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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친의 기일이 된 크리스마스... 내 인생은 폐허가 됐다

입력
2024.04.05 11:00
수정
2024.04.08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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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의 ‘삶도’ 시즌3 : 애도] <2>이민지

편집자주

‘자살 사별자(Suicide Bereaved)’. 심리적으로 가까운 이를 자살로 잃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자살 사별의 아픔이 비단 가족에게 국한되는 일이 아님을 내포한 말이기도 합니다. 자살은 원인을 단정할 수 없는 죽음이라 남은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고인을 쉬이 떠나보내지 못하고 ‘왜’라는 질문에 맴돕니다. 죄책감이나 원망이 들어차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들이 ‘애도’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험난한 여정입니다. 한국일보는 올해 자살 사별자들의 그 마음을 들어보려고 합니다. ‘자살 사별자들이 마음으로 쓰는 부고, 애도’입니다.


남친의 ‘마지막 순간’에 갇혀 있던 나
‘살려주세요’란 말로 시작한 애도상담
그의 죽음은 내 인생 전체를 뒤엎었다
그래도, 지금의 나를 더 좋아하기로 했다

연극 연출가 출신으로 현재 드라마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민지씨를 3월 7일 만났다. 민지씨는 3년 전인 2021년 12월, 남자친구를 자살로 잃었다. 최주연 기자

연극 연출가 출신으로 현재 드라마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민지씨를 3월 7일 만났다. 민지씨는 3년 전인 2021년 12월, 남자친구를 자살로 잃었다. 최주연 기자

“내가 너의 땅이 될게”라고 말하던 남자친구였다. “나를 딛고 네가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라”던 그의 말이 참 따뜻했다. 그렇게 의지하며 만난 1년 6개월의 시간이 이 한마디로 폐허가 됐다.

“○○이 (하늘로) 갔다.”

지인의 말이 초현실의 언어 같았다. “뭐라고? 갔다고? 갔다니? 진짜 (하늘로) 갔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이민지(35)씨는 몇 번을 다시 물었다. 사실이었다.

크리스마스는 남자친구의 기일이 됐다. 이브 날 다퉜다. 흔한 연인 사이의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유난히 남자친구의 반응이 격하긴 했다. 생전 그러지 않던 사람이 만취해 집까지 찾아와선 문을 거세게 두드리고 전화를 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신저까지 동원했다.

민지씨의 일이 너무 바빠지자 유난히 서운해하던 남자친구였다. 안심시키려고 노력했지만 갈등이 반복됐다. 어렵게 시간을 내어 만난 크리스마스이브에도 또 싸우고 말았다. “둘 다 지쳐있는 상태인 것 같다. 잠시 시간을 갖는 게 어때”라는 민지씨의 말을 남자친구는 이별 선언으로 받아들인 듯했다.

전화를 받은 민지씨에게 남자친구는 말했다. “내가 너 후회하게 만들 거야.” 찜찜했다. 민지씨와 남자친구 모두를 아는 친구에게 그에게 연락해 봐 달라고 부탁했다. 새벽 1시가 넘어 무탈하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민지씨도 잠이 들었는데. 크리스마스 날 하루 종일 연락이 안 돼 ‘아직도 화가 났나’ 싶었는데.

나중에 안 사실. 남자친구는 이미 크리스마스 전날 첫 번째 자살 시도를 했다. 다행히 다른 사람에게 발견돼 경찰서에 머물다 가족에게 인계됐다. 그다음 날 가족의 만류에도 출근해야 한다면서 집을 나간 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내가 그 사람을 죽인 거야.’ 민지씨를 압도한 생각이었다. 게다가 마치 허허벌판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다. 외로웠다. 나중엔 ‘나 같은 건 살 가치가 없다’는 자아와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자아가 밀고 당기기를 반복했다. 전자의 힘이 세질 땐 이러다 정말 내가 나를 죽이겠다 싶었다.

“어느 날 인생에 포탄이 떨어져 폐허가 된 기분”, “그 전쟁터에 온몸의 표피가 다 벗겨진 채 홀로 서 있는 느낌”, “난파선에서 떨어져 널빤지 하나 붙잡고 간신히 떠 있는 상태”, “이렇게 말라죽느니 빨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은 마음”. 민지씨는 당시를 이렇게 표현했다.

