ‘해운대’(2009)도, 942만 명이 극장에서 본 ‘엑시트’(2019)도 엇비슷한 재료로 나름 황금 레시피를 적용해 다종다양한 관객을 만족시켰다. ‘싱크홀’은 ‘해운대’와 ‘엑시트’가 걸어간 길을 밟고 싶어한다. 재난이 쓰나미와 도심 가스 테러에서 싱크홀로 바뀌었을 뿐이다. ‘싱크홀’이 자기만의 레시피로 그럴듯한 맛을 내냐고 물으면 고개를 저어야 할 듯하다. 전반부와 후반부가 잘 이어 붙지 않는다. 웃음의 농도가 과하게 진해서일 것이다. 예를 들어 은주가 펼치는 과도한 액션은 잠깐 폭소를 부를 수 있을지 모르나 느닷없다. 처음부터 ‘소림축구’(2001) 같은 액션을 보여주는 영화라면 모를까. 차승원은 여전히 느물거리는 연기로 웃음과 정감을 불러낸다. 뭐든 바른 생활인 동원은 김성균의 예리한 연기로 설득력을 얻는다. 빌라가 통째로 지하로 내려앉는 모습은 제법 스케일 있고, 스릴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재료가 좋다고 음식이 항상 맛있지는 않다. ‘화려한 휴가’와 ‘타워’ 등을 흥행시킨 김지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2017년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를 연출하기도 했으나 아직 개봉하진 못했다. 출연 배우에 대한 성폭력 고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가 있어서다. 12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탐사보도 질식시키는 악법"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담은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개정안은 언론사에 피해액의 5배까지 징벌적 배상 책임을 가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이달 임시국회에서 단독으로라도 처리할 수 있다고 밝힌 가운데, 야권과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강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정의당은 “언론 자유가 심각하게 위축될 수 있다”고 비판했고, 정부 또한 '전례가 없고 과도하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심지어 민주당 내부에서도 언론사가 허위·조작 보도에 대한 입증 책임을 지는 것과 관련해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언론중재법의 입법 취지는 언론 보도로 인한 시민 피해 구제 강화다. 그러나 정작 여당이 내놓은 법안은 '언론을 검열하고 통제하는 법'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간 징벌적 손배제 도입에 원칙적 찬성 입장을 밝혀온 친여 성향의 언론시민단체들 역시 졸속 입법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신문협회·기자협회·여기자협회·인터넷신문협회 등 5개 언론단체는 “민주당의 언론중재법안을 반민주적 악법으로 규정한다”며 공동으로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무엇보다 징벌적 손배제 도입이 언론개혁의 전부인 것처럼 비치면서 공영언론의 지배구조 개선 등 해묵은 언론개혁 논의는 한 발도 떼지 못한 상황이다. 국민 감정에 기대 언론을 '징벌'의 대상으로 돌리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언론개혁의 시작이 될 수 있을까. 현장과 학계에서 오랜 시간 이를 고민해 온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이용성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정책위원장(한서대 홍보전공 교수)을 3일 만나 물었다. 이날 좌담은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비대면 화상으로 진행했다.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보도에 대해 최대 5배까지 배상토록 한 징벌적 손배제가 최대 쟁점이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이하 손)=징벌적 손배제 대상이 되는 허위·조작보도는 허위 또는 조작 보도로, 단순한 허위 보도까지 포괄한다. 권력자들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사와 비판적 여론을 위축시키고자 남소할 가능성이 높고, 그로 인해 언론의 자유가 위축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득보단 실이 많은 규제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이하 심)=징벌적 손배제 찬성론자들이 말하는 '나쁜 보도'는 징벌적 손배제를 실시해도 걸리지 않는다. '나쁜 보도' 대부분이 누군가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의견보도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팩트를 기반으로 누군가를 고발하는 보도가 그 대상이 될 것이다. 