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의 탄생] 눈앞의 츠베덴을 만나고서야 기획자는 안도했다

그녀는 벌써 두시간째 뚫어져라 문을 지켜보고 있었다. 22일 오후 6시30분 인천국제공항 입국장 로비에서 유정의 KBS교향악단 공연기획팀 과장은 지휘자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가 만나야 할 사람은 얍 판 츠베덴.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인 츠베덴은 29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KBS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를 지휘할 예정이다. 이날은 츠베덴이 공연 리허설 등 일정을 위해 한국으로 들어오는 날이었다. 오후 5시 무렵 이미 츠베덴이 탄 비행기는 공항에 착륙했지만, 한 시간이 훌쩍 지나도록 지휘자는 입국 게이트 밖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괜찮아요. 얼마 전 다른 지휘자 때는 3시간 넘게 기다린 적도 있는 걸요." 그러면서 유 과장이 덧붙였다. "일단 지휘자가 한국행 비행기를 무사히 탔다는 사실 만으로도 공연의 반은 성공한 셈이죠. 코로나19 탓에 워낙 변수가 많아서요. 만약 예정된 비행기를 못 탔다고 생각하면… 악몽이 시작되는거죠. 최악의 경우 공연이 취소될 수도 있고요." 해외 지휘자, 연주자가 참여하는 클래식 공연의 경우 본격적인 준비과정은 이렇게 해당 공연 담당자가 아티스트를 만나러 가는 길에서 시작된다. 유 과장은 "해외 연주자라고 무조건 공항으로 마중을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가급적 가는 편"이라고 했다. 해외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경우 외국인은 시설격리를 감수하는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팬데믹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 관객을 위해 쉽지 않은 발걸음을 해 준만큼, 최근에는 지휘자 공항 마중이 관행이 됐다. 이날 해외 입국자들이 통과하는 'D' 구역 게이트의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유 과장의 시선도 바빠졌다. 그 눈빛에는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비록 한국에 도착했다고는 하나 지휘자가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입국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모든 게 허사이기 때문. 유 과장은 "사전에 문화체육관광부와 해외 연주자 입국 문제가 잘 협의됐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변수가 생기는 건 아닌가 싶어서 눈앞에 츠베덴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몇 번의 기대와 실망이 반복한 뒤였을까. 짙은 감색 재킷을 입은 츠베덴이 게이트 밖으로 나왔다. 그제서야 유 과장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헬로, 마에스트로!(지휘자님, 안녕하세요!)" 열렬히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유 과장을 발견한 츠베덴도 활짝 웃었다. 츠베덴은 "공항까지 만나러 와줘서 고맙다"며 "코로나19 때문에 입국 과정에서 요구하는 서류가 너무 많아서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통상적인 경우 공연 주최 측이 지휘자를 한국 숙소까지 안내해 주는 편이지만 이날은 그럴 수 없었다. 한국에 도착한 외국인은 코로나 확진 여부 검사를 받고, 결과가 나오는 날까지 정부가 지정하는 시설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규정때문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해외 입국자는 공항 밖으로 바로 나갈 수 없고, 정해진 동선에 따라 시설로 이동해야 한다. 츠베덴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유 과장과 츠베덴 사이에는 외부 왕래를 제한하는 펜스가 쳐져 있었다. 유 과장은 츠베덴이 시설에서 머무는 동안 먹을 만한 간식을 준비했다. 우스개 소리로 '사식'이라고 부르는 간식 가방에는 간단한 비스킷과 샌드위치, 음료 등이 담겨 있었다. 그것을 건네자 지휘자는 연신 "고맙다"며 인사했다. 그리고 나서 26일부터 시작될 오케스트라와의 리허설 일정 등을 지휘자에게 설명했다. 공항으로 오는 길에 비해 돌아갈 때 유 과장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지휘자가 무사히 도착했으니 이제야 마음이 놓이네요. 만에 하나 입국을 못하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대처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온갖 시뮬레이션을 하며 전전긍긍했거든요. 공연계 종사자들한테는 이런 말이 있어요. '예측할 수 없는 것을 예측하라.'"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휘자가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만나고, 열띤 음악적 대화를 거쳐 공연장에서 관객을 만나기까지 수많은 과정들이 남아 있다. 그리고 연주자뿐만 아니라 사무국 소속 스태프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이들은 관객을 직접 만나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연을 창조하는 또 다른 주역들이다. 기자는 22일 지휘자 마중을 시작으로 29일 KBS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가 끝나는 순간까지 오케스트라 사무국 인턴으로서 음악이 만들어지는 순간들을 취재, 기록할 예정이다.

