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2G' 이젠 역사속으로

'스피드 011'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SKT, 6일부터 2G 종료

2020.07.05 17:16

1996년 세계 최초로 2세대(2G)인 코드분할방식(CDMA) 이동전화를 상용화한 SK텔레콤이 마침내 2G 서비스를 종료한다.  5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은 6일부터 순차적으로 2G 서비스를 중단한다. 지역별 종료 시점은 6일 △강원도 △경상도 △세종특별자치시 △전라도 △제주특별자치도 △충청도(광역시 제외), 13일 △광주광역시 △대구광역시 △대전광역시 △부산광역시 △울산광역시, 20일 △경기도 △인천광역시, 27일 △서울특별시 등의 순이다. 2G는 국내 응용기술로 처음으로 상용화에 성공한 CDMA 방식의 이동전화 서비스다. 해외에서 수입해 온 이동통신 기술을 국산화하고, 통신기술의 주도국이 되겠다는 목표 아래 1990년 정부는 CDMA 기술 개발을 국책과제로 선정했다. SK텔레콤의 전신인 한국이동통신이 1994년 11월 CDMA 방식의 첫 시험통화에 성공했으며, 1996년 1월 인천ㆍ부천지역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후 공중전화 박스 앞에서 줄 서는 대신 전 국민이 주머니에 넣고 전화를 거는 이동전화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2G 서비스를 기점으로 우리나라는 이동통신 기술 종속국에서 기술주도국으로, 이동통신시스템과 단말기를 전량 수입하는 나라에서 수출 강국으로 탈바꿈했다.  SK텔레콤은 2G 서비스를 개시한 지 25년 여 지나면서 장비 수급의 어려움 등 운영상의 이유로 지난해 정부에 2G 서비스 종료를 요청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용자 보상방안을 충실히 이행해 이용자 피해와 민원 발생을 최소화하라"는 승인 조건을 달고 서비스 종료를 승인했다.  현재 SK텔레콤 2G 가입자는 38만4,000명. 이들은 서비스 종료 전에 3ㆍ4ㆍ5G 서비스로 가입을 전환하면서 전화번호를 '010' 번호로 바꾸고, 단말기도 교체해야 한다. SK텔레콤은 2G 가입자 보호방안으로 서비스 전환 시 '새 단말기 구매 지원금 30만원+24개월 동안 월 요금 1만원씩 감면'과 '24개월 동안 월 요금의 70% 할인' 중 하나를 고르게 하는 지원책을 선보였다. 또 21년 6월까지 '01X' 번호 이용자가 일정 기간 동안 기존 번호 그대로 3G, 롱텀에볼루션(LTE), 5G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제도도 운영하기로 했다. 한편 KT는 2011년 4G를 상용화하면서 2G를 종료했다. LG유플러스는 2G용 주파수 재할당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올해 연말 2G 종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경영계 이모저모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 결혼… 신부 웨딩드레스에 쏠린 시선

2020.07.05 19:55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현대가(家) 3세 정기선(38) 현대중공업지주 경영지원실장 부사장이 4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교육자 집안 출신의 일반인 신부(26)는 연세대 동문으로, 두 사람은 학교 동문 모임에서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결혼식에는 직계 가족을 포함해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과 정몽일 현대엠파트너스회장, 정일선 현대비엔지스틸사장,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정대선 현대비에스앤씨 사장 등 친척들이 참석했다.  정 부사장 외가 쪽에선 홍정욱 전 한나라당 의원, 재계 또래 인맥으론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사장, 장선익 동국제강 이사가 결혼식을 찾았다. 한편 이날 정기선 부사장의 신부가 입고 나온 웨딩드레스에 세간의 관심이 쏠렸다. 목을 감싸는 긴 소매에 꽃무늬 패턴 자수가 놓인 드레스가, 정 부사장의 여동생들이 입었던 것과 같은 디자인이었기 때문이다. 정몽준 이사장의 차녀 정선이씨는 지난 2014년 결혼식에서 어머니인 김영명 재단법인 예올 이사장이 1979년  결혼식 때 입었던 웨딩드레스를 고쳐 입고 나와 화제가 됐다. 이어 장녀인 정남이 아산나눔재단 상임이사도 2016년 결혼식에서 같은 드레스를 입어 주목을 받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 부사장의 여동생들이 어머니의 드레스를 고쳐 입은 것은, 검소한 가풍과 결혼의 의미를 되새기는 차원인 것으로 안다"며 "정 부사장의 신부 역시 같은 드레스를 고쳐 입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순재 매니저의 폭로

