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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는 사적 공간" 62%···주요 시설 외부 개방에 부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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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는 한국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를 넘어, 한국 도시 공간을 상징하는 거대한 생활 공동체로 자리 잡았다. 최근 아파트 가격 상승, 보안 시설의 강화, 첨단 관리 시스템 도입 등으로 아파트 단지가 지역사회와 더욱 멀어지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러한 아파트의 폐쇄적 성격이 도시 공동체를 해체시킨다는 비판이 제기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아파트가 거주민의 재산권과 안전을 지켜준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는다.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팀은 지난 8월 23~26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아파트 단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단지 내 시설 개방에 대한 생각을 확인하는 여론조사를 진행했다. 이번 조사는 아파트 단지의 정체성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확인하고 향후 아파트 단지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실마리를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아파트 단지의 정체성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사적 공간이냐, 공적 공간이냐’이다. 아파트 단지 내 주요 시설을 입주민들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관리한다는 점에서 보면, 아파트 단지는 사적 재산의 연장선에 있는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도시 계획하에 건설되기에 아파트 단지는 필연적으로 지역 사회와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으며 치안과 소방 등 공공 서비스도 제공받기 때문에 아파트 단지가 일정 부분 공적 공간의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납득할 만하다.
사람들의 생각을 확인해 보면, 아파트 단지를 사적 공간으로 보는 인식이 우세하다. ‘입주민이 비용을 지불하고, 소유와 관리 권한을 가진 사적 공간’으로 보는 사람이 62%로, ‘도시 기반 시설의 일부이며 지역 사회에 영향을 주는 공적 공간’으로 보는 사람(33%)보다 두 배 가까이 많다.
특히 2019년 이후 지어진 신축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 중에서는 77%가 아파트 단지를 ‘사적 공간’이라고 본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는 현재 아파트에 거주하지 않는 사람(56%)은 물론, 2018년 이전 지어진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65%)보다도 높은 것이다. 2019년은 아파트 가격이 급등해 아파트의 자산가치가 크게 높아지던 시점이다. 또한 최신식 보안 시설과 관리 시스템의 도입으로 아파트 입주민과 외부인과의 교류가 더욱 효과적으로 제한됨에 따라 아파트 단지를 사적 공간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강화시킨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아파트 단지를 사적 공간으로 보는 인식이 우세한 가운데, 아파트 단지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를 확인해보았다. 공간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그 공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의 우선순위와 밀접하게 연관되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 중 절반 이상이 ‘아파트 단지가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가치’라고 평가한 항목은 ‘주거비 절감 및 경제성 향상(56%)’과 ‘입주민 안전을 위한 보안 강화(55%)’이다. 세대와 성별, 아파트 거주 여부 등과 관계없이 경제성과 안전은 최우선 가치로 언급됐다.
경제성과 안전 다음으로는 ‘환경 친화적이고 지속 가능한 주거환경 조성(43%)’과 ‘다양한 세대와 계층이 함께 살아가는 주거 환경 조성(31%)’이 뒤를 잇는다. 반면 ‘문화·여가 기능을 접목한 복합생활공간으로 변화(24%)’, ‘첨단기술을 활용한 편리한 주거환경 구현(24%)’, ‘지역사회와의 연계 강화 및 시설 개방(22%)’, ‘주민 간 교류와 소통을 증진하는 공동체 문화 형성(21%)’을 아파트 단지의 최우선 가치라고 평가하는 사람은 4~5명 중 1명 정도로 적다.