‘미국적 삶’이라는 커다란 피자의 한 조각같은 동네

‘단풍나무들이 색색의 비명을 지르는’ 이맘때면 의식처럼 찾는 동네가 있다. 미국 메인주에 있는 아담한 해안마을, 크로스비다. 소금기 어린 바람을 맞으며 도로를 달리다 보면 오른쪽으로 만(灣)이, 그 위로 바닷가재 부표들이 까딱까딱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부두에서는 고무장화를 신은 어부들이 어망에 걸린 고기들을 손수 분류하고 있다. 고등어를 손질하던 소년이 대가리와 꼬리, 반짝이는 내장을 발라내 허공에 집어던지자 그걸 본 갈매기 몇 마리가 끼룩거리며 선창으로 내려온다. 마을에 올 때마다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은 ‘웨어하우스 바 앤드 그릴’이라는 이름의 오래된 식당이다. 두툼한 떡갈나무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부터 우아한 피아노 선율이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 곳이다. 식당 초입, 칵테일 라운지에는 소형 그랜드피아노를 연주하는 여인이 있다. 검은 치마에 목 부분이 V 자로 갈라진 요란한 분홍색 상의를 입은 중년의 피아노 연주자, 앤지 오미라다. 여자가 건반을 두드리는 동안 손님 한 명이 신청곡을 적은 냅킨을 종업원에게 전달한다. 냅킨에 적힌 곡은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Bridge Over Troubled Water’이지만 앤지는 아까부터 연주하던 크리스마스 캐럴을 계속 이어간다. 사연 많은 그의 옛 애인이 신청한 곡이기 때문이다. 일곱 번의 연주가 끝나고 라운지가 텅 비어갈 무렵, 발걸음을 옮긴다. 앞마당에 진홍빛 튤립이 심긴 올리브의 집으로, 창밖으로 하얀 파도가 철썩이는 마리나의 카페로, 밤이면 식당들이 창문을 환히 밝히는 메인 스트리트로. 햇볕에 말린 불가사리들로 창틀을 장식한 애니타 하우드의 집도 건너뛰면 섭섭하다. 이 불가사리들은 충분히 마르지 않아 얼마 후 냄새가 나기 시작할 것이고, 애니타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바다에 내던질 것이라는 걸 나는 안다. 크로스비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 '올리브 키터리지'에 등장하는 가상의 마을 이름이다. 크로스비라는 지명은 작가의 대학 시절 룸메이트였던 엘런 크로스비에게서 따왔다고 한다. 퉁명스럽지만 매혹적인 중년 여성 올리브 키터리지를 중심으로 크로스비 사람들의 이야기를 열세 편의 단편에 담아낸 이 연작 소설은 2009년 ‘미국인 작가가 미국적 삶을 다룬’ 작품에 주어지는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크로스비라는 허구의 공간이 ‘미국적 삶’이라는 커다란 피자의 한 조각처럼 다가오는 이유다. 7년 전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나는 평소 독서 습관대로 구글 검색창에 ‘crosby’를 입력하고 소설에 빠져들 채비를 했다. 그런데 아무리 스크롤을 내려도 별다른 단서가 잡히지 않았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부른 빙 크로스비와 그의 동생 밥 크로스비의 존재만 새삼 되새겼을 뿐이다. 소설 끝에 실린 ‘옮긴이의 말’에 이르러서야 나는 크로스비가 허구의 지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머지않아, 작가가 자신의 다른 작품에서도 비슷한 작법을 사용한다는 걸 알게 됐다. 지금까지 한국에 번역된 스트라우트의 소설은 총 여섯 권으로, 거의 모든 작품이 메인주에 속한 가상의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모든 것이 가능하다'의 배경인 ‘일리노이주 앰개시’ 역시 작가가 창조한 가상의 마을이다). 크로스비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시골 마을 ‘셜리폴스’가 작가의 또 다른 작품에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는 등, 가상의 공간끼리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처럼 서로 동일한 세계관을 공유하기도 한다. 2019년 작가가 '올리브 키터리지'의 후속작 '다시, 올리브'를 발표하면서 두 작품에 묘사된 내용을 토대로 크로스비의 실제 모델이 된 동네를 유추하는 움직임도 생겼다. 한 매체에서는 가장 유력한 장소로 메인주의 항구도시 브런즈윅을 꼽기도 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쿡스 코너의 쇼핑몰’이 이곳에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이처럼 크로스비를 실재하는 마을처럼 느끼는 이유는 작가의 공간 묘사가 그만큼 핍진하기 때문이다. 읽다 보면 미국 어딘가에 이런 동네가 분명 있을 법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 중인 타운에 대한 묘사가 그렇다. “약국이 있던 자리를 지나친다. 그 자리에는 이제 거대한 자동 유리문이 달린 대형 드러그스토어 체인점이 들어서 있다. 옛 약국과 슈퍼마켓이 있던 자리는 물론, 헨리와 데니즈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커다란 쓰레기통 옆에서 한담을 나누던 주차장 자리까지 전부 차지해버린 거대한 드러그스토어에는 약만 파는 게 아니고 종이 타월과 각종 쓰레기봉투까지, 없는 게 없다.”('올리브 키터리지' 31쪽) 오감을 자극하는 작가의 탁월한 자연 묘사도 이런 실감을 높이는 요소 중 하나다. 