'머슴살이' 논란 이순재 "매니저 비난 말아달라"

2020.07.05 15:09

 매니저 '갑질' 의혹과 관련, 원로배우 이순재(85)가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이순재는 5일 입장문을 내고 "지난 금요일(3일)에 전 매니저와 통화하며 그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공감했으며, 그분께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한다"며  "자신에게 철저하고 타인을 존중해야 한다는 오랜 제 원칙을 망각한 부덕의 소치였음을 겸허히 인정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동료 연기자 여러분과 특히 배우를 꿈꾸며 연기를 배우고 있는 배우 지망생, 학생 여러분께 모범을 보이지 못해 너무나 부끄럽고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이순재는 "가족의 일과 업무가 구분되지 않은 건 잘못됐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앞으로 들어올 매니저에게는 수습 기간이든 아니든, 어떤 업무 형태이든 무조건 4대 보험을 처리해달라고 소속사 대표에게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순재는  "이번 일을 통해 저도 함께 일하는 매니저들, 업계 관계자들이 당면한 어려움을 잘 알게 됐다"며 "80년 평생을 연기자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그들의 고충을 깊이 헤아리지 못한 점을 고통 속에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 매니저에 대한 비난도 멈춰 달라고 호소했다.  앞서 이순재의 전 매니저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 원로배우에게 갑질을 당한 경험을 폭로하면서 이를 '머슴살이'에 비유했다. 이어 다른 전직 매니저가 이에 반박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많이 본 기사

전체 기사 중 최근 24시간 동안 조회수가 가장 높은 기사 순으로 보여드립니다.