대개 고발 보도는 일반 시민 대상도 아니지 않나. 언론 보도로 인한 시민 피해 구제를 강화한다는 입법 취지가 의심될 만큼 실제 내놓은 법안 내용과는 거리가 있다. 이용성 민언련 정책위원장(이하 이)=내용상 배액배상제에 가까운 징벌적 손배제는 대상이 언론이고, 언론의 자유는 기본권 중 기본권인 만큼 굉장히 엄격하고 꼼꼼하게 입법화해야 한다. 보도의 고의·중과실을 따질 때 일반 시민은 정보 불균등 상태에 있기에 이를 보완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봤다. 이번 개정안에 그런 내용이 제대로 담겼다고 보기 어렵다. 지금 내용은 시민의 피해 구제도 쉽지 않고, 비판적 언론보도는 차단하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이도저도 아니게 됐다. -고의·중과실 기준이 모호해 악용 가능성 우려가 나온다. 손=굉장히 포괄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허위 정보로 프레임을 씌우는 건 쉽다. 어느 시점에선 허위로 판단됐던 게 시간이 지나 허위가 아닌 것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중과실인지 경과실인지 판단도 어렵다. 추가 취재 없이 받아썼거나 한쪽 입장만 듣고 쓴 보도도 중과실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 현실적 악의나 명백한 고의 없이 과실에 의한 경우까지 징벌적 손배 대상으로 포함시키는 건 최대한 투망식으로 모든 허위보도를 때려잡겠다는 것으로 과도하다. 행위와 책임의 비례 원칙을 위배하는 과잉규제다. 이=가장 우려되는 조항은 보도의 고의·중과실을 추정하는 요건(제30조의 3)이다. 합리성이 떨어지고, 추상적이어서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 취재 과정에서 보도 본질과 관련 없는 위법이 있거나 정정보도 조정 결과를 수용하지 않은 경우를 고의·중과실로 볼 수 있을지 이해하기 어렵다(잠입 취재, 기획·연속 보도 등도 법적으로 언론이 불리해질 수 있다). 전면적으로 내용을 수정하거나 삭제해야 한다. 심=특히 6호(사진·삽화·영상 등 시각자료로 기사 내용을 왜곡하는 경우)는 법안 논의 과정에서 한 번도 언급된 적 없다(최근 조국 전 장관 가족 삽화 사건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맞춤형 법안 느낌을 준다. 또한 (권력집단에 의한 '전략적 봉쇄 소송' 우려에) 대통령과 고위공무원 등 공인과 대기업 등은 악의적인 허위·조작보도를 한 경우에만 징벌적 손배제를 적용할 수 있게 예외를 뒀지만 이 기준의 범위도 매우 좁다. 재산 공개 등 필요성에 따른 공직자윤리법을 준용해 공직자의 경우 차관급 이상이 돼야 하고, 전직은 해당이 안 된다. 재직 중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공인 지위를 인정하는 법원 판례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임의적 조항인 셈이다. -졸속 입법 논란을 피할 수 없겠다. 손=언론사 매출액을 기준으로 한 손배액 산정 역시 허위·조작 보도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언론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액을 산정하기 어려울 때 기준으로 하라는 건데 허위사실뿐 아니라 사실 적시 명예훼손이나 음성권, 초상권 침해, 모욕까지 다 포괄할 수 있다. 게다가 매출액은 언론사가 모든 일반적 상행위로 얻은 이익인데 문제가 된 보도나 원고가 받은 손해와 전혀 관련이 없는 기준이라는 점에서 위헌성이 높다. 개정안이 졸속 법안이라는 한 근거다. 심=정정보도 시 기사에서 한 줄이 틀려도 그 한 줄을 정정하는 데 원 보도의 ½ 이상 시간·분량으로 하라(제15조6항)는 것 역시 비현실적 발상이다. 그런데 3항을 보면 당사자 간 협의로 정하라고 돼 있고, 6항에선 ½ 을 말하고 있다. 한 조항 안에서도 충돌한다. 법안이 급하게 졸속으로 나왔다. -인터넷 기사에 대한 '열람 차단 청구권'도 신설됐다. 손=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조항이다. 현행 언론중재법상 정정·반론·추후보도 청구는 문제가 된 기사에 당사자 간 합의를 통해 확인된 사실 관계와 다른 주장 등 이견을 덧붙임으로써 인격권과 언론의 자유라는 양 기본권을 조화롭게 보호하고자 도입된 것이다. 반면 아예 기사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유통 자체를 금지하는 열람 차단은 일방의 기본권만 전면적으로 제한하는 결과를 낳는다. 공적 관심 사안에 관한 보도는 제외한다고 돼 있지만 조정 절차를 신청하는 입장에서는 공익적 목적보단 나를 비방할 목적이 더 크다고 느낀다. 열람 차단을 청구할 수 있는 경우를 허위·조작보도에만 국한하지 않아서 사실상 모든 개인에 대한 비판적 보도는 열람 차단 청구 대상이 될 수 있다. 심=열람 차단 청구 대상 범위가 너무 넓다. 예를 들어 '언론보도 내용이 인격권을 계속적으로 침해하는 경우'는 인터넷에 올라 있는 기사면 다 걸린다고 봐야 한다. 