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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만 '7세 고시' 떨어졌네..." SNS로 비교하며 육아 불안 키우시나요

입력
2025.01.13 04:30
24면

[김효원의 성장하는 부모]
<1> 부모를 불안하게 만드는 시대

편집자주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며 부모도 자랍니다. 김효원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4주에 한 번, 성장통을 겪는 부모들에게 조언과 응원을 전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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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개월 민하(가명)는 잘 웃지 않고 눈 맞춤이 약하다고 병원에 왔다. 그런데 진료실에서 나를 보자마자 눈을 마주치고 싱긋 웃었고, 내 손가락을 꼭 잡고 안아 달라는 몸짓을 하기도 했다. 내가 엄마랑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아빠랑 공 굴리기 놀이를 같이 하면서 중간중간에 엄마를 쳐다보았다. 아이는 특별히 발달이 느리지도 않고 상호작용도 좋은 것 같은데, 어떤 점이 걱정인지 물어보았다. 엄마는 아이가 200일이 되었을 때, 인스타그램에서 다른 200일 여자아이가 옹알이하는 영상을 본 다음부터 민하가 느린 것이 걱정되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그때부터 계속 비슷한 개월의 다른 아기들 영상을 찾아보면서 그 아기들과 민하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영상을 보면 볼수록 민하가 눈 맞춤이나 호명 반응이 약한 것 같고, 잘 안 웃는 것 같고, 옹알이도 적은 것 같고, 혼자서 너무 잘 논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이의 발달이 걱정돼 불안하고 잠도 잘 오지 않는다고 했다.

#. 여섯 살 태윤(가명)이는 3년간 영어유치원을 다니고 이제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최근에 유명 영어학원 입학 테스트, 일명 '7세 고시'를 보았는데, 같은 반 아이들 중에서 태윤이만 떨어졌다. 태윤이 아빠는 처음부터 굳이 학비가 비싼 영어유치원을 보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영어유치원에서 배운 영어 실력을 유지하려면 유명 영어학원을 꼭 다녀야 한다며, 같은 반 아이들이 영어학원 입학 테스트 준비 학원을 다니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까지 공부를 시켜야 하는 것인지 고민이 되었다. 영어, 수학, 논술, 운동, 악기 등 다른 아이들이 하는 공부를 다 시키다 보면 태윤이도 힘들어하는 것 같고 수업비도 부담이 되었다.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이 하는 사교육을 안 하고 있다가 우리 아이만 학교에서 뒤처지는 것은 아닌지 답답하고 불안하기만 하다.


부모의 불안은 아이에게 전염된다

요즘에는 민하 엄마처럼 아이의 발달에 대해 걱정하면서 병원에 찾아오는 부모님들이 많아졌다. 실제로 발달이 늦은 아이의 치료를 빨리 시작해서 좋은 결과를 보는 경우도 있지만, 민하 엄마처럼 아이는 특별히 느리지 않은데 아이 발달에 대한 엄마의 걱정과 조바심 때문에 힘들어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요즘에는 인터넷과 방송을 통해 발달이 빠르거나 혹은 느려서 치료를 받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쉽게 접하게 되면서 자기 아이와 바로바로 비교를 하게 되고 부모의 불안이 자극되는 면들도 있다. 아이들의 학습과 사교육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인터넷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는 정보가 넘쳐나다 보니 어떤 것이 옳은 방향인지, 우리 아이에게 맞는 것인지 알기 어렵고 답답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이 다 하는 공부를 시키지 않고 있으면, 아이가 잘 자랄 수 있을지, 뒤처지는 것은 아닐지 미래에 대한 염려와 불안도 점점 심해진다. 한마디로 부모를 불안하게 만드는 시대이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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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불안이 심할 때는, 아이를 계속 염려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과잉 보호해서 아이의 자신감을 떨어뜨리기도 하고, 아이의 발달이나 학습이 괜찮은지 걱정하느라 막상 아이의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기도 어렵다. 불안은 전염성이 큰 감정이어서 아이도 매사에 불안해하고 안정감이 없는 아이로 자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부모를 불안하게 만드는 시대에, 부모 자신의 불안을 잘 조절하고, 아이를 잘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부모 자신의 마음을 잘 다독이는 것이 중요하다. 진료실에서 부모의 불안이 아이에게 영향을 주는 가족을 만나면, '부모는 세상이라는 바다로 나간 아이가 타고 있는 배'라고 말씀드린다. 아무리 거센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라 해도 튼튼한 배에 타고 있으면 편안하고 안전할 것이다. 반대로 아무리 잔잔한 바다 위에 있다 해도 배가 안정적이지 못하면 마치 거친 풍랑 속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다. 부모는 아이에게 세상의 어려움을 막아 주는 완충재가 되기도,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식을 결정하기도 한다. 그래서 부모 자신의 마음을 잘 다독이고 불안한 세상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잘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

실패와 좌절을 대하는 태도 배워야

박구원 기자

박구원 기자

둘째, 다른 아이나 다른 사람의 말, 인터넷에 넘쳐나는 정보가 아닌 내 아이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민하 엄마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끊고 나니, 민하와 눈 맞추고 함께 놀이하는 시간이 확 늘었다. 그랬더니 아이의 눈 맞춤도 좋아지고 옹알이도 빠른 속도로 늘었다. 태윤이 아빠도 유명 영어학원 대신 영어도서관을 보내면서 아이와 같이 책을 많이 읽었더니, 영어를 이전보다 더 재미있어하고 아빠와의 사이도 좋아지는 것 같았다, 세상 모든 아이들은 다 발달 속도가 다르다. 성격도 다르고, 잘하는 것도 다르고, 좋아하는 것도 다르다. 모든 아이들에게 다 일관되게 좋은 마법의 교육법과 양육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셋째,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살아가게 될 세상이 지금과 어떻게 바뀔지 우리는 모른다. 지금 부모가 보기에 좋아 보이는 직업이,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었을 때도 좋은 직업일지는 알 수가 없다. 지금 인기 있는 사교육이 정말 우리 아이의 입시에 혹은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세상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지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도 성공하는 데 필요한 능력은 공부나 학습이 아니라 유연한 사고와 사회성, 회복탄력성, 자기조절능력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남들이 다 하는 것, 다른 사람들이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들을 따라 하느라 아이와의 관계를 다치게 하거나 부모가 심리적, 경제적으로 소진될 필요는 없다. 아이가 좋아하고 할 수 있는 것들, 부모가 생각하기에 내 아이에게 맞는 교육과 학습을 하는 것이 낫다.

마지막으로, 부모는 아이가 정해진 길을 따라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걸어가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어떠한 어려움이나 실패를 겪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옆에 있어 주는 사람이다. 실패나 좌절을 경험했을 때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아이가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모도 아이를 키우면서 경험하게 되는 각종 좌절과 실패에 좀더 담담해지자. 부모가 실패와 좌절을 대하는 태도를 아이도 배우면서 자란다.

어렵고 불안한 시대에도 아이들은 자란다. 아이들은 스스로 성장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부모가 스스로의 불안을 다독이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아이의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며 잘 자랄 것이다.



이달의 추천 책: '아이라는 숲'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무균실이 아니다. 실패와 좌절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많은 부모가 사랑이란 이름으로, 혹은 아이의 행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아이의 삶에서 주도권을 빼앗아간다. 책은 이런 어른들에게 "어른들의 자리는 한발 떨어진 뒤쪽"이라며 "신호등 같은 어른이 아니라 가로등 같은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진민 지음·웨일북 발행




김효원 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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