오피니언

사설
외교안보 전면 쇄신, 한반도 평화 새 틀짜는 계기 삼으라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차기 국가정보원장에 4선 의원 출신의 박지원 단국대 석좌교수를, 통일부 장관에 4선 원내대표 출신의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각각 내정했다. 또 서훈 현 국정원장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 임명했으며, 정의용 현 국가안보실장과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대통령 외교안보특보로 기용하기로 했다. 문 대통령이 국정원장과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외교안보라인 전반에 걸쳐 한꺼번에 변화를 준 것은 취임 후  처음이다. 한 번 쓴 사람은 좀처럼 바꾸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진  문 대통령이 외교안보라인 개편을 단행한 것은 차제에 대북정책을 재점검하고 바람직한 남북관계의 해법을 모색하겠다는 의지로 보여 일단 평가할 만하다.  인사를 들여다 보면 현 여권의 대북 라인을 모두 재기용한 것은 물론, 김대중 정부 시절 대북 라인까지 전면에 배치한 모양새다. 남북 정상회담을 막후에서 성사시켰던 서훈 실장이 기존 대북정책 기조를 이어 가며 중심을 잡고, 신임 국정원장과 통일부 장관을 통해 외교안보라인에 새 기운을 불어넣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여기에 정부 출범 초 청와대 투톱이었던 정의용ㆍ임종석 전 실장은 각각 대미ㆍ대북 특사로 활용하겠다는 게 문 대통령의 구상이다.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북한에 보여 주는 메시지인 동시에, 고비를 맞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내겠다는 절박감이 담겨 있다.   지금은 남북관계가 2018년 4ㆍ27 판문점선언 이전으로 회귀했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엄중한 시기다. 지난해 하노이 북미회담 '노딜' 이후 꽉 막혔던 남북관계는 최근 북한이 대북전단 사태를 빌미 삼아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시키면서 최악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남북 화해협력과 한반도 비핵화라는 큰 틀의 정책 기조를 원점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북미 사이의 운전자를 자처했다가 양쪽에서 외면당한 기존 대북 정책을 그대로 고수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외교안보 정책도 달라진 한반도 정세에 맞는 새 틀 짜기가 필요할 때다.  그런 점에서  정부 출범 초부터 외교안보 정책을 맡았던 인사들을 돌려 막는 회전문 인사여서 걱정된다는 야당의 지적에도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우려를 불식시키려면 새 외교안보라인은 기존의 유화적 대북 정책에 문제가 없었는지 면밀히 점검하는 동시에 북미관계만 바라보던 소극적 외교안보 노선을 넘어서 창의적이고 주도적으로 문제를 풀어갈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특히 평화를 약속했다가 헌신짝처럼 내던진 북한의 돌변으로 상처받은 국민의 자존심을 고려하면, 서훈 내정자의 취임 소감대로 ‘국민이 안심할 수 있게’ 한반도 평화를 제도적으로 정착시켜 나가는 데 주안점을 두기 바란다.
칼럼
홍콩은 벌써 2046 홍콩 영화 ‘첩혈가두’(1990)는 세 청년이 주인공이다. 영화 속 홍콩은 폭력과 절망이 가득한 곳. 거리는 시위대로 가득 차 있고, 폭탄이 터지기도 한다. 주인공들은 부자가 되고 싶은 꿈을 찾아 베트남으로 향한다. 희망에 부풀어 찾은 베트남은 홍콩보다 더 지옥도에 가깝다. 때는 1967년. 우위썬(오우삼)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당대 최고 스타 중 하나였던 량차오웨이(양조위)가 주연한 영화는 역사를 모르면 이해도, 몰입도 힘들다. □1967년 홍콩은 격동의 시기였다. 친공산주의 노조의 노동분규가 불씨가 되어 거센 시위 불길이 홍콩을 휩쓸었다. 영국 식민 통치에 대한 서민들의 분노가 시위의 원동력이었다. 중국 공산당은 배후에서 시위를 부추겼다. 시위대에게 중국 공산당은 우군, 영국은 적군이었다. 폭력 시위로 51명이 숨졌다. 이 중 22명 이상이 경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시위대의 폭탄 공격에 의한 사망자만도 15명이었다. 대규모 시위에 영국 정부는 화들짝 놀랬다. 여러 개혁 조치를 단행했고, 이는 홍콩이 아시아 4대 용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됐다. □2014년 홍콩에서 우산혁명이 일어났다. 홍콩 행정장관을 완전한 직선으로 뽑자는 요구가 시위의 표면적 이유였지만, 1997년 중국으로 귀환한 이후 쌓인 중국 공산당에 대한 불만이 홍콩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낸 요인이었다. 우산혁명은 지난해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고, 중국 공산당은 홍콩국가보안법이라는 강경한 통제 수단을 꺼내 들었다. 영국은 홍콩의 자치권이 심각하게 침해됐다며 홍콩인 300만명 가량에게 시민권을 부여할 것이라고 나섰다. 영국이 홍콩의 우군이 됐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홍콩 영화 ‘2046’(2004)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며 사랑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를 그린다. 정치나 역사와 무관해 보이는 이 영화는 미래에 대한 홍콩인의 불안과 슬픔을 은유적으로 담고 있다. 2046년은 중국과 홍콩이 일국양제를 마치고 홍콩의 자치권이 완전히 사라지는 해다. 1일부터 실시된 홍콩보안법으로 예정됐던 홍콩의 미래가 더욱 앞당겨지게 됐다. 홍콩에는 2046년이 이미 도래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첩혈가두’의 주인공들처럼 해외에서 살길을 찾을 홍콩 젊은이들이 늘어날 것이다. 역사는 기이한 방식으로 반복된다.