올리브의 남편인 헨리 키터리지가 ‘코끝을 간질이는 솔숲 향기와 소금기 짙은 공기’를 만끽하기 위해 창문을 조금 열고 운전하는 장면이나 ‘단풍나무들이 색색의 비명을 지르는’ 같은 문장을 만날 때면 감탄 이전에 부럽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바다와 숲을 곁에 두고 자란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라서다. 아닌 게 아니라 작가는 메인주 포틀랜드에서 태어나 ‘바닷가 바위를 뒤덮은 해초와 야생화를 숨기고 있는 뉴햄프셔의 숲을 보며’ 자랐다고 한다. 이런 사람이 쓰는 자연 묘사에는 자신이 오랫동안 응시해온 것을 그대로 옮기는 자의 떳떳함이 배어 있다. 잠깐 감상에 젖어 눈앞의 자연을 예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서울의 복판, 도시여도 너무 도시인 우리 집 서재에서 ‘바다에만은 진심인’ 크로스비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생각한다. 비가 올 때마다 포치 앞 벤치에 앉아 일렁이는 잿빛 바다를 지켜보는 삶은 어떤 것일까, 바다 위로 비행기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다가 문득 ‘삶에 대한 탐욕’이 솟구치는 건 대체 어떤 마음의 상승일까, 하고. 40년 가까이 서울에만 산 탓에 ‘내 고향 남쪽바다’의 ‘남쪽’이 주는 뉘앙스를 절반도 채 감지하지 못하는 나는 뉴욕으로, 시카고로 도망쳤다가 끝끝내 연어처럼 돌아오고야마는 크로스비 주민들의 운명을 부러움 반, 안타까움 반으로 조용히 곁눈질할 뿐이다. 이런 이유로 소설을 쓰다가 내가 만든 인물들의 운신의 폭이 너무 좁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산란을 준비하는 연어처럼 강물을 거슬러,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크로스비로 빠르게 헤엄쳐간다. 내가 모르는 동네, 그러나 어쩐지 알 것만 같은 그 동네가 내 소설의 영토를 한 뼘 넓혀주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유튜브에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에 대한 정보를 찾다가 작가가 참여한 북토크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어느 북 페스티벌 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작가와의 대화’ 현장을 담은 영상이었는데, 참석한 독자들 중 노년층의 비율이 높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스트라우트가 즐겨 배경으로 사용하는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대부분의 삶을 보낸 듯했고, 작가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 기울이며 이따금 크게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중 본인을 메인주 출신이라고 소개한 한 여성이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작가님은 왜 소설을 쓰나요?” 스트라우트가 대답했다. “저는 늘 바라요. 사람들이 제 책을 읽고 나서 타인을 좀 더 이해하게 되기를요. 제가 쓴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이 자신이 속한 우주가 좀 더 넓어졌다고 느낀다면 소설가로서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지난 회 칼럼에서 박세회 작가는 HBO 드라마 ‘더 와이어’의 배경인 볼티모어에 대해 썼다. 재미있게도 '올리브 키터리지' 역시 2014년 HBO에서 동명의 4부작 미니시리즈로 제작되었다(소설의 판권을 사는 것도 모자라 제작, 주연까지 겸한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이 작품으로 에미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더 와이어’가 실재하는 동네를 주인공처럼 내세운다면 ‘올리브 키터리지’는 원작과 마찬가지로 허구의 동네를 배경으로 삼는다. 초보 소설가인 나에게는 그 또렷한 대조가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로 다가왔다. 예컨대 볼티모어처럼 엄연히 존재하는 동네를 캐릭터처럼 내세울 경우, 실재할 것 같지 않은 인물을 보여줄수록 드라마가 강화된다. ‘더 와이어’에서 거대한 샷건을 질질 끌고 다니면서도 자신의 애인에게만큼은 한없이 다정한 흑인 게이 범죄자와 동네 주민들에게 마약을 파는 10대 갱들, 그들에게 구겨진 지폐를 들이밀며 하얀 가루를 구걸하는 어른들의 존재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볼티모어에 정말 저런 사람들이 있어?’라는 경악과 함께 시청자로 하여금 그 동네를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반대로 ‘올리브 키터리지’처럼 가상의 동네를 앞세우면 거기 사는 인물들이 그 동네의 인상을 만들어가는 모양새가 된다. 이 경우 실재할 것 같은 인물을 등장시키는 것, 다시 말해 작가가 캐릭터에 인간성을 충분히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섬세하고 복잡하고 비밀스러운, 요컨대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인물이 많을수록 허구의 배경은 점점 더 힘을 얻는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의 삶에도 언제나 비밀은 있기 마련이니까. 참고로 드라마 ‘올리브 키터리지’의 슬로건은 “평범한 삶 같은 건 없다(There's No Such Thing As A Simple Life)”이다.

