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꿈 속에 먼저 찾아온 내 고양이가 하고 싶었던 말

입력
2022.07.03 10:00
수정
2022.07.04 10:16

유기동물 입양?
첫 번째 준비, 한 생명을 지켜줄 책임감을 두둑이 챙겨주세요.
두 번째 준비, 작고 어린 동물을 원하나요? 나이는 많지만 사랑을 받아줄 어른 동물도 눈여겨 봐주세요.

동그람이는 위 '두 가지 마음의 준비'를 착실히 한 분들의 감동 입양 후기를 전해요!
이번 사연은 고양이 구조 및 입양 단체 '내일은 고양이'를 통해
반려묘 '헤토(전 이름은 봉골레/남아/2세 추정)'를 입양한
'김다희' 님의 사연입니다!


혹시 화상 입은 고양이 '봉골레'를 기억하나요? 봉골레는 지난 2021년 12월경 동그람이 <가족이 되어주세요>에 소개됐었어요. 봉골레는 눈가와 이마, 양쪽 귀, 어깨 부분과 앞 다리 등에 심한 화상 상처를 입은 채 인천 연수구에서 구조됐었죠. 학대로 추정되는 화상 상처 때문에 외모는 조금 달랐지만, 봉골레는 우다다를 좋아하는 평범한 고양이였답니다.

봉골레는 제 옛날 이름!

봉골레는 제 옛날 이름!

당시 봉골레의 사연이 동그람이에 공개되자 댓글에는 봉골레의 입양을 응원하는 글이 마구마구 달렸었어요! 그중 담당 에디터의 눈을 사로잡았던 댓글이 있었는데요.

봉골레 글에 달렸던 댓글!

봉골레 글에 달렸던 댓글!

글은 짧지만 봉골레가 평생 집사를 만나길 염원하는 깊은 뜻이 담겼달까요? 이상하게 이 댓글이 유난히 인상적이었는데요. 봉골레는 정말로 댓글처럼 2022년에 평생 집사 간택에 성공했습니다!

봉골레는 '헤토'라는 이름으로 두 번째 삶을 살고 있어요. 헤토는 그리스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를 줄인 말이에요. 헤파이스토스는 불꽃의 화신이라 알려져 있는데, 불을 이겨낸 봉골레에게 딱 맞는 이름이죠! 헤파이스토스는 한 쪽 발이 불편했고, 헤토도 화상으로 한 쪽 앞다리를 잃었어요. 헤토라는 이름이 봉골레에게 잘 어울리는 데에는 이런 이유들이 있었답니다. 봉골레에게 헤토라는 이름을 선물한 헤토 집사 이야기를 더 들어볼까요?


불을 이겨낸 강한 고양이 헤토애용

불을 이겨낸 강한 고양이 헤토애용

헤토 보호자님, 간단한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헤토를 입양한 김다희라고 합니다. 저희 집에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남편과 30개월 된 아기 집사가 살고 있어요. 헤토를 입양한 뒤로는 고양이까지 네 식구가 됐어요.

헤토와는 어떻게 가족이 됐나요?

저는 프리랜서로 일하며 주로 집에서 일하고 있어요. 결혼과 출산 등 굵직한 일들이 지나고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바쁘게 살았죠. 그러다 둘째 아이가 생겼는데, 예기치 않게 유산이 됐어요. 몸이 안 좋아지며 6개월 정도 병원을 다니며 약을 먹었죠. 약 중에는 우울과 불안을 조절하는 약도 포함돼 있었어요.

힘든 일상을 보내던 중 결혼하기 전 함께 살던 고양이들이 생각나더군요. 집에 돌아오면 고양이들이 몸을 비비며 맞아주던 그 따스함이 문득 그리웠어요. 친정어머니께서 고양이를 좋아해 두 마리를 길렀는데, 그때 저도 참 힐링을 받았어요. 어쩌면 '약만 계속 먹을 게 아니라 고양이에게 따뜻한 위로를 받으면 아픔이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죠. 만약 고양이를 입양한다면 제 도움이 필요한 아이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헤토의 평상시 모습~

헤토의 평상시 모습~

그럼 유기묘 입양을 결정했을 때, 헤토를 안 건가요?

네, 그 당시 포인핸드 앱을 둘러보다 헤토를 처음 알았어요. 헤토의 사연과 사진을 보면서 아마 1시간은 숨죽여 울었을 거예요. 화상 치료를 하던 헤토가 너무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게 보여 더 눈길이 갔죠. 헤토의 사연과 임시보호처를 구한다는 글은 최근에 올라온 게 아니라서 혹시 벌써 입양을 간 게 아닌지 염려됐어요. 그때가 밤 12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고민을 하다 헤토의 입양 문의를 보냈죠. 참 감사하게도 헤토를 보살피던 내일은 고양이 담당자분께서 답장을 바로 주셨어요. 헤토는 아직 쉼터에 머물며 가족을 기다린다는 소식에 너무 기뻐 밤에 잠도 안 왔었어요.