개정안은 (공적 관심 사안에 관한 보도는 제외한다는 등) 제한을 둔 것 같은데 뒷문을 다 열어둬서 결국 뭐든지 다 되게 만들었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중재 과정에서 피해자가 요구할 경우 인터넷 기사에 대한 열람 차단을 하는 경우가 있다. 현재 실무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조치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는 취지지만 실제 법제화됐을 때 상당한 법적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우려가 있다. -옥상옥 규제를 더하는 '과잉 입법' 지적도 있다. 손=우리나라는 사실을 적시해도 명예훼손으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이미 형사법 제도가 과도한 상황에서 징벌적 손배제까지 옥상옥으로 더하는 과잉 입법이다. 심=징벌적 손배제 찬성론자는 미국 사례를 언급한다. 우리나라와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미국에는 사실 적시 명예훼손이 없고, 공인의 경우 명예훼손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기본적으로 언론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건 맞지 않다. 정치적으로 편가르기해서 싸움을 붙이면 결국 진짜 매를 맞는 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보도들이다. 공권력이 강제 수사를 하고 대법원에서 유죄를 받고도 훗날 재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기도 하는데, 누구도 응해야 할 의무가 없는 기자의 취재는 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 전체를 (징벌 대상으로) 몰아가면 결국 보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의도하지 않았어도 실제로 위축되는 건 부정과 불의에 도전하는 보도들이다. 정상적인 보도나 탐사보도는 질식할 수밖에 없다. 기자 시절 실제로 공익적 가치가 있음에도 위험성이 커서 보도하지 못한 것들이 있었다. 지금도 충분히 (규제는) 과잉이라고 본다. 권력자와 싸우는 특정 정치적 사안만 보고 언론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몰아가는데 일반적 사건에선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민주당은 개정안의 이달 내 처리를 공언하며 속도를 내고 있다. 어느 순간 언론개혁의 과제가 갑자기 징벌적 손배제로만 축소돼 버린 모양새다. 심=언론개혁의 목적은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고 누군가를 고발하는 보도를 못하게 만드는 게 아니다. 어떻게 하면 양질의 보도를 하고 권력 감시 기능을 잘하도록 만드느냐다. 언론 소비 행태부터 언론을 둘러싼 모든 환경이 지나치게 정치화된 상황에서 대선을 몇 달 앞두고 이런 법을 일방적으로 처리하려고 하는 건 무모한 일이다. 손=민주당은 징벌적 손배제와 가짜뉴스 규제, 포털에서 뉴스 추천 기능을 폐지하겠다고 하고 있다. 2015년 당시 집권여당인 새누리당도 똑같이 그랬다. 그때도 포털 메인 화면을 분석해 보니 여당에 부정적 기사가 많고, 자의적 뉴스 편집으로 인한 공정성 훼손이 여론을 왜곡한다. 알고리즘을 공개하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포털이 굳이 정부와 여당에 비판적 기사를 배열해 얻어맞을 행동을 했을까. 아니면 권력자에 대한 비판적 기사가 더 많이 생산되기 때문에 더 많이 노출됐을까. 그저 비판적인 기사를 보기 싫은 사람이 편향성을 쉽게 주장하고, 개혁해야 된다고 하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든다. 무엇보다 문제 해결 방안으로 논의되는 것들은 징벌하고, 단죄하고, 포털뉴스 서비스를 없애는 것 등 금지 일변도다. 지금도 서로가 서로를 가짜뉴스라고 하면서 소송전이 난무하고 있다. 여기다 징벌적 손배제까지 도입하고, 고의·중과실을 추정해버리면 언론사에 대한 민사 소송까지 남발될 거다. 피소 사실 자체가 또 다른 기사가 되어 이미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의제화될 수 있다. 이런 규제는 언론 자유를 위협하고, 언론 자유를 바탕으로 하는 국민의 알 권리나 민주주의 퇴행으로 이어질 것이다. 과연 언론개혁으로 금지 일변도 규제가 추진돼야 하는 게 맞나. 이=징벌적 손배제에 대한 여론조사를 하면 허위·조작보도와 연결되어 엄청나게 높은 지지가 나온다. 언론개혁 과제도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부터 여럿 있음에도 불구하고 징벌적 손배제 부문만 언론개혁 과제로 집중적으로 알려졌다. 시민단체나 언론현업단체 역시 이슈를 제대로 주도하지 못한 부분이 분명 있다. 