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Biz 리더] 모방의 달인, 싸이월드 베껴 인터넷 제국 건설하다

입력
2017.06.24 13:59

한국의 ‘아바타 꾸미기’ 본떠

텐센트 설립 초기에 대성공

마윈의 알리바바와 中 선두 다퉈

마화텅 텐센트 CEO

2002년 시장조사를 위해 한국을 찾은 텐센트 생산관리부장은 싸이월드의 ‘아바타 꾸미기’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 걸 발견하고 새로운 수익모델이 될 것을 직감했다. 당시 텐센트는 1999년 OICQ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인터넷 메신저 QQ가 3년 만에 사용자 1억명을 돌파했음에도 뚜렷한 수익 모델을 찾지 못한 채 급증하는 서버 유지비용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한국에서 돌아온 생산관리부장이 올린 기획안을 받은 텐센트의 최고경영자(CEO) 마화텅(馬化騰)도 성공을 확신했다. 그러나 무턱대고 뛰어들기보다 싸이월드의 사례를 충분히 연구한 다음 그것을 뛰어넘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아바타에 유명 브랜드 상품을 입힐 수 있도록 하는 등 세심한 계획을 세운 후 이듬해 1월 ‘QQ쇼’ 서비스를 내놓았다. 마화텅의 예상은 적중했다. 사용자들은 인터넷상 가상 분신인 아바타를 꾸미기 위해 아이템을 구매했고, 패션업체들은 앞다퉈 광고비를 지불하며 텐센트에 막대한 수익을 안겨줬다.

이 에피소드는 온라인 메신저 서비스 업체였던 텐센트가 어떻게 세계 1위 온라인 게임 회사이자, 알리바바와 함께 중국 상장기업 중 시가총액 1, 2위를 다투는 거대 인터넷기업이 됐는지를 설명해주는 단서다. 텐센트는 1998년 창립해 채 스무 살도 되지 않은 회사이지만 시가총액은 21일 기준 무려 2조6,500억홍콩달러(약 388조원)에 이른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310조원이다. 30조원이 넘는 자산을 보유한 텐센트의 창업자이자 CEO인 마화텅의 나이는 이제 46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던 그는 어떻게 단기간에 중국 인터넷의 최고 거물이 될 수 있었을까.

천문학도를 꿈꾸던 소년 청년 사업가로

1971년 중국 광둥(廣東)성 산터우(汕頭)에서 태어나 하이난(海南)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마화텅의 어릴 적 꿈은 천문학자였다. 아버지가 정부 관리였던 덕에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그는 부모를 따라 선전(深圳)으로 이주해 선전대학 컴퓨터학과에 진학했다. 1993년 졸업 후 무선호출업체에 취직한 그는 따분한 업무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사업을 펼치고자 1998년 회사를 떠나 대학 동기인 장즈둥(張志東)과 텐센트를 창업했다.

첫 사업은 무선호출기와 인터넷을 연결하는 서비스였다. 마화텅은 당시 세 명의 이스라엘 컴퓨터광이 만든 PC용 인스턴트 메신저 프로그램 ICQ에 푹 빠져 있었지만 인터넷 메신저 서비스 사업을 하기엔 준비가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휴대전화 사용자가 급격히 늘면서 무선호출기 시장이 쇠락하자 마화텅은 애초에 하고 싶던 일을 시작해 1999년 2월 OICQ를 세상에 내놓았다. 사실상 ICQ의 중국어판에 불과한 모방품이었다.

하지만 여러 카피 제품 중에서 OICQ는 달랐다. ICQ가 부족한 점을 하나씩 보완하면서 모방 속 창조를 이뤄낸 것이다. 이러한 ‘창조적 모방’은 지금까지도 텐센트의 성공 유전자로 자주 언급된다. 훗날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텐센트가 작은 회사였을 때는 성장하기 위해서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야 했다. 그러나 모방만으로 성공할 순 없다. 해외에서 대단한 아이디어를 가져온다 해도 어떻게 현지화시킬 것이며 국내 상황에 맞게 어떤 혁신을 만들어낼 것인지에 따라 성공이 결정된다.”

혁신적으로 모방하라

마화텅의 모방 전략이 처음부터 적중했던 건 아니었다. 사업 초기에는 지식재산권에 무지한 탓에 위기를 맞기도 했다. ICQ를 인수한 AOL이 지식재산권 침해로 텐센트를 고소해 2000년 3월 승소 판결을 받아낸 것이다. 그러나 사업 초기에 이런 일을 겪은 것이 그에겐 전화위복이 됐다. 외부의 아이디어를 모방하되 반드시 창조적 혁신을 이뤄야 성공할 수 있으며 특허와 저작권이 사업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으니까.

