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은 윤석열이 어리석어서가 아니고 이것 때문에 실패했다"

12∙3 불법계엄 사태 전후로 윤석열 정권의 탄생부터 몰락까지, 윤석열 대통령의 반혁명에 맞서 빛의 혁명을 제대로 마무리하기 위한 우리 사회의 과제를 철학의 눈으로 짚은 책이 나왔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이자 더불어민주당 교육연수원장을 맡고 있는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는 윤 대통령의 계엄 사태를 동학혁명에서 3∙1운동, 5∙18민주화운동 그리고 촛불혁명에 이르는 시민의 혁명에 대한 반혁명이라 규정하며 윤석열 정권이 “1980년 당시 신군부 세력이 집권했던 국가로의 회귀를 꿈꾸었다”고 진단한다. 윤석열의 반혁명적 내란이 실패한 것은 그가 바보라서거나 준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상부 명령의 타당성에 대해 고민하고 고심했던 군인과 경찰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내놓는다. 저자는 윤석열 정권이 탄생 시점부터 보여온 여러 결정적 사건을 파헤치면서 그것이 어떻게 12∙3 계엄 사태와 연결되는지도 설명한다. 국민의 저항권을 인정하지 않는 법률주의 국가 즉, 전체주의 국가를 시도했던 윤석열은 시민적 공론장이 아닌 자신을 섬기는 과시적 공론장에 취해 있었고, 그 결과 자유의 화신인 자신을 반대하는 모든 이를 자유에 반하는 반국가세력으로 간주해 이를 처단하려는 내란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나은 정치를 위한 제언도 덧붙인다. 저자는 기존 헌법의 문제점을 해결하려면 승자가 독식하고 중앙 권력이 독점하는 권력 구조를 개편하고 국민의 실제적 주권 행사를 보장하도록 권력 체계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불의민주당의 우측 날개가 부러졌다면서 더 나은 정치를 위해선 이를 복원해야 한다고도 꼬집는다. 지난달 ‘매불쇼’에서 2030 남성들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요구 집회 참가를 독려하며 현장에 젊은 여성이 많다고 언급해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저자는 책을 통해 반성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30년간 냉장고 없이 산다... '작은 냉장고'로 바꾸는 사람들

"문을 열었는데, 검은 봉다리가 툭 하고 발 밑으로 떨어졌어요. 그 속에 들어 있던 게 조기든가 갈비든가." 윤호섭(81) 국민대 시각디자인학과 명예교수는 30년 전 냉장고 문을 열었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당장 먹지 않을 음식으로 가득 찬 냉장고는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전 지구적으로 보면 굶는 애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나는 냉장고에서 음식물이 쏟아진다? 크게 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아무리 정치와 문화, 예술적으로 훌륭하고 이상적인 이야기를 한다 한들 그 집 냉장고에서 음식이 부패하고 있다면 진정한 지식인이 아니라고 봐요." 그는 얼마 뒤 냉장고를 없앴다. 윤 교수는 아내와 둘이 지금도 냉장고 없이 산다. 식탁은 자연스레 단출해졌다. 밥, 김, 김치, 젓갈 같은 염장 식품을 중심으로 상을 차린다. 선물로 생선, 고기 같은 게 들어오면 당장 먹을 것을 제외하고 이웃에 나눈다. 그는 수십 년 전부터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차를 없애는 등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생활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가전 제품을 거부하는 건 아니다. 집에는 TV도, 에어컨도 있다. 그럼 왜 냉장고만 집에서 퇴출됐을까. 지난달 27일, 서울 강북구 우이동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질문을 받고 되물었다. "다른 가전과 달리 냉장고는 24시간 돌아가요. 지금 바깥이 영하 10도예요. 그런데 원자력 발전소를 돌려서 전기 히터로 실내 공기 온도는 높이고, 냉장고 안은 일부러 온도를 낮춘 다음 거기에다 음식을 넣는다는 게 좀 이상하지 않아요?" 냉장고는 언제부턴가 필요를 의심하지 않는 가전이 됐다. 한국은 한술 더 떠, 김치 냉장고까지 필수품처럼 여긴다. 그뿐인가. '거거익선'이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가전시장에서 가정용 냉장고의 표준은 900L다. 2L짜리 생수병이 450개가 들어갈 수 있는 크기다. 