"나는 손님 울리는 기사"... 길 위에서 만난 한 권의 위로

“정치, 종교 관련된 것 말고 그냥 고민이나 하고 싶었던 말을 허심탄회하게 적어달라고 해요. 그러면 솔직한 글들이 술술 나와요.”  현재 서울 시내를 달리는 택시는 총 7만 1,804대, 택시 기사는 7만 6,864명에 달합니다. 그들은 묵묵히 운전만 하는 경우와 승객과 대화를 하려는 이들 이렇게 두 부류로 나뉩니다. 하지만 택시 안에서 대화를 시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선을 넘는 말로 불편함을 줄까 걱정도 되고, 편하게 말을 걸고 싶어도 이어폰을 꼽고 스마트폰 만 만지막 거리는 승객 때문에 머쓱해지기 일쑤입니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어색한 공기만 택시 안을 맴돌 뿐이죠.  그런데 여기 조금 ‘특별한’ 택시가 있다는데요. 작은 노트와 펜으로 소통의 물꼬를 트는 명업식 기사(60)의 택시입니다. 명씨는 승객이 타면 목적지를 네비게이션에 찍은 후 손바닥만 한 노트와 펜을 건넵니다. 노트 제목은 ‘길 위에서 쓴 편지’. 처음 본 기사의 낯선 노트안에 얼마나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갈 수 있을까요?  뜻밖에도 노트를 받아든 이들은 흔들리는 차에서도 자신의 마음을 꾹꾹 눌러 쓴다고 해요. 비단 한두 명만의 경험담이 아닙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길위에서쓴편지’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노트 사진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올라오니까요. 승객들은 명씨의 택시가 예기치 않았던 ‘선물’처럼 다가왔다고 말합니다. 명씨의 사연이 퍼지면서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소설 같다. 감동적이다”(미*), “남에겐 별거 아닌 것 같은 얘기지만 나에게는 너무나도 큰 일이라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을 때, 우연히 만난 노트한 권이 승객들에게 큰 힘이 되어준 것 같다”(몇*******)며 응원 글도 달리고 있습니다.  명씨는 어떤 이유에서 이런 소소한 이벤트를 준비하게 됐을까요. 2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위치한 창운기업 차고지로 직접 찾아가 명씨를 만나봤습니다.  “목적지에만 데려다주면 끝인데, 노트가 있으니 대화를 하게 되더라고요. 글을 쓰면서도 잠깐 잠깐 이야기를 나누니까 택시 안 분위기가 훨씬 좋아졌어요.” ‘길 위에서 쓴 편지’를 시작한 계기가 궁금했습니다. 축협중앙회에서 근무하던 명씨는 명예퇴직을 하고 개인 사업을 꾸렸는데요. 상황이 어려워지자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2018년 11월 1일부터 택시 기사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딱 1년이 지났을 때 명씨는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에 부딪쳤습니다. 특히 승객과 소통이 어려웠던 점이 가장 힘들게 다가왔습니다. 택시를 타면 승객들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소통도 대화도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니 사소한 오해도 자주 생겼다는데요. 택시 요금이 평소보다 200원, 300원 더 나왔다고 불평하거나 길을 일부러 멀리 돌아갔다고 짜증내는 승객들을 볼 때면 마음이 무거웠다고 해요. 그러나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자르자’는 각오로 일단 버티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당시에는 법인택시를 3년 무사고로 운행하면 개인택시 자격이 주어졌기 때문이죠. 기왕 버티기로 했으니, 승객과 갈등 없이 달릴 수 있다면 그야말로 일석이조였을 겁니다. 그래서 이것 저것 소통할 방법을 생각해보다가 떠올린 것이 바로 이 노트였습니다. 손님들에게 노트를 주고, 글을 써달라고 부탁하면 어떨까 하는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 건데요. 명씨는 퇴근 뒤 무작정 근처 문구점으로 달려가 노란색 줄노트 한 권과 까만 펜 한 자루를 샀습니다. 승객들이 자신의 속마음을 정말 다 털어놓을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지만, 생각보다 노트 한 권이 금세 채워졌다고 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주변 사람 아무도 명씨 수첩의 존재조차 몰랐다고 해요. 승객과 소통을 위한 수단일 뿐이지, 큰 자랑거리는 아니었을 테니까요. 나중에 '길 위에서 쓴 편지'를 알게 된 지인들은 하나같이 "기가 막힌 아이디어다", "택시기사를 그만둬도 나중에 큰 추억이 되겠다"며 좋아했다고 합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승객을 태우면서 상처를 받은 날도 많았을 겁니다. 그러나 명씨는 먼저 손을 내밀었습니다. 이 노트와 함께요. 노트는 삭막한 택시 안 분위기를 바꿔 놓았습니다. ‘요즘 뭐가 제일 힘드냐’는 택시 기사의 질문이 더 이상 부담스럽지도, 무례하게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승객들은 오히려 더욱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써내려간다고 합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미터기 요금이 올라가는데도 “조금 더 쓰겠다”며 고집을 부리는 손님도 있습니다. 편지를 쓴 건 승객들인데 명씨에게 감사하다고 한다네요. “팁을 주거나, 햄버거 바꿔 먹는 티켓(기프티콘)을 줄 때도 있어요. 호응이 좋아요.” 승객과 소통하기 위해 시작한 '길 위에서 쓴 편지'가 되려 승객들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고, 또 위로까지 건넵니다. 조그마한 노트가 따뜻한 마음을 퍼트리는 셈이죠.   수많은 택시 중에 명씨의 택시를 마주친 것도 신기한데, 심지어 이름마저도 특이합니다. ‘길 위에서 쓴 편지’라니. 