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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공' 피해 왜 컸나… ①조류 충돌 ②대비할 새도 없이 동체 착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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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29일 '제주항공 2216편 추락 참사'의 원인으로는 조류 충돌(버드 스트라이크)에 의한 랜딩기어(착륙 시 사용하는 바퀴) 미작동이 유력해 보인다. 랜딩기어 3개가 다 내려오지 않는 바람에 동체 착륙(바퀴 없이 비행기 몸체를 직접 땅에 대며 착륙하는 방식)을 시도했다가 참사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국토교통부와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사고 항공기가 착륙을 위해 고도를 낮추던 중 엔진에 새가 빨려 들어가 기체에 이상이 생겼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엔진이 망가져 유압 시스템에 영향을 미쳤고, 유압 시스템에 의해 작동하는 랜딩기어가 제어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추락 직전 영상을 살펴본 김규왕 한서대 항공운항과 교수는 "엔진에 불꽃이 튀는 건 조류 충돌의 유력 증거"라고 설명했다. 사고 항공기가 공항에 접근하던 중 기체 오른쪽 엔진에서 불꽃이 튀는 걸 봤다는 현장 목격자 증언도 있었다.
다만 조류 충돌로 양쪽 엔진이 왜 동시에 고장난 건지, 엔진 이상과 유압 시스템이 직접 연관이 있는지 등은 당국의 사고 조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주종완 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장은 이날 중앙사고수습대책본부 브리핑에서 "통상적으로 엔진 고장과 랜딩기어 고장은 상호 연동되는 경우는 없다. 랜딩기어가 고장 나면 자동화하든 수동화하든 풀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만약 안 펴진 게 맞다면 비행기록장치(FDR) 분석을 통해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랜딩기어 등을 자동 제어할 수 없을 땐 수동 시도도 가능하다. 그러나 기장의 메이데이(구조요청) 신호 2분 뒤 사고가 났다고 중수본이 밝힌 점으로 볼 때 수동으로 전환할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광일 신라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드물게 수동 장치까지 고장나는 경우도 있긴 한데 지금 상황에선 그보단 엔진 동력을 잃은 상태에서 더 날지 못하고 수동으로 내리기보다 착륙이 낫다고 기장이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랜딩기어를 내릴 수 없는 급박한 상황에서 기장은 동체 착륙을 결정했다. 기체 배꼽(belly)을 바닥에 끌며 마찰력에 의해 멈추는 사실상 '최후의 선택'이다.
항공기 제조사가 항공사에 제공하는 '비상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동체착륙 대비에는 20분 정도가 소요된다. 조종사가 관제탑에 비상 상황을 알려 활주로를 비우는 등 공항과 협력하고, 또 항공기 동체와 바닥과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 활주로에 거품 형태의 제동 물질을 뿌리고 그물망을 설치하는 시간이 필요해서다.
그러나 이번 사고는 최소한의 대비 시간마저 부족할 정도의 긴박한 상황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엔진에서 발생한 화재로 연기와 유독가스가 기체 내부로 유입되자 급하게 동체 착륙을 시도한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조치인 연료를 소진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로 보인다. 한 소방 전문가는 "동체 착륙은 기체가 지면과 직접 마찰하기 때문에 마찰열에 의한 화재 위험성이 커서 연료를 최대한 비워내야 한다"며 "공중에서 계속 우회 비행을 하며 소방차가 도착했다는 교신을 받은 뒤 (착륙해) 화재가 즉시 진화됐다면 피해 규모가 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승희 신라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도 "동체 착륙은 접지점에 최대한 가까이 내려서 제동로를 충분히 확보해야 하는데, (영상을 확인해보니) 활주로 중간 이후에 접지를 한 탓에 멈추기 전 미끄러지듯 외벽에 충돌한 것 같다"고 했다.
사고 초반 무안공항의 짧은 활주로가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사고 원인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의견이 많다. 무안공항 활주로는 2,800m로 비슷한 규모의 다른 공항인 대구(2755m), 군산(2745m), 청주(2744m), 김해(2743m)와 큰 차이가 없다. 국토부 측도 "이전에도 유사한 크기의 항공기를 계속 운항해 왔다"며 "활주로 길이 때문에 사고가 났다고 보긴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국내외에서도 동체 착륙을 시도했지만 대형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경우도 적잖다. 2016년 에미레이트 항공기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 공항에, 2022년 6월 미국 레드에어 항공기가 마이애미 공항에 각각 동체 착륙했으나 승객과 승무원, 조종사 모두 무사했다. 국내에서도 1991년 6월 제주도를 출발한 대한항공 여객기가 대구공항에서 랜딩기어를 내리지 않고 동체 착륙한 적이 있지만 일부 부상자만 나왔다.
일각에선 강에 동체 착륙을 강행해 전원이 살아남아 '허드슨강의 기적'으로 통하는 2009년 US 에어웨이스 불시착 사고와 비교해 인근 바다로 착륙했으면 피해가 덜 하지 않았겠냐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이 역시 급박한 상황 등 여건 자체가 달라 단순 비교는 힘들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김광일 교수는 "익사 위험도 있고 물의 저항력이 높아 착륙이 매끄러울 거란 보장이 없다"며 "불운에 불운이 겹친 조류 충돌 가운데 최악의 경우인 것 같다. 불가항력적인 사고"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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