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산 오늘의 운세] 2024년 3월 18일

36년 집안의 경사로 흥이 절로 난다. 48년 건강 관리하니 몸 상태 좋아진다. 60년 값진 재물을 얻게 되는 날. 72년 열심히 준비한 끝에 자격증을 얻는다. 84년 노력만 한다면 자신감을 갖게 된다. 96년 생각지 못한 사람을 만난다. 37년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49년 집안의 잔치로 기쁜 날이다. 61년 복되고 영화로워지니 만사가 길하다. 73년 원하는 것을 얻게 되어 기쁨이 가득하다. 85년 새 인연을 만나니 운수대통. 97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하루다. 38년 화를 내면 짜증만 쌓인다. 50년 뜻대로 풀리지 않던 일을 마침내 성취한다. 62년 뜻하지 않은 일이 생기니 고민에 빠진다. 74년 무엇이든 열심히 구하면 얻게 된다. 86년 막혔던 금전운 다시 찾아온다. 98년 막힌 길이 열린다. 39년 귀인이 동쪽과 남쪽에서 찾아온다. 51년 시작한 일 마무리 짓는 날. 63년 재물운이 서서히 움직인다. 75년 마음을 비우고 지내는 게 좋다. 87년 순리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도록 한다. 99년 도움을 주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 40년 몸도 마음도 편안한 하루. 52년 가족과 함께해서 마음이 편하다. 64년 반가운 손님이 서쪽과 북쪽에서 찾아온다. 76년 어수선한 마음이 안정되는 날이다. 88년 일이 속 시원하게 풀린다. 00년 복잡한 머리를 식히도록 한다. 41년 온몸에 힘이 있고 기분이 최고. 53년 소원을 성취하는 날. 65년 착잡했던 마음이 점차 풀린다. 77년 행운이 찾아온 덕에 기쁨을 느끼게 된다. 89년 우울했으나 마음이 다시 안정된다. 01년 운이 도와주니 바쁘게 움직이면 좋다. 42년 몸살감기 신경 쓰도록 한다. 54년 걱정됐던 건강이 호전된다. 66년 새 문서를 얻으니 소원성취. 78년 휴대전화를 보면서 길을 걸으면 다치게 되니 유의. 90년 마음에 드는 사람 소개 받는다. 02년 망설이다가 시간만 흘러간다. 43년 몸살감기 조심. 55년 마음이 답답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것이다. 67년 언행에 신경 쓰도록 한다. 79년 비탈길과 계단을 지날 때 낙상 유의. 91년 다른 때보다 더 바쁜 하루를 보내게 된다. 03년 바라던 소원을 성취한다. 32년 푸른 새 찾아와 소식 전한다. 44년 서두르지 않으면 대길한 날. 56년 단비가 내리니 꽃이 핀다. 68년 하고 싶은 일 하도록 한다. 80년 동쪽과 서쪽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92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33년 근심하거나 염려할 일 없는 날. 45년 매사에 여유 갖도록 한다. 57년 계획이 서서히 성사된다. 69년 꾸준히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 81년 한 번 목표를 정하면 바꾸지 않는 게 좋다. 93년 최선을 다하니 좋은 소식이 찾아온다. 34년 소원을 성취한다. 46년 대접을 받게 돼 어깨춤 춘다. 58년 문서운과 금전운으로 얼굴이 밝다. 70년 좋은 성과를 낸 덕분에 얼굴이 활짝 핀다. 82년 마음을 비우니 기회가 찾아온다. 94년 화를 내기보다는 웃는 것이 좋다. 35년 기쁜 소식을 들어 행복한 날. 47년 귀인의 도움을 받게 된다. 59년 바라는 일이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71년 자신감을 가지고 추진하도록 한다. 83년 약속을 지키지 않은 탓에 운이 약해진다. 95년 답답했던 마음이 이내 풀린다.