이만한 크기의 냉장고가 집집마다 정말 필요한 걸까. 커지는 냉장고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냉장고의 필요가 발명됐다고 주장한다. 런던과학박물관의 큐레이터 헬렌 피빗은 그의 책 '필요의 탄생'에서 사람들이 냉장고 없는 삶을 상상하기 힘들어진 이유는 가전제품과 식품회사들의 영리한 마케팅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냉장고의 탄생으로 냉동식품이라는 수요가 생긴 게 대표적이다. 냉동 과일과 채소류, 아이스크림은 냉장 기술이 대중화되기 이전엔 존재하지 않았다. 빈 공간이 있으면 채우고 싶은 게 사람 심리. 냉장고의 대형화는 식료품의 대량 생산으로 이어졌다. 창고형 할인마트에서 대용량을 사와서 냉장고에 쟁이는 게 일상이 됐다. 피빗은 "냉장고의 등장으로 현대인의 음식 소비 습관, 식생활, 요리법이 과거와 비교해 몰라볼 정도로 달라졌다"며 "오늘날 냉장고는 계절에 따라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던 인류의 유구한 습성을 1년 내내 먹을 것을 모으고 소비하는 습성으로 바꿔놓았다"고 말한다. 음식물을 오랫동안 신선하게 보관하기 위해 개발된 냉장고가 음식물 낭비의 주범이 된 현실은 아이러니하다. 피빗이 책에 인용한 음식 칼럼니스트 로즈 프린스의 말은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에 더없이 적절하다. "나는 이른바 '잘나가는 사람들처럼 먹기 증후군'에 빠져 있다. 장을 볼 때 우리 집에 필요해서가 아니라 우리 가족도 꼭 먹어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무언가를 산다." 한국에서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의 양만 하루 평균 1만5,000톤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냉장고의 필요성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점차 늘고 있다. 경기 성남시의 제로웨이스트 샵 '슬기로운 생활'을 운영하는 김예슬(36)씨는 지난해 11월, 기존 825L 크기 냉장고를 205L 용량 냉장고로 바꿨다. 그는 "큰 냉장고에 의존하면서 사는 게 정말 온전한 내 생각과 결정인지 돌아봤다"며 "(온전한 내 생각이 아니어서) 아예 없애려다 남편의 반대로 작은 냉장고로 바꿨다"고 했다. 냉장고 크기는 4분의 1로 줄었지만 불편함은 전혀 없다. 김씨는 "냉장고 안이 한눈에 들어와서 식재료를 빠르게 파악하고 요리하기 때문에 썩거나 유통기한이 지나 버려지는 재료가 없다"며 "뭐가 있는지 아니까 굳이 여러 차례 열어볼 필요도 없고, 냉장고 위까지 먼지 쌓일 새 없이 청소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울산에 거주하는 정다운(38)씨도 결혼 10년 차가 되던 지난해 1월, 기존 4도어 대형 냉장고를 344L 소형 냉장고로 과감히 교체했다. 4인 가구지만 충분하다. 정씨는 "예전에는 냉장고가 깊어 안에 뭐가 있는지도 몰랐다"며 "냉장고 크기는 줄었지만 수박과 케이크가 들어갈 정도로 공간이 남는다"고 했다. 그는 "요즘엔 일부러 부족한 만큼 장을 보고 눈에 보이는데 두고서는 가급적 바로 요리해서 먹으니까 더 신선하고 건강하게 먹는다"며 "식비와 전기료가 절감돼서 다시 사라고 해도 작은 냉장고를 선택할 것"이라고 추천했다. 냉장고를 바꾸지 않아도 '작은 냉장고' 효과를 볼 수 있는 법이 있다. 소방관이자 청소·정리 유튜버 '장끼남'으로 활동하는 김진선(34)씨는 한 달에 한 번은 꼭 냉장고를 정리한 뒤 냉장고 파먹기, 일명 '냉파'를 한다. 그는 "가급적이면 집 근처 중소형 마트를 이용하고 대형마트에 가더라도 카트 보다는 바구니를 이용하면서 추가 소비를 줄이려고 한다"며 "분기별로 냉장고 대청소를 하는 것도 불필요한 식재료 낭비를 막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만능 저장고처럼 모든 음식을 냉장고에 넣고 보는 습관도 문제다. 류지현(44) 디자이너('사람의 부엌' '제로 웨이스트 키친' 저자)는 2010년부터 '냉장고로부터 음식을 구하자(Save Food from the Fridge)' 프로젝트를 하면서 "냉장고를 현명하게 쓰는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그는 "누구나 냉장고에서 썩어 문드러진 애호박을 발견한다거나 이미 색이 변한 가지가 있었던 경험이 있지 않느냐"며 "음식을 넣고 냉장고 문을 닫아버림으로써 버려지는 식재료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인도가 원산지인 가지만 해도 냉장 보관하면 냉해를 입는다. 사과, 귤 등 대부분의 과일은 냉장고에 보관할 필요가 없다. 그는 "각자가 자기 부엌의 식재료만이라도 잘 관리한다면, 냉장고에 들어갈 필요가 없는 식재료를 냉장고에서 꺼내 눈 앞에만 둬도, 음식물 쓰레기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명령에 따랐다"... 대통령 불법계엄 왜 거부하지 못했을까

