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가 자처한다면 '이 책'은 꼭!… "아름다운 문장은 덤"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공유서재 '내곁에서재' 운영자인 이용우씨의 '원 픽'은 세계적 인지신경학자 매리언 울프의 '프루스트와 오징어'다. 빽빽한 서가에서 딱 한 권의 책을 꼽아달라는 요청에 그가 자신만만하게 고른 책이다. 과연 '읽는 사람'다운 선택답달까. 이 책은 읽기에 대해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고전이다. 신경과학과 문학, 고고학을 넘나들며 독서가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밝힌다. 일종의 '덕질'로 독서를 해온 이씨는 울프의 책을 읽고 나서 '삶을 변화시키는 책'이라는 명제를 비로소 체감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제가 삶의 전환점에서 선택한 것이 '책'이라는 물성을 담은 공간인 '내곁에서재'였다는 거죠. 책이 나의 삶을 변화시켰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습니다." 이씨가 먼저 읽은 건 울프의 또 다른 대표인작 '다시, 책으로'였다. 2009년 '책 읽는 뇌'가 국내 번역 출간된 지 10년 만에 선보인 후속작. 절판된 '책 읽는 뇌'의 원제를 살려 다시 나온 책이 '프루스트와 오징어'다. 이씨는 "저자가 본인의 독서 경험까지 녹여 '독서의 뇌과학'을 풀어나가는데 책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감탄하게 된다"며 "문장까지 너무 좋다"고 했다. 이씨는 '프루스트와 오징어'를 본 다음 '다시, 책으로'까지 함께 읽기를 권한다. 나오미 배런의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까지 더한 이른바 '프다다 세트'를 완독하면 어디 가서 '책덕후' 명함을 내밀기에 충분하다고.

"평생 모은 책 2000권, 2000원만 받고 나눠 읽어요"...이 남자의 '공유서재'

공유 서재인 '내곁에서재' 운영자 이용우(53)씨는 진짜 '책덕후'다. 책을 이고 지고 사는 대신, 책을 진정 사랑하는 이들과 나누기를 택했다. 내밀한 개인 서재를 책덕후들의 아지트로 기꺼이 내놓으면서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무표정한 주택가 길모퉁이. 흰색 파사드(건물 외벽)가 돋보이는 건물 '소채담' 2층에 그의 서재가 있다. 그는 이곳을 '책덕후를 위한, 책덕후의 공간'이자 '타인의 책장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이 있는 곳'으로 꾸몄다. 15평 남짓한 공간이 한쪽 벽면을 약 2,000권의 책으로 빼곡히 채운 공유 서재가 됐다. 애서가이자 다독가인 그가 평생 읽고 모은 책이다. 이씨는 사전 예약한 이들에게 자신의 서가를 개방한다. 내곁에서재를 품은 소채담은 '맑고 밝은 형채가 담긴 공간'이라는 뜻이다. 2년 전까지 대기업 계열 종합상사를 다니다 퇴직한 이씨와 배우자인 전통자수 공예가 도주희(51)씨는 오래된 빨간 벽돌집을 2020년 9월 헐고 소채담을 지었다. 1층에는 도씨의 공방이 터 잡았고, 2층은 이씨 소유의 장서들 몫이 됐다. 3층은 화실, 4층엔 공유주방이 자리했다. 주변에선 노후 대비용 원룸이나 상업시설을 넣으라고 권했지만 부부는 고집스러웠다. "가끔 저희 부부도 그런 얘기를 해요. '미쳤지'라고요. 하하."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2021년 8월 25일 내곁에서재가 드디어 문을 열었다. "(리모델링하면서) 집도 스트레스를 적게 받기를 바랐습니다." 원룸 등 임대시설이 아닌 서재를 연 첫 번째 이유다. 이씨는 "매일 오고 가는 사람들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던 이 집이 구조 변경으로 받게 될 물리적 피로도를 줄여보자는 생각이었다"고 부연했다. 알 듯 말 듯 했다. 주변이 서울과학기술대, 서울여대 등이 있는 대학가라 즐비한 원룸들이 이씨 눈에 박혔다. 책상 하나, 침대 하나 놓고 원룸에서 사는 이들에겐 스타벅스가 거실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내곁에서재는 그렇게 "물리적 공간 부족을 채움으로써 심리적 여유를 만들어 내고, 책과 독서를 통해 사색하고 몰입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누구나 꿈꾸는 궁극의 서재 모습으로다. 조명 하나부터 화장실 수전까지, 건축을 전공한 도씨의 지휘 아래 부부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다. 카페나 도서관과 달리 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내 집 서재' 느낌이 물씬 난다. 동네 목공방에 맡겨 직접 짜넣은 책장은 칸 높이를 25㎝로 특별히 맞췄다. 보통 소설책 크기의 책을 꽂기 위한 적정 높이다. 