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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서 이주 고학력 중장년 "은퇴해도 살고 싶은 곳"

입력
2025.01.01 16:00
24면

<5> 나주 - 공공기관 이전이 은퇴자 마을로 이어져야

편집자주

한국일보와 포스텍 사회문화데이터사이언스 연구소(소장 배영ㆍ이하 ISDS)는 액티브 시니어(액시세대)가 은퇴 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에 적당한 지역이 어떤 곳인지, 액시세대를 불러들이기 위해 각 시·군은 어떤 노력을 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지역을 찾아가 그 곳에서 생활하는 은퇴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또 양적 질적 조사 방법을 사용해 해당 지역의 장점과 약점을 분석해, 10회에 걸쳐 매달 네번째 목요일에 게재한다. *지면상 5회는 한 주 뒤에 게재

전남 나주읍성 한옥마을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3917마중'의 앞마당 은행나무가 지난 11월 18일 곱게 물들었다. 담장 너머는 나주향교다.

전남 나주읍성 한옥마을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3917마중'의 앞마당 은행나무가 지난 11월 18일 곱게 물들었다. 담장 너머는 나주향교다.

나주 사람들은 나주를 ‘천년 목사(牧使)의 고장’이라 자랑스레 부른다. 고려 성종 때 전국에 12목(牧)을 두었는데 나주도 그중 하나였다. 그때가 서기 983년이니 천년이 넘는 유서 깊은 고장이다. 나주가 이렇게 오랜 역사를 지닌 것은 영산강을 중심으로 넓고 비옥한 평야와 온화한 기후를 갖춘 곡창지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시화 산업화 과정에서 농업과 농촌이 소외되면서, 1966년 24만 명을 정점으로 인구가 감소해 2013년에는 9만 명 밑으로 축소됐다. 쇠락을 멈춘 것이 바로 광주와 전라남도가 공동으로 유치한 나주혁신도시(빛가람동) 건설이다. 2014년 2월 첫 입주가 시작된 나주혁신도시에는 한국전력공사, 한국농어촌공사, 방송통신전파진흥원, 한국인터넷진흥원, 문화예술위원회 등 다양한 분야 기관 20여 개가 차례로 들어서며 나주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인구 역시 12만 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경제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연간 지역내총생산(GRDP·시장가격)을 보면 2013년 2조1,700억 원에서 2021년 4조6,900억 원까지 확대됐다. 이전 직전 해인 2013년부터 2021년까지 연평균 6.15% 성장률을 기록했고 성장세가 지속되고 있다.

나주 지역내총생산 추이

나주 지역내총생산 추이

나주는 오래됐지만 새롭게 소생하는 젊은 도시, 예스러움과 새로움이 병존하는 고장이다. 액티브 시니어(액시세대) 기획이 나주를 주목한 이유는 공공기관 이전 정책으로 수도권에서 함께 이주한 직원들이 은퇴 후에도 나주에 남아 지역 경제에 활력이 되고 더 나아가 균형발전의 씨앗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물론 공공기관 이주가 이제 겨우 10년이라 실증하기는 힘들다. 이전 초기에 이동했던 직원들 상당수가 혼자 나주로 내려왔기 때문에 이들이 은퇴 후에도 나주에 거주할 가능성은 작다. 적어도 자녀가 태어나 대학에 입학하는 기간인 20년 정도를 나주에서 온 가족이 함께 거주하다 은퇴하는 사람들이 생겨야 지속성 여부를 제대로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주로 이주한 공공기관 직원의 자녀가 나주에서 중·고교를 졸업하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 직원은 은퇴 이후의 삶을 본격적으로 계획하고 있을 것이다. 나주에서 만난 공공기관 직원들은 나주에서 삶의 만족도가 대체로 높은 편이라고 말한다. 짧은 출퇴근 시간이 가져다 준 일상의 여유로움, 수도권에 비해 저렴한 주거 및 생활비. 여기에 자녀는 대치동식 사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만 없다면 우수한 교육 환경, 크게 아쉬움을 느낄 수 없는 문화 취미활동 시설과 기회 등이 만족의 이유다. 서울에 갈 일이 생기면 KTX로 2시간 10분 정도 걸리기 때문에 하루 안에 얼마든지 다녀올 수 있다.