[백운산 오늘의 운세] 2024년 3월 17일

36년 몸 상태 좋지 않으니 철저히 관리한다. 48년 손재수 있으니 지갑을 잘 살펴야. 60년 뜻하는 일이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72년 재물운 술술 풀린다. 84년 부족함이 전혀 없는 하루. 96년 가벼운 운동을 하면 몸이 좋아진다. 37년 몸을 조금씩 자주 움직이니 몸이 기뻐한다. 49년 골목길에선 차를 각별히 조심. 61년 보행 시 신호 잘 지켜야. 73년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고민 하게 된다. 85년 눈앞의 일만 생각한다. 97년 어디 가든 중요한 일은 꼭 적어둔다. 38년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50년 욕심 버리고 마음 비우는 게 좋다. 62년 돈의 가치보다 두 배 더 큰 이익 거둔다. 74년 쓸데없는 고민은 하지 않도록. 86년 타인 소개 통해 좋은 인연 만난다. 98년 마음 불안했다가 다시 안정된다. 39년 기다리고 있는 소식은 늦게 오니 마음 비운다. 51년 기쁜 일 생긴다. 63년 욕심 부리지 않으면 운이 도와준다. 75년 함께할 인연 만나는 날. 87년 소원을 성취하고 능률이 오른다. 99년 기쁨이 있다가 곧 근심이 찾아온다. 40년 운이 좋으니 몸도 따라 건강해진다. 52년 병문안은 미루는 게 좋다. 64년 행복 찾아오니 기분 최고. 76년 구설 사라지니 행복 깃든다. 88년 열심히 노력한 만큼 기쁨 찾아온다. 00년 가방 등 소지품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 41년 오랜만에 지인과 함께하게 된다. 53년 가족이 한곳에 모이니 기쁨 넘치는 하루 보낸다. 65년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 받는다. 77년 어딜 가나 운이 따라준다. 89년 바라던 소원 성취하는 날. 01년 집안에 경사수가 있다. 42년 무리한 흥정으로 인해 손해 본다. 54년 꿈자리 좋은 덕분에 기분도 좋다. 66년 바라던 일 성취한다. 78년 꾸준한 노력으로 뜻을 이루는 운. 90년 도중에 주저앉으면 후회하니 최선을 다한다. 02년 친구들과 다툼은 피한다. 43년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법. 55년 간단한 운동 하니 몸이 좋아진다. 67년 마음 비운 덕에 다시 한번 기쁘다. 79년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서는 게 좋다. 91년 최선을 다해야 하는 시기. 03년 남의 바둑에 훈수 두지 않도록 한다. 32년 지나친 친절이 불씨가 된다. 44년 실망부터 하면 일을 그르친다. 56년 포기하고 있던 일이 뒤늦게 성사된다. 68년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 80년 소망하던 일이 오후에 이뤄진다. 92년 일에 적극적으로 정신을 쏟도록 한다. 33년 가족과 의견 충돌하니 고민 생긴다. 45년 매매 성사로 기쁨이 찾아온다. 57년 마음 답답했다가 다시 좋아진다. 69년 짜증 부리면 운이 도망간다. 81년 운 들어오니 최선을 다한다. 93년 마음이 즐거우니 항상 평화롭게 지낸다. 34년 마음 비우니 비로소 후련해진다. 46년 명의 만나기 어려운 날. 58년 불안하던 마음이 안정된다. 70년 어려움을 겪은 뒤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82년 마음을 비우고 편하게 생각하도록 한다. 94년 벗을 만나니 즐거운 하루다. 35년 어려움이 다가오다가 이내 사라진다. 47년 꺼진 불도 다시 확인해야 한다. 59년 또 다른 일에 새롭게 도전한다. 71년 운기 상승하니 만사형통. 83년 확실히 알아보고 결정해야 한다. 95년 온화한 봄날처럼 마음도 평화롭다.

