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B 들고 다니기 귀찮아” 100억불 기업 일구다

입력
2017.07.08 13:48
수정
2017.07.0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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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류 하우스턴 드롭박스 CEO는 "인생을 단순화하고 꿈을 좇으라"고 조언한다.한국일보 자료사진

“당신의 인생을 단순화하라”(Simplify your life)

드류 하우스턴은 이 모토 하나로 무일푼에서 기업가치 100억달러에 달하는 드롭박스를 일궈낸 최고경영자(CEO)다. 드롭박스는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한 온라인 파일 저장 서비스 업체다. 하우스턴의 모토대로 창업 동기부터 단순했다. “이동식저장장치(USB)를 들고 다니기가 귀찮아서”다.

7일 미국 주요 IT 외신에 따르면 올해 설립 10주년을 맞은 드롭박스 사용자는 현재 5억명을 돌파했고 연간 매출액은 1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IT전문지 비즈니스인사이더는 “하우스턴은 10년 만에 수많은 스타트업 업체 중에 하나였던 드롭박스를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비상장기업)을 넘어 ‘데카콘’(기업가치 100억달러 비상장기업)으로 키워냈다”며 “올해 하반기 예정인 드롭박스의 기업공개(IPO)는 올해 월가 최대 잭팟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드롭박스의 우연한 시작

하우스턴은 어린 시절 그야말로 ‘프로그래밍 영재’였다. 미국 하버드대 출신 엔지니어 아버지와 도서관 사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하우스턴은 어린 시절부터 프로그래밍에 출중한 재능을 보였다. 다섯살 때 어린이용 IBM 컴퓨터를 선물 받은 것을 계기로 프로그래밍에 빠져들었고 12세 때 게임을 하던 중 발견한 버그를 게임 제작사에 알려 임시 직원에 발탁되기도 했다. 공부에도 두각을 나타내 미국 대입평가시험(SAT)에서 1,600점 만점을 받고 매사추세츠공대(MIT)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입학한 후 하우스턴의 관심은 온통 프로그래밍과 창업이었다. 하우스턴은 “주말이면 학교 옥상에 프로그래밍과 경영, 마케팅, 판매관리 관련 서적을 한 아름 갖고 올라가 해가 지도록 접이식 의자에 앉아 읽었다”며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데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고 회고했다.

하우스턴의 첫 창업은 대실패였다. SAT 시험을 위한 온라인 강좌를 만드는 회사를 차렸지만 2년 만에 경영악화로 접어야 했다. 하우스턴은 “SAT 시험에서 만점 받은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이 도전했지만 그건 창업을 위한 창업이었다”며 “나중에 생각해보니 SAT 준비의 왕이 되는 게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인생 향로를 정한 건 아주 우연적인 사건이었다. 2006년 미국 보스턴에서 뉴욕으로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가던 중 자신의 작업 내용이 담긴 USB를 학교에서 갖고 오지 않은 것을 알게 됐다. 그는 그때 낭패감 속에서도 문득 ‘각종 파일을 간편하게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가 있다면 어떨까’ 착안하게 됐다. 그리고 곧 당시 보스턴 기차역에서 이를 실행할 수 있는 프로그래밍 코드 한 줄을 작성했다. 그게 드롭박스의 시작이었다.

드롭박스, 궤도에 올라서다

하우스턴은 2007년 스타트업 창업의 산실 샌프란시스코의 실리콘밸리로 이주해 드롭박스 설립에 본격 착수했다. 우선 미국 최고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인 ‘Y 콤비네이터’(YC)에 도전한다. 로이터통신은 “하우스턴이 YC의 지원대상에 선발되기 위해 제출했던 지원서를 보면 그는 당시 이미 휴대폰을 비롯한 각종 인터넷 기기가 우리 일상은 물론 업무 영역 전반을 지배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예감하고 있었다”며 “드롭박스는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연결 도구였다”고 설명했다.

하우스턴은 YC 제안서를 통해 드롭박스가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통해 편리성을 극대화한 제품임을 분명히 드러내 차별성을 부각했다. 실제 컴퓨터에서 파일을 동기화해주는 소프트웨어는 1996년부터 있었지만 드롭박스처럼 별도의 설정 없이 바로 동기화가 가능한 프로그램은 존재하지 않았다. 드롭박스는 설치 시 자동으로 새로운 폴더가 생기고, 이후로는 파일을 그 폴더에 옮기기만 하면 자동으로 동기화가 돼 별도의 단계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특히 드롭박스는 호환성을 높여 모든 스마트 기기를 지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스마트폰과 노트북 컴퓨터의 등장으로 사진, 음악, 문서들을 여러 기기에서 동시에 접근하고 싶은 소비자들의 욕구가 있었지만 기존의 방식으로는 수차례의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 드롭박스는 이를 모든 기기에서 호환 가능한 폴더의 자동 동기화로 일거에 해결했다.

하우스턴의 제안서는 YC에서 통과돼 투자를 받는 데 성공한다. 하우스턴은 인터뷰에서 첫 투자를 받던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어디로 돈을 보내면 되느냐는 첫 투자자의 연락을 받고 투자금을 확인하기 위해 하루 종일 은행사이트 화면에서 ‘새로 고침’ 버튼을 눌렀다. 회사 계좌가 60달러에서 120만달러로 변하는 순간 느낀 황홀함과 두려움을 잊을 수 없다.”

