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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의 시선

일본 내 한류의 고군분투

2020.08.11 04:30

5년 전 일본 연수시절 현지인과 친해지기 위해 여행과 대중문화를 공통 화제로 삼았다. 한국에 익숙한 오키나와나 홋카이도에 가본 적이 없거나, 이와이 슌지(岩井俊二) 감독의 영화를 모르는 일본인들이 많은 사실에 놀라곤 했다. 지난해 일본의 수출규제 이전인 2018년 일본을 찾은 한국인 여행객은 753만명에 달했다. 이 중엔 대도시나 유명 관광지보다 소도시의 매력을 즐기러 오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최근 일본의 한류를 보면 이런 현상이 역전될 것이란 기대를 품게 된다. 신문과 방송이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라쓰'를 다루고, 유명 인사들이 한국 드라마의 매력에 빠져 있음을 밝히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무장관도 '사랑의 불시착'을 전부 시청했다고 한다. 특정 세대와 한국에 관심 있는 이들의 전유물이었던 한류가 이젠 다양한 세대가 함께 향유하는 문화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인기를 구가했던 일본 드라마와 영화, 음악에 대한 관심이 2000년대 중반부터 급속히 식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 소설 등이 그나마 경쟁력 있는 일본 문화로 거론된다. 관광은 줄곧 한국이 열세다. 이에 한류 인기에 힘입어 드라마 속 촬영지 등에 대한 일본인의 관심이 커지면서 이를 한국 관광으로 연결하려는 노력이 한창이다. 한국관광공사 도쿄지사는 7월 초 '한국여행검정' 사이트를 개설해 이달까지 음식ㆍ여행 등 6개 분야의 시험 참가자에게 온라인 인증서를 발급하고 있다. 7월 말 기준 참여인원 8,594명, 페이지뷰 18만6,000회를 기록하며 호응을 얻고 있다. 11월 2차 검정시험을 준비하는 등 한국 여행에 대한 잠재 수요를 계속 발굴해나갈 계획이다. 수교 이래 최악이란 평가와 코로나19로 왕래마저도 쉽지 않은 한일관계 속에 미력한 시도일 수 있다. 하지만 기대를 접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정부 간 갈등에 부침을 거듭하면서도 일본의 한류가 튼실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노력들이 자양분이 돼주었기 때문이다.

기억할 오늘

'페퍼X'의 패권은 또 언제까지?

2020.08.11 04:30

인도차이나 일부 지역 주민들이 대형 거미 타란툴라를 먹게 된 게 폴포트 치하의 굶주림 때문이었던 것처럼 일부 음식 문화에는 슬픈 배경이 있다. 역한 냄새로 유명한 북구 스웨덴의 통조림 식품 수르스트뢰밍(Surstroemming)은 염장 소금이 부족해 세균 발효에 맡겨둘 수 밖에 없어 만들어진 음식이다. 그런 사연들과 함께 세월을 타고 자리잡은 음식은, 한국 남도의 삭힌 홍어처럼 민족적 지역적 문화적 유전자를 판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근래에는 소위 '먹방'을 넘어 '괴식(怪食)'으로 도드라지려는 이들도 적지 않다. 고추나 후추, 마늘 등의 매운 맛- 엄밀히 말하면 통각-은, 누구 말처럼 세계인이 즐겨온 '자비로운 마조히즘(benign masochism)'이지만, 특정 문화권에서는 캅사이신이나 알리신 성분의 약성과 무관하게 내도록 된 핵심 조미료다. 괴식가들은 누가 더 매운 걸 먹느냐로 군비 경쟁하듯 겨루곤 한다. 맵기 기준은 미국 약리학자 윌버 스코빌(Wilbur Scoville)이 고안한 스코빌 척도(SHU)가 주로 쓰인다. 단위량의 매운 맛을 희석하는 데 필요한 설탕물 비율을 나타내는 스코빌 척도는 매울수록 높다. 할라피뇨가 2,500~1만SHU이고 청양고추는 4,000~1만2,000SHU 정도다. 2013년 8월 11일 세계기네스협회는 미국 한 식품회사 연구원 에드 커리어(Ed Currie)가 육종한 '캐롤라이나 리퍼(Carolina Reaper)'를 164만 1,183SHU의 최강 고추로 인정했다. 감식가들은 독극물 수준의 맛 속에서 '과일의 단맛과 시나몬과 초콜릿 향'을 찾아내기도 했다. 4년 뒤 노팅엄트렌트대 연구진이 248만SHU의 신종 고추 '드래곤의 숨결(Dragon's Breath)'을 선뵀다. 하지만 불과 몇 달 뒤 에드 커리어가 318만SHU의 절대강자 '페퍼X(PepperX)'를 내놓으면서 '숨결'은 이내 멎었다. 200만 SHU는 폭동 진압용 페퍼스프레이의 기준이다.

