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불꽃처럼 뜨거운 화성의 모습일까… 수억 년 시간이 빚은 붉은 물결

입력
2025.01.11 10:00

<155>황하 답사 ⑦청진사, 암화, 수동구, 파랑곡

중국 닝샤후이족자치구 파랑곡의 화염단하. ⓒ최종명

중국 닝샤후이족자치구 파랑곡의 화염단하. ⓒ최종명

닝샤후이족자치구 수도 인촨(銀川)은 봉황성이라 했다. 동쪽 황하 강변에 머리를 두고 서쪽 하란산에 꼬리를 펼쳤다. 지형에 대한 비유다. 지리와 신화, 천문과 생태가 혼합된 기서 ‘산해경(山海經)’에 봉황이 등장한다. 수컷(雄)과 암컷(雌)인 봉과 황, 두 마리 새는 닭을 닮았다. 몸은 아름다운 노을 같고 날개는 상서로운 빛을 발산한다. 하늘이 내린 땅에 후이족이 이주해 산다. 2022년 기준 인촨시 인구 290만 명 중 23%인 67만 명이다.

이슬람사원도 중국식으로, 남관청진사

인촨의 이슬람 사원 남관청진사. ⓒ최종명

인촨의 이슬람 사원 남관청진사. ⓒ최종명


인촨의 이슬람 사원 남관청진사 내부. ⓒ최종명

인촨의 이슬람 사원 남관청진사 내부. ⓒ최종명

봉황의 심장이라는 고루(鼓樓) 근처에 이슬람 사원이 있다. 닝샤에서 가장 큰 규모라는 남관청진사(南關清真寺)다. 엎드려 절하는 장소라는 뜻의 아랍어 마스지드(masjid)다. 명나라 시대부터 지금까지 모든 이슬람 사원은 청진사라 한다. 명나라 말기에 건축됐는데 문화혁명 당시 훼손돼 1981년 중건했다. 2008년 보수하며 이슬람 양식이 사라지고 중국 건축으로 돌변했다. 1,300명이 동시에 들어가는 예배전 문이 닫혀 있다. 문틈으로 보니 붉은 양탄자가 깔려 있다. 엎드려 참배하는 후이족이 어른거린다.

북방민족의 예술혼, 화란산 암화

인촨 화란산 암화 중 태양신. ⓒ최종명

인촨 화란산 암화 중 태양신. ⓒ최종명

봉황 꼬리에 해당하는 하란산에 신석기시대 북방 민족의 예술혼이 있다. 흉노, 선비, 당항족 등이 거주했다고 추정한다. 바위마다 그림(巖畫)이 많이 있다. 방목, 수렵, 제사, 전쟁, 오락, 성생활 등을 드러낸 작품이다. 다듬고 갈고 긋는 방식으로 동물이나 인간의 머리나 동작, 신의 형상을 남겼다. 태양신 숭배 사상을 표현한 암화가 있다. 두 눈 부릅뜨고 활활 불타는 듯하다. 진귀한 보배로 여긴다.

화란산 바위에 무사 인면상과 서하문자, 동물 등이 그려져 있다. ⓒ최종명

화란산 바위에 무사 인면상과 서하문자, 동물 등이 그려져 있다. ⓒ최종명

인간의 모습은 대체로 소탈하고 순박하다. 구도는 간단하지만 토로하는 이미지는 강렬하다. 무사 2명의 얼굴이 활기찬 암반이 보인다. 생식 숭배를 보여준다 평가한다. 몇 천년이 흘러 서하인이 스스로 창조한 문자를 새겼다. 문자를 번역하니 부처(佛)나 정법(正法)이란 뜻이다. 불교의 마음으로 오인했다. 오른쪽에는 두 마리 소가 늑대와 싸우는 장면이다. 건장한 소가 뿔을 세우고 돌진하니 늑대가 뒤로 물러나는 모양이다. 선과 악을 비교하고 있다. 해석이 참 재미있다.