2년 3개월의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돌이켜 보니 자신 곁엔 불침번 서듯 지켜준 친구들, 부랴부랴 ‘애도상담’ 받을 곳을 찾아준 친구가 있었다. 자살 사별자 자조모임에서 만난 이들도, 안전핀이자 구명조끼가 되어준 엄마와 외할머니도 있었다. 특히 비슷한 자살 사별을 경험한 이들은 망망대해에서 널빤지 하나 잡고 빨리 죽기만 기다리던 그에게 “저기요”라고 말을 걸어준 이들이었다. 둘러보니 자신 같은 사람들이 제법 많다는 사실이 위안이 됐다.

민지씨는 조심스레 말했다. “이 말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 일을 겪기 전의 저보다 그 이후의 저를 더 좋아하기로 했어요.” 이민지라는 나무의 뿌리까지 뒤흔든 사건을 겪고 그는 자신을 밑바닥에서부터 하나하나 쌓아 올려가는 중이었다.

그가, 자신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자살로 잃은 이들에게 말한다. “괜찮다고 말하고 싶어요. 이 말이 누군가에겐 희망이 되면 좋겠어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그가 ‘애도’ 시리즈에 응한 이유였다. 지난달 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민지씨를 만났다. 그는 미니시리즈 ‘이별유예, 일주일’로 데뷔한 드라마 작가다.

◇불침번 서듯 곁을 지켜준 친구들

남자친구를 떠나 보낸 직후, 다행스럽게도 민지씨 곁에는 친구들이 있었다. 친구들은 순번을 짜 돌아가며 그의 곁에 있어줬다. 그때는 아직 어머니한테도 말을 하지 못한 때였다. 최주연 기자

남자친구를 떠나 보낸 직후, 다행스럽게도 민지씨 곁에는 친구들이 있었다. 친구들은 순번을 짜 돌아가며 그의 곁에 있어줬다. 그때는 아직 어머니한테도 말을 하지 못한 때였다. 최주연 기자

-남자친구의 죽음 이후 어떤 시간이 펼쳐졌나요.

“하필 겨울이었어요. 밤이 길잖아요. 혼자 견뎌야 하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어요. 장례식장에서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죠. 나는 진짜 혼자가 됐구나. 마치 부모한테 버려진, 유기된 기분이 들었어요.”

-남자친구는 민지씨에게 어떤 존재였나요.

“그 친구가 저한테 자주 했던 말이 ‘내가 너의 땅이 될게’였어요. 은근히 그 말이 되게 따뜻하다고 느껴졌어요. 부모가 아닌 타인이 나에게 저렇게까지 말해줄 수 있을까 싶었죠. 그러니 (남자친구의 죽음으로) 정말 땅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어요.”

-가까운 이를 잃은 자살 사별자들을 괴롭히는 감정이 죄책감이에요. 그런 감정 때문에 힘들진 않았나요.

“너무 힘들었죠.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건, 6개월쯤 지난 뒤 머리로는 알았어요. 한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그 사람의 생사를 결정지을 만큼 엄청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건 굉장한 오만일 수 있겠다 싶었죠. ‘내가 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었어’라고 생각하는 것도요. 다만, 그 마지막 싸움이 트리거가 됐을 수는 있었겠죠.”

-하나의 사건을 자살의 이유로 보는 건 너무나 단선적인 시선이죠.

“사건이 일어나고 전에 수많은 도미노가 쓰러졌고 제가 그 마지막 도미노였을 거라는 설명을 듣고 머리로는 이해가 됐지만 죄책감이 아예 사라지지는 않더라고요. 아마 이건 평생 사라질 수 없을 것 같아요.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가 ‘그 사람 왜 죽였어요’라면서 나를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누가 저한테 ‘네가 그 사람 죽였잖아’라고 한다고 해도 할 말이 없겠다 싶었어요.”

-자살 사별자에게 저지르기 쉬운 실수가 ‘네가 여자친구인데 그런 징후를 못 느꼈어? 정말 몰랐어?’ 같은 책임을 추궁하는 듯한 질문이라고 들었어요.

