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불신의 전염병부터 씻어내라

입력
2015.06.0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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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감염ㆍ지역 확산 우려 증폭

정부, 비상사태 엄중한 인식 중요

박 대통령 16일 만에 현장 방문

이제라도 신뢰의 리더십 보여야

박근혜 대통령이 5일 메르스 환자 격리 병상이 운영되고 있는 서울 중구의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해 치료 상황을 점검하며 의료진들을 격려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메르스 사태 발생 이후 관련 현장을 찾은 것은 처음이다. 청와대 제공
박근혜 대통령이 5일 메르스 환자 격리 병상이 운영되고 있는 서울 중구의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해 치료 상황을 점검하며 의료진들을 격려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메르스 사태 발생 이후 관련 현장을 찾은 것은 처음이다. 청와대 제공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양성 판정을 받은 환자가 40명을 넘어서면서 4차 감염 및 지역사회 감염에 대한 우려마저 증폭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정부가 초동 대응에 실패하면서 첫 번째 확진자가 발생한 지 보름 넘게 국민 불안이라는 전염병을 전혀 방역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가 국가비상 사태라는 엄중한 상황 인식으로 신뢰의 스크럼을 짜지 않는다면 대재앙이 불가피할 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5일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해 초동 대응의 허점을 인정하며 “정부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민간 전문가들하고 함께 확산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국민께서 믿음을 가져주시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 대통령은 그러면서 “지자체나 관련 기관이 독자적으로 이것(메르스)을 해결하려고 할 경우에 혼란을 초래할 뿐 아니라 효과적으로 대응하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는 전날 밤 박원순 서울시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의 방역조치를 비판한 것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이날 현장 방문으로 국민 불안이 차단되고 범정부 차원의 콘트롤 타워가 정상 가동될지는 미지수다. 박 대통령의 현장 방문은 메르스 발생 16일만으로 국민 불안을 차단하기에 너무 늦었다는 지적이 많은 가운데 이날도 박 대통령 스스로 콘트롤 타워를 자처하지는 않았다. 박 대통령은 앞서 3일 청와대에서 민관합동 긴급점검회의를 갖고 종합대응 컨트롤 타워와 함께 범정부 대책지원본부 구성을 선언했지만 아직까지 특별한 대책을 내지는 못하고 있다.

특히 보건복지부가 “전염력이 강하지 않다”→“3차 감염 가능성 낮다”→“지역사회 감염 우려는 없다”는 식으로 안이하게 판단하면서 국민 불안과 불신을 가중시켰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보건 전문가는 “메르스의 실제 치사율은 일반 폐렴 수준인데도 복지부가 사태를 축소하는 데만 급급해 국민 불안이 커졌다”면서 “전염병 방역은 한 발 앞서가는 조치가 최선인데 복지부는 뒷북치기에만 골몰했다”고 비판했다. 박 대통령이 3일 긴급 점검회의에서 정보공개를 당부했지만 복지부는 이날까지 환자 발생 병원 가운데 평택성모병원 한 곳만 공개했다.

박 대통령이 인정한 것처럼 정부가 초동 대응에는 실패했지만 이제라도 확산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의 신뢰 회복이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김영삼 정부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이원종 한양대 특임교수는 본보 통화에서 “미국 대공황 당시 실업, 빈곤에 대한 공포가 온 나라를 뒤덮자 루즈벨트 대통령은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외치며 팔을 걷어붙여 국민의 지지를 받아냈다”면서 “지금 정부가 국민의 공포를 잠재우고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정확한 정보 공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수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도 “정부의 소극적인 대응자세가 정부에 대한 불신과 극도의 공포로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정민승기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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