액티브 시니어란

1980년대 미국 심리학자 버니스 뉴가튼은 ‘50~75세로 경력과 경제력 및 왕성한 소비력을 갖춘 세대’를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라고 정의하면서 ‘어제의 노인과 다른 오늘의 노인’이라고 범주화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액티브 시니어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은퇴 생활에 접어들게 된다. 대체로 1964~74년생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이들을 ‘2차 베이비 붐 세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1955~63년생인 ‘1차 베이비 붐 세대’와 비교하면, 고도성장기에 성장한 덕에 고학력과 노후 준비가 잘된 이들의 비중이 높다. 액티브 시니어의 표준화된 한국어 번역이 아직 없어, 기획에서는 ‘액티브 시니어’로 쓰되, ‘액시세대’로 줄여 부른다.

그래도 문제는 있다. 자녀들도 계속 나주에서 살게 할 것인지를 생각하면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수도권보다는 기회가 다양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나주신도시가 10년이 지나도록 전남은 물론 나주에서도 예외적 존재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현지 주민들에게 나주의 공공기관들은 지역민이 대거 취업하는 제조업체와 달리, 전국 대졸자들이 경쟁적으로 지원하는 ‘외인부대’일 뿐이다. 나주에서 만난 한 주민은 “전남에서 광주가 떨어져 나가고, 혁신도시가 들어서면서 그 외 지역은 오히려 정체가 가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공공기관이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지역 사회에 뿌리내리는 것은 세월이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다. 2022년 첫 학생을 뽑은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켄텍·KENTECH)가 한전에 인재를 공급하듯이, 나주 공공기관들이 지역 대학과 협력해 관련 인재를 양성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듯하다.

액시세대를 위한 인프라와 서비스 전국 상위

포스텍 사회문화데이터사이언스연구소(ISDS)가 개발한 ‘액티브 시니어 지표’를 통해 나주가 액시세대의 정주 여건을 얼마나 잘 갖추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살펴본다.

나주 인프라 서비스 요소

나주 인프라 서비스 요소

액시세대를 위한 기반 시설 측면에서 나주는 문화·여가, 의료, 생활편의성, 녹지환경 등 모든 분야에서 전국 평균을 상회하는 등 양호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 우선 사회활동 여건을 평가하는 문화·여가 분야의 관련 프로그램, 지자체의 지원, 정보화 및 일자리 교육 모든 요소를 골고루 갖추고 있다. 특히 관련 프로그램 교사 및 강사당 수강생 비율이 전국 평균보다 훨씬 낮아 교육의 질도 높게 유지된다. 나주의 문화·여가 인프라 점수도 3.932로, 전국 평균인 2.189를 크게 상회한다. 액시세대를 위한 나주의 문화 체육 복지시설 역시 전국 최고 수준이다.

의료 분야의 경우 나주는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구강, 안과, 예방접종, 의료비 지원, 건강진단·보험 지원 등의 서비스를 갖추고 있다. 다만 간병 지원은 없다. 의료 인프라의 경우는 병상수 등에서는 전국 평균을 크게 상회했지만, 의사나 전체 의료 인력 수에서는 전국 평균보다 다소 낮았다. 광주가 지척에 있어 3차 의료기관이 없는 것도 심각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다만 고령자의 의료기관 접근성을 강화하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나주 문화 및 의료 인프라 요소

나주 문화 및 의료 인프라 요소

주거와 이동성 등 생활편의성에서는 귀농인 정착 지원 서비스는 잘 갖추고 있으나, 고령자 주거 환경 개선이나 교통지원카드 지원 등의 서비스가 부족했다. 아직 나주의 행정지원이 농촌에 편중돼 있다는 단면을 보여준다. 녹지 환경은 각종 공원을 다양하게 갖추고 있고, 인구 대비 면적도 풍부했다. 특히 나주혁신도시의 대부분 아파트와 연결된 빛가람호수공원은 지역의 명소이자 주민들에게 휴식과 여가를 제공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조사를 진행한 포스텍 배영 교수는 “혁신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가 공공기관 은퇴자들의 지역 정착이다. 지난 10년간 나주 혁신도시의 공공기관 근무자들은 은퇴와 함께 거의 모두 지역을 떠났다. 반가운 점은 40대 이후 나주 근무를 시작한 세대의 경우, 지역에서의 생활 시간이 축적되고 삶의 질에 대한 가치부여가 우선되면서 은퇴 후 계속 정착의 가능성이 나타났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자료 정리: 최기훈(포스텍 소셜데이터사이언스 석사과정), 신준(포스텍 소셜데이터사이언스 석사과정)

글 사진 정영오 논설위원 young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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