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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미국 포크 음악의 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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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 40년대 노동운동가 겸 정치인으로 미국 공산당 당대표를 지낸 얼 브라우더(Earl Browder, 1891~1973)는 스탈린에 의해 수정주의자로 몰려 당에서 제명된 뒤 FBI와 KGB로부터 동시에 사찰당한 드문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공산주의는 20세기의 미국주의”라는 슬로건을 남겼다. 포크 싱어 리 헤이스(Lee Hays)와 피터 시거(Pete Seeger)가 1940년 결성해 우디 거스리 등을 배출한 ‘알마낙 싱어즈(Almanac Singers)’는 브라우더의 ‘미국주의’에 동조하며 노동권과 반전-반파시즘을 노래로 전파한 포크 그룹이다. 미국이 2차대전에 참전하면서 해산했던 그룹은 1948년 4인조 그룹 ‘더 위버스(The Weavers)‘로 부활했다. 1844년 슐레지엔 직공 봉기를 소재로 한 게르하르트 하웁트만의 연극(The Weavers, 1892)에서 이름을 따왔지만, 그들의 노래는 알마낙 시절보다 덜 정치적이었고 대중적이었다. 전후 ‘미국주의’는 반공이었다.
위버스는 1950년 노래 ‘굿나이트 아이린(Goodnight Irene)’으로 13주 방송 1위를 차지하는 등 전후 포크 부흥의 선봉에 섰다. ‘Midnight Special’ 등이 수록된 음반 수백만 장을 판매하기도 했다. 혹자는 50년대의 위버스가 없었다면 60, 70년대의 밥 딜런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위버스도 탄압받았다. 가수들은 하원 비미위원회에 소환당했고 녹음 계약이 무산되거나 공연장 예약이 취소되곤 했다. 위버스는 52년 해산했다가 55년 다시 결성됐지만 64년 두 번째 해산의 시련을 맞이했다. 62년 1월 2일 방송사 NBC는 출연을 앞둔 위버스에게 공산당을 부정하는 성명서에 서명하라고 종용했다. 멤버들은 거부했고 출연도 거부됐다. ‘매카시즘’의 조지프 매카시(1908~1957)가 죽은 지 5년이나 지난 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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