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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먼저 보낸 저는 죄인인가요” 자살 사별자들의 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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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사별자들의 실화 담긴 최초의 연극
가족, 연인, 친구 잃은 10인의 사연 바탕
세계 자살 유가족의 날, 창덕궁소극장서
공연 뒤 심리학자와 함께 ‘관객과의 대화’
여울(가명)씨의 시간은 1년여 전 멈췄다. 자해와 자살 시도를 되풀이하던 딸은, 그날 결국 영영 떠나버렸다. 딸을 발견한 건 엄마, 여울씨였다. 딸의 배는 아직 따스했다.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가 살려낼 수 있어. 그치? 엄마가 부르면 올 거지?’ 딸은 대답하지 않았다. “저는 제가 죄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아이를 보내고 오장육부가 타들어 가는 고통을 겪으며 기도합니다. ‘죄인은 저니까, 아이에게는 부디 평안을 주세요’라고.”
인우(가명)씨는 7년 전 동생을 자살로 잃었다. 친형제보다 더 가까웠던 사촌동생이었다. 함께 도시락을 만들어 동네에 나가 놀고, 밤새도록 수다를 떨었다. “저라는 사람의 생활 반경 내에 동생이 없던 적이 없었어요.” 그 시간의 끝이 정해져 있는 줄은 몰랐다. 방학이라 보고 싶던 드라마에 푹 빠져있던 시간, 동생이 떠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힘들었다는 걸 몰랐다는 게 너무 미안했어요. 배고픔이나 졸림 같은 기본적인 욕구를 느끼는 것에도 죄책감이 들었죠.”
자살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이들의 사연이 연극 무대에 올려진다. 자식, 동생, 엄마, 친구, 연인, 아이돌을 자살로 잃은 10명의 스토리를 낭독극으로 재구성했다. 자살 사별자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연극이 만들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세계 자살 사별자의 날(세계 자살 유가족의 날)’인 23일 서울 대학로 창덕궁소극장에서 오후 3시와 7시에 공연된다. 세계 자살 사별자의 날은 매해 추수감사절 전주 토요일이다.
연극 연출 경력이 있는 드라마 작가 이민지(35)씨가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맡았다. 애도상담 전문가인 고선규 임상심리학 박사가 운영하는 메리골드 애도센터를 통해 5월부터 두 달간 사연을 받았고, 그중 10편을 시나리오에 녹였다.
이 작가 역시 자살 사별자다. 3년 전 12월 남자친구를 잃었다. 극 중 먼지의 스토리가 이 작가 본인의 경험이다. 그는 남자친구를 떠나보낸 뒤 스스로를 마치 죄수복 입은 죄인처럼 여겼다.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질문이 ‘사랑이 정말 사람을 구원할까’였어요. 남자친구를 잃은 뒤 ‘사랑이 사람을 구원한다고? 아니야. 나는 사랑으로 사람을 죽였거든’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한편으론 죄인이 아니라는 얘기를 듣고 싶었어요.”
연극 제목을 ‘우리가 죄인입니까’로 지은 이유다. 이는 질문이기도, 자문이기도, 반문이기도, 따져 묻는 말이기도, 하소연이기도 하다. 다른 자살 사별자를 넘어 자살 사별의 경험이 없는 이들에게도 던지는 말이다.
그는 “자살 사별자가 됐을 때 대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버티는지, 이런 감정을 느끼고 이런 행동을 하는 내가 정상인지 묻고 싶고 말하고 싶었다”며 “이런 내 경험뿐 아니라 다른 사별자들의 사연까지 녹여 극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자신을 비롯한 사별자들의 사연을 시나리오로 엮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 작가는 “나를 통째로 캐릭터로 만들어 본 건 처음이라 생경하고 불편했다. 다른 사람들의 사연을 쓸 때도 마음이 힘들어 잠시 멈추거나 산책을 가기도 했다”며 “적절히 거리를 두고 쓰려고 노력했다”고 돌이켰다.
시나리오 집필을 결심하는 데엔 인터뷰에 응했던 것도 도움이 됐다. 한국일보 ‘자살 사별자들이 마음으로 쓰는 부고-애도’ 시리즈다. 그는 “인터뷰를 거쳐 맥락이 살아있는 글이 된 걸 보면서 내가 보낸 시간을 한 발짝 떨어져서 볼 수 있게 됐다. 글을 써 볼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우리가 죄인입니까’엔 자살 사별자들이 죄책감에 직면하고 이를 다뤄가는 과정이 담겼다. 죄책감과 싸우고 화해하는 여정이다. 특히 내 자살 사별의 경험이 다른 자살 사별자의 시간과 교차하고 맞닿으면서 어떤 치유와 위로를 줄 수 있는지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극의 절정은 먼지와 여울의 대화다. 자살이라는 죽음의 방식이 아닌 그가 살아온 생애로 고인을 기억할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애도가 시작됨을 극적으로 녹여냈다. “죽음이라는 점인 줄 알았는데, 삶이라는 선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이 대사는 작품이 전하려는 메시지다.
극의 토대가 될 사연을 보낸 여울씨는 시나리오를 읽으며 되살아나는 그날의 감정 때문에 많이 울었다. 그는 그래도 “아이가 얼마나 아름답고 찬란한 삶을 살았는지, 또 얼마나 치열하게 살며 주변에 사랑을 전해줬는지, 다시 떠올리며 기억할 수 있었기에 감사했다”고 말했다.
