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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살아야, 지방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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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나는 솔로’, ‘환승연애’ 같은 공개 연애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으면서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이를 모방한 짝짓기 이벤트를 앞다퉈 선보이고 있다. 올해 미혼 남녀 미팅 이벤트를 준비한 지자체가 50곳이 넘는다고 한다. 대체로 저출생 대책 차원 이벤트다. 저출생 문제를 미팅으로 해결하겠다는 발상이 얄팍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다급하면 이런 아이디어까지 짜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이벤트에서조차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에는 넘기 힘든 장벽이 있다. 서울시는 다음 주 반포한강공원에서 미혼 남녀 100명을 모아 ‘설렘, in 한강’이라는 대규모 미팅행사를 열 예정인데 남녀 신청자 비율은 51대 49(3,286명 신청)였다고 한다. 1대 1 매칭이 된다. 반면 지방 사정은 딴판이다. 여성 지원자를 구하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다. 경향신문 기사에 따르면 지난해 충북 단양군에서 남녀 만남 행사를 열기 위해 수요조사를 해보니 남성 지원자가 18명, 여성은 2명이었다고 한다. 재작년에는 전남 해남군 보건소가 비슷한 행사를 열었는데 여성 참가자 15명 중 8명이 보건소 직원이었다고 한다. 행사를 위해 주최 측이 사실상 여성 참가자를 차출한 것이다. 엄밀한 통계는 아니지만 지방에서 젊은 여성이 얼마나 희소한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라 하겠다.
일본 인구학자 마스다 히로야가 소개한 뒤 우리 정부도 활용하고 있는 ‘소멸위험지수’ 지표를 봐도 그렇다. 이는 20~39세 여성을 만 65세 이상 인구로 나누어 나오는 숫자로, 숫자가 작을수록 소멸 위험도가 높다. 결국 지방의 사활은 젊은 여성이 그곳에서 잘 살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는 셈이다. 지방에서 유출돼 서울로 이주하는 청년 집단의 주력이 20대 남성이 아니라 20대 여성이라는 통계는 새삼스럽지도 않다.
농어촌은 말할 것도 없고 그나마 경제력을 갖춘 지방 대도시의 사정도 별로 다르지 않다. 왜 젊은 여성들은 이곳을 떠나려 할까. 가령 20년 가까이 지역내총생산(GRDP) 기준 전국 1위를 지켜온 울산의 산업생태계를 연구한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의 분석(‘울산 디스토피아’)은 실마리가 될 법하다. 핵심은 일자리 문제다. 우선 돈을 가장 많이 벌 수 있는 대공장 생산직에 여성이 희소하다. 근력이 필요한 조선소는 어쩔 수 없다 해도 자동화된 자동차 제조업에서도 여성 생산직은 5% 남짓이다. 서비스업이 고도화되지 않아 임금이 낮은데 울산 여성의 83%가 서비스 직종에서 일한다. 또한 젊은 여성들이 선호하는 전문직과 사무직 일자리는 부족하다. 여성의 학력은 남성과 동등하거나 우월해졌지만 ‘커리어 우먼’을 기대하는 젊은 여성의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가 부족한 것이다. 중후장대 산업도시라는 울산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상황은 심각하고 미래는 회색빛이다. 울산뿐인가. 부동의 우리나라 2대 도시였던 부산(327만 명) 역시 젊은 여성의 유출로 광역시 중 처음으로 소멸위험지역에 들어섰다. 이 추세라면 부산 인구가 인천(302만 명)에 역전되는 건 시간문제다.
지역 소멸위기, 지역 불균형 발전, 인구절벽까지 서로 맞물려 있는 국가적 대(大)과제를 해결하는 단초는 지방을 여성친화적으로 만드는 일이다. 남성이 지배하는 괜찮은 일자리를 나누는 일이건, 서비스업 고도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건 젊은 여성이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야 할 터이다. 지역사회의 안전확보, 가족친화적 돌봄환경 조성, 보육인프라 지원과 같은 정책에 획기적인 예산 투입이 이뤄져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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