징벌적 손배제가 언론개혁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려서 민주당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민언련도 천천히 단계적으로 하자고 요구했지만 이런 주변 상황이 작용해서 법안도 미비점이 많이 보인다. 이렇게 된 상황에 책임감도 느낀다. -언론 통제라는 반발이 거세다. 심=어정쩡하게 만드는 법은 안 만드는 게 낫다고 본다. 손석희 JTBC 사장은 아동 학대 사건을 보도했다가 되레 가해자로부터 아동학대처벌법 위반으로 고소돼 벌금형의 약식명령을 받지 않았나. 법은 명분이 아니라 결과가 말한다. 법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 결과를 끝까지 책임지지 않는다. 결국 우리 모두가 감당해야 된다. 여론조사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겠다. 진보나 보수나 반대편 보도에 불만을 갖는다. 항상 언론에 불만이 있는 사람이 더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때려잡아야 하는 보도'는 서로 달라도, '언론을 때려잡아야 한다'는 사람은 많은 거다. 반면 언론의 자유는 자기 목소리를 높이지 못한다. 언론의 자유를 말하면 별종 취급을 받는 분위기 속에서 이런 법을 만들어 놓으면 사회 전체가 계속 부담으로 안게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입법을 중단하고, 포괄적 논의를 해 가는 게 맞다. 손=언론 통제 시도로 보이는 시그널이 있다. 조국 삽화 사건처럼 공당이 정책을 추진하는 데 특정 사건을 타깃팅한 것으로 강하게 의심되는 것 자체도 굉장히 문제다. 징벌적 손배제는 언론에 대한 국민의 강한 반감에 기반한다. 시스템은 최악의 지도자가 남용할 가능성을 두고 신중하게 설계돼야 한다. 개정안은 재고돼야 한다. 이=일각에서 친여 단체라고 부르는 민언련의 주장도 이번 개정안에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시민언론단체 의견 수렴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의문이다. 꼼꼼하게 법안을 만들고, 여러 의견을 듣는 과정이 있었으면 한다. 남은 시간 동안이라도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선 수정해야 한다. -이 같은 상황을 초래한 데는 신뢰를 저버린 언론의 책임도 크다. 심=미국 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모든 권리는 남용이 불가피하고, 특히 언론의 자유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포털에 하루 보도되는 기사는 약 6만 건이다. 문제없는 보도도 많은데 왜 잘못된 보도만 모아서 마치 모든 언론이 그런 것처럼 몰아가고 있을까, 그 토대는 누가 만들었을까. 언론이 자초했다. 기본적으로 언론도 문제가 많다. 다만 언론을 내용적으로 고쳐야 한다는 것과 법으로 그것을 강제한다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방송협회, 신문협회, 관훈클럽 등 리더십을 가질 수 있는 언론단체가 책임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눈에 보이는 문제적 보도들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정책적·전략적으로 나서야 한다. 기자에게 뭘 더 요구하는 건 교과서적 이야기에 불과하다. 책임 있는 언론단체와 거버넌스를 책임진 사람들이 결단해야 한다. 이=2004년 우리나라 최초로 징벌적 손배제가 들어간 언론피해구제법안이 만들어질 때 주변에 있었다. 그때만 해도 그로 인해 피해 받을 언론인과 탐사보도의 빛나는 성과가 명확해 보였다. 세월이 지난 지금 심정과는 대비가 된다. 그동안 언론은 뭘 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사이 굉장히 불안해진 언론인 지위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 편집이나 편성 자유를 확대하는 언론개혁법안도 발의돼 있다. 여당이 언론중재법을 추진하는 동력으로 다른 언론개혁법안도 적극적으로 국회 통과를 추진했으면 한다. 손=언론 소비자 행태도 바뀌어야 한다. 결국 교육 등 장기적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 허위·조작보도도 문제지만 기업에 유리한 기사를 양산하는 것도 사회적으로 끼치는 해악이 크다.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언론 환경을 만드는 것, 다양한 미디어를 양성해서 양질의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언론사가 성장할 수 있게 지원해주는 게 궁극적으로 나아갈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씨야'의 메인보컬 그녀, 지금은 혁명의 노래 부른다