잘 때도 귀여운 헤토!

잘 때도 귀여운 헤토!

입양을 전제로 헤토를 임시보호하기로 결정한 뒤, 신기한 일도 있었다고요?

저희 집안은 모두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에요. 친정어머니도 고양이와 함께 살고, 시부모님도 고양이를 기르는 냥집사세요. 남편도 결혼하기 전까지 고양이와 함께 살아 고양이에 대해 잘 아는 편이죠.

그래서 헤토를 입양하기 전 다른 가족들에게 말했을 때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어요. 다만, 헤토가 과거 큰 화상을 입었고, 그 때문에 앞다리 한 쪽을 잃었다는 구체적인 사안까지는 따로 말씀드리진 않았는데요. 친정어머니께서 갑자기 전화가 왔어요.

꿈에 누런 고양이 한 마리가 나와서 야옹하고 울었는데, 그 아이가 오른쪽이 없어. '네가 내 딸 집에 오기로 한 그 고양이야?'라고 물으니 고양이가 꼬리를 흔들더라

헤토는 캣타워를 좋아한답니다.

헤토는 캣타워를 좋아한답니다.

전 이런 게 묘연인가 싶었어요. 정말 가슴이 쿵쾅쿵쾅 뛰는데 헤토가 우리 엄마 꿈에 먼저 다녀왔나 싶더라고요. 정말 신기했던 일이었고, 저와 헤토는 만날 운명이었구나 싶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헤토가 꿈속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저도 드디어 가족이 생겼어요. 앞으로 행복을 기대해도 되겠죠? 잘 부탁드려요!"

헤토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헤토는 저희 집에 온 첫날, 새 환경이라 낯설어했지만 일주일 만에 적응했어요. 헤토를 위해 준비한 캣타워도 잘 올라가고, 침대에도 자유자재로 올라왔죠. 현재 헤토는 침대에 누워서 쓰담쓰담을 받는 게 취미인 개냥이랍니다. 헤토는 장난감도 잘 갖고 놀고, 박스에 들어가길 좋아하는 평범한 집고양이로 살고 있어요. TV에 고양이 친구 나오는 영상을 틀어주면 엄청난 집중력을 자랑하기도 해요.

헤토가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은 바람개비예요. 버튼을 누르면 말랑말랑한 실리콘 소재의 바람개비 장난감이 발사되는데, 이걸 잡으려고 헤토가 기를 쓰고 뛰어가요. 헤토가 이 장난감을 워낙 좋아해서 집사는 바람개비 지옥에 빠졌지만, 헤토가 행복하면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어요.

헤토는 지금까지 하악질도 한 번 안 할 정도로 순한 고양이 매력을 보여줬어요. 사실 매운맛 버전을 보여줘도 전 상관없어요. 우리 헤토가 건강하게만 우리 가족 곁에 머물렀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장난감이 좋을 나이~

장난감이 좋을 나이~


행복 찾은 헤토의 일상~

행복 찾은 헤토의 일상~

유기동물 입양을 고민하는 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헤토는 한 쪽 다리가 없는 장애묘예요. 유기동물 중에도 장애를 가진 아이는 입양률이 더 적은 걸로 알아요. 헤토를 입양하고 난 뒤 가장 많이 들은 말도 "장애묘 입양을 결정하다니, 정말 대단하네요!" 였죠.

그런데 헤토와 함께 살면서 느낀 점은 장애묘나 비장애묘나 크게 다른 점이 없다는 거예요. 장애묘라서 엄청난 케어가 필요하고, 더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헤토가 움직일 때 불편하지 않도록 집안 구조에 더 신경을 쓰는 점은 있지만, 장애가 없는 고양이와 함께 살며 신경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혹여 헤토에게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받아들이고 보살필 준비도 되어 있어요.

헤토는 더더더 행복해질 예정!

헤토는 더더더 행복해질 예정!


헤토야, 안녕!

어쩌면 유산된 둘째 아이가 너를 우리 집으로 보내준 게 아닌지하는 생각이 들어.
정말 힘들었을 때 고양이 입양을 생각했고, 그러고 나서 내 눈에 네가 띄었으니 말이야.

우리 집에는 네가 오기 전부터 헤토가 살기 정말 좋은 집이었어.
아기가 있어서 바닥엔 푹신한 매트가 깔려있고, 모서리에는 충돌 방지 스티커들이 다 붙어있었지. 현관 앞에는 펜스까지 미리 설치돼 있었어.
헤토가 우리 집에 온 건 어떻게 보면 정해진 운명이었던 것 같기도 하네.

온종일 나를 쫓아다니며 놀아달라고 하는데, 다 들어주지 못해서 미안하기도 해.
그래도 모든 일을 마치면 엄마는 항상 헤토 거야. 헤토랑 많이 많이 놀아줄게~
우리 곁에 지금처럼만 있어주면 참 좋겠다.

사진 = 헤토 보호자 김다희님(헤토 ★스타그램 구경하기)

동그람이 장형인 에디터 trinity0340@naver.com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