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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 2월 4일 함석헌 사망, 민중 곁에서 민중 위해 산 '싸우는 평화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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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DB 속 그날의 이야기. 1954년 6월 9일부터 오늘날까지, 한국일보 신문과 자료 사진을 통해 '과거의 오늘'을 돌아봅니다.
1989년 2월 4일 새벽 함석헌 선생이 8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격동의 시대를 행동하는 지성인으로 살아온 고인은 '한국의 간디', '싸우는 평화주의자'로 불렸다. 한복과 고무신, 월남하던 해 수염을 깎지 못한 게 연유가 되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기른 백발의 수염은 그의 상징이었다.
(※ 1989년 2월 5일 자 한국일보 지면 보러 가기 ☞ www.hankookilbo.com/paoin?SearchDate=19890205 링크가 열리지 않으면 주소창에 URL을 넣으시면 됩니다.)
1901년 3월 13일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난 함석헌은 개신교 장로였던 부친의 영향을 받아 일찍부터 기독교식 교육을 받았다. 일제시대에는 조국광복을 위해 항거, 두 차례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광복 이후에는 독재정권에 맞서 탄압받는 민중의 의식을 깨우치는 데 심혈을 쏟았다.
당시 한국인으로는 드물게 노벨평화상 후보로 두 차례나 추천되기도 했으며, '뜻으로 본 한국역사' 등 20여 권이 넘는 저서를 남겼다.
함석헌은 전쟁을 거부하며 특히 핵무장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반대운동을 전개한 세계주의자이기도 했다. 그는 언제나 '비폭력 민주화투쟁만이 가장 확실한 민주화의 길'이라고 외쳐 한국의 간디로 비유되고 했다.
그가 우리 현대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사상계와 관계를 맺으면서였다. 고 장준하 선생이 간행하던 사상계 1956년 1월호에 '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 당시 종교계는 물론 사회전반에 큰 충격을 주었다. 1958년 사상계에 발표한 에세이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에서는 "나라의 주인은 고기를 바치다 바치다 길거리에 쓰러지는 민중이지 벼슬아치가 아니다. 구원은 땅에 쓰러져도 제 거름이 되고 제 종자가 되어 돋아나는 씨알에 있다"고 선언했다. 당시 글을 통해 이승만 정부의 독재를 비판했던 함석헌은 투옥의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는 종교와 교회의 타락상뿐 아니라 정치·사회·교육·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양심의 소리'를 외쳤다. 사회정의와 민족정기를 바로잡기 위한 그의 외침은 한일협정반대단식, 삼선개헌반대운동을 거쳐 민주회복국민회의에 참여, 국민투표반대운동을 벌이는 과정에서도 멈춤이 없었다. 그는 늘 독재정권의 맞은편에 서 있었다. 1976년에는 3·1민주구국선언에 참여하여 군법회의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함석헌은 씨알을 스승 유영모로부터 배웠다. 씨알이란 말은 유영모가 '대학(大學)'에 나오는 '민(民)'을 '씨알'로 번역한 것에서 비롯됐다. 씨알에는 '하나님의 씨(아들)'와 '민'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유영모가 전자를 주목했다면, 함석헌은 후자를 중시했다.
함석헌은 1970년 4월 19일 '씨알의 소리'라는 잡지를 창간했다. '씨알의 소리'는 그의 사상과 실천의 결합체였다. 그러나 제2호를 내고는 등록 취소처분을 받았다. 13개월간에 걸친 법정투쟁을 통해 대법원에서 승소판결을 얻었고, 1971년 8월에 제3호를 냈다. 정부의 인가 취소로 1년간 법정투쟁 끝에 다시 햇빛을 본 '씨알의 소리'는 군사반란을 통해 집권한 5공화국이 출범하며 1980년 7월에 폐간됐다.
1988년 12월에 통권 96호로써 복간호가 나왔을 때 그는 '저들은 씨알을 칼로 자르면 쉽게 죽을 줄 알았겠지만 씨알은 죽지 않습니다. 죽는 법 없습니다. 죽이면 죽은 것 같으나 다시 살고 다 죽어 없어졌다가도 굳은 땅껍질을 들추고 일어나는 들풀 같은 씨알입니다'라는 마지막 '씨알에게 보내는 편지'를 병석에서 썼다. 그가 그렇게 아끼고 사랑했던 '씨알의 소리'는 현재 '함석헌기념사업회'에서 발행(연 6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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