구석기유적 옆 명나라 장서, 링우 수동구

닝샤후이자치구 닝우의 구석기 유적 수동구 입구에 시진핑 주석의 어록이 크게 새겨져 있다. ⓒ최종명

닝샤후이자치구 닝우의 구석기 유적 수동구 입구에 시진핑 주석의 어록이 크게 새겨져 있다. ⓒ최종명

인촨 부근에 구석기시대 유적도 있다. 황하를 건너 30분을 달려 링우(靈武)에 위치한 수동구(水洞溝)로 간다. 2020년 9월 28일 중앙정치국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의 고고학 관련 발언이 있었다. 인용한 글이 적혀 있다. ‘백만 년의 인류사, 일만 년의 문화사, 오천 년의 문명사’다. 여섯 차례 대규모 발굴을 거쳐 12곳의 유적을 찾아냈다. 67건의 동물 화석과 함께 3만 건이 넘는 유물이 출토됐다. 4만 년 전 인류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링우 수동구의 장삼소점. ⓒ최종명

링우 수동구의 장삼소점. ⓒ최종명

초입에 장삼소점(張三小店)이 보인다. 1919년 벨기에 선교사 켄트가 황하를 건너 이동 중이었다. 황토 퇴적층에서 선사시대 동물인 털코뿔소 뼈 화석과 차돌과 비슷한 석영 석기를 발견했다. 장삼소점은 당시 머물던 역참이다. 안채와 양쪽 곁채를 둔 공간이 구석기의 영혼을 불러온 셈이다. 1923년엔 프랑스의 고생물학자 테야르 샤르댕과 에밀 리상도 숙박했다.

수동구 장삼소점에 프랑스 고생물학자 리상과 샤르댕 흉상이 세워져 있다. ⓒ최종명

수동구 장삼소점에 프랑스 고생물학자 리상과 샤르댕 흉상이 세워져 있다. ⓒ최종명

마당에 리상과 샤르댕 조각상이 있다. 가톨릭 신부이기도 한 샤르댕은 베이징원인(北京猿人) 발견에 기여한 학자다. 역시 신부인 리상은 지질 채집과 고생물 표본을 연구해 톈진에 북강박물관(北疆博物館)을 세웠다. 두 전문가는 수동구에 도착해 지질을 분석하고 채집했다. 300㎏이 넘는 다양한 타제석기를 발굴해 프랑스로 가져갔다. 유럽 고고학계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중국은 군벌의 쟁투와 국공내전으로 혼란한 시기였다.

수동구 장삼소점의 페이원중과 자란포 흉상. ⓒ최종명

수동구 장삼소점의 페이원중과 자란포 흉상. ⓒ최종명

두 명의 중국인도 있다. 왼쪽에 베이징대학 지질학과 졸업 후 베이징원인 발굴에 참여한 페이원중이 있다. 1963년 발굴단을 이끌고 왔다. 최초로 구석기와 신석기의 서로 다른 지층이 혼재된 사실을 발견했다. 수동구 제1지점이라 명명했다. 오른쪽에는 중국지질조사소 연구원 출신인 자란포다. 베이징원인 발굴에 참여해 페이원중과 샤르댕을 만났다. 1974년과 1980년 수동구 발굴에 기여했다.

수동구의 역참 장삼소점 내부. ⓒ최종명

수동구의 역참 장삼소점 내부. ⓒ최종명

1982년 자란포가 샤르댕에 대한 회고록을 냈다. ‘내가 아는 고생물학 거장(我所認識的古生物學大師)’이다. 장삼소점을 묘사한 대목이 있다. 황량한 사막 지대로 최소 5km 일대에 인적이 없다. 작은 숙소가 하나 있는데 장삼소점이라 부른다. 여행객을 위한 역참인데 네댓 명이 숙박할 수 있다. 식사를 제공하지 않아 스스로 양식을 구해 밥을 지어야 한다. 두 프랑스 신부가 묵었고 수동구 유적을 발견했다. 회고를 듣고 보니 방에 당시 냄새가 풀풀 나는 듯하다.

링우 수동구 유람 지도. ⓒ최종명

링우 수동구 유람 지도. ⓒ최종명

구석기시대 유적이면서 관광지다. 지도를 보니 장성과 동굴, 호수와 도랑까지 있다. 입장료 외에도 전동차, 유람선, 낙타, 동굴, 표류에 매번 요금을 내야 한다. 대부분 걸어 다닐 수도 없고 출구로 통과도 어렵다. 구석기시대 흔적을 보러 왔는데 7.8㎢나 되는 지역을 두루 훑는다. 무엇보다 구석기 유적이 우선이다. 열두 군데 유적지가 있다는데 1호와 2호만 표시돼 있다. 전동차 타고 10분 정도 들어간다.

수동구의 구석기 유적지 2호. ⓒ최종명

수동구의 구석기 유적지 2호. ⓒ최종명

원고(遠古) 시대 집이 있다. 먼 옛날의 공간은 식당과 가게다. 뒤쪽에 2호 유적지가 보인다. 자료를 보니 시기별로 18층으로 쌓였다. 설명을 보지 않으면 구석기시대로 가긴 어렵다. 바닥은 모래와 자갈이다. 하부엔 진한 회색의 토탄이 침식돼 있다. 중부는 회색과 녹색이 섞인 미세한 모래층이다. 상부는 회색과 황색이 섞인 모래층이 덮고 있다. 풀숲 너머 절벽이 구석기 인류가 살았다는 공간이다. 관리가 소홀한 느낌이다.