“(남자친구의 죽음 직후) 정말 그냥 온몸의 표피가 다 벗겨진 상태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러니 사실 아무리 좋은 말을 해줘도 다 상처일 수밖에 없었죠.”

-자살 사별을 겪은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 거예요. 민지씨한테는 어떤 게 도움이 됐나요.

“저와 함께 사는 강아지가 있어요. 그런데 장례 기간에 집에 못 들어갈 수 있잖아요. 그래서 가까운 친구들에게 어쩔 수 없이 사정을 얘기하고 강아지를 돌봐달라고 부탁을 했거든요. 그 뒤부터 친구들이 한 2주간 돌아가면서 자기들끼리 시간을 정해서 제 곁에 있어줬죠.”

-옆에서 친구들이 뭘 해줬나요.

“괜찮냐고 물어보는 대신, 그냥 다른 얘기를 했어요. 대학 다닐 때 얘기, 예전에 여행 갔을 때 얘기 같은 거요. 과거에 제가 행복했던 순간을 끄집어내서 웃고 떠들었죠. 제가 한 달쯤 섭식장애를 앓았거든요. 제가 밥을 못 먹는다고 친구들까지 먹지 못하게 할 순 없잖아요. 친구들이 자기들은 뭘 먹겠다고 하면 그러라고 할 수밖에요. 그럼 제 앞에는 흰죽이 있는데 친구들은 곱창 같은 음식을 시켜 먹는 거예요. 제가 자연스럽게 허기를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 거죠.”

-친구들이 지켜준 거군요.

“제 생일이 3월 말이에요. 그간엔 보통 메시지나 주고받고 말았거든요. 그런데 (남자친구가 죽은 뒤) 첫 생일엔 친구들이 파티를 해줬어요. ‘새로운 생일’의 파티장에 초대한다면서요. 전 (남자친구의 죽음 이후) 전쟁고아가 된 기분이었거든요. 어느 날 갑자기 내 인생에 폭탄이 탁 떨어져서 주변의 모든 것들이 다 죽고 집도 무너진 거예요. 저는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피투성이로 서 있고요. 인생이 회색빛이었죠. 그래도 살아보려고 꾸역꾸역 지나왔더니 친구들이 생일 축하를 해주러 온 거예요. 그간 제가 무너진 집에서 고쳐낸 거라곤 벽돌을 조금 쌓아놓은 정도였죠. 그마저도 자꾸만 다시 허물어져서 다시 쌓기를 반복했고요. 그런데 그런 지붕도 없는 집에 친구들이 놀러 와서 ‘야, 지붕 없으니까 되게 좋다. 밤하늘도 볼 수 있네. 예쁘다’라고 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렇게 제게 기쁨을 주고 제 일상을 회복시켜 주려고 노력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위안이 됐죠.”

◇내 안의 괴물이 날 죽일 것 같았다

‘나는 살 가치가 없어’라는 자아와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자아의 줄다리기. ‘살면 안 된다’는 자아의 목소리가 커지는 밤이 계속됐다. 최주연 기자

‘나는 살 가치가 없어’라는 자아와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자아의 줄다리기. ‘살면 안 된다’는 자아의 목소리가 커지는 밤이 계속됐다. 최주연 기자

-자살 사별자들을 자살 고위험군으로 보잖아요. 민지씨 역시 ‘내가 이렇게 잘 살아도 되나’ 같은 생각에 휩싸인 적이 있었고요.

“보통 연인이나 부부 관계에서 어느 한쪽이 그렇게 죽었을 경우, 다른 한쪽을 책망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도대체 옆에서 뭘 했느냐’하는. 저 역시 스스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가장 힘들 때는 언제였나요.

“제가 저 자신을 죽일 것 같을 때요. 특히 밤에. 그게 너무 괴로웠어요. 제 안의 괴물이 자꾸 저를 죽일 것 같아서요. 도대체 이런 시간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견뎠는지 너무 알고 싶었어요. 그래서 인터넷 여기저기를 뒤지며 검색을 했어요. 그런데 대개 유가족만 나오지 연인 자살 사별과 관련한 정보는 안 나오더라고요. 관련 사이트도 거의 없고요. 엄청 뒤져서 한 공간을 찾았어요. 거기에 있는 글들을 봤더니 너무 공감되는 거예요.”