화학조미료 범벅에 소다면...짜장면의 쇠락은 '화교 차별'에서 시작됐다

자못 놀라운 반응이었다. 이달 1일 자 한국일보에 실린 스타벅스 역사에 대한 글('25년 만에 짜장면보다 싸진 스타벅스 커피...이래도 '된장녀'라고 모독합니까?') 이야기다. 네이버 기준 평소 100배에 이르는 댓글이 달렸다. 그런 가운데 "왜 커피와 짜장면을 비교하느냐"는 항의 덧글이 상당히 눈에 띄었다. 커피는 음료, 짜장면은 음식인데 이 둘을 비교하는 것이 의미가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아, 요즘 짜장면의 입지가 이렇구나. 그 글에서 짜장면이 등장한 이유는 음식의 대표이기 때문이었다. 건물이나 부지 면적을 설명할 때 '축구장의 몇 배'라고 설명하는 것과 어느 정도 결이 비슷하다. 아니면 같은 음식으로는 '빅맥 지수'도 있다. 맥도날드 햄버거 빅맥의 가격을 기준으로 세계 각 도시의 물가를 비교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이는 짜장면이 오랜 세월 대중 음식의 대표 취급을 받아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짜장면은 외래 음식으로는 유일하게 한국의 100대 문화 상징에 속하며(2006년 선정), 정부의 물가 중점관리품목이다. 요즘의 가파른 생활 물가 상승을 짜장면 가격의 급변으로 설명하는 뉴스를 제법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물가정보 공개 자료에 따르면, 1970년 100원이었던 짜장면 한 그릇이 2023년 4월 기준 6,361원이다. 50여 년 세월의 변화가 쉽게 와닿지 않는다면 5년 전의 기준을 참고하면 된다. 2018년에는 짜장면 한 그릇 가격이 5,011원이었다. 5년 사이 20% 이상 훌쩍 오른 셈인데, 2011년에는 4,220원이었으니 최근의 물가 상승이 상당히 가팔랐음을 알 수 있다. 각 재료별로 살펴보면 훨씬 더 극적이다. 2018년 대비 밀가루 가격은 46.9%, 양파는 166.7%, 오이는 무려 275.0% 올랐다. 이처럼 짜장면으로 우리의 식생활 물가를 볼 수 있기에 스타벅스 커피도 등장 당시부터 '밥보다 비싼 커피'로 본의 아니게 비교를 당한 것이다. 그렇기에 역사의 단편이라는 차원에서 이야기를 꺼냈는데 많은 이들에게 와닿지 않은 것 같았다. 결국 이는 짜장면의 입지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민 음식으로서 만족스러운 한 끼였던 짜장면의 시대가 슬프게도 지나가 버렸다. 2005년 인천 차이나타운에서는 '짜장면 100주년 기념 축제'가 열렸다. 내년이면 짜장면 탄생 120주년을 맞는다. 근현대 한국의 역사가 온갖 침탈과 분단, 파괴 등으로 얼룩진 가운데 120년의 명맥을 유지하는 음식이 있다는 사실은 출신을 떠나 매우 놀랍고 의미 있는 일이다. 그만큼 짜장면 한 그릇에는 역사적 의미가 담겨 있다. 잘 알려져 있듯 중국에는 짜장면이 없다. 말아 먹다시피 소스가 풍성한 형식의 짜장면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산둥 지방에는 우리가 흔히 춘장이라 일컫는, 밀로 만들어 단맛이 나는 첨면장을 되직하게 볶은 소스의 자장몐(炸醬麵)이 있다. 마치 이탈리아 파스타 소스의 라구와 흡사하게 되직한 소스를 면에 일곱 가지 채소와 함께 버무려 먹는다. 1882년 임오군란을 거쳐 1884년 인천에 청국조계가 설정되면서 화교들이 본격적으로 정착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산둥 출신이었다. 한국, 특히 인천과 그리 멀지 않기도 했지만 정치적인 불안정, 홍수 등으로 인한 식량난 등에 시달리며 생활이 궁핍했다. 그런 가운데 일제 강점기의 한국에서는 광산 개발, 도로·철도·항만 건설 등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었으니, 산둥 사람들이 대거 건너와 정착하게 되었다. 산둥 화교들은 쿨리(苦力), 즉 하역 인부이거나 인력거꾼, 짐꾼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바쁜 이들에게 끼니는 소중하면서도 간단해야만 하는 것이었으니 고향의 음식인 '자장몐'을 많이 먹었다. 손으로 쳐 뽑은 수타면에 앞서 언급한 볶은 첨면장을 비벼 얹은 면 음식이었다. 그런 자장몐이 1905년, 공화춘에서 짜장면으로 처음 팔렸다고 지금까지 알려져 있다. 공화춘은 역시 산둥 출신인 우희광이 세운 음식점 겸 여관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 '산동회관'이었으나 1911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지자 '공화국의 봄'이라는 의미의 공화춘으로 상호를 바꿨다고 한다. 