아파트 단지를 사적 공간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경제성과 안전성을 중시하는 가치 판단에도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지역사회와의 연계 및 공동체 문화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아파트 단지가 발전해야 한다는 인식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아파트 단지를 사적 공간으로 인식한다는 점, 경제성과 안전성을 아파트 단지의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는 점은 단지 내 시설 이용에 대한 태도에서 보다 또렷하게 드러난다. 단지 내 시설 개방은 경제성(시설 유지보수 비용 증가), 안전성(외부인의 출입으로 사건·사고 발생 가능성 증가)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주차장, 전기차 충전시설, 실내외 운동시설, 실내외 어린이시설, 경로당, 작은도서관, 커뮤니티 시설, 단지 내 산책로 및 쉼터, 재활용 분리수거장 등 주요 아파트 단지 내 시설 11개를 제시하고, 각각의 이용 자격에 대해 물었다. 아파트 거주자 이외 사람들에게 완전 개방할 수 있다는 응답이 가장 많이 나온 시설은 단지 내 산책로 및 쉼터(외부인 누구나 이용 가능 35%)와 실외 어린이 놀이터(32%)인데, 이마저도 3명 중 1명 정도만이 시설 완전 개방에 동의하는 수준이다. 주차장(3%) 전기차 충전시설(5%) 실내 운동시설(6%)처럼 공간이 제한되어 있거나 입주민이 비용을 부담해 관리하는 공간을 완전 개방하는 데 동의하는 사람은 소수이며, 경로당(15%), 독서실·회의실과 같은 커뮤니티 시설(9%)처럼 공동체 형성과 교류의 성격이 강한 시설도 완전 개방에 동의하는 사람은 5명 중 1명이 채 되지 않는다.
흥미로운 점은 아파트 단지 내 시설을 완전히 독점적으로 사용하기보다는 통제가 가능한 상황이나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상황처럼 조건에 따라 개방을 허용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각 시설의 완전 개방에 반대하는 사람에게 ‘입주민 방문자 및 관리사무소 허가를 얻은 경우’ 시설 이용을 허용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 결과, 단지 내 시설 11개 모두에 대해 개방할 수 있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 완전 개방과 비교할 때,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시설은 주차장(완전 개방 3% → 방문자·허가자 개방 72%), 커뮤니티 시설(9% → 72%), 실내 운동 시설(6% → 68%), 실내 어린이 시설(13% → 74%) 등이다.
‘입주민 이용이 덜한 시간대’에 한해 시설을 개방하는 것에도 다수가 동의한다. 주차장과 전기차 충전시설, 재활용 분리수거장을 제외한 시설에 대해 입주민 이용이 덜한 시간대에 외부인에게 개방할 수 있다는 의견이 절반을 넘었다. 특히 실외 운동시설(완전 개방 14% → 입주민 이용 덜한 시간대 개방 62%), 커뮤니티 시설(9% → 56%), 실내 운동시설(6% → 50%) 등에서 개방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높아졌다.
‘이용료 징수’라는 금전적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조건에서도 시설 개방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확인된다. 주차장과 전기차 충전시설, 재활용 분리수거장은 이용료를 받는다 해도 외부인에게 개방할 수 없다는 의견이 절반을 넘었지만, 나머지 시설에 대해서는 이용료를 받을 수 있다면 개방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이 과반이다. 실내 운동 시설(완전 개방 6% → 이용료 징수 시 개방 61%), 커뮤니티 시설(9% → 63%), 실외 운동시설(14% → 68%)에서 특히 인식 변화가 크다.
이번 조사 결과를 통해 아파트 단지의 공공성 구현을 위한 현실적인 해법을 얻을 수 있다. 시설을 조건 없이 완전히 개방하는 것에는 대부분 부정적이지만, 통제된 조건에서는 시설 개방 수용도가 높아진다. 특히 주차장, 실내 운동시설, 커뮤니티 시설 등 주요 도시기반 시설에서 인식 변화가 두드러진다.
아파트 단지는 사적 재산인 동시에 도시의 일부로 기능하는 복합적 성격의 공간이다. '통제된 개방', '선별적 개방'이라는 중간적 해법은 사적 공간으로서의 가치(안전, 경제성)를 지키면서도, 도시 기반 시설로서의 공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한다. 이는 향후 아파트 단지 공공성 강화 정책의 구체적인 실행 방향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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