-생각나는 글이 있나요.

“기억에 남은 글이 있어요. ‘다음 생에 또 태어나면 난 반드시 다시 너를 사랑해서 그땐 내가 먼저 죽을 거야’라는.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그런 거죠. 너무나 공감이 되더라고요.”

-그 시기가 제일 힘들 때였군요. 내 안에서 나를 스스로 죽이려는 자아와 살아야 한다는 자아가 싸울 때.

“처음 두 달 정도가 너무 힘들었어요. 그리곤 다시 일을 시작했어요. 계약된 일이 있기도 했고, 친구도 일을 쉬지 말라고 권유했거든요. 일에 도피를 하기도 한 것 같아요. 힘든 마음은 유예를 해둔 거죠. 그 일이 마무리됐을 때가 6~7월쯤이었는데 그때 다시 힘든 감정이 몰아쳤죠.”

-애도상담은 왜 받기 시작했나요.

“자살 사별이라는 경험을 함께 얘기할 사람이 없었어요. 게다가 제가 진짜 사람을 죽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그에 관해 명확히 판명해 줄 사람이 필요했어요. ‘당신이 사람을 죽였다’ 혹은 ‘그런 건 아니다’ 같은. 친구가 수소문해서 상담 선생님을 찾아줬고, 바로 시작했어요. 거의 매주 갔죠. 그런데 7개월쯤 지나서 다시 힘든 감정이 올라오더라고요. 상담 선생님한테 그랬어요. ‘이만큼이나 지났으면 나아져야 하는데 왜 또 제자리인지 모르겠다’고.”

-그랬더니요.

“상담 선생님이 그러더라고요. 처음에 상담 신청하면서 ‘상담사에게 하고 싶은 말’에 뭐라고 썼는지 기억이 나느냐고요.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제가 ‘살려주세요’라고 적었다는 거예요. 어떤 상황인지 쓰지도 못하고 ‘살려주세요’라고만 썼대요. 상담 선생님이 연말이라 잠시 휴가를 가려고 했는데 그걸 보곤 너무 다급해 보여서 제 상담까지 하고 휴가를 떠났다면서요. 그리곤 말씀하셨어요. ‘많이 왔다’고. 그 말을 듣고 보니 ‘더디지만, 아주 조금이지만 오긴 왔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상담은 아직도 받고 있어요.”

◇망망대해, 나 혼자인 줄 알았는데

민지씨도 처음엔 남자친구의 가족이 자신을 원망하고 웃는 모습이라도 보이면 돌멩이를 던지고 싶은 심정일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자조모임에서 가족 자살 사별자를 만나고 가족의 처지를 헤아릴 수 있게 됐다. 그들에게 위로도 받았다. 최주연 기자

민지씨도 처음엔 남자친구의 가족이 자신을 원망하고 웃는 모습이라도 보이면 돌멩이를 던지고 싶은 심정일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자조모임에서 가족 자살 사별자를 만나고 가족의 처지를 헤아릴 수 있게 됐다. 그들에게 위로도 받았다. 최주연 기자

민지씨는 자조모임도 하고 있다. 자조모임은 심리적으로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서로의 상황과 경험, 감정을 나누며 치유해 나가는 모임이다.

-자조모임은 언제부터 하게 됐나요.

“친구가 제가 겪는 상황과 관련한 책을 찾아보다가 고선규 선생님이 쓴 ‘여섯 밤의 애도’를 발견하고 먼저 읽어본 거예요. 그리곤 저한테 그런 모임이 있더라고 얘기를 해준 거죠.”

-그래서 바로 갔나요.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어요. ‘지금도 너무 힘든데, 그런 자리에 가서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 얘기까지 들으라고? 너무 버겁겠다, 힘들겠다’ 싶은 거예요. 친구 얘기를 귀담아듣지도 않았죠.”

-그런데 언제 가게 된 거예요.

“그 뒤에 친구가 ‘여섯 밤의 애도’를 갖고 있는 걸 봤어요. 그 친구가 놔둔 책을 우연히 들춰 봤는데, 단숨에 다 읽었죠. 그리곤 자조모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선규 박사가 이끄는 2030여성 자살 사별자들의 자조모임 ‘메리골드’다.

