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은 살인마” 국경·인종 뛰어넘은 세계 반전 시위

입력
2022.02.27 20:00
수정
2022.02.27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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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미주, 아시아, 중동서도 '전쟁반대'
러 당국, 시위 참가자 3000여명 체포
러 공산당 하원의원도 공개 반대선언
러 당국, '사형제도' 부활 위협

26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한 시민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아돌프 히틀러에 비유한 팻말을 들고 있다. 텔아비브=AFP 연합뉴스

26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한 시민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아돌프 히틀러에 비유한 팻말을 들고 있다. 텔아비브=AFP 연합뉴스


“푸틴은 살인자다!” “당장 전쟁을 멈춰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나흘째인 26일(현지시간), 지구촌 주요 도시 곳곳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규탄하고 전쟁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럽부터 대서양 너머 미주 대륙, 아시아, 오세아니아, 심지어 중동까지. 평화를 염원하며 ‘우크라이나 편에 서겠다’고 외치는 세계 시민들의 연대는 국경과 인종을 가리지 않고 들불처럼 번졌다. 러시아에서는 당국의 체포 위협에도 불구, 가장 큰 규모의 반전(反戰)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로이터통신과 유로뉴스 등을 종합하면, 이날 스위스 제네바 유엔본부 앞에는 1,000여 명이 ‘우크라이나의 즉각적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가입’과 ‘푸틴 반대’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러시아 출신으로 스위스 시민권자가 된 발레리 브라가는 “내가 태어난 나라가 너무나 부끄러워 이 자리에 나왔다”고 고백했다.

비슷한 시간 스위스 수도 베른과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독일 베를린, 오스트리아 빈, 스페인 바르셀로나, 이탈리아 로마, 핀란드 헬싱키 등에서도 수천, 수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푸틴 대통령의 얼굴을 아돌프 히틀러와 합성한 사진을 들고 “푸틴은 테러리스트”라고 외쳤고, 자국 정부를 향해서는 전향적인 우크라이나 지원을 촉구했다. 헬싱키시(市) 고문인 코엘 토마스는 “과거 러시아 독재의 폭탄이 헬싱키에 떨어졌던 기억이 여전히 우리 기억 속에 생생하다”며 우크라이나 지지 의사를 밝혔다.

바다 건너 미국과, 남미 아르헨티나와 멕시코, 호주, 한국과 일본, 인도, 이스라엘, 이란에서도 평화와 전쟁 중단을 기원하는 움직임이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참가자들이 우크라이나 국기를 몸에 휘감거나 흔들며 시위에 나서면서 전 세계에는 노란색과 파란색 물결이 넘실댔다.

26일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의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열린 시위에서 한 시민이 전쟁 반대 팻말을 들고 있다. 멕시코시티=로이터 연합뉴스

26일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의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열린 시위에서 한 시민이 전쟁 반대 팻말을 들고 있다. 멕시코시티=로이터 연합뉴스

아이러니하게도 크렘린궁을 비난하는 움직임이 가장 거센 곳은 러시아였다. 영하로 떨어진 매서운 날씨에도 수도 모스크바와 푸틴 대통령의 고향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51개 도시에서 수만 명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의료ㆍ교육ㆍ언론ㆍ문화계 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는 각계 성명도 쏟아졌다.

푸틴 지지세력마저 반전 요구 행렬에 동참했다. 러시아 공산당 소속 미하일 마트베예프 하원의원은 트위터에 “즉시 전쟁을 멈춰야 한다고 본다. 나는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 독립을 승인했지만, 평화를 위해서였지 전쟁을 위한 행동은 아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최근 수년 간 푸틴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에 거의 반대하지 않았던 러시아 의회로서는 거의 보기 힘든 균열”이라고 진단했다.

시민들은 꽃을 들고 평화 시위를 이어갔지만, 러시아 당국은 폭력으로 맞대응했다. 이들은 시위 참가자들에게 곤봉을 휘두르며 가차없이 진압했다. 정치범 체포를 감시하는 러시아 비정부기구(NGO) ‘OVD-인포’ 발표 자료를 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지난 24일부터 전날까지 사흘간 3,000여 명이 체포됐다. 이날도 오전에만 34개 도시에서 적어도 492명의 반전 시위 참가자가 체포된 만큼,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공산이 크다. 심지어 이날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러시아가 1996년 이후 유예하고 있는 사형제도를 되살릴 수 있다고 위협했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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