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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흑해 곡물협정' 연장 거부 선언...'인류 식량' 인질 잡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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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흑해 곡물협정 만료 시한을 12시간가량 앞두고 ‘갱신 거부’를 선언했다. 협정 종료 시 식량안보가 취약한 국가들이 입을 타격을 볼모로 삼아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 완화를 이끌어내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유엔과 미국, 심지어 중국까지 회유에 나섰지만, 곡물협정을 협박 도구로 활용해 세계은행간금융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재가입 등 요구 조건을 받아내겠다는 강경 노선을 유지한 셈이다.
1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안타깝게도 흑해 곡물협정 연장 조건의 일부가 지금까지 이행되지 않고 있다”며 “사실상 흑해 협정은 오늘부터 유효하지 않다”고 밝혔다.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도 유엔, 튀르키예, 우크라이나에 이 같은 의사를 이미 전달했다고 로이터는 보도했다.
러시아의 발 빠른 발표에는 만료 직전까지 강경 노선을 드러내 서방에 요구해 왔던 조건들을 확실히 관철시키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앞서 러시아는 흑해 곡물협정 연장 조건으로 △러시아농업은행의 스위프트 결제망 복귀 △러시아 선박·화물의 보험 가입 및 항만 접안 제한 조치 해제 등을 요구해 왔다. 자국산 농산물과 비료를 원활히 수출하기 위해 서방이 건 제재를 풀어 달라는 의미였다.
유럽연합(EU)과 유엔 등 서방은 협정 만료 일주일을 앞두고 ‘자회사를 통한 조건부 스위트프 가입’ 카드를 제시했다. 러시아와 우호 관계인 튀르키예와 중국도 협정이 계속 이행되길 바란다며 ‘푸틴 달래기’에 나섰다. 그러나 이날 크렘린궁 발표로 끝내 물거품이 됐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협정은 중단됐지만 러시아 관련 사항이 이행되면 협정에 복귀할 것”이라며 여지를 남겨 두긴 했다. 곡물협정 연장을 핑계 삼아 협박을 이어가려는 전략이다.
협정 만료로 전 세계엔 극심한 식량난이 닥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러시아의 흑해 봉쇄로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출 경로가 차단됐고, 코로나19 여파 및 이상기후 현상과 맞물리며 전 세계 식품과 비료 가격이 폭등했다. 전쟁 전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곡물 수출량의 약 30%를 차지했는데, 특히 의존도가 높았던 아프리카·중동 지역 저소득 국가들은 극심한 식량난에 허덕였다.
이에 지난해 7월 유엔과 튀르키예는 러시아가 서방 제재 속에서도 식량과 비료를 수출할 수 있도록 하는 대가로 ‘흑해 해상운송 과정 중 우크라이나 곡물을 실은 선박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이끌어냈다. 곡물협정은 이후 세 차례 연장됐지만 이날 크렘린궁 발표로 막을 내리게 됐다. 4년 만에 찾아온 엘니뇨발(發) 가뭄, 폭우 등 이상기후로 농작물 생산이 줄어든 가운데 향후 타격은 더 커질 수 있다. 실제로 이날 발표 후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밀 가격이 4% 안팎으로 폭등했다고 영국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로이터·AFP통신 등에 따르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 없이도 흑해를 통한 곡물 유통은 계속돼야 한다"며 "우크라이나가 배를 보내고 튀르키예가 계속해서 그들을 통과시키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로이터는 "흑해 해역에 진입할 때 부과되는 추가 전쟁 위험 보험료가 올라가게 되면 선주들은 이 지역에 진입을 꺼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방도 러시아에 대한 규탄 성명을 내며 반발했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는 "러시아가 인류를 인질로 잡고 있다. 정치 게임을 하는 동안 사람들이 고통받는다"며 회원국들의 대응을 촉구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도 이날 트위터를 통해 우크라이나 농산물이 동유럽 EU 회원국을 경유해 제3국에 수출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현재로선 서방으로서도 뾰족한 묘수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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