이보다 높으면 책 위에 책을 눕혀 쌓게 된다. 작업을 할 수 있는 테이블은 물론 깊이 몸을 파묻은 채 책을 읽다 사색하다 잠들 수 있는 암체어, 라운지체어, 1인 소파가 창가에 점점이 놓여 있다.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제주 본태박물관 느낌을 내기 위해 부러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한 벽면은 전체 분위기를 좌우한다. 이씨는 시간당 최대 4명까지 사전 예약을 받아 서재를 공유한다. 사실상 이윤은 포기했지만 한 시간에 2,000원씩 공간사용료를 받는다.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의 유지와 지속가능성을 위한 최소한의 비용이다. 이씨는 소채담과 도보로 10분 지근거리 아파트에 살고 있다. 자택 서재에도 책 800권이 있다. 인근 성북구 석관동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낸 그는 10여 년 전 연어가 회귀하듯 이곳으로 돌아왔다. 8살, 6살 터울 지는 두 형의 책을 손 닿는 대로 읽으면서 이씨는 독서의 즐거움에 일찌감치 눈떴다. 돌아보면 인생의 전환점마다 책이 있었다. 대학 전공을 정할 때도, 방황하던 군 시절 마음을 다잡아야 했을 때도 책이 도왔다. 21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언젠가는 그만둬야 할 '정해진 미래'라는 생각이 컸다. 차장을 달 때쯤 이미 '독서'로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설계가 시작되고 있었다. 내곁에서재를 연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이씨는 잡식성 독서가다. 내곁에서재 장서 목록은 그의 식성대로 대중없다. 십진분류법대로 나누지는 못하더라도 장르나 작가, 출판사별로 모아놓을 법도 한데 되는대로 꽂아놨단다. "그냥 모아둔 거예요. 계속 이렇게 쌓을 겁니다. 쌓다 보면 책으로 완전히 둘러싸이겠죠." 서가를 훑으면서 즉석에서 책 소개를 부탁했다. 책 이야기만큼은 술술 거침없다. "어떻게 이 정도까지 책을 읽을까요. 서재를 꾸며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죠." 소문난 대만의 책벌레 탕누어가 쓴 '마르케스의 서재에서'를 가리키며 그가 말했다. 직장인 시절 특히 많이 봤던 경제·경영 서적들을 지나 이와마 가즈히로의 '중국요리의 세계사'에 그의 눈길이 가닿았다. "이 책 굉장히 재밌어요. 저자는 일본인인데 중국요리를 논한다니까요. 한국의 짜장면까지 다루는데, 얼마나 재밌게요." 그가 신이 나서 말했다. 미국 모르몬교 가정에서 태어나 16세까지 학교에 가본 적 없던 타라 웨스트오버가 쓴 회고록 '배움의 발견'도 그가 강력 추천하는 책이다. 동양철학의 정수로 꼽히는 노자의 도덕경은 제목만 다른 여러 버전의 책이 서가 한 칸을 점령하고 있다. 칼 세이건, 리처드 도킨스 등의 과학서는 물론 공상과학(SF)소설 작가 김초엽의 신작까지 꽂혀 있다. 그의 독서 편력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부터 부동산·주식 관련 책까지 뻗었다. 출판사 월북의 '걸 클래식 컬렉션' 중 '빨간 머리 앤'은 "표지가 예뻐서" 원서까지 소장 중이다. "그런데 볼 때마다 항상 후회하는 책이 하나 있어요." 이씨가 김원철의 '부동산 투자의 정석'을 짚었다. 2007년 출간된 손때 묻은 초판과 때깔 좋은 개정판 2권이 나란히 꽂혀 있다. "구판이 절판되면서 정가 1만5,000원이던 책이 8만 원까지 호가했거든요. 그런데 개정판이 나와버렸죠. 그전에 팔았어야 했는데…" 이씨는 여전히 매달 30~50권 정도의 새 책을 만난다. 절반은 '내돈내산'이고, 나머지는 출판사에서 보내주는 책이다. "제가 산 책은 안 좋은 책들도 놔둬요. 어떤 책을 읽어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꼭 하나는 있잖아요. 나쁜 책이든 좋은 책이든 허접한 책조차도 그렇거든요." 책을 향한 그의 순정은 순도 100%다. 서가에서는 그가 읽지 않은 책을 찾는 게 더 어렵다. 무슨 책을 꺼내들든 얇게 잘라 붙인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책에 밑줄을 긋는 순간 (책 읽는) 흐름을 잃게 돼서" 작고 얇게 미리 잘라놓은 포스트잇을 붙이는 게 그의 독서법이다. 일단 손에 한번 잡은 책은 80~100쪽을 단숨에 읽는 것이 완독 비결. "독서는 경청을 배우는 과정이어서 저자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려면 최소 80쪽은 읽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렇게 쭉 읽으면 거의 완독까지 가게 된다"고 한다. 한때는 하루에 한 권씩도 읽었다. 그러니까 내곁에서재를 알리기 위해 시작한 동명의 인스타그램 채널에 일주일에 4, 5권씩 책 소개글을 게시할 때다. 인스타그램에는 약 1,290개 글이 쌓였고, 팔로어는 1만9,000명을 넘는다. 2,000자를 꽉 채워 올린 책 소개글은 10만 뷰를 훌쩍 넘기기도 한다. 3040세대 여성이 주로 본다. "나름 트렌드가 읽히더라고요. 