-‘메리골드’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건물에 들어서서 좀 헤맸어요. 복도를 걸어가면서 찾는데 어느 방에서 큰 웃음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속으로 ‘저기는 아니구나’ 하고서 방향을 틀었는데 알고 보니 거기였어요.”

-웃음소리가 나니까 아니라고 생각한 거군요.

“네, 저만 해도 은연중에 ‘자살 사별자들이 저렇게 웃어도 돼?’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죠. ‘피해자다움’ 같은 고정관념처럼요. 저는 자살 사별자들은 다 우울하고 침울할 거라고 여겼거든요. 그런데 제가 그곳으로 들어갔더니 다들 밝게 인사를 해주더라고요. 그런 분위기에서 해방감을 느꼈어요.”

-자살 사별자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을 나눌 때가 많았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자살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면 무속이나 운명론에 기대기도 해요. 실제 무당한테 고인에 관해 묻는 사람도 많아요. 그 사람이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으니까. 저도 한밤중에 난생처음으로 무속인에게 전화한 적이 있어요. 지금 그 사람이 후회하고 있는지, 지금 내 옆에 있는지, 나한테 미안해하기는 하는지, 아니면 아직도 나한테 복수하고 싶어 하는지 물어보기도 했어요. 저한테 큰 형벌이 내려진 거라고 믿기도 하죠. 내가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든지, 그에 준하는 죄를 지어서 벌을 받는 거라고. 그러면서 과거에 제가 저지른 온갖 잘못을 다 떠올려요. 자조모임에 갔더니 저 같은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그건 어떤 기분이었나요.

“난 난파된 배에서 떨어져 망망대해에서 널빤지 하나 부여잡고 둥둥 떠 있는 기분이었거든요. ‘내가 이렇게 죽는구나.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런데 갑자기 주변에서 ‘저기요, 거기 누구예요’라는 소리가 들려서 둘러보니 나처럼 널빤지 하나에 의지해 있는 사람들이 꽤 많았던 거예요.”

-아...

“그 자체로 ’나만 이러고 있는 거 아니네’ 싶더라고요. 사실 제 상황은 똑같거든요. 그런데 그전까지는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빨리 죽지’ 같은 생각을 했다면, 그 사람들의 존재를 보고 나선 ‘그래도 나도 살 수 있지 않을까’로 생각이 바뀐 거죠.”

민지씨는 지금까지 자조모임을 나가고 있다.

◇남자친구의 ‘마지막 순간’에 갇혀있던 나

민지씨는 어린 시절 자신에게 엄마가 돼줬던 외할머니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삶과 맞물려 있는 죽음’을 생각하게 됐다. 남자친구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계기였다. 최주연 기자

민지씨는 어린 시절 자신에게 엄마가 돼줬던 외할머니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삶과 맞물려 있는 죽음’을 생각하게 됐다. 남자친구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계기였다. 최주연 기자

-서로 자살 사별의 슬픔을 털어놓고 목격하고 동참하게 되니까 그 안에서 치유도 일어날 것 같아요.

“맞아요. 힘들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저한테 좋은 영향을 줬어요. 특히 저는 제가 경험한 죽음에만 몰두하고 있었는데, 가족과 사별한 분들의 얘기를 들으면 (남자친구) 가족의 처지를 헤아릴 수 있게 돼요. 자조모임에서는 친한 친구한테조차 말 못 하는 얘기도 할 수 있죠. 저도 ‘나는 행복할 자격이 없어’라면서 처음으로 자해를 한 적이 있었어요. 친구들한테 얘기했다면 난리가 났겠죠. 그런데 자조모임에서 그 얘기를 했더니 다들 그냥 ‘그랬구나’ ‘나도 예전에 그랬어요’라면서 담담하게 받아들이더라고요. 그러면서 다들 불안할 때 어떻게 하는지 팁을 공유하기도 해요. 저보다 자살 사별을 한 지 오래된 분들을 보면서 ‘나도 3년 차에는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게 되기도 하고요.”