OICQ도 창조적 모방을 통해 중국의 국민 메신저로 거듭날 수 있었다. 모든 정보를 컴퓨터에 저장해 다른 컴퓨터를 사용하면 이전의 대화 내용이나 친구 목록을 볼 수 없었던 ICQ와 달리 OICQ는 정보를 서버에 저장해 어디서나 쓸 수 있도록 했고 오프라인 상태에서도 메시지 전송이 가능하게 했다. 2001년 QQ로 이름을 바꾼 뒤엔 각종 부가서비스가 중국인들을 사로잡았다. 새로운 메신저 프로그램들이 등장하면서 ICQ 사용자는 점점 줄어들었지만 반대로 QQ 사용자는 급증했다. 1999년 10월 100만명이었던 가입자는 2000년 6월 1,000만명, 2002년 3월 1억명으로 늘었고 2009년 10억명을 넘어섰다.

귀여운 펭귄을 로고로 한 QQ는 중국인들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부가 됐다. 마화텅은 어마어마한 사용자 수야말로 인터넷 사업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걸 확신했다. 그는 1등 메신저회사에 안주하지 않고 포털사이트, 뉴스, 메일, 블로그, 게임, 전자상거래, 엔터테인먼트, 금융, 간편결제, 바이러스 백신, 온라인 교육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네이트온을 운영하는 SK컴즈가 네이버, 다음카카오, 넥슨을 아우르는 회사가 된 셈이다.

텐센트의 혁신은 ‘사용자 지상주의’에서 출발한다. 마화텅은 QQ 사용자가 어떻게 하면 더 편리하게 각종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지, 어떤 서비스를 원할지 고민했다. 텐센트는 말단 직원들부터 건전한 내부경쟁 시스템을 통해 이 같은 고민을 상품으로 내놓도록 했다. 중국판 카카오톡이라 할 수 있는 위챗(WeChat)은 이 같은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텐센트가 미국의 왓츠앱과 한국의 카카오톡을 참고해 2011년 초 내놓은 위챗은 진공청소기처럼 중국 스마트기기 사용자들을 빨아들이며 지난해 말 기준 월간 이용자 수 8억8,900만명을 기록했다. 모바일 결제 송금, 오프라인 결제, 음식 배달, 온라인쇼핑, 재테크, 공과금 납부, 택시 호출 등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 위챗 하나만 있어도 생활이 가능할 정도라고 한다.

AIㆍVRㆍ우주관광까지 사업 확대

텐센트는 전 세계 최대 게임업체이기도 하다. 텐센트의 지난해 매출액 219억달러(24조 9,725억원) 중 게임 부문 매출만 48.8%인 102억달러(11조 6,310억원)였다. 2003년 온라인 게임 서비스를 시작할 때만 해도 텐센트는 국내 게임 개발사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던 중소기업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역전됐다. 2003년 한국의 3D 온라인 게임 ‘세피로스’ 수입을 시작으로 사업을 시작한 텐센트는 ‘QQ탕’ ‘QQ스피드’ 등을 자체 개발하며 실력을 키웠고 한국에서 수입한 ‘던전 앤 파이어’ ‘크로스 파이어’의 엄청난 성공으로 온라인 게임 업계의 최강자로 올라섰다. 2011년 ‘리그 오브 레전드’를 개발한 미국 게임회사 라이엇게임즈에 투자한 데 이어 지난해 ‘클래시 오브 클랜’을 운영하는 핀란드 게임회사 슈퍼셀을 인수하는 등 텐센트는 공격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텐센트의 무한확장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유망한 분야의 기술력 있는 회사라면 당장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과감하게 투자하거나 인수합병(M&A)를 추진한다 핀테크, 엔터테인먼트 제작, 웹소설, 클라우드, 자율주행차,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암 치료 부문 등에 이어 최근에는 우주관광, 소행성 채굴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마화텅은 언제나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선두주자이기보다 창의적으로 모방하는 후발주자의 전략을 택했다. 이 때문에 경쟁자들로부터 종종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시나닷컴의 창업자이자 전 회장인 왕즈둥(王志東)은 “마화텅은 베끼기의 제왕”이라고 했고, 마윈(馬雲) 알리바바 회장은 “텐센트의 문제는 혁신은 없고 모조리 복제품밖에 없다는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마화텅도 자신이 ‘모방의 달인’이라는 점을 부인하진 않는다. 혁신이든 모방이든 그에겐 사용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마화텅의 신념은 곧 텐센트 성공의 비결이다. “우리는 사용자가 언제, 어디서, 어떤 기기로 접속하든 그들이 원하는 것을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텐센트는 혁신하든 아니면 빠르게 모방하든 사용자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제공하겠습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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