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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기사에 분노해 기자를 쏴 죽였다...권력·언론 유착에 대한 우화

입력
2024.07.26 11:00
25면

[강창래 작가의 다시본다 고전2]
독일 작가 하인리히 뵐의 소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편집자주

어쩐지 펼쳐 보기 두려운 고전에 대해 다시 조곤조곤 얘기해 봅니다. 1993년 등단한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배수아 작가와 출판 편집 기획자 출신 강창래 작가가 한국일보에 격주로 글을 씁니다.

독일 작가 하인리히 뵐. 위키미디어 커먼스

독일 작가 하인리히 뵐. 위키미디어 커먼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1974)는 위험한 소설이다. 당대의 한 유명한 정보학자는 테러리스트 소설이라고 규정했다. 물론 작가인 하인리히 뵐은 그런 평가를 거부했다. 작품에는 테러리스트가 한 사람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혐의를 받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러나 혐의는 혐의일 뿐 사실이 아니다. 이 소설은 부제가 말하듯이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황색언론의 폭력에 대한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드러내는 팸플릿으로 규정한다. 공격 대상은 명확하다. 제사(題詞·책 서두에 나오는 책과 관련한 시 등의 글)에서 이렇게 포문을 연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이나 사건은 자유로이 꾸며낸 것이다. 저널리즘의 실제 묘사 중에 ‘빌트’ 지와 유사점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의도한 바도, 우연의 산물도 아닌, 그저 불가피한 일일 뿐이다.”

독일 일간지 ‘빌트’를 굳이 들먹이며 아니라고 말하면서 바로 그것이라고 못 박는 어법이다. 빌트 측에서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가능성에 대한 방어 장치이면서 1971년 이래 작가와 빌트 사이에 있었던 공방전의 결정판이었던 것이다. 작가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1972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독일 문학으로서는 43년 만의 큰 경사였다.

그들의 악연은 68학생운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6년 독일에서는 나치당원이었던 쿠르트 게오르크 키징거가 독일 연방 수상이 된 뒤 비상계엄법을 통과시켜 극렬한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시위에 참여했던 학생이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하는 일도 벌어졌다. 그런 폭력적인 체제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폭력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세력도 등장했다. 그로 인해 개혁을 요구하는 학생 모두가 정부 기관지 같은 언론에 의해 폭도로 규정되며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 역할은 발행 부수가 가장 많았던 ‘빌트’가 포함된 슈프링거 계열의 언론이 도맡았다.

하인리히 뵐은 1971년에 시사주간지 슈피겔을 통해 빌트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기 시작했다. 선정적이고 과장된 황색언론 기사가 대중의 공포와 편견을 조장할 뿐 아니라 사회 불안을 야기하고 개인의 명예를 훼손시킨다는 주장이었다. 1972년에도 뵐은 빌트가 강도 사건 중에 일어난 살인을 아무 근거 없이 적군파의 소행으로 몰아세우며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뵐은 슈피겔에 실린 글을 테러리즘에 대한 옹호로 오해한 보수적인 독자들에 의해 엄청난 공격을 받았다. 빌트 역시 그런 오해를 부추기는 비난 기사들로 맹공을 가했다. 그 결과 그와 가족들은 익명의 편지와 전화로 욕설과 협박에 시달렸고, 몇 주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런 분위기는 소설에서도 그대로 재연된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하인리히 뵐 지음·김연수 번역·민음사 발행·170쪽·9,000원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하인리히 뵐 지음·김연수 번역·민음사 발행·170쪽·9,000원


20대 여성, 갑자기 범죄자의 공범이 됐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슈피겔에 연재된 뒤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모티브는 하노버 공대 심리학과 교수였던 피터 브뤼크너 사건이었다. 그는 적군파들에게 숙식을 제공했다는 혐의로 수색을 받았고 당시 황색언론들은 그 내용을 과장해 선정적으로 보도했다. 그래서 해직되었다가 무혐의를 받고 복직했다.

하인리히 뵐은 소설 주인공으로 좀 더 낮은 계층이지만 영리하고 근면한 가정관리사인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선택했다. 27세 이혼녀인 카타리나 블룸. 성실하게 일하면서 검소한 삶을 꾸려온 덕에 작은 아파트를 소유했다.

그는 어느 날 대모인 불터스하임의 댄스 파티에 초대받았는데 그런 경우는 드물었다. 그날 따라 혹시 술을 마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차를 두고 전철을 타고 갔다. 거기서 루트비히 괴텐을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주변 사람들은 이혼한 뒤 ‘수녀’처럼 살던 사람이 파티 내내 그 남자하고만 춤을 추었다는 사실에 놀란다. 파티가 끝난 뒤에는 그 남자의 차인 포르셰를 타고 자기 집으로 간다. 카타리나가 몰랐던 것은 괴텐이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수배 중인 범죄자로 강도와 살인, 테러 혐의까지 받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10시 30분쯤 아파트에서 괴텐이 나오지 않자 뭔가 잘못되었다고 판단한 수사책임자 바이츠메네는 부하들과 함께 아파트를 덮쳤다. 그러나 괴텐은 사라진 뒤였다. 경찰은 아파트 출입구를 철저히 감시했기 때문에 숨겨진 비상구가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카타리나의 도움을 받아 탈출한 것이다. 그렇다면 카타리나는 괴텐의 공범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경찰서로 호송되어 심문을 받아야 했다.

