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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팬덤의 언어에서 '국민 메타포' 된 응원봉

입력
2024.12.22 14:00
18면

<33> 연대와 화합의 아이콘이 된 응원봉

편집자주

K컬처의 현안을 들여다봅니다. 김윤하, 복길 두 대중문화 평론가가 콘텐츠와 산업을 가로질러 격주로 살펴봅니다.

16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동십자각 앞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집회에서 시민들이 각양각색의 응원봉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16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동십자각 앞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집회에서 시민들이 각양각색의 응원봉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이토록 응원봉에 많은 이가 주목한 적이 있었나. 2024년 12월, 웬만한 연말 음악 시상식 객석을 방불케 하는 거대한 숫자의 응원봉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좋아하는 가수를 위해 흔들던 응원 도구는 어느덧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준엄한 목소리를 담은 상징으로 바뀌어 있었다. 집회 주최 측은 대가 없이 모여든 응원봉에 화답하듯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 에스파 '위플래시', 로제와 브루노 마스 ‘아파트’ 같은 케이팝 인기곡을 번갈아 틀며 호응을 유도했다. 사안과 리듬에 맞춘 개사도 일품이었다. 오로지 한국이라 가능한 집회 풍경은 국내외 언론을 막론하고 주목받았다. ‘(케이팝 팬들이) 소중한 것을 지키려 가장 소중한 빛을 들었다’는 시적인 수사까지 등장했다.

풍선·우비에서 응원봉으로

거리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떠오른 응원봉의 역사는 어떻게 될까.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곳엔 색색깔의 풍선이 있었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남아 있던 ‘팬덤 색’은 풍선으로 우비로 번졌다. ‘드림콘서트’처럼 전국구 팬덤이 모이는 연례 행사에서는 어떤 색이 얼마만큼의 객석 면적을 차지하느냐가 해당 가수가 가진 권세의 상징이었다.

1999년 열린 드림콘서트에서 관객들이 긴 응원 풍선을 들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9년 열린 드림콘서트에서 관객들이 긴 응원 풍선을 들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가수를 응원하는 도구가 풍선에서 응원봉으로 바뀌게 된 데에는 YG엔터테인먼트의 영향이 크다는 게 정설이다. H.O.T. 출신 문희준이 솔로 활동을 시작하며 팬덤이 ‘야광봉’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어 YG 출신 가수 세븐과 빅뱅이 세븐의 이름을 딴 숫자 7 모양과 왕관 모양의 ‘뱅봉’을 입체형으로 만들면서 웬만큼 팬덤이 형성된 아이돌 그룹에 응원봉은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 응원봉에 빛만 들어와도 감탄하던 과거 K팝 팬들은 아마 20여 년의 세월이 지나 스마트폰 전용 애플리케이션으로 밝기와 색깔을 조종하고 중앙제어 시스템으로 조절하며 공연 조명 연출의 한 축이 되어버린 지금의 응원봉을 쉽게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술의 발달과 K팝 팬덤의 확장으로 이제는 산업의 당당한 한 축이 된 응원봉은 그래도 어디까지나 팬덤의 언어로 만들어진 물건이라는 게 대중의 일반적인 체감이었다. 적어도 2024년 12월 전까지는 말이다. 과거 응원봉이 미디어의 주목을 이만큼 받은 적이 있나 기억을 더듬다 2008년 ‘드림 콘서트’가 떠올랐다. 그때도 응원봉은 움직였지만, 지금과는 사뭇 다른 용도였다. 당시 인기 있던 보이그룹 팬덤을 중심으로 걸그룹 소녀시대에 대한 보이콧 움직임이 있었다. 일명 ‘텐미닛’이라고 불리는 이 침묵 사건은 소녀시대가 무대를 하는 동안 응원봉의 불빛을 끄고 어떤 소리도 내지 않는 무언의 시위였다.

안티팬의 집단 행동에 시달린 역사가 유독 긴 걸그룹이 자주 마주하는 이러한 선명한 폭력의 흔적은 K팝 역사를 되짚는 해외 언론에서 유독 큰 관심을 보이는 주제 가운데 하나다. 누군가를 지지하고 사랑하는 마음과 그를 대표하는 응원 도구가 어째서 비난과 배척의 도구가 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실마리가 필요해 보였다. ‘빠순이’라는 멸칭이 당연한 때였다.

거리의 응원봉, 자신만의 정체성 드러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응원봉을 들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기뻐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응원봉을 들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기뻐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멸시와 뒤틀린 사랑을 과거로, 꺼졌던 빛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온도로 광장에서 다시 켜졌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응원봉을 둘러싼 많은 것들이 변했다. 응원봉 군단을 이끈 젊은 여성은 K팝과 가장 밀접한 세대이자 주체적 소비자, 더불어 생애 대부분의 시간을 가부장적 사회와 제도가 자신의 편이 아니라는 시그널을 끊임없이 받으며 진화한 세대가 되었다.

처음에 누군가를 응원하기 위해 쥔 응원봉은 시간이 지나며 내 정체성의 일부이자 나와 뜻을 같이하는 타인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강남역 살인 사건, N번방으로 대표되는 사회 이슈와 맞물려 눈덩이처럼 불어난 사회 불신, 목소리를 내기 위해 거리로 나가는 이제는 익숙해진 고된 습관,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며 K팝을 늘 가까이 두던 퀴어 퍼레이드와의 만남.

그 모든 우연과 필연 끝에 2024년 12월, K팝과 응원봉은 국민의 목소리를 알록달록하게 실어 나르는 거대한 메타포가 되었다. 때때로 너와 나 사이 선을 긋는 데 쓰이던 빛은 바로 지금 연대와 화합의 빛이 되었다. 언젠가 다시 흩어지더라도, 자신이 흔들리던 장소와 순간, 그리고 자신을 흔들던 이의 마음을 기억하며 오래 벼려진 응원봉은 분명 전과 다를 수밖에 없다. 거리의 응원봉이 결코 허투루 보이지 않는 이유다.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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