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평택성모병원 사례로 집약되는 방역실패 이유

입력
2015.06.05 17:07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어제 평택성모병원을 지난 달 15~29일 방문한 사람을 전수 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보건 당국이 철저히 지켜온 비공개 원칙을 깨면서 특정 병원을 지목한 것은 이 병원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산의 진원지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병원은 국내 메르스 1호 환자가 지난 달 15일부터 사흘간 입원했던 곳이다. 이후 이 환자와 같은 병실을 사용한 다른 환자와 간병인, 의료진 등 30명의 감염자가 발생했다. 확진 환자의 10명중 7명 이상이 이 병원을 매개로 감염된 것이다.

평택성모병원 사례는 방역 당국이 메르스 사태를 두고 얼마나 부실하게 대응해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국은 지난 달 21일 1호 환자와 같은 병실에서 추가 환자가 발생하자 해당 병실만 폐쇄하고 가족, 의료진, 입원자 등 밀접 접촉자만 격리 대상에 포함했다. 같은 병동 내 다른 병실에서 확진 환자가 발생하고서야 검사 범위를 병동 전체를 넓혔지만 이미 감염환자가 줄줄이 발생한 뒤였다.

병원을 다녀간 환자, 간병인 등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메르스에 감염돼 다른 병원, 지역 사회를 다니며 2,000명 가량을 격리자로 만들었다. 당국의 허술한 관리 망을 비웃듯 격리대상이 확대되자 결국 병원 측은 더 이상 진료가 불가능하다고 판단, 지난 달 29일 병원을 자진 폐쇄했다. 사태 초기에 병원 전체를 폐쇄하는 선제적 대응에 나섰더라면 온 국민을 메르스 공포로 몰아 넣는 지경에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는 뒤늦게 “기존 매뉴얼에 따라 (격리공간을) 조금 협소하게 짰던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했지만 이미 늦었다.

방역 당국이 민간 전문가와 함께 살펴본 평택성모병원 현장은 더더욱 한심하다. 병실마다 있어야 할 환기구와 배기구가 없는 가 하면, 최초 감염자의 기침으로 튀어 나온 침 방울, 바이러스로 오염된 손과 접촉한 환자복 등에서 발생한 먼지가 환기 되지 않은 채 병실에 쌓여있었다고 한다. 오염된 물방울과 먼지가 에어컨을 통해 다른 병실로 옮겨 다니며, 감염자를 발생시켰음은 전문가가 아니라도 짐작이 가능하다. 병원 내 환자 손잡이에서도 바이러스가 검출됐다고 하니 이 곳이 과연 환자들을 치료하는 병원인지 의심이 갈 정도다.

메르스 괴담과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가운데 뒤늦게라도 병원 실명을 공개한 것을 두고 결코 다행으로 여길 수 없다는 것이 지금 상황이다. 때 놓친 전수 조사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해당 기간 병원 방문자의 자진 신고자가 얼마나 될 지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당국의 정책에 신뢰를 보이지 않는 국민, 부실한 대응이 가져온 후폭풍이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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