링우 수동구의 구석기 유적지 1호. ⓒ최종명

링우 수동구의 구석기 유적지 1호. ⓒ최종명

조금 벗어나 1호 유적지로 이동한다. 페이원중이 찾은 제1지점이다. 모두 8층으로 형성돼 있다. 8층 바닥은 만제3기(晚第三紀)라 적혀 있다. 신생대 네오기로 2,330만 년 전부터 164만 년 전까지 시기다. 7층에서 3층까지는 만갱신세만기(晚更新世晚期)다. 신생대 제4기 플라이스토세 후기다. 약 160만 년 전부터 1만2,000년 전까지로 본다. 2층과 1층 상부는 전신세(全新世)다. 신생대 제4기 홀로세로 1만1,700년 전부터 현세에 이른다. 연도 기준이 한반도와 조금 다르다. 이유는 모르겠다.

수동구의 명나라 장성. ⓒ최종명

수동구의 명나라 장성. ⓒ최종명


수동구 명나라 장성에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최종명

수동구 명나라 장성에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최종명

명나라가 구석기 유적 옆으로 장성을 쌓았다. 3km에 이르는 성벽이 관광지로 들어왔다. 유적지와 불과 100m 거리다. 병사들이 장성을 쌓을 때 인류의 숨소리가 땅에 숨어 있었으리라. 북방 민족을 견제하려 만든 장성이 아닌가. 장성 안쪽으로 구석기의 기운을 품고 400년을 이어온 셈이다. 성벽 위로 올라가니 황토 벌판이다. 대명신위(大明神威) 깃발이 휘날린다. 전서로 쓴 대명(大明)도 한껏 멋을 부리고 있다.

링우 수동구의 홍산호 유람선. ⓒ최종명

링우 수동구의 홍산호 유람선. ⓒ최종명


링우 수동구의 낙타. ⓒ최종명

링우 수동구의 낙타. ⓒ최종명

구석기시대 암석 옆으로 걸어간다. 절벽을 넘는 계단을 오르니 홍산호(紅山湖)가 나타난다. 유람선을 타지 않으면 출구로 갈 수 없다. 절벽의 반영을 감상하며 10분 동안 출렁인다. 사조만(沙棗灣)에 도착해 나무로 만든 다리를 건넌다. 도랑 옆 오솔길인 홍류탄(紅柳灘)을 걷는다. 생각보다 멀어 낙타를 탄다. 느릿느릿 걷는 낙타보다 더 빠를 수 있으련만 땀을 식힌다. 명나라 군사가 머물렀다는 장병동(藏兵洞)을 통과하니 동문이 나온다. 전동차 타고 정문으로 돌아온다. 한여름 대낮이라 땀으로 범벅이다.

파랑곡, 헤아리기 어려운 시간 속으로

닝샤후이족자치구 징볜의 파랑곡 입구. ⓒ최종명

닝샤후이족자치구 징볜의 파랑곡 입구. ⓒ최종명

동남쪽으로 250km 떨어진 징볜(靖邊)으로 간다. 다시 30km 거리에 파랑곡(波浪谷)이 있다. 고생대 페름기에서 중생대 백악기 사이에 형성된 지질로 유명하다. 세월이 펼쳐놓은 찬란한 풍광을 눈부시도록 볼 수 있다. 구석기시대와 차원이 다르다. 단위가 억이다. 고생대 후기 3억 년 전부터 시작한다. 백악기가 끝나는 6,600만 년 전까지 형성된 지층이다. 붉은 사암인 비사암(砒砂岩)으로 사방 천지를 뒤덮은 공간이다. 입구에 75m 높이의 유리 대교가 반긴다.

징볜 파랑곡의 유리다리. ⓒ최종명

징볜 파랑곡의 유리다리. ⓒ최종명


파랑곡 입구 유리다리에서 본 풍광. ⓒ최종명

파랑곡 입구 유리다리에서 본 풍광. ⓒ최종명

유리다리로 들어서니 아찔하고 섬찟하다. 양쪽 끝자락은 나무로 만든 길이다. 가운데는 유리로 깔았다. 유리 위로 발을 디딘다. 오금이 저려 금방 후회한다. 90위안이나 냈으니 한번 걸어 봐야지 싶다. 살살 밟으며 지나는데 갑자기 유리가 갈라진다. 음향 효과도 있다. 사람들 비명이 산을 울린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장치다. 유리로 뛰어오는 겁 없는 아이가 옆을 지나간다. 바닥을 보니 공포다. 밖으로 시선을 옮기니 단하(丹霞) 지형 군데군데 나무가 자라고 있다. 먼 산만 바라보며 지나간다.