류혁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달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 열린 법무부 장관 주재 긴급회의에서 사표를 썼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위법한 계엄에서 출발한 명령을 따르는 것은 극단적인 예를 든다면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을 운영하는 간수 같은 입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12·3 불법계엄 주요 지휘관 중 한 명인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은 국회에서 만난 기자들에게 "맞고 틀리고를 떠나 위기 상황에 군인은 명령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가 원수이자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위헌적인 계엄 명령을 내린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류 감찰관처럼 저항할까 아니면 여 사령관처럼 명령에 따를까. 인지신경과학자인 저자 에밀리 A. 캐스파 벨기에 겐트대 실험심리학과 부교수가 쓴 '명령에 따랐을 뿐?!'은 한국 독자들을 계엄을 선포한 12월 3일 밤 선택의 기로 앞에 세운다. 계엄 사태를 직접적으로 다루진 않지만 저자는 홀로코스트(1,100만 명 사망), 캄보디아 킬링필드(150만 명 사망), 르완다 집단학살(50만 명 사망) 등 역사적 비극을 통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라는 명령에 어떻게 굴복하는가. 저자는 개인 간 도덕성 우열로 납득하기 힘든 역사적 비극에 과학적으로 접근해 명령에 복종하는 인간의 뇌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실증적으로 살핀다. 저자는 명령을 따르는 뇌의 반응을 보기 위해 지난 8년간 실험을 했다.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전기 충격을 가하라는 명령을 4만5,000명에게 내렸다. 이 중 약 1,340명(2.97%)만이 명령을 거부했다. 전기 충격 명령을 따르면 보상은 고작 0.05유로(약 75원)에 불과했다. 보상이 명령을 따르는 데 미치는 영향은 없다는 얘기다. 오히려 저자는 실험에서 명령에 따라 행동할 때 뇌에서 주체성과 책임감, 공감과 죄책감을 담당하는 영역 활동이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할 때보다 현저히 줄어드는 것을 확인했다. 특히 명령이 하달되는 강력한 계층 구조가 형성돼 있을 경우 당사자의 책임이 약화되면서 악의적 행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법정에 선 국가폭력 가담자들이 국경과 시대를 초월해 내뱉은 이 무책임한 해명은 자기 방어적 태도일 뿐만 아니라, 뇌가 실제로도 그렇게 느끼는 데서 기인했다는 것이다. 집단학살 가해자 집단이 명령 이행을 쉽게 만들기 위해서 피해자 집단을 꾸준히 '비인간화'하는 사전 작업에 골몰했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실험 결과, 이런 세뇌 교육은 뇌가 상대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을 떨어뜨렸다. 나치는 유대인을 '쥐'로, 르완다에서는 학살 피해자인 투치족을 '바퀴벌레'와 '뱀'으로 묘사했다. 캄보디아 킬링필드 가해자인 크메르 루주 역시 반대 세력을 '내부에 잠복한 숨은 적' '병적 요소'로 표현하면서 '청소' '분쇄' '죽이기' 같은 단어를 사용했다. 언론을 통해 혐오를 조장하며 피아를 구분하는 행동의 사회적 해악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 연구가 부당한 명령에 복종한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오독될까 염려한다. 그러면서 연구의 초점과 목적이 불복종한 극소수 사람들의 행동 기제임을 분명히 한다. 그는 "예방의 열쇠는 이해"라며 "(이 연구가) 집단학살의 무의식적 신경 활동과 같은 지식을 활용해 사람들에게 공감, 도덕적 용기, 독립적 사고를 촉진하는 개입 방안을 개발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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