터키 리라화 연일 추락

'약달러'도 안 먹힌다... 터키 리라화 끝없는 추락, 왜?

2020.08.11 10:00

최근 세계적인 미국 달러화 약세 현상으로 다른 나라 통화가치가 전반적으로 상승하고 있지만, 터키 리라화는 이런 흐름이 무색하게 연일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올 들어 터키는 화폐 가치가 폭락하며 해외 투자자금이 이탈하고, 다시 리라화 가치 하락을 부르는 악순환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는 모습이다. 11일 외신에 따르면, 터키 리라화는 최근 터키 금융시장이 극도의 외화 부족에 시달리며 계속 폭락하고 있다. 달러 대비 환율은 지난 6, 7일 이틀 연속 연중 최고치를 경신(리라화 가치 하락)했다. 이미 지난 5월 중 기록한 1달러당 7.1리라 기록을 넘었고 10일 장중 7.3리라 이상으로 올랐다. 유로 대비 리라화 환율도 8.6리라 수준까지 올랐다. 리라화 가치 급락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시작된 터키 내 외화 수급 불안 때문이다. 터키 기업들은 주로 해외 자본을 조달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외화 수요가 있는데, 이에 대응할 만한 주요 외화 수입원인 관광업이 코로나19로 사실상 가동 불가 상태에 빠졌다. 터키 중앙은행은 리라화 가치를 1달러당 7리라선에서 방어하기 위해 달러를 시장에 내다 팔고 있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2019년 말 기준 812억달러였던 공식 외환보유고는 510억달러까지 급감했다. 앙카라 빌켄트대의 에린츠 옐단 경제학과 교수는 "더이상 누구도 (터키 정부가) 환율을 통제할 수 있으리라 믿지 않는다"며 "친정부 기업조차 달러를 팔아 덕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리라화 변동 증가가 일시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외부에선 미국이 막대한 달러를 푸는 와중에도 유독 리라화 가치만 폭락하는 것은 코로나와 별개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집권 내내 경기 부양을 위해 저금리 정책을 고집했고, 이에 투자처로서 터키의 매력이 감소했다. 터키의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도 나빠져, 2018년 이미 한 차례 리라화 가치 폭락의 위기가 발생했다. 최근 상황은 더 심각하다.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저금리를 유지해야 하지만 리라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선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딜레마에 놓인 것이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터키가) 경제에 단기적인 고통이 있더라도 결국에는 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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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靑 비서실 부분 개편 정도로  민심 수습 되겠나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 정무수석에 최재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민정수석에 김종호 감사원 사무총장을 각각 내정했다. 시민사회수석에는 김제남 청와대 기후환경비서관을 내정했다. 지난 7일 노영민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5명이 현 정국에 대한 종합적인 책임을 지고 동반 사의를 밝힌 데 따른 후속 인사다. 인사의 내용을 보면 대체로 문재인 정부 국정 철학에 이해가 뛰어난 친문 인사들을 내세워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4선 의원 출신인 최 정무수석은 친문 핵심 인사로 정무 감각과 돌파력이 남다르다. 현 정부 초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낸 김 민정수석은 친정인 감사원으로 갔다가 이번에 한 체급 올려 다시 복귀했다. 정의당 의원 출신인 김 시민사회수석도 내부 승진 케이스다. 이날 청와대 개편을 시작으로 차기 민주당 지도부 선출, 부분 개각이 완성되면 본격적인 문재인 정부 3기가 시작된다고 여권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대통령 임기 60개월을 3등분해 인적 교체가 이뤄져야 자연스러운데 1년 9개월 남짓 임기가 남은 지금이 적기라는 얘기다. 