공화춘은 중화루, 동흥루와 더불어 당시 조선으로 건너온 부유한 청나라인들이 차렸던 인천의 3대 '청요릿집'으로 알려져 있다. 우희광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1984년까지 운영했으며 2006년 문화재청이 '근대문화유산 246호'로 등록했다. 한국에서 짜장면이 저변을 넓힐 수 있었던 건 사실 차별 정책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에 활발히 경제 활동을 한 화교의 입지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세워지면서 대폭 좁아졌다. 한국전쟁에서 대적했던 중국도 중국 국민의 한국 진출을 금지했다. 이래저래 떠나기도 머물기도 어려워진 화교들의 처지를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이 한층 더 압박했다. 살기 어려워진 화교들은 상당수 한국을 떠났다. 해방 전까지만 하더라도 10만 명 가까이 되었지만 1970년대를 지나면서 2만 명대로 줄었다. 이들 대부분은 어떤 경제 활동도 제대로 할 길이 막히자 생존을 위해 본의 아니게 요리를 선택했다. 큰 자본 없이 또한 가족끼리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화교 가운데 요식업계 종사자 비율은 1949년 40.3%에서 1972년 77%까지 늘었다. 짜장면이 우리에게 익숙한 형식으로 자리를 잡은 건 한국전쟁 이후이다. 소스의 양이 많아지면서 향신료가 빠졌고 핵심인 첨면장 혹은 춘장은 캐러멜을 첨가해 색이 까맣게 진해졌다. 이런 변화를 통해 짜장면의 소스는 미리 끓여 놓아도 되는 요소로 자리를 잡았으니, 어떻게 보면 짜장면의 패스트푸드화가 완성될 수 있었다. 덕분에 한국식 짜장면을 파는 중국집도 빠르게 늘어났다. 1948년에 전국 332곳에서 1972년에는 4,000여 곳에 이르렀다. 그렇게 짜장면은 최고의 외식이자 기념일의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경사가 있으면 가장 손쉽고도 또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짜장면은 전성기를 누렸다. 1960~1970년대의 혼분식 장려 운동도 짜장면의 활황에 영향을 미쳤다. 짜장면이 인기를 누리다 보니 정부에서 견제에 나서기 시작했다. 온 국민이 즐겨 먹는 음식이므로 가격을 마음대로 올리면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1960년대부터 관리에 나섰으니, 짜장면 가격을 임의로 올린 음식점에 세금을 많이 물리거나 위생검사를 까다롭게 하기도 했다. 그 탓에 1950년대 후반만 해도 설렁탕 두 그릇 값이었던 짜장면 가격이 1970년대에는 반 그릇 값으로 떨어졌다. 이런 관리 정책이 오랜 세월 동안 짜장면의 발목을 잡아 궁극적으로 한국식 중식의 쇠락까지 영향을 미쳤다. 서민 음식의 울타리 안에 현실은 물론 정서적으로 갇혀 있는 것이다. 짜장면을 비롯한 '식사'류를 포함해 실로 다양한 한국식 중식 요리들이 외식 문화를 주름 잡기도 했는데, 물가와 인건비가 오르는 만큼 품질의 향상을 꾀할 수 없었기에 세월이 흐르며 상대적으로 품질이 낮아졌고 결국 외면당하게 됐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햄버거와 피자를 비롯한 미국식 패스트푸드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짜장면의 지분이 줄었다. 게다가 중식 안에서도 동북식을 비롯한 '진짜' 중식(전통 중식 요리사들은 "짜장면 하지 않습니다!"라고 선언하곤 했다)이며 마라탕, 양꼬치 등으로 결이 훨씬 더 다양해졌다. 그리고 이 모든 음식을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한 배달 서비스를 통해 편하게 먹을 수 있게 되면서 원조 배달 음식이었던 짜장면의 입지가 되레 약해졌다. 그렇게 짜장면의 시대는 저물었다. 대부분의 짜장면은 한 끼 때우기에도 아까운 화학조미료 범벅의 소스에 배달에 버티도록 고무줄처럼 질겨진 소다면의 서글픈 조합이다. 그나마 아직도 짜장면을 제대로 낸다는 곳은 현재 불을 쥐고 있는 요리사가 은퇴하면 맥이 끊길 게 뻔한 오래된 곳들이다. 그런 가운데 2011년 8월 21일 '짜장면'이 '자장면'과 더불어 복수 표준어로 인정되었다는 게 드문 호사이다. 너무 늦은, 짜장면에는 상처뿐인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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