딸을 보낸 고통은 여전하다. 극의 제목처럼 ‘우리가 죄인입니까’라고 물을 기력도, 의지도 그에겐 없다. 그저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모든 것이 꿈이 아닐까’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현실을 깨닫는다. 그가 하루를 시작하는 감정은 그래서 그리움과 슬픔이다. 그럼에도 그가 오늘을 사는 이유는 여전히 딸이다.
“저에게 ‘오늘’은 아이가 살지 못한 ‘미래’이기도 합니다. 아이가 살아갔어야 할 미래라는 생각에 가슴이 저며옵니다. 가슴 깊이 새겨진, 아이가 전해 준 사랑을 세상에 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에 오늘을 살아요. 먼 훗날 아이를 다시 만났을 때 우리 엄마 잘해왔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는,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은 소망이 있어요.”
인우씨도 “시나리오를 읽다 보니 동생을 잃은 뒤 심리의 변화가 생각났다”며 “7년이란 시간을 정리하는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동생이 떠난 뒤 1년은 잘 버텼거든요. 닥친 일들을 잘하려고 노력하면 될 거라고 여겼고 성취감도 느꼈어요. 그런데 1년 만에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힘들어지더라고요. 씻는 것조차 어려웠고, 학교도 나가지 못했죠. 동생의 죽음을 직시하지 않고 덮어두기만 해서 그랬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어요.”
인우씨는 최근에야 ‘동생의 죽음에서 해방됐구나’ 느꼈다. 전문가를 찾아 상담을 받고, 가까운 이들에게 기대기도 했다. 동생의 죽음 직후엔 온갖 것이 미안하기만 했는데, 요즘은 동생과 함께해서 재미있고 행복했던 시간이 떠오른다. 인우씨는 “극에 등장한 다른 사별자들 마음의 흐름도 비슷하다는 걸 보곤 위안이 됐다”며 “힘들었지만, 그 시간을 잘 보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우리가 죄인입니까’ 무대엔 현직 연극배우 5인이 오른다. 배우 박현지(먼지 역), 조윤빈(모모 역), 이수연(여울 역), 방원식(우석 역), 신재환(1인 다역)씨다. 배우들에게도 이 작품은 치유의 통로가 됐다. 비단 자살 사별의 아픔이나 슬픔, 고통만을 말하는 작품이 아니어서다.
주인공 먼지를 맡은 배우 박현지(36)씨는 “마지막 먼지의 대사가 마치 ‘지금 보고 있지. 나 잘 살게’라고 하는 듯했다”며 “끝내 그렇게 말할 수 있게 돼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작품이 아니었다면 자살 사별자의 마음을 어림짐작하고 넘어갔을 것”이라며 “섣부른 연민이나 동정의 개입을 막고 연극적인 언어로 작품의 메시지를 전하려고 이 악물고 연습한다”고 덧붙였다.
해설자이자 치유자 역할을 하는 강아지 모모를 열연한 연출가이자 배우인 조윤빈(31)씨도 “자살 사별은 내게도 멀지 않은 얘기”라고 했다. 친구를 잃을 뻔한 적이 있어서다. 시나리오를 보면서 샤이니 멤버 종현의 죽음으로 힘들었던 시간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는 “반복해서 ‘사랑이 사람을 구원한다’고 강조하는 모모 덕분에 위로를 받았다”며 “이 작품으로 관객이 죽음뿐 아니라 살면서 겪는 여러 상실을 생각해 보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가 죄인입니까’는 낭독극이다. 이 작가는 “관객이 스토리에 집중하면서도 상상을 더해 극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연출을 하면서 공을 들인 부분은 음악이다. 이 작가는 “음악이 ‘고인의 언어’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무대로부터 관객에게까지 흘러가며 고인이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길 바란다”고 말했다.
음악을 라이브로 연출한 것도 그래서다. 파리국립고등음악원 출신 작곡가 배승혜씨가 음악감독을 맡아 곡을 만들고 무대에서 피아노 연주도 한다. 배 작곡가는 “대본이 지닌 많은 이야기가 음악을 통해 공간을, 또 사람들을 잘 감싸안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연극 ‘우리가 죄인입니까’는 한국심리학회가 주최자로 나서 지원한 덕에 성사됐다. 기획 단계부터 참여한 고선규 한국심리학회 자살예방위원장은 “자살 사별자들의 경험이 연극으로 만들어지는 건 처음”이라며 “내 이야기가 다른 사람(배우)의 입으로 발화되는 걸 지켜보는 경험은 거리를 두고 내 고통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3일 오후 3시에 열리는 첫 무대 뒤엔 고 박사와 이 작가가 기획 배경과 시나리오 작업 과정을 설명하고 관객과 감상도 주고받는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진다. 예매는 아래 링크를 통해 할 수 있다.
※낭독극 ‘우리가 죄인입니까’ 예매하기 (링크가 활성화되지 않을 경우, 주소창에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cQ1YzpGggYJ_mTTNYElVhEb0-CcKmjqAItO5Bvv9DgqBWCIA/viewform 를 복사해 붙이시면 됩니다.)
‘자살 사별자(Suicide Bereaved)’. 심리적으로 가까운 이를 자살로 잃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자살 사별의 아픔이 비단 가족에게 국한되는 일이 아님을 내포한 말이기도 합니다. 자살은 원인을 단정할 수 없는 죽음이라 남은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고인을 쉬이 떠나보내지 못하고 ‘왜’라는 질문에 맴돕니다. 죄책감이나 원망이 들어차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들이 ‘애도’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험난한 여정입니다. 한국일보는 올해 자살 사별자들의 그 마음을 들어보려고 합니다. ‘자살 사별자들이 마음으로 쓰는 부고, 애도’입니다.
자살 사별자들이 마음으로 쓰는 부고, ‘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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