얼핏 문학 작품의 제목 같기도 한 노트의 이름에는 특별한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명씨가 처음 이런 방식을 구상할 때는 미처 제목까진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 강서구청에서 종로로 가는 승객 두 사람을 태웠던 날 그는 해답을 찾았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들으니 문인 같았다고 해요. 그래서 그들에게 자신의 사연을 털어 놓고 제목을 지어달라고 부탁한 겁니다. 한참 생각하던 한 승객은 목적지에 도착할 때가 돼서 살며시 제안을 했다는데요.  알고보니 그 승객은 박준 시인이었습니다.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로도 유명한 시인이죠. 박 시인은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자신에게 보내든 누구에게 보내든 편지라고 하면 짧은 시간 안에 진솔한 이야기를 담게 된다. 그래서 노트 제목을 길 위에서 쓰는 편지라고 짓는 게 어떻냐고 했다"고 전했습니다.  만약 명씨가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었다면, 박 시인은 그저 스쳐지나갈 인연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나는 새도 날개를 접어야 둥지에 든다’는 명씨의 좌우명처럼 노트에 대한 구상을 차근차근 해왔던 덕분에 근사한 이름의 노트가 탄생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명씨의 색다른 시도는 주변 동료들에게도 영향을 줬습니다. ‘길 위에서 쓴 편지’를 보고 주변 동료 기사들이 따라한 적은 없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명씨는 “똑같이는 아니더라도 손님과 소통하기 위해서 여러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한 후배 기사는 편지 대신 ‘약과’를 선택했다고 하는데요. 매일같이 약과를 사서 바쁜 출근길에 아침 식사를 하지 못한 승객들에게 하나씩 나눠준다고 합니다. 배가 차지 않으면 약과 하나를 더 주고요. 명씨의 노트처럼 후배 기사에게는 약과가 소통의 출발점이 된 겁니다.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한 승객들은 또 얼마나 커다란 행복을 타인에게 안겨 줄까요? "저는 신촌에 사는 15살 중학생이에요. 오늘 이 택시를 타고 아빠 생일 축하 파티를 하러 가요! 아빠는 올해로 만 오십 세가 되셨는데, 아주 동안이세요. 키도 엄청 크고, 다리도 긴 우리 키다리 아버지! 생신 축하드리고 앞으로도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이직할 회사와 계약서 작성 후 집으로 가는 길. 설렘, 두려움도 있지만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나 자신을 다독여 봅니다. 손이 얼어서 글씨는 엉망이지만 택시 안은 따뜻하네요. 2020년은 저에게, 기사님에게, 그리고 이 택시를 이용하시는 모든 분들에게도 좋은 기운을 가져다주기를 희망합니다. 화이팅!" "아빠 병문안 다녀오는 길에 탄 택시에서 이렇게 편지를 쓰네요. 우리 가족 희망 잃지 않고 열심히 기도할게요. 감사합니다!"  "사실 택시가 버스나 지하철 같은 다른 대중교통과는 다르게 아주 사적인 공간을 함께 사용하는 건데 대중교통처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기사님께서 이 노트를 건네주실 때, 그제서야 이 가까운 거리를 실감하게 된 것 같습니다. 말 한 마디, 눈빛만으로도 하루가 행복해질 수 있음을 아시고 이렇게 노트를 건네주신 거죠? 오래간만에 기분 좋은 이동길이 되었습니다. 항상 안전 운행하세요." 이처럼 각각의 사연이 담긴 ‘길 위에서 쓴 편지’는 8개월 만에 세 권의 이야기를 마무리했습니다. 지난달 27일부터 네 번째 이야기를 시작했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편지의 감동을 알리기 위해 출판 준비까지 앞두고 있다고 해요. 편지가 이만큼 쌓였으니 기억에 남는 승객도 많을 텐데요. 명씨는 지난달 중순에 태웠던 20대 초반의 여성을 떠올렸습니다. 송파구에서 SRT를 타기 위해 수서역으로 가는 승객이었습니다. 그는 SNS를 통해 ‘길 위에서 쓴 편지’와 명씨를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꼭 한번 글을 써보고 싶다고도 생각했다는데요. 마침 그날은 오빠들의 산소에 가던 날이었습니다. 그는 얼마 전 병을 앓던 오빠 둘을 하루아침에 잃었다고 해요. 그리운 마음을 위로받고 싶던 날, 우연히 명씨의 택시를 타게 된 겁니다. 승객의 사연을 들은 명씨는 함께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10년 전 아내를 병으로 떠나보낸 기억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오빠를 잃었고 저는 집사람을 잃었어요. 그래서인지 마음이 아팠고, 왈칵 눈물이 터져 나왔어요”라고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그처럼 명씨의 노트를 우연처럼 만나길 고대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노트를 채우기 시작하면서 제가 '울리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다 쓰고 난 뒤 감정이 북받쳐 우는 승객들이 많더라고요." 명씨는 힘들 때 툭 털어놓을 수 있는 익명의 친구가 돼주는 셈이죠. “다른 거 쓰지 말고 자신의 이야기를 쓰세요”라는 그의 말 덕분일까요. 말 그대로 ‘나’의 이야기 혹은 내 이웃의 일상 속 고민이나 사연이 알려지면서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노트가 중요한 매개체가 된 건 사실이지만, 명씨의 ‘공감’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길 위에서 쓴 편지가 이렇게까지 위로가 될 순 없었을 겁니다. “승객은 프로 작가가 아니에요. 순수한 마음으로 솔직하게 쓰더라고요. 그래서 그 글을 읽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음이 더 빨리 와닿는 게 아닐까요.”