노 실장이 일단 유임으로 가닥을 잡은 것도 국정 운영 연속성에 좀 더 방점을 두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여권에선 노 실장이 후임 수석 인선을 위해 임시로 잔류한 게 아니라 연말이나 내년 4월 재ㆍ보선까지 자리를 지킬 것이라는 전망이 무성하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달랑 청와대 수석 3명을 바꾸는 것으로 민심이 수습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청와대의 현실 인식이 걱정된다. 지금 상황은 다주택 매각을 놓고 언행 불일치를 보인 수석 몇 명 바꾼다고 해결될 수준이 아니다. 176석 거대 여당의 오만과 독주에 대한 우려가 임계점을 넘어섰다. 총선 압승 이후 넉 달도 못 돼 여당과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한 것은 국정 운영 기조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쇄신이 필요하다는 경고음이다. 부동산 정책을 책임진 청와대 정책실은 물론 내각까지 포괄하는 보다 과감한 인적 쇄신이 필요할 때다.
칼럼
정치 목적 '상실의 시대' 2016년 미국 대선 시기 하와이 체류 중이었다. 민주당 지지세가 강하던 동네다. 그런데 11월 투표 직전 ‘트럼프에게 한 표를’ 팻말을 들고 길가에 종일 앉아있던 백인 노부부들이 눈길을 끌었다. “세금을 깎아준다는데.” “이민자가 우리 일자리 가져가는 걸 막아준다는데.” 백인 노동자, 소상공인의 ‘욕망’을 제대로 자극하고 ‘혐오’를 일반화하는 사이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트럼프 세상’이 탄생했다. 그는 재임 4년간 ‘MAGA’(Make America Great Againㆍ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쳤다. 중국과 유럽을 압박하고 기존 국제질서를 뒤엎었다. 극심한 내부 갈등을 몰고 왔지만 50% 안팎의 지지는 굳건했다. 비록 3월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처 실패, 주가 하락과 실업률 상승,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후 인종 갈등 문제로 타격을 입었지만 아직 대선 결과는 모를 일이다. 에이미 추아 미 예일대 교수는 저서 ‘정치적 부족주의’에서 이런 미국 사회의 맹점을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한다. 가난한 사람을 돕겠다던 뉴욕 월가의 ‘점령하라’가 상대적으로 특권층이 이끈 운동인 데 비해 “기도하면 부자 된다”는 ‘번영 복음(prosperity gospel)’은 미국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인 운동임을 그는 지적했다. 저소득층 계급에선 ‘부자들의 세계를 점령하라’ 같은 거창한 구호보다 ‘기도하면 돈을 번다’는 욕망 부추김이 먹힌다는 분석이다. 트럼프가 주로 백인들이 열광하는 나스카 자동차대회나 프로레슬링 WWE를 활용하는 것도 주목한다. 수십 수백년 기득권층으로 살았던 미국 백인의 위기감이 ‘부족주의’ 정체성으로 등장하고, 진보 진영은 이를 뚫지 못한다는 게 추아 교수 설명이다. 트럼프 따라하기 때문일까. 한국 정치 역시 미국 못지않게 욕망과 혐오 활용, 그 언저리에서 방황하고 있다. ‘나는 무엇을 이루려 집권을 하고, 다수당이 되려 했는가. 왜 정치를 하고 있는 건가.’ 스스로 정치의 목적을 질문하지 않는 순간 혐오와 차별을 기반으로 한 욕망의 정치가 득세하는 게 역사다. 미국의 경우 정권을 빼앗긴 민주당은 물론 트럼프와 티파티를 방치했던 공화당 내 합리적 보수 진영이 토로했던 낭패감을 보라. 그래서 우리는 달라야 한다. 인종 차별 문제를 지적했던 방송인 샘 오취리가 외롭지 않도록, 류호정 정의당 의원의 당당함이 꺾이지 않도록 응원하는 것이 혐오ㆍ차별정치 차단, 정치 정상화의 첫 시험대다. 트럼프식 막무가내 정치가 한국에서 사라지게 하는 길이다. 또 하나. 알맹이 없는 비정규직 철폐 구호가, 정교하지 못한 부동산대책이 불러온 후폭풍 문제다. “우리 정책에 대한 오해”라고 말하기 전에,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은 임대인이자 임차인”이라고 비아냥거리기 전에, 그만큼 더 공부와 준비를 해야 한다. 당신들이 내세운 가치가 훼손되지 않되 유권자의 욕망을 정치의 공간에서 정당하게 수렴할 정책 수립과 집행에 신경 쓰길 바란다. 개별 유권자의 본능적 욕망을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틀에 담아내지 못하는 순간 모든 공리가 허물어진다. 2020년 미국 대선의 결과가 어떻든 최선의 민주주의 모델은 아니다. 2022년 한국 대선이 미국식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독재자끼린 통한다? 벨라루스 대통령 연임 축하한 두 사람

