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 구긴 미국 대사 “러시아에 남아공이 무기 준다는 의혹, 오해였다”

백악관 가세한 비판 하루 만에..."오해" 사과
"남아공, 무기제공과 별개로 러시아 오랜 우방"

11일 시릴 라마포사(가운데)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케이프타운 의회에서 러시아 무기 제공 의혹과 관련된 질의에 대답하고 있다. 케이프타운=AP 연합뉴스

미국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러시아 측에 우크라이나 공격에 동원될 무기를 제공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하루 만에 "오해였다"며 사과했다고 영국 BBC방송이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BBC에 따르면, 남아공 외무부는 해당 의혹을 제기한 루번 브리지티 남아공 주재 미국 대사가 자신의 주장에 대해 ‘전적으로 사과했다’고 밝혔다. 브리지티 미국 대사도 이날 남아공 외무장관과 대화를 나누고 트위터에 “내 공개 발언으로 생긴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어 감사하다”는 글을 올렸다.

전날 브리지티 대사는 “지난해 12월 6∼8일 남아공 남부의 케이프타운 사이먼 타운 해군기지에 정박한 화물선이 러시아로 돌아가기 전 무기와 탄약을 실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남아공에게 “중립을 지키길 바란다”며 경고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이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미국은 각국에 러시아를 지원하지 말 것을 지속해 촉구해 왔다”는 입장을 냈다. 당시 백악관은 브리지티 대사가 한 주장의 진위나 사실관계는 언급하지 않고 남아공의 태도만 지적했다.

남아공은 즉시 ‘러시아에 무기를 판매한 적 없다’고 반박했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주장에 대한 사실 여부를 조사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이번 의혹이 브리지티 대사의 사과로 마무리됐지만, 남아공 정계는 “미국에 의해 괴롭힘을 당할 수 없다”며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남아공의 정치인 훔부조 응트샤베니는 “러시아에 제재를 가하고 있는 건 미국이다. 러시아와의 문제에 우리를 끌어들이지 말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무기 제공 의혹과 별개로 남아공과 러시아가 전통적으로 우호관계를 맺고 있어 서방국가들의 경계심도 가시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구소련 시절부터 소수 백인통치 체제에 반발한 남아공 자유군을 지지했고, 남아공에서 극단적 인종차별 정책 ‘아파르트헤이트’가 시행됐을 때도 반대활동가들을 지원하며 유대를 쌓았다.

양국간의 우정은 전쟁이 터진 후에도 유효했다. 남아공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규탄·점령지 병합 반대·러시아의 철군 촉구를 언급한 유엔 결의안에 모두 기권표를 던진 바 있다. 이날도 러시아 대통령실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라마포사 대통령과 통화에서 양국이 상호 호혜적 관계를 키우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유진 기자 iyz@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