해운대서 외국인들 터트린 폭죽 수십발, 시민들 불안에 떨어

부산 해운대에서 미국인으로 추정되는 외국인들이 폭죽 수십발을 터트리는 바람에 불안에 떨던 시민들의 신고가 잇따랐다.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폭죽을 터트리고 달아나던 미군이 출동한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5일 부산경찰청 등에 따르면 4일 오후 7시 50분쯤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인근 번화가인 구남로 일대에 외국인들이 폭죽을 계속해서 터트려 위험하다는 신고가 112에 70여건이 잇따라 접수됐다. 목격자 등에 따르면 외국인들은 건물들이 이어져 있는 번화가에서 하늘로 소형 폭죽을 연달아 쏘아 올렸고, 일부는 시민을 향해 폭죽을 터트리기도 했다. 계속해서 터지는 폭죽 소음도 심했고, 길 바닥에는 쏘고 난 뒤 버린 폭죽이 곳곳에 지저분하게 흩어져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순찰차 6대와 형사 1개 팀이 현장에 출동, 경고 방송을 하고 해산을 시도했지만 일부는 이같은 제지에도 개의치 않고 폭죽을 쏘았다. 경찰 제지를 뿌리치고 시민을 향해 폭죽을 터뜨리고 달아나던 20대 미군 1명은 쫓아간 경찰에 붙잡혔다. 이 과정에서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놀라서 소리를 지르는 등 소동도 벌어졌다. 경찰은 "미국 독립기념일 때문에 이들이 폭죽을 터트린 것으로 안다"면서 "인명  피해 등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해당 미군을 인근 지구대로 임의동행 방식으로 데리고 가 경범죄처벌법 위반(불안감 조성) 혐의를 통보하고 돌려보냈다. 다른 외국인들은 현장에서 자진 해산했다. 

꼼꼼히 읽은
뉴스

이용자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오랜 시간 꼼꼼히 읽은 뉴스를 추천합니다. 하루 두 번 업데이트 됩니다.

지금 뜨고 있는
뉴스

현재 실시간 관심도가 높은 이슈에 해당하는 한국일보 뉴스를 추천합니다.

관심 있을 만한
뉴스

이용자가 바로 전에 읽은 뉴스를 기반으로 관심사를 AI가 분석해 관련 뉴스를 추천합니다.

스토리 &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