"동료를 보면 독재자를 알 수 있다." 6연임에 성공했으나 반(反)정부 시위를 불러 온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에게 당선 축하 메시지를 보낸 두 사람이 있다. 바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대표적인 권위주의 정부의 지도자들이다. 미 CNN방송은 10일(현지시간) '벨라루스 시민들이 거리로 나가자 권위주의 지도자들이 루카셴코 뒤로 집결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들의 '동료애'를 조명했다. 이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시진핑 주석이 루카셴코 대통령의 재선에 따뜻한 축하와 축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전했다. 같은 날 푸틴 대통령도 축하 메시지를 통해 "이번 투표는 양국 국민의 근본적인 이해관계에 부합했다"면서 "모든 분야에서 상호이익이 되는 양국관계를 약속한다"고 밝혔다. 9일 출구조사 발표 직후부터 수도 민스크 시내에는 시민 수천명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시위를 벌였고 경찰의 강경진압 속에서 사망자도 1명 발생한 혼란 속에서 루카셰콘 대통령에게 힘을 주는 성명들이다. 유럽연합(EU)이나 미국 등 서방에서는 선거부정 의혹을 제기하고 강경진압을 규탄하는 발언들이 이어진 것과 대조된다. 이들 두 지도자의 당선 축하 메시지는 권위주의 지도자 연대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방송은 "(푸틴과 시진핑은) 권력 이양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고, 민주항쟁에 대한 거부감도 크다"면서 "(당선 축하 메시지를 통해) 반정부 활동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신호도 보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에서는 푸틴이 사실상 종신집권할 수 있는 개헌안을 확보한 이후 크고 작은 반정부 활동이 일어나고 있고, 중국에서도 국가보안법 사태를 전후로 홍콩 민주화 활동이 이어지는 상황이기 때문. 물론 루카셴코 독재 체제 아래 벨라루스와의 온 경제ㆍ정치적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해 가려는 의중도 엿보인다. 방송은 "중국은 상대적으로 저임금인 벨라루스에 교육받은 인력을 많이 투자해왔고, 러시아는 관세동맹은 물론 군사적으로도 벨라루스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설명했다. 루카셴코가 선거 전에 '러시아 대선 개입설'을 말하며 양국 관계가 어긋나기도 했지만, 유럽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에 대항한 전선을 굳건히 하려면 러시아 입장에서도 벨라루스에 완전히 등 돌릴 수 없는 상황이다. 루카셴코는 이번 시위에 강경한 입장이지만 시위가 격화하면 그의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번 시위로 새 정치가 태어나든 유혈 진압으로 귀결되든 루카셴코 대통령의 입지는 이전과 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설사 루카셴코가 살아남더라도 지지기반이 약화한다면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손호철의 발자국

종교가 권세를 등에 업었을 때의 비극 ... '이재수의 난'

