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메르스 대응 혼선, 범정부 컨트롤타워가 없다

입력
2015.06.05 16:53

서울시와 정부 충돌로 불안 가중

학교 휴업 놓고 부처끼리 엇박자

靑ㆍ 政ㆍ여야ㆍ전문가 기구 필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로 확진 판정을 받은 의사가 의심 증상이 있었음에도 1,500여 명과 접촉했다는 서울시 주장이 논란을 빚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늦은 밤 긴급 브리핑을 통해 지난달 말 메르스 증상이 있었던 의사가 아무런 제재 없이 대형 행사에 참석했으며 관련 정보도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해당 의사는 바깥 활동은 메르스 감염증상이 나타나기 전으로 서울시가 자신에게 확인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복지부도 환자가 의심 증상을 보인 시점부터 격리조치를 했고 서울시와 활발하게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현재로서는 서울시 발표가 너무 성급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당사자에 대한 최소한의 확인 절차와 주무부처인 복지부와 협의 없이 발표한 것은 사실여부를 떠나 합당한 방식이 아니다. 복지부도 잘한 게 없기는 마찬가지다. 다른 지역도 아니고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서울에서 메르스 감염환자가 나타났다면 신속하고도 과감한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감염환자의 동선을 확인해 접촉자를 격리하고 국민들에게도 정보를 공개해 사전에 불안감을 차단했어야 한다.

더 우려되는 것은 서울시와 정부의 충돌이 다분히 정치적 양상을 띠는 점이다. 박 시장의 독자 행동에 정치적 판단이 없다고 보기 어렵고, 이에 대해 청와대와 여당은 지나치다 싶을 만큼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다. 박 시장 브리핑에 대한 청와대의 반응이 주무 부처보다도 빨랐던 것부터 이례적이다. 정치권이 한 목소리로 정쟁 자제를 외치면서 뒤에서는 정치적 이해타산에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번 충돌의 근본적인 원인은 메르스 사태에 대처하는 정부 내 컨트롤타워가 구축되지 않은 탓이 크다. 정부에 확고한 지휘체계가 갖춰져 있다면 애당초 지자체와 중앙정부가 감염환자를 놓고 티격태격할 이유가 없다. 심지어는 중앙부처 내에서도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있으니 국민들의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학생들의 생명과 안전이 걱정되니 학교장이 알아서 휴업을 하라는 교육부와 굳이 휴업을 할 필요가 없다는 복지부의 주장이 며칠 째 맞서고 있지만 누가 나서 해결조차 못하고 있다.

지금 중앙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는 지난 2일 설치된 청와대 긴급대책반이 맡고 있다. 그나마 “청와대는 뭐하고 있느냐”는 여론의 질타에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지 2주일 만에야 꾸려졌다. 하지만 여기서 하는 일은 일일 상황을 파악하고 복지부와 협의하는 게 고작이다. 차관급인 정책조정수석이 관련 비서관들과 모여 논의해본들 얼마나 무게가 실릴 지 의문이다. 전 국민이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져 있는 현 상황은 국가적 위기사태이자 준 전시상황이다. 청와대는 한시라도 빨리 범 정부 대책기구를 구성해야 한다. 청와대와 정부는 물론 여야, 민간 전문가를 아우르는 기구를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총리가 없는 현 상황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컨트롤타워를 맡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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