매년 1만여 점씩…국외소재문화재 통계 증가하는 이유

22개국 20만4,693점.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하 재단)이 지난 4월 1일에 발표한 국외소재문화재 현황통계다. 재단은 2014년부터 우리 문화재의 국외 소재 현황을 파악하는 현황조사 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현황조사란 국외소재문화재의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하기에 앞서, 전 세계 어느 나라, 어떤 기관에서 한국 문화재를 얼마나 소장하고 있는지 그 현황을 우선적으로 파악하는 사업이다. 재단은 그 조사 결과를 통계 자료로 작성하여 매년 4월 1일에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하고 있다. 그 수는 꾸준히 늘고 있고 2018년부터는 매년 1만여 점씩 증가하고 있다. 어떤 이유 때문에서일까. 현황조사 업무를 담당하다 보면, ‘왜 매년 국외소재문화재 현황 수량이 증가하는 것인가’, ‘매년 1만 점 이상의 문화재가 해외로 반출되고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현황통계 데이터는 매년 반출되는 문화재의 수가 아니라, 오랜 역사를 거쳐 이미 해외로 나가 있던 문화재를 재단이 매년 새롭게 찾아낸 수량을 말한다. 국외소재문화재는 오랜 세월 동안 각자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해외로 나가게 됐다. 외국인들의 수집품, 세계박람회 출품물, 외교 선물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반출은 발생 즉시 신고가 되지 않는다. 인구통계는 발생과 함께 신고가 되어 통계 수량에 바로 반영이 되지만, 국외소재문화재 현황통계는 매해 발표되는 통계 수치가 그해에 발생한 수량을 의미하지 않는다. 재단은 매년 많은 양의 국외소재문화재들을 찾아내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하고 있다. 해외 박물관 온라인 컬렉션, 각종 전시 및 도록, 국내외 학술 연구 결과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국외 소재 한국 문화재들을 찾아내고 있다. 구미권의 많은 기관들이 소장품 온라인 공개를 하고 있는 추세이다.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영국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 네덜란드 민족학박물관, 스웨덴 동아시아박물관 등이 대표적인 기관들이다. 스웨덴 동아시아박물관의 온라인 컬렉션에는 도자기, 회화, 공예, 민속품부터 사진 자료 등의 아카이브 자료에 이르기까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 문화재 500여 점이 검색된다. 해당 유물의 명칭, 연대, 크기, 이미지, 입수경위 등 상세한 정보가 나온다. 동아시아박물관의 온라인 컬렉션에 공개된 표작도(豹鵲圖)를 보자. 동아시아박물관이 공개한 정보에 따르면, 시대는 19세기이고 크기는 세로 125.7cm, 가로 76.0cm이다. 부정적인 기운을 쫓아내주는 표범과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까치를 주제로 한 표작도는 길상(吉祥)의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재단은 표작도의 가치를 알아보고 2019년 보존처리를 지원하였고, 국내에서 선보인 바 있다. 동아시아박물관은 이 작품을 안니 칼박으로부터 구입했다고 한다. 안니 칼박은 남편 카이 알고트 칼박이 1958년부터 1962년까지 서울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한국에 오게 되었다. 한국에 거주하면서 칼박 부부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다양한 연대를 아우르는 유물을 구입했다. 1987년 동아시아박물관이 안니 칼박의 수집품 90여 점을 구입했는데, 여기에는 고려시대 청동 유물, 삼국, 고려, 조선시대에 걸친 다양한 도자기 유물과 조선시대 회화 40여 점이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이 컬렉션의 입수는 그 당시 소장품이 많지 않던 동아시아박물관의 한국 회화 부문의 공백을 메우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해외 박물관이 공개한 온라인 컬렉션을 통해 기존에 파악하고 있던 국외소재문화재의 정보를 최신화할 수 있으며, 기존에 알려져 있지 않던 문화재를 새롭게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전 세계의 모든 박물관을 직접 실태조사를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소장 기관에서 먼저 소장품 정보를 공개해주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400주년을 기념해 1893년 5월 1일부터 10월 30일까지 시카고 컬럼비아 세계박람회(이하 시카고박람회)가 개최됐다. 