“여아대(如我待).” 이 증표를 가진 사람을 “나를 대하듯 하라.” 고종이 병인양요(프랑스함대가 천주교도학살 탄압에 대항해 쳐들어온 사건)에 대한 보상으로 프랑스 신부들에게 줬다는 증표다. 이는 조선조 말 주권을 잃어버린 비극적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증표는 결국 1901년 5월 ‘변방’이었던 제주에서 민란과 비극적인 천주교도들의 학살을 가져오게 된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제주도의 대표적인 비극인 4ㆍ3보다 45년 전에 제주도에 또 다른 비극이 생겨난 것이다(제국주의에 의한 한말 개방기와 해방정국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들이 모두 제주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은 한국근현대사에서 제주가 차지하는 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신축년에 일어났다고 해서 ‘신축민란’이라고 부르는 이 사건은 이재수가 주도했다고 해서 ‘이재수의 난’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주도세력측은 ‘1901년 제주항쟁’이라고, 가톨릭에서는 ‘제주신축교난’이라고 부른다. 이 비극은 4ㆍ3 등 제주의 한을 형상화해온 현기영 작가의 '변방에 우짖는 새'라는 소설로 알려지기 시작, 이정재와 심은하가 주연한 '이재수의 난'이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다. 19세기 말 제주는 제주도민은 육지로 못 나간다는 오래된 금지령은 풀렸지만, 두 폐해로 민생이 한계점에 달했다. 그것은 ‘세폐(세금폐해)’와 ‘교폐(종교폐해)’였다. 재정난에 빠진 고종은 제주도에 세무관을 파견해 새로운 세금들을 징수해 민생은 파탄에 빠졌다. 또 ‘여아대’ 패를 가진 프랑스 신부들이 주도하는 성당은 치외법권지대가 됐고 이 위세를 등에 업은 일부 신도들은 악행을 일삼았다. 선교를 한다며 제주도민들이 신성시해온 신당을 부수는가 하면 관아와 결탁해 세금이라며 금품을 갈취하고 성범죄까지 저질렀지만, ‘여아대’때문에 관아는 이를 방관했다. 결국 대정군내 양반과 유지들이 이 같은 폐해에 대항하기 위해 상무사라는 것을 조직해 물리적으로 저항했다. 그러자 일부 신도들이 마을 유지인 훈장과 친지들을 잡아 교당에 가두고 고문하다 죽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대정군수는 검시관으로 관노 이재수를 데리고 시신을 검시하고 범인을 잡으려 했지만 범인이 교당으로 숨어버려 잡을 수 없었다. 이에 도민들이 분노하고 있었는데, 천주교도들이 다시 상무사 위원 집을 공격했고 상무사들은 보복으로 대정의 천주교당을 습격했다. 며칠 뒤 상무사는 ‘규탄 민중대회’를 열었고 다시 양측의 충돌이 벌어졌다. 천주교도들이 무장하고 민중들에게 사격을 가해 주민이 즉사했고 지도부까지 납치했다. 평소 무예가 뛰어났던 이재수는 납치당한 지도부를 대신해 지도자로 부상했고 무장봉기를 결심, 각 고을에 격문을 보냈다. 40명의 포수를 비롯한 수천 명의 장정이 대정에 모여 총칼과 죽창으로 무장했다. 이들은 민군을 둘로 나누어 동서로 돌아 제주로 진격했고 그 과정에서 세폐와 교폐에 시달리던 많은 주민들이 이들을 환영했다. 기록에 따르면, “마을사람들이 다들 칭송하기를, 이재수는 인물이 영웅답고 한라산의 정기를 받아 보통의 사람들과 다르다고 여겼다”고 한다. 이재수는 제주성에서 가까운 황사평에 진을 치고 제주관아와 협상을 했다. 5월 25일, 성문을 열 것을 요구했다. 프랑스 신부는 나흘간의 빌미를 달라고 답해 시간을 벌면서 인천에 정박한 프랑스 함대를 보내달라고 프랑스 공사관에 연락했다. 하지만 28일까지 함대는 오지 않았고 민군은 제주성에 입성했다. 민군은 입성 후 300여명의 천주교도를 처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30일 프랑스함대가 도착했다. 이 배를 타고온 신임목사(도지사)는 세폐, 교폐의 시정을 약속했고 항쟁은 진압됐다. 이재수 등은 서울로 압송되어 근대적 재판을 받은 뒤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 항쟁의 흔적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주된 흔적은 민란 지도자 이재수 등 세 명의 ‘의사’(의로운 투사)를 기리는 ‘제주 대정 삼의사비’다. 이 비는 모슬포항 근처인 대정마을 추사 김정희 유배지 앞 오거리 한 구석에 위치해 있다. 이 비는 내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아 근처 주유소 직원에게 물어서야 찾을 수 있었다. 