이런 책을 올리면 잘 나오겠구나 싶은. 이제는 제가 일부러 안 따라가죠." 한 달 후면 내곁에서재를 선보인 지 꼬박 3년. 책덕후들이 남기고 간 방명록은 그의 자산이다. "여기 있는 동안 왜인지 눈물이 날 것만 같더라. 이 공간이 주는 공명에 위로를 받았다"는 '방황하는 스물아홉'의 감사 인사,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서재가 있다는 게 행운"이라는 10년 차 커플이 남긴 응원글 등. 이곳을 찾았던 한 가족은 "내곁에서재에서 영감을 받아" 24개 나라를 여행하고 쓴 책 '유럽의 다정한 책장들'을 최근 출간하기도 했다. 이씨는 "효율성이나 경제성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던 초창기에는 불안하기도 했다"며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고민이 사라지고 그냥 이걸 계속해야겠다는 생각만 남더라"라고 했다. 그는 오늘도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오래가는 공간이 되도록 마음가짐을 단단히" 다짐한다.

김훈 "젊은이들이 저항하고 들이받으라...기득권은 양보하지 않으니까"

“한국 사회의 병이 대부분 ‘말 병’입니다. 국회의원을 보면 다 말 병 걸린 사람들 같아요.” 산문집 ‘허송세월’을 낸 김훈(76) 작가는 24일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이같이 진단했다. 이런 말 병은 듣지 않고 ‘말하기’에만 골몰한 탓에 생긴다는 것이 김 작가의 말이다. 그는 “우리 사회 언어의 병은 듣기가 안 된다는 것”이라면서 “듣지 않고 내 말만 하니 소통이 되지 않고, 적대감과 극단의 언어만 쌓인다”고 말했다. 김 작가가 ‘허송세월’에서 “지난 70년 동안 이 불행한 분단의 시대를 지배한 것은 증오와 불신과 저주의 언어였다”고 쓴 까닭도 여기에 있다. 소통이 아니라 적대의 장벽에 동원된 언어로 인해 이제는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는 사회”가 되어버려 민주주의의 존립이 불투명한 위기라는 것이다. 김 작가는 “말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하면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면서도 “자신의 정치·사회적 견해를 말할 때 교양 있는 언어로 말하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듣기에 바탕을 둔 말하기로 소통을 회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4 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강연회에 모인 300명 독자의 주된 관심사는 김 작가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동”으로 여기는 글쓰기였다. 글쓰기의 핵심을 ‘부사와 형용사 죽이기’라 말해 온 그는 이날도 “군더더기 없이 ‘뼈다귀’만 있는 문장”을 강조했다. 2022년에 낸 장편소설 ‘하얼빈’에서 “이토가 죽었다”라고 썼다가 부사 ‘곧’을 추가하고는 후회한 일화를 통해 “독자에게는 하찮겠지만 나로서는 고통스럽다”고 털어놨다. ‘시대의 문장가’라 불려온 그는 “쓸 수 있는 단어가 점점 줄어들었다. 이제 한 움큼밖에 안 남은 것 같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혀가 빠지게 일했던 세월”을 지나 여든에 가까워진 김 작가는 강연 끝 무렵에 노년 세대로서 청춘의 고민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는 “젊은이들의 고통 대부분은 우리 세대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반성하면서도 “젊은이들이 감당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노작가는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우리 세대를 향해 ‘당신들이 책임져라’ 말해봐야 소용없어요. 우리는 금방 가니까. 여러분들이 끌어안고 가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을 부지런히 바라보고 생각하고 쓰는 김 작가다. 그는 거듭 당부했다. “주변을 정확하게 들여다보시는 젊은이가 되길 바랍니다. 기득권이 도덕적으로 양보하는 세상은 인류사에 없었습니다. 젊은이들이 주변의 문제를 잘 들여다보고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요구하고, 들이받아서 세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몰아가기를 바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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