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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볜 조선족이 ‘황해’ 보고 “우리 동포냐” 했던 김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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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들이 잘 아는 배우의 덜 알려진 면모와 연기 세계를 주관적인 시선으로 전합니다.
“옌볜 분들(조선족)이 영화 ‘황해’(2010) 속 김윤석 선배를 보고선 장률 감독님에게 ‘저 사람 우리 동포야’라고 물었답니다. 전 그렇게 연기할 정도의 재능은 없어요.”
지난달 28일 전북 전주시 한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배우 겸 가수 겸 미술가인 백현진이 한 말이다. 자신은 출연 제안을 받으면 “(특정) 지역 분을 속일 만큼 지역 말을 못 써 서울말만 쓰는 걸 조건으로 내건다”면서 배우 김윤석을 소환했다. 백현진은 재중동포 장률 감독이 연출한 ‘경주’(2013)와 ‘필름시대사랑’(2015), ‘춘몽’(2016) 등에 출연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백현진이 전주국제영화제 객원프로그래머로 일하게 돼 열렸다. 전주영화제도 장 감독도 딱히 관련이 없는 김윤석으로선 ‘의문의 1승’을 한 셈이다. 김윤석의 연기력을 방증하는 에피소드 아닐까.
대중은 송강호와 황정민을 두고 누가 국내에서 연기를 가장 잘하냐를 다투고는 한다. 김윤석은 두 배우 못지않은 연기력을 자랑하는 배우다. 그가 ‘황해’에서 옌볜 사투리로 “벌거지 같은 새히들이… 내 누귀인제 아으지? 내 면가다”라고 할 때 스크린은 얼어붙는다. 면가가 말없이 돼지 다리뼈로 사람을 가격할 때는 살벌과 공포라는 두 단어만이 머리를 지배한다. 사람들이 송강호와 황정민을 입에 올리면서도 김윤석을 잘 떠올리지 않는 건 친근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송강호와 황정민이 코믹한 캐릭터를 여러 번 소화하며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선 반면 김윤석은 주로 악인을 맡아 연기력을 드러냈으니까.
김윤석은 연극 무대에 오래 있었다. 부산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1990년대 초반 서울 대학로로 옮겨 유명 극단 연우무대에서 연기를 했다. 연우무대에 함께 몸담았던 동갑내기 송강호가 일찌감치 영화 쪽으로 옮겨간 반면 김윤석은 2000년대 들어서야 카메라 앞에 섰다. ‘범죄의 재구성’(2004)에서 은행털이범들을 쫓는 이 형사로, ‘천하장사 마돈나’(2006)에서 주인공 동구(류덕환)의 폭력적인 아버지를 연기해 눈길을 잡았다.
김윤석의 얼굴과 이름을 대중에 널리 알린 건 2006년 방송된 드라마 ‘있을 때 잘해’와 같은 해 개봉한 영화 ‘타짜’다. ‘있을 때 잘해’는 MBC 아침드라마 최초로 시청률 20%를 돌파할 정도로 시청자들을 열광시켰다. 그는 불륜으로 이혼한 후 전 아내의 남자 교제를 방해하는 악인 하동규를 연기했다. 당시 인터뷰를 위해 만난 김윤석이 “뼛속 깊이 악인으로 자신이 나쁜 사람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인물이라 여기며 연기한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타짜’의 아귀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유명 캐릭터다. 진한 선글라스와 쇳소리 웃음, 살기 어린 대사만으로도 조연이었던 김윤석을 주연급으로 격상시켰다.
김윤석은 진지하거나 어둡거나 근엄하거나 무서운 역할만 했을 듯하나 코믹 연기에도 능하다. ‘거북이 달린다’(2009)에서 범인에게 망신을 당해 복수를 다짐하는 형사 조필성을 맡아 소박한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모가디슈’(2021)에서 한신성(김윤석)이 “사람이 되기 전 외교관이 되어서 그래” “양손 다 씁니다. 왼손만 쓰면 좌파라고 해서“라고 말할 때 관객들은 엷은 미소를 짓게 된다.
스크린 밖 김윤석은 직설적이고 활달하면서도 섬세하고 의외로 다감하다. 10여 년 전 만났을 때 아이가 초등학교 다닌다면서 그가 한 말은 “그 조그만 한 것이 무거운 가방 메고 학교 가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다”였다. ‘부산 사나이’라는 이미지에 가까운 듯하면서도 거리가 있다. 부산 사나이라는 말 앞에 로맨틱이나 순정한 같은 수식어를 붙여야 그를 온전히 표현할 수 있을 듯하다.
김윤석은 촬영을 오래전 마치고도 개봉하지 못한 영화가 2편이다. ‘바이러스’와 ‘노량: 죽음의 바다’다.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 중 마지막 영화인 ‘노량: 죽음의 바다’는 김윤석의 연기 이력에서 또 다른 변곡점이 될 듯하다. 그는 노량해전에서 최후를 맞는 이순신 장군을 연기했다. 장엄이라는 단어로 압축될 영화에서 그는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고 마음을 흔들어 놓을까.<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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