우리나라는 고종의 적극적인 개화 정책의 일환으로 시카고박람회에 참가했다. 이는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공식 참가한 세계박람회였다. 우리나라는 농산물, 수산물, 임산물, 광산물, 원예물, 교통과 운수, 공예와 제조품 등에 출품했고, 조선의 문화상을 알리는 일상용품이나 수공예품을 중심으로 했다. 당시 관례에 따라 출품물은 박람회가 끝난 후 여러 박물관에 보내졌다. 우리나라의 출품물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은 시카고박람회 출품물을 중심으로 설립된 시카고 필드뮤지엄이다. 필드뮤지엄에 소장된 한국 문화재 중 38점은 시카고박람회에 전시됐던 것들이다. 시카고박람회 출품물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자세한 정보가 알려지지 않았는데 1993년 대전 엑스포 개최와 함께 세상에 다시 알려지게 되었다. 1993년 열린 대전 엑스포에서 시카고박람회 100주년을 기념하여 필드뮤지엄에 소장되어 있는 시카고박람회 출품물 29점을 한국으로 가지고 와서 ‘시카고 엑스포 참가전시품 특별전’을 개최한 것이다. 이 전시에는 저고리, 바지, 도포, 갓, 망건 등 민속품과 갑옷, 투구, 조총 등 무구(武具) 등 총 29점이 대여되었다. 당시 발간된 전시 도록을 통하여 재단은 시카고박람회 출품물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다. 국외소재문화재와 관련된 기존의 국내외 연구 자료를 통해 반출된 문화재의 흔적을 추적하기도 한다. 또한 새롭게 발표되는 연구 결과들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술회의 참석도 빠지지 않는다. 지난 9월 30일에 미국 프리어새클러갤러리·독일 베를린아시아미술관·하버드미술관이 공동주최한 아시아 미술 관련 웨비나(웹세미나)가 개최됐다. 주제는 ‘여성과 아시아 미술 교역(Women and the Asian Art Trade)’이었다. 오랫동안 남성 컬렉터(수집가)에 중점이 맞추어져 있던 미술 시장 연구에서 여성 컬렉터가 아시아 미술사 분야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는 연구였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미술 시장 연구의 다양성을 조명하기 위해 전 세계의 역사학자, 박물관·미술관 큐레이터, 기록학자, 출처 연구자 등 많은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 슬로베니아대학교 아시아학과 마야 베셀리치 교수가 한국 문화재 2점을 공개했다. 해당 유물은 첼레시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태극선(太極扇)이다. 박물관이 공개한 정보에 따르면 높이 33cm, 너비 24cm의 태극문양 부채로 일제강점기에 생산된 것이고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 첼레시립박물관은 여성 컬렉터인 알마 카를린의 상속인으로부터 이 부채를 기증받았다고 한다. 첼레 출신의 알마 카를린은 세계 여행가이면서 작가였다. 그는 1919년부터 1927년까지 8년간 세계를 혼자 여행하면서 1,300여 점의 유물을 구입하였다. 유물의 대부분은 동식물 표본이고 나머지는 부채, 칠기, 보석 등으로 다양하다. 그중 동아시아 유물이 260여 점 이상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소장품은 그의 상속인에 의해 첼레시립박물관에 기증되었다. 이를 통해서 재단은 슬로베니아 소재 한국 문화재 현황에 대해 최초로 파악하게 되었고, 이는 유럽 지역 한국 문화재에 빠져있던 슬로베니아라는 퍼즐 조각을 추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위에서 간략히 소개한 방법들만으로는 오랜 역사를 거쳐 해외로 나간 한국 문화재의 전모를 추적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이 외에도 재단은 다양한 사업들을 통하여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국외소재문화재들을 발굴해내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재단은 현황조사를 통해 국외소재문화재 연구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기반 자료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황조사 데이터는 현지에서 직접 실견을 한 것이 아니라, 대외에 공개된 자료를 활용해 축적한 것이기 때문에 보완돼야 할 부분들이 남아 있다. 현황조사 데이터를 토대로 국외소재문화재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히 이뤄져 역사의 조각을 채워나갈 수 있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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