황색언론의 역할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아파트 로비에는 주민들이 나와 있었고 신문사 사진기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퍼부었다. 심문 과정에서는 카타리나 블룸이 어떤 사람인지가 자세히 기술된다. 어린 시절, 결혼 생활, 이혼하고 독립한 과정, 누구와 일했는지, 누구에게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등이 자세히 밝혀진다. 이런 내용들은 카타리나가 괴텐의 공범일 가능성을 판단하기 위한 배경 자료이다.

하인리히 뵐. 위키미디어 커먼스

하인리히 뵐. 위키미디어 커먼스


노벨문학상 중 가장 잘 알려진, 기자 필독서

심문 시간이 길어진 것은 수사관들 때문이 아니라 카타리나의 섬세함 때문이었다. 자신이 진술한 내용을 기록한 진술서를 놀라울 정도로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낱말의 뉘앙스를 점검하고 적절치 않은 단어는 고쳐 쓰기를 고집했다. ‘남자들이 다정하게 대했다’는 문장에서 그건 치근거린 것이니 고치지 않으면 절대 서명하지 않겠다고 하는 식이었다. 카타리나의 성격은 주변인들의 증언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러나 문제는 경찰의 심문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나온 이야기는 거의 전부 한 언론사 기자에게 전달되고 기자는 카타리나와 관련된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취재를 했다.

기사는 선정적이며 자극적으로 왜곡된 내용이었다. 예를 들어 카라리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인 블로르나는 그가 "매우 영리하고 이성적이다"라고 말했지만 기사에는 "얼음처럼 차갑고 계산적이다"로 둔갑했다. 그 기자의 이름은 퇴트게스였다. 그는 카타리나의 어머니와 전남편까지 찾아다니며 카타리나가 괴텐과 같은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는 배경을 조작해 나갔다. 어머니는 기자와 접촉한 뒤 죽었고, 카타리나는 평생 처음으로 소리 내어 슬피 울었지만 신문기사에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극도의 변태’로 묘사된다. 극단적으로 왜곡된 기사들로 인해 익명의 전화와 편지로 협박에 시달리는 며칠을 보낸 뒤 카타리나는 그 기자와 단독 인터뷰를 제안한다.

기자는 약속 시간보다 15분 늦게 나타나 엉망진창으로 변한 아파트에 들어서면서 야한 농담을 던졌다. "나의 귀여운 블룸 양, 우리 일단 섹스나 한탕 하는 게 어떨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카타리나는 권총을 꺼내 여러 발 쏘았다. 카타리나는 왜곡된 신문기사의 폭력에 복수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권총을 준비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자의 말투가 달랐다면 실행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결국 그의 말이 죽음을 부른 것이다. 소설의 중요한 줄거리는 이런 정도다.

독일 오덴발트 퓌르트에 있는 하인리히 뵐 학교 정면에 있는 하인리히 뵐의 얼굴. 위키미디어 커먼스

독일 오덴발트 퓌르트에 있는 하인리히 뵐 학교 정면에 있는 하인리히 뵐의 얼굴. 위키미디어 커먼스


문학을 즐기는 독자라면 줄거리는 아무것도 아님을 잘 알 것이다. 어떤 맥락에 담긴 줄거리가 어떤 이야기 구조 속에서 어떤 텍스트로 표현되느냐가 중요하다. 사소한 일상에 자신의 일생이 담겨 있는 것처럼, 사소해 보이는 문장 하나하나에 작품의 가치가 담겨 있다. 여기에서 소개한 배경을 알고 읽으면 냉소적이면서 유머스러운 텍스트가 감탄스러울 것이다.

이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기자들도 읽어야 할 필독서로 자주 선정되었고 노벨문학상 작가 작품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소설로 언급되기도 한다. 출간 이듬해에는 영화로 제작되었다. 조명이나 특수효과를 거의 사용하지 않은 다큐멘터리 스타일인데 원작의 분위기를 충실하게 재현하기 위해서였다. 흥행도 성공적이었다. 이는 당시 옛 서독의 정치적 긴장과 언론의 역할에 대중의 관심이 매우 컸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독일에 있는 하인리히 뵐의 동상. 위키미디어 커먼스

독일에 있는 하인리히 뵐의 동상. 위키미디어 커먼스




강창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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