2006년 데뷔한 씨야는 호소력 짙은 노래로 팬덤을 구축한 여성 그룹이었다. 5년 만에 그룹은 해체됐지만, 여전히 그 시절 감성을 추억하며 씨야의 곡을 듣는 팬들이 적잖다. 멤버 중에서도 메인보컬로서 독보적 가창력을 자랑했던 가수 김연지(35)의 존재감이 공고하다. 가슴 울컥한 노래들을 불러왔기에 김연지에게는 일찍부터 뮤지컬 데뷔 요청이 쏟아졌다. 하지만 여건이 따라주지 않았고, 연기에 대한 부담도 커 고민 끝에 재작년이 돼서야 "때가 됐다"며 도전장을 내밀었다. 데뷔작은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프랑스 혁명을 주도하는 여성 마그리드 아르노 역할을 맡았다. 지난달 13일 재개막한 '마리 앙투아네트'에서도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 가수로서는 이미 검증받았지만 뮤지컬 배우로서는 새내기. 그래서 이 배역을 따내기가 쉽지는 않았다. 최근 서울 잠실동 샤롯데씨어터에서 만난 김연지는 "마치 수능을 보는 고3 수험생처럼 전투적으로 연기 레슨을 받으면서 준비했지만, 2019년 1차 오디션 때는 떨어졌다"면서 "정말 가까스로 2차 오디션 때 합격해서 무대에 올랐다"고 털어놨다. 김연지가 맡은 마그리드 아르노는 빈민가 출신이지만 의식이 깨어 있는 혁명가다. 마리 앙투아네트로 상징되는 프랑스 왕권에 대항하고, 끝내 체제 전복까지 이끌어 내며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쟁취한다. 왕비만큼 비중이 높은 주인공이다. 이 역할을 위해 김연지는 수많은 역사 서적과 자료를 연구하며 공을 들였다. 그는 "비록 역사에 없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사료를 통해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면서 "공부할수록 연기의 빈틈이 채워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극에서 아르노는 주체적이고 행동파다. 김연지는 "행동하기 전까지 많은 생각을 하고 꼭 필요한 말만 하는 편이라서 아르노와 정반대 성격이지만 정의관 자체는 닮은 점이 많아 계속 친해지고 있다"고 했다. 극에서 아르노는 입체적 인물이기도 하다. 왕비를 증오했지만 인간적인 면을 이해하게 되고, 그 누구보다 혁명에 앞장섰으나 혁명 세력의 부조리를 보면서 회의감에 빠진다. 김연지는 "아르노는 수많은 민중을 모아 왕궁으로 쳐들어갈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는 인물인 동시에,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성에 연민을 느끼며 큰 감정 변화를 겪는 캐릭터"라며 "초보 배우 입장에선 연기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럼에도 김연지의 연기는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서 처형되는 장면에서 김연지가 흘리는 눈물은 극의 긴장감과 비극성을 극대화한다. 김연지는 "아르노는 왕비가 죽기 직전 따뜻하게 손을 잡으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교감하는데, 극을 통틀어 가장 슬픈 장면"이라면서 "왕비를 동정함으로써 자신의 목숨도 위태롭지만 용기를 내서 용서를 비는 아르노의 매력이 드러난다"고 했다. 몰입감 넘치는 연기 덕분에 김연지는 2019년 데뷔와 함께 공연 포털사이트의 관객 투표로 결정되는 신인상(스테이지톡 오디언스 초이스 어워즈·SACA)을 받았다. 그래도 김연지의 진가가 드러나는 분야는 역시 노래다. 아르노가 혁명을 다짐하며 부르는 넘버 '더는 참지 않아'는 폭발적 성량과 감정 표현으로 객석에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김연지는 "곡목 자체가 프랑스 혁명에서 가장 중요한 말을 뜻하는데, 과거에는 당연했던 불공평한 세상이 뒤바뀌는 신호탄"이라며 "코로나19로 답답한 현시점에 들어도 속 시원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의는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는 작품이다. 무대 위 김연지도 피할 수 없었던 고민이다. "저도 아르노처럼 모든 사람이 동등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각자 잘하는 것이 있잖아요? 다양한 분야에서 사람들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세상이 정의로운 사회라고 믿어요. 저의 길은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묵묵히 걸어가야죠." 김연지는 지난해 뮤지컬 '모차르트!'에서도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 베버 역을 맡는 등 작품 활동의 폭을 늘려나가고 있다. 가수로서 음반 활동도 병행하겠지만 당분간은 뮤지컬에 조금 더 집중할 계획이다. 김연지는 "'아이다' '레미제라블' '지킬 앤 하이드' 등 출연해 보고 싶은 작품이 많지만 '위키드'의 초록 마녀 엘파바 역할이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면서 "가수 겸 뮤지컬 배우로서의 길을 개척한 옥주현 선배가 롤모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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