징볜 파랑곡의 화염단하. ⓒ최종명

징볜 파랑곡의 화염단하. ⓒ최종명


징볜 파랑곡의 화염단하. ⓒ최종명

징볜 파랑곡의 화염단하. ⓒ최종명

파랑곡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화염단하(火焰丹霞)다. 물결이 일렁이는 듯한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모양새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하얗다. 선명하게 대조된다. 수억 년 시간이 창조한 별스런 자연이다. 뜨거운 기운이 솟아오르는 길을 차츰 내려간다. 빨간 우산을 들고 앞서가는 남녀가 다정해 보인다. 우산까지 집어삼키려는 기운이다. 직사광선은 지질에도, 우산에도 내리쬔다.

징볜 파랑곡의 유파대. ⓒ최종명

징볜 파랑곡의 유파대. ⓒ최종명


파랑곡 유파대에서 본 화염단하. ⓒ최종명

파랑곡 유파대에서 본 화염단하. ⓒ최종명

화염을 피해 산길을 계속 내려오니 유파대(流波台)다. 유리로 만든 공간이다. 바로 밑이 지질이라 다리만큼 무섭지 않다. 아래로 보니 푸른 나무가 암반에 달라붙은 협곡이다. 위로는 화염이 파도처럼 흐르는 붉은 산이다. 하트 모양이 있는 간판을 설치했다. 사람이 만든 색깔은 정말 빨갛다. 하산 길에 갑자기 노래가 들려온다. 음악보도라 이름을 붙였다. 계단 따라 내려가는데 흥얼거리며 계속 따라온다. 새로운 단하로 이어진다는 신호인 듯하다.

파랑곡의 화성비경 포토존. ⓒ최종명

파랑곡의 화성비경 포토존. ⓒ최종명


파랑곡의 적벽단하. ⓒ최종명

파랑곡의 적벽단하. ⓒ최종명

협곡 밑에 당도하니 관광객을 위한 촬영 포인트가 있다. 화성비경(火星秘境)이라 적혀 있다. 파랑곡을 화성에 비유하니 상상력을 발휘하게 된다. 거대한 절벽이 있어 적벽단하(赤壁丹霞)라 부른다. 푸른 풀이 융단처럼 깔려 있고 도랑이 물기를 잃지 않으려 흐르고 있다. 화(火)나 적(赤)이나 마찬가지다. 화염이나 적벽도 모두 붉다. 어감이 다른 만큼 감상에도 차이가 난다. 확 트인 산과 깊은 협곡이 같을 수는 없다.

파랑곡의 호수. ⓒ최종명

파랑곡의 호수. ⓒ최종명


파랑곡 전망대에서 본 지심단하. ⓒ최종명

파랑곡 전망대에서 본 지심단하. ⓒ최종명

산을 뚫은 터널이 있다. 어둠을 지나 통과하니 호수가 나온다. 하늘과 색감이 너무 비슷하다. 암반은 반영을 연출한다. 지심단하(地心丹霞)가 시작된다. 한참 내려왔으니 다시 올라가야 한다. 두 단하 지역보다 훨씬 넓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랐는데도 끝없이 오른다. 전망대가 나오니 쉬어 간다. 힘이 들어 멈추니 여기저기 희귀한 모양이 바로 손에 잡힐 듯하다. 수억 년을 살아온 암반이다. 색다른 분위기라 정말 화성에 온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파랑곡 지심단하의 구름다리. ⓒ최종명

파랑곡 지심단하의 구름다리. ⓒ최종명


파랑곡 지심단하 전망대에서 바라본 호수.ⓒ최종명

파랑곡 지심단하 전망대에서 바라본 호수.ⓒ최종명

협곡 오르는 계단이 가파르다. 구름다리는 협곡을 넘나든다. 협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거세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다. 돌고 돌아가는 길마다 사방이 절경이다. 멀리 호수가 선명하게 보인다. 하늘의 생명을 고스란히 받아서 새파랗다. 붉고 누런 토양 사이에서 유난히 빛난다. 천천히 출구로 향한다. 파랑곡이 생각보다 엄청 넓다. 생전 본 적 없는 풍광이라 지루하지 않다. 눈은 붉어도 마음은 푸르다.



최종명 중국문화여행작가 pine@youyue.co.kr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