-자살 사별을 겪으면 해결할 수 없는 여러 물음들 때문에 괴롭죠. 그래서 애도하기 힘든 거고요. 민지씨는 남자친구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된 순간이 언제였나요.

“어릴 때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저를 돌봐주셨어요. 그러니까 외할머니는 제게 엄마 같은 분이죠. 그런 할머니가 작년에 돌아가셨어요. 당신의 죽음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을 주셨죠. 호스피스 병동에 계신 할머니를 보러 다니면서 삶과 맞물려 있는 죽음을 생각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그 친구의 죽음도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어떤 의미인지 좀 더 설명해 줄 수 있나요.

“그전까지 저는 그 친구의 마지막만 생각했어요. ‘왜 죽었을까’, ‘그때 왜 싸웠을까’ 같은 마지막 장면에만 매달려서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지는 못했죠. 그 사람이 저한테 줬던 위안과 행복 같은 건 아예 생각도 못하고요. 그 마지막 시간 안에 그 사람을 딱 가둬놨었는데 할머니의 죽음을 경험하고 나서 그 사람과 있었던 즐거웠던 순간도 생각하게 된 거죠.”

죽음 역시 두 사람이 만들어온 역사 안의 한 장으로 받아들이게 됐다는 뜻이었다.

◇나를 살게 한 ‘안전핀’과 ‘구명조끼’

민지씨에게 외할머니가 즐겨 입으시던 니트 조끼는 마치 ‘구명조끼’ 같다. 마음이 불안할 때 조끼를 입으면 보호받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더불어 엄마와 나눠 낀 반지 역시 자신에게 살아야 하는 의미를 되새겨주는 물건이다. 최주연 기자

민지씨에게 외할머니가 즐겨 입으시던 니트 조끼는 마치 ‘구명조끼’ 같다. 마음이 불안할 때 조끼를 입으면 보호받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더불어 엄마와 나눠 낀 반지 역시 자신에게 살아야 하는 의미를 되새겨주는 물건이다. 최주연 기자

-자살 사별을 겪은 이후 본인에게 의미 있는 물건이 혹시 있나요.

“엄마하고 나눠 낀 모녀반지와 할머니가 즐겨 입으시던 니트 조끼예요. ‘삶을 그만둘까’ 했을 때 저를 탁 잡아준 존재가 엄마와 할머니였거든요.”

그가 오른손 넷째 손가락에 낀 반지와 가방에 넣어온 회색 털실로 짜인 조끼를 보여줬다.

-반지는 언제 맞춘 거예요.

“엄마가 옛날부터 저랑 반지를 나눠 끼고 싶어 했어요. 그간 오글거려서 안 한다고 했다가, 그 일이 있고 나서 어버이날 즈음에 맞췄죠. 제게는 안전핀 같은 존재예요. 엄마는 인생을 다 바쳐서 저를 키웠어요. 제가 잘못되면 엄마도 잘못될 거예요. 그럼 안 되니까.”

-엄마에게는 남자친구의 자살을 언제 얘기했나요.

“이듬해 10월쯤에요. 많이 놀라셨나 봐요. 남자친구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안쓰럽다고 하시더라고요. 동시에 물론 당신 자식 걱정도 하시고요. 우리 애가 경험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경험했단 생각 때문에 그 뒤로는 제게 더 자주 전화를 하더라고요. 실질적 위로는 친구들이 해줬다면, 엄마는 그냥 제가 살아야 되는 이유인 거죠. 제겐 반지가 엄마와의 연결 고리였어요. 반지를 보면서 버텼죠. ‘살아야 한다, 살아야 한다, 내가 나를 죽이면 엄마까지 죽이는 꼴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민지씨가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조끼는요.

“조끼는 할머니가 즐겨 입으시던 옷이에요. 너무 불안하면 입고 있어요. 구명조끼처럼.”

-입고 있으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날 보호해 주는 기분이에요.”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남자친구의 일을 말씀드렸나요.

“호스피스 병동에 계실 때 ‘할머니 사실 나 이런 일 있었어’라고 얘기했어요. 그러니까 할머니가 제 손을 잡아주셨죠. 이걸 입으면 그 손길이 생각나요.”

