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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남편 가짜지만 약자 변호만은 진심… 세상 바꾸는 노비 '구덕'의 '불순한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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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의 현안을 들여다봅니다. 김윤하, 복길 두 대중문화 평론가가 콘텐츠와 산업을 가로질러 격주로 살펴봅니다.
주인이 붙여 준 이름은 '구덕'. 구더기처럼 비참하게 살라는 뜻이었다. 억울하게 매 맞아 죽은 어머니를 돌무덤에 묻고 어린 구덕(임지연)은 '맞아 죽지도, 굶어 죽지도 않고 그저 늙어서 죽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하지만 그러한 소박한 바람도 이룰 수 없는 것이 노비의 인생.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마저 억울하게 잃을 위기에 처한 구덕은 자신의 꿈을 위해 주인을 해하고 필사의 도주를 시작한다.
그러나 도피 생활 중 정착한 한 고을의 주막에서 구덕은 운명처럼 양반가의 딸 옥태영(손나은)을 만난다. 늙어서 죽는 것이 소망의 전부인 구덕에게 약자를 돕는 외지부(조선시대 변호사)가 될 거라 말하는 태영은 완전히 다른 세계의 사람이다. 구덕은 자신을 '노비'가 아닌 '동무'로 대하는 태영을 통해 애써 감춰두었던 자신의 영특함을 되찾고, 노비로 살며 잃었던 존엄 역시 회복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태영의 제안으로 구덕이 옥씨 가문의 양딸이 되기로 한 날, 그들이 머물던 주막은 화적 떼의 습격을 받게 되고, 구덕은 일행 중 홀로 살아남게 된다. 절규하던 구덕은 '인간은 모두 동등하다'는 불온하고 아름다운 사상을 가르쳐준 태영을 위해 그의 신분으로 대신 살기로 결심한다. '약자를 돕는 외지부'라는 그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받은 커다란 가르침을 세상에 나누기 위해.
'거짓 신분'을 소재로 한 이야기 '마르탱 게르의 귀향'과 이항복의 소설 '유연전'에서 줄거리를 착안한 JTBC 드라마 '옥씨부인전'은 양반의 신분으로 살게 된 노비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결코 '신분 상승'에서 오락적 가치와 카타르시스를 찾는 사기극이 아니다. 구덕은 자신의 몸종이었던 백이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규명하며 본격적인 외지부 활동을 시작한다. 법이 모두에게 공정할 수 없는 신분 사회에서 외지부 구덕의 변론 원칙은 '균형'이다. 구덕은 진실이 밝혀져도 기울어진 판결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천한 자들에게 법령을 근거로 추를 달고 기꺼이 그들의 입이 되어 준다.
그러나 구덕은 고을 현감의 아들인 윤겸(추영우)과 혼인하며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한다. 성소수자 청소년들에게 무술을 가르치는 비밀 결사조직 '애심단'의 단주인 윤겸은 마을 유생들에게 그 기지를 발각당하고 단원 중 하나가 모진 고초를 겪자 구덕에게 변호를 청한다. 윤겸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은 결혼 전 미리 알고 있었으나, '애심단'의 존재는 몰랐던 구덕이 대답을 망설이자 윤겸이 말한다. "부인이 외지부라면, 죄 없이 잡혀간 약자를 돕는 게 맞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약자가 노비가 아니라면요?" 구덕은 윤겸으로 인해 처음으로 '노비'나 '여성'이 아닌 또 다른 약자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들을 변호하며 '인간은 모두 동등하다'는 명제의 범주를 확장한다.
'여자 노비의 이야기가 이렇게 대담할 수 있나' 하는 감탄은 '그 여자 노비는 과연 어떻게 대담할 수 있었나?'라는 질문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구덕은 노비였을 때부터 남장을 한 채 시장에서 물건을 팔아 돈을 모으고, 다른 동료 노비들의 장부를 대신 관리해 주는 대담하고 영특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구덕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자신의 힘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삶의 고비마다 아무 대가 없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믿어 준 이들의 지지였다. 노비인 자신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해 주었던 첫사랑 승휘, 도피 중인 노비임을 알고도 손을 내밀어 준 주막의 이모, 신분의 한계에 위축되지 말 것을 일러 준 은인 태영, 불리하기만 한 싸움은 없다며 외지부 일을 계속 독려한 고을 현감까지. 구덕이 성밖의 모든 불법적 존재를 대변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든 가치가 있다고 말해 준 사람들의 지지 덕분이었다.
'옥씨부인전'은 구덕을 중심으로 시대에 따라 불법과 합법을 오가는 불안정한 존재들이 어떻게 그 용기를 지켜 왔는지를 말하는 작품이다. 여자로, 노비로, 서자로, 성소수자로. 작품 속에서 교차하는 존재들의 연대는 완전하지 않고 때때로 더 큰 갈등을 빚기도 한다. 그러나 구덕은 중심에서 이 불안정한 존재들을 자신의 '가짜 신분'으로 엮어내며,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배제하지 않는다면 이 불순한 힘만으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역설한다. 무엇이 두려운가? 어떤 시간 안에서는 나 역시 가장 불법적인 존재였다. 그 억압을 상상하는 것이 나를 더 자유롭게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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