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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촬영한다고 세계유산에 못질? KBS 병산서원 훼손 논란

입력
2025.01.02 19:0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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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태프, 등 설치하려 나무 기둥에 못질"
안동시 "원상복구 요청 및 대책 마련 예정"

지난달 30일 경북 안동 병산서원 인근에 주차된 촬영 차량(왼쪽 사진)과 드라마 스태프들이 서원에 무언가를 설치 중인 것으로 추정되는 장면(오른쪽 사진). 민서홍 건축가 SNS 캡처

지난달 30일 경북 안동 병산서원 인근에 주차된 촬영 차량(왼쪽 사진)과 드라마 스태프들이 서원에 무언가를 설치 중인 것으로 추정되는 장면(오른쪽 사진). 민서홍 건축가 SNS 캡처

KBS 드라마 제작진이 촬영 준비 과정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경북 안동 병산서원을 일부 훼손했다는 목격담이 나왔다.

건축가 민서홍씨는 지난달 30일 병산서원을 들렀다가 문화재 훼손 장면을 목격했다는 글을 2일 페이스북에 게재했다. 민씨에 따르면 당시 서원 주차장 인근에는 KBS 드라마 촬영 차량 약 7대의 버스와 트럭들이 세워져 있었다.

서원 내부로 들어선 민씨는 몇몇 스태프가 등을 달기 위해 나무 기둥에 못을 박는 장면을 목격했다. 둘러보니 이미 만대루 기둥에 꽤 많은 등이 매달려 있었다. 그는 "나이가 지긋하신 중년의 신사분이 스태프에게 항의하고 있었고, (나도) 가만 보고 있을 수 없어 '문화재를 그렇게 훼손해도 되느냐'며 거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작업을 진행하고 있던 스태프는 귀찮다는 듯, '이미 안동시의 허가를 받았다'며 '궁금하시면 시청에 문의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등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성을 내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민씨가 안동시청 문화유산과에 연락하자, 담당 공무원은 촬영 허가를 내준 사실이 있다고 답했다. "'드라마 스태프가 나무 기둥에다 못을 박고 있는데 이 사실은 알고 있느냐'고 따져 묻자, 그제야 당황한 공무원은 '당장 철거 지시하겠다'고 대답했다"고 민씨는 전했다.

민씨는 "(주변에 도움을 구하던 중) 이런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특히 근대 유적지에서는 촬영을 목적으로 기둥이나 벽을 해체까지 하는 경우가 있다는 더욱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못 좀 박는 게 대수냐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한옥 살림집에서도 못 하나 박으려면 상당히 주저하게 되는데 문화재의 경우라면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며 "더욱이 공영방송 KBS의 드라마 촬영과정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 개탄스럽다"고 지적했다.

안동시 "KBS에 원상복구 요청"

병산서원 입교당 대청마루에서 한 가족이 무더위 속에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병산서원 입교당 대청마루에서 한 가족이 무더위 속에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병산서원은 도산서원과 함께 안동을 대표하는 서원으로 1978년 사적 제260호로 지정됐다. 2010년 병산서원을 포함한 하회마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2019년엔 '한국의 서원' 9곳 중 하나에 올랐다.

안동시와 병산서원 측은 지난달 30일 오후 4시 상황을 파악하고 KBS 제작진에 원상복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안동시 문화유산과 관계자는 "촬영 허가는 했으나 문화재에 어떠한 설치를 한다는 건 협의가 이뤄진 바가 없다"며 "촬영 허가 조건으로 문화유산에 훼손 행위를 금한다고 명시했다"고 설명했다. 안동시에 따르면, 이날 오후 담당 팀장 등이 현장을 방문해 훼손 상황을 점검했고 재발방지대책도 마련할 예정이다.

국가유산 훼손 논란이 커지자 KBS 측은 사과 입장문을 발표했다. KBS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현재 정확한 사태 파악과 복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논의 중에 있다"며 "드라마 촬영과 관련한 이 모든 사태에 대해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했다. 당시 촬영 중이던 드라마는 KBS 2TV에서 방영 예정인 '남주의 첫날밤을 가져버렸다'로 배우 서현과 옥택연이 주연을 맡았다.


오세운 기자
안동= 정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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