삼의사비는 원래 1961년 대정리 홍살문 거리에 세웠던 것인데 여러 압력과 도로확장 등으로 여기저기 옮겨 다니고 마모되어 1998년 대정청년회가 낡은 비를 묻고 그 위에 새 비를 세운 것이다. 어렵게 찾은 그 비 앞에 서서, 위에서 아래로, 그것도 아주 작은 글씨로 촘촘하게, 써놓아 읽기 쉽지 않는 비문을 읽기 시작하자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첫 문장이 충격적이었다. “여기 세우는 이 비는 종교가 무릇 본연의 역할을 저버리고 권세를 등에 업었을 때 그 폐단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교훈적 표석이 될 것이다.” 이 민란에 의해 목숨을 잃은 천주교도들의 무덤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들의 무덤은 역설적으로 이재수와 민란참가자들이 진을 쳤던 황사평에 위치해 있다. 프랑스 교단쪽이 피해보상으로 금전적 보상이외에도 이곳을 달라고 요구해 희생자들의 집단묘역을 만든 것이다. 내비에 ‘황사평’이라고 치자 ‘천주교 황사평 성지’가 바로 나타났다. 넓게 자리 잡고 잘 정돈된 묘역 끝으로 가면 ‘순교자묘역’이라고 새겨진 커다란 돌이 방문자들을 맞는다. 이곳은 ‘성지’이고, 이곳에 묻힌 사람들이 ‘순교자’들인가? 돌 뒤에 쓰여 있는 글은 ‘순교자’, ‘성지’라는 표현과 거리가 있다. 글은 기이하게도 첫 문장이 “1901년 신축교난 당시 연락을 받은 두 척의 불란서 군함함장들이 사태수습을 위하여 제주도에 왔지만 교난은 이미 끝난 상태였고 많은 천주교인들은 관덕정에서 피살되어 주검으로 변해 있었다”이다. 왜 이 같은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하고 있지 않는 것을 보아, 무언가 떳떳하지 않는 일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당시 사건조사를 위해 중앙에서 파견되어 온 조사팀의 조사결과는 천주교도들의 폐해가 심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기술하고 있고, 이 문제에 대한 교회 측의 문서에도 일정하게 이를 인정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정당한 항쟁이었는가. 아니면 부당한 종교탄압이었는가. 이는 단순히 누구의 시각에서 보느냐는 ‘관점의 차이’만은 아닌 중요한 역사적 사실 문제이다. 다행히 2003년 천주교 측과 1901년 제주항쟁 기념사업회는 화해했다. 천주교측은 서구제국주의의 한국침략기에 선교과정에서 “제주민중에 대한 과거의 잘못에 사과”했고 1901년 제주항쟁 쪽은 봉건왕조와 외세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인명살상의 비극을 초래한 데 대하여 사과”했다고 한다. 제주 시내에도 민란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중심가에는 항쟁의 원인이 됐던 제주관아와 성당이 있다. 새로 건축한 성당 자료관 벽에는 제주도 천주교의 역사를 요약한 연대표에서 1901년의 사건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조금만 걸어가면, 일제가 제주항 건설을 위한 자재로 쓰려고 허물어 버렸지만 아직 일부 남아있는 제주성이 당시 제주민중들의 한을 증언하고 있다. 성을 쳐다보고 있자, 마침 성에 앉아 있던 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마치 이 비극을 다룬 소설제목처럼 ‘변방에 우짖는 새’ 이재수의 혼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삼의사비에 쓰여 있던 충격적인 첫 구절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독재정권과 손잡고 국민들을 우롱했던 일부 종교기관들, 나아가 우리 시대의 모든 종교에게 던지는 경고로 나에게 들려왔다. “여기 세우는 이 비는 종교가 무릇 본연의 역할을 저버리고 권세를 등에 업었을 때 그 폐단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교훈적 표석이 될 것이다.” 비록 찾는 이 없이 제주도 대정마을 한 구석에 버려져 있지만, 삼의사비는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아직도 살아있는 현재의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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