◇나 같은 자살 사별을 경험한 이들에게

“지금의 나를 더 좋아하기로 했다”는 민지씨. 이런 생각에 이르기까지 그는 자신과 수없는 전투를 치렀을 테다. 최주연 기자

“지금의 나를 더 좋아하기로 했다”는 민지씨. 이런 생각에 이르기까지 그는 자신과 수없는 전투를 치렀을 테다. 최주연 기자

-‘이러다가 진짜 죽겠다, 내가 나를 죽이겠다’ 싶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지나 오늘에 이른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뭔가요.

“한 해가 넘어갈 때마다 스스로한테 해주는 말이 있어요. ‘잘 버텼다. 애썼다’고요. 내가 용기를 잃지 않으면 좋겠어요.”

-이 인터뷰에 응한 이유도 궁금해요.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 ‘괜찮다’고 말해 주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제가 ‘내가 이 사람을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하니까 ‘네 탓이 아니다’라고 딱 말해준 친구가 있었어요. 그 말이 참 도움이 됐거든요.”

이어서 민지씨가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 잘 지내고 계시면 좋겠어요. 어른으로서 저를 걱정하고 계실지도 모르겠어요. 작년에 처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혹시 이걸 보시게 된다면, 잘 견뎌내고 있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었어요. 그러니 어머님, 아버님도 잘 견뎌내셨으면 좋겠다고.”

-서른다섯 인생에서 남자친구와 자살 사별을 한 게 가장 힘든 사건이었을 거예요. 그 죽음은 자신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가요.

“저를 (뿌리까지) 파내서 뒤집어버린 느낌이죠. 애도상담을 하다 보면 그 죽음에 대해서만 얘기는 하지는 않거든요. 결국엔 제 얘기를 하게 돼요. 제가 갖고 있던 상실감, 그리고 관계에 대한 얘기도 하게 되고요. 그러니 제 인생을 뒤엎어서 살펴보는 계기가 됐어요.

그리고, 이 말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 일을 겪기 전보다 지금의 저를 더 좋아하기로 했어요. 상실을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이 더 낫지 않을까, 더 나은 인간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 일을 겪었기 때문에 비슷한 일을 겪을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도 있고요. 사실 산다는 건 잃어버리는 일일 수도 있잖아요. 그렇다면, 저는 살면서 잃어야 할 많은 걸 이미 적립했겠죠.”

-혹시 하늘나라로 간 남자친구가 앞에 있다면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일단 저한테 혼나야죠. 제가 그 사람에 대해서 전부 다 알지는 못하지만, 제가 봤던 그는 늘 안간힘을 쓰면서 살았어요. 책임을 지려고 애썼던 사람이고요. 그 사람이 다시 태어나면 어리광 많이 피우면서 살면 좋겠다 싶어요. 어쨌든 일단 다시 만나면, ‘진짜 나한테 죽었어’ 이런 얘기가 먼저 나올 것 같아요.”

깊은 상실을 경험한 뒤의 자신을 더 좋아하기로 했다는 그의 말이 큰 위안이 됐다. 누군가에게는 그 말이 살아있는 희망이고 등불이 될 것이다, 분명히.

“애썼어. 잘 버텼다.” 한 해를 보낼 때마다 민지씨가 스스로에게 해주는 말이다. 최주연 기자

“애썼어. 잘 버텼다.” 한 해를 보낼 때마다 민지씨가 스스로에게 해주는 말이다. 최주연 기자

오디오로 듣기 : ‘자살 사별자들이 마음으로 쓰는 부고-애도’ 시리즈는 오디오 콘텐츠로도 제작됐습니다. 이곳을 클릭하면 오디오 콘텐츠로 이동합니다. 링크가 활성화되지 않는다면, 주소창에 다음 주소(https://grief.hankookilbo.com/)를 복사해 붙여주세요.

※’애도’팀은 자살 사별을 경험한 분들의 사연을 받습니다. 가족이나 친구, 연인, 동료의 자살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계신다면 luna@hankookilbo.com으로 사연을 보내주세요. 몇 편을 골라 애도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고선규 임상심리학 박사(한국심리학회 자살예방분과 위원장)의 조언을 전할 예정입니다.

김지은 버티컬콘텐츠팀장
사진= 최주연 기자
오디오ㆍ영상= 박고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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