드롭박스가 거인과 맞서는 법 ‘사용자 경험’

드롭박스 시가총액은 100억달러로 추정된다. 반면 경쟁사인 애플은 2015년 기준 7,480억달러, 구글 3,690억달러, 마이크로소프트 3,570억달러, 아마존 1,730억달러 등이다. 시가 총액으로만 보면 드롭박스는 클라우드 파일 저장 서비스 시장에서 턱없이 작은 기업이다. 고객에게 제공하는 무료 저장용량도 애플 아이클라우드는 5GB, 구글드라이브는 15GB인 반면 드롭박스는 2GB로 가장 작다. 하지만 드롭박스의 사용자 수는 5억명 이상으로 다른 경쟁사들에 뒤처지지 않는다.

하우스턴은 드롭박스의 성공비결로 ‘사용자 경험’을 꼽는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저장 용량은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할 뿐”이라며 “고객들은 단순히 더 많은 자료를 저장하는 것보다는 쉽고 편하게 이용하길 원하는데 드롭박스는 이를 충족시켜주는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데 특화됐다”고 강조했다. 다른 경쟁사들은 큰 용량의 무료 저장공간을 제공한 뒤 일정시간이 경과하면 이를 만료하고 유료로 전환하는 전략을 쓴다. 반면 드롭박스의 경우 저장공간 혹은 업로드 할 파일의 크게 제한 등 몇 가지 제약들을 제외하면 무료이용자들도 서비스를 유료이용자와 동일하게 사용할 수 있다. 드롭박스를 처음으로 접하는 사용자들이 유료이용 전에 서비스의 품질과 기능들을 충분히 비교할 수 있게 해준다는 설명이다. 하우스턴은 “고객들이 편리함을 느끼면 주변에 추천하는 입소문 마케팅이 된다”며 “이에 지인에게 드롭박스를 추천하면 16GB 용량을 무료로 제공하는 방식을 통해 단기간에 사용자 수를 크게 늘릴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드롭박스의 가장 중요한 자원은 호환성과 파일 동기화 기술이다. 호환성이 높을수록 동기화된 자료들을 어느 기기에서든 사용할 수 있고 동기화 속도가 빨라야 용량이 큰 파일도 제약 없이 저장하고 내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드롭박스는 스트리밍 방식의 새로운 파일 전송기술을 택해 과거보다 최소 2배 가까이 동기화 시간을 줄인 것은 물론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컴퓨터 등에서 모두 드롭박스의 동기화 파일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호환성이 높다.

하우스턴은 “드롭박스의 최종목적이 사람들이 자사 서버에 더 많은 데이터를 저장하도록 해 결국 그들이 무료계정에서 유료계정으로 전화하도록 하는 것 “이라며 “그런 점에서 “호환성과 동기화 속도는 드롭박스가 성장하는 가장 핵심적 요소”라고 설명했다.

테니스공과 원(circle), 숫자 3만

하우스턴은 2013년 모교인 MIT 졸업식 축사를 통해 드롭박스를 일궈낸 자신의 경영 리더십을 ‘테니스공’과 ‘원’ ‘숫자 3만’이란 단어로 압축해 설명했다. 그는 “내가 졸업할 땐 갖지 못했던 작은 ‘커닝 페이퍼’를 지금의 MIT 졸업생들에게 선사한다”며 “거기에는 테니스공과 원, 숫자 3만이 적혀 있을 것”이라고 연설을 시작했다.

하우스턴은 테니스공의 의미는 ‘꿈’이라고 말했다. 그는 “테니스공을 쫓아 달리는 강아지는 눈이 뒤집히고 목줄이 끊어져도 앞에 뭐가 있든 일단 달리고 본다”며 “테니스공만 쫓는 강아지처럼 앞만 보고 내달려야 한다”고 말했다. 드롭박스가 설립 2년밖에 되지 않아 모든 미래가 불확실했던 2009년,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하우스턴을 만나 10억달러 규모의 드롭박스 인수를 제안했다. 하지만 하우스턴은 단칼에 거절했다. 드롭박스가 애플의 일부 기능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구글, 애플, 페이스북 같은 수많은 거대기업을 드롭박스의 품으로 끌어 들여 큰 회사로 성장시키겠다는 꿈을 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의 의미는 ‘인맥’이었다. 하우스턴은 “현재 자신이 어울리고 있는 5명 동료의 평균이 자신의 미래 모습”이라며 “내가 만약 MIT에서 오지 않았다면 드롭박스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드롭박스 창업의 핵심 공신은 하우스턴의 MIT 후배였던 아라시 페르도시다. 페르도시는 졸업을 불과 6개월 앞두고 학위를 포기하고 드롭박스 공동창업자로 참여했다. 그는 이후 드롭박스에서 최고기술책임자를 맡아 드롭박스 성공의 청사진을 그렸다. 하우스턴은 “재능이 있고 열심히 일하는 것 못지않게 자기 주변을 ‘영감을 주는 사람들’로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하우스턴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3만일”이라고 했다. 그는 “인생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기보다 모험하기 위한 자유를 줘야 한다”며 “그리고 나면 남는 것은 높이 나는 것 뿐”이라고 축사를 끝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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