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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5일 특혜채용 당사자인 고위직 간부 자녀 10명을 직무에서 배제한 가운데,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사과문을 통해 국민 여러분이 만족할 때까지 제도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모습. 과천=뉴시스
대한민국 선거관리위원회는 1947년 제정된 '입법의원선거법'에 의해 국회의 산하기관인 ‘법률 기구’로 출발했다. 하지만 이승만 정부의 3·15 부정선거로 선거관리의 중요성이 대두됐고, 결국 제3차 개정 헌법에 “국회, 대통령, 정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법원, 헌법재판소”가 열거되면서 ‘헌법상 독립기구’로 창설(1960년 1월 21일)됐다. 이어 1963년에는 헌법에 “국회, 정부, 법원, 선거관리, 지방자치”가 규정돼 명실공히 ‘헌법 기구’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사광욱 초대 중앙선관위 위원장은 창설 직후인 1963년 2월 담화문을 발표해 신뢰를 얻고자 했고, 국민들도 중앙선관위를 ‘신뢰도가 매우 높은 헌법기관’으로 인식했다.
“전(全) 선거관리위원은 …(중략)… 어떠한 권세나 정파와도 타협 동조할 수 없으며, 어떠한 위협에도 굴복할 수 없으며, 어떠한 유혹과 유인에도 유도될 수 없으며…(중략)… 어떠한 이권도 명예도 금전도 털끝만큼의 효과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60여 년이 지난 지금, 선관위 안팎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보노라면, 과연 선관위가 ‘어떠한 유혹과 유인에도 유도되지 않고 어떠한 이권과 명예 및 금전이 효과를 발휘할 수 없’는지 의문이다.

박찬진 전 선관위 사무총장이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열린 김대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증인 출석해 국회의원의 질문을 듣고 있다. 뉴스1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으로 성장한 선관위
민주국가에서 선거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 역시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 교육감, 농·수·축협 조합장까지 선거로 진행된다. 그러다 보니 선관위도 전국 시·군·구에 하부 조직을 둘 정도로 커졌고, 전체 직원은 무려 3,000여 명이나 된다. 선관위 역할도 이전에는 공정한 투·개표 관리 정도였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정치개혁 법안 개정 등이 주업무가 될 정도로 강화됐다.
문제는 정치적 중립성·독립성을 이유로 입법·사법·행정부 등으로부터 어떠한 견제도 받지 않는 권력기관이 됐다는 점이다. 물론, 이론적으로 국회는 선관위를 견제할 수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지역구 관리부터 선거 운동까지 전반적인 활동에 대해 선관위의 감시를 받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선관위는 국회에 대해 ‘사실상 갑(甲)’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선관위는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 됐다. 당장 2022년 대선을 떠올려 보자. 선거 당일인 3월 5일 코로나 확진·격리 유권자가 기표한 투표 용지를 소쿠리, 라면박스, 비닐 쇼핑백에 담아 옮기는 어처구니없는 ‘소쿠리 투표’ 사태가 벌어졌다. 그런데도 선관위는 ‘감사원의 직무감찰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감사원 감사를 거부했다. 선관위 고위직 자녀의 특혜 채용 의혹이 터졌을 때도 초반에 감사를 거부하는 등 배짱은 이어졌다. 이후 여론에 못 이겨 억지로 받은 감사원 감사 결과는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2013년 이후 10년간 291차례 경력직 채용 과정에서 비리와 규정 위반이 발견됐고, 선관위 직원 자녀들은 각종 특혜와 조작으로 채용됐다. 당시 감사원이 검찰에 수사 의뢰 혹은 참고 대상으로 넘긴 선관위 전현직 직원만 49명에 달했다.
감시와 견제가 없는 조직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이는 결국 국민들의 신뢰 저하로 이어졌고 12·3 비상계엄 당시 계엄군이 선관위 청사를 점거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계엄군의 청사 점거 이유가 부정선거 의혹과 관련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충격을 금할 수 없지만 선관위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확고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지나친 것인가?

선관위 '채용 비리' 관련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지난 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서 퇴근하고 있다. 뉴시스
‘선관위원장=대법관’ 관례, 과연 옳은가?
중앙선관위 위원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 △국회에서 선출하는 3인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으로 구성하며, 위원장은 호선(互先)해야 한다(헌법 제114조 제2항). 하지만, 1960년대 제2공화국 이후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대법관이 위원장을 맡았고, 이는 당연한 관행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 대법관은 연간 4,000여 건의 ‘주심’ 사건을 처리하고, ‘부심’으로서 의견을 제출해야 하는 사건도 수천 건에 달한다.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과중한 업무량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직 대법관이 과연 중앙선관위 위원장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또 법이 정한 선관위원 임기는 6년이지만, 역대 선관위원장 평균 임기는 2년 10개월에 불과하다. 대법관 임기가 종료되면 관례적으로 위원장직 역시 그만두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관위 위원 9명 중 8명은 비상임이고, 1명만 상임위원이다. 이렇게 비상임직 위주로 조직이 운영되는 것은 헌법 기관들 중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유일하다.
이처럼 위원장이 비상근으로 대법관까지 겸직하니, 선관위 업무에 대해 굉장히 제한된 정보만 얻을 수 있다. 또 조직 장악력과 이해도도 떨어져 조직을 제대로 관리·감독하기도 어렵다. 당연히 사무총장, 차장 등 부하 직원에게 사실상 선관위의 모든 일을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모습. 뉴시스
오랜 관행, 끊어야
따라서 위원장과 위원 등 9명을 상임직으로 임명해 업무에 집중토록 하고 그에 따른 결과에 확실한 책임을 지게 할 필요가 있다. 만일 100% 상임화가 어렵다면, 적어도 위원장만이라도 상임화 해야 한다. 또 ‘대법관=중앙선관위원장’ 인사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 여기에는 “사실상 행정기관 역할을 하는 중앙선관위의 수장을 사법부 인사가 맡는다는 것이 삼권분립 원칙에 어긋난다”는 문제의식도 깔려있다.
법원은 선관위를 견제하기 어렵다. 대법관이 선관위 위원장이기 때문이다. 선관위는 또 국회에 대해 ‘사실상 갑’이다. 결국 선관위를 통제하려면, 선관위원장이 내부 조직을 장악하고 통제하는 방안이 지금으로선 그나마 선택 가능한 대안이다. 그래서 선관위원장은 대법관이 아닌 사람이 맡아야 하고 이 자리는 상근직이어야 한다.
한국의 민주화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급격한 변화를 거쳤다. 그리고 선관위는 민주주의를 처음 도입할 당시 이상적 모델이었던 ‘행정부형’을 추구했고, 1960년대 부정선거 등을 거치면서 형식적 독립성을 강조하는 ‘독립형’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부정선거가 횡행하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 한국이 상당한 수준의 민주화를 이뤘다. 더 이상 선거관리위원회의 형식적 독립성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홍선기 동국대 법학과 교수
홍선기 교수는?
동국대 법과대학 헌법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같은 대학 학사ㆍ석사 과정을 마친 뒤 독일 알버트-루드비히 대학교(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럽인권협약과 IT법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저서로는 4차산업혁명의 이해(공저), 최신유럽인권법원판례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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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불위한 선관위는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물이고이면 썩게 되어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선관위는 반드시 감독기관의 감사를 받아야만 된다고 말한다.
선관위는 부정선거를 못하도록 완전장치를 만들어서 감독기관과 함께하도록 해야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