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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엉을 오와으일아요?" 당신의 말은 어르신에겐 이렇게 들린다

입력
2023.03.21 10:00
수정
2023.03.21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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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고령 고객, 매뉴얼이 없다 ①-4]
어르신 소비자는 이래서, 이렇게 다르다

편집자주

2년 후 한국은 고령화 과정의 최종단계인 초고령사회(65세 이상 비율이 20% 이상)에 진입합니다. 고령자도 경제활동의 중요 주체가 돼야 하는 인구구조죠. 하지만 외국어가 난무하고 무인 키오스크가 지배하는 국내 서비스 업장은 어르신에게 너무 불친절한 곳입니다. 소비활동의 주축이 될 고령자들이 좀 더 편리하게 이용할 환경을 만들 순 없을까요? 한국일보가 어르신의 고충을 직접 듣고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어르신 친화 서비스’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봤습니다.

지난 1월 11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일대가 실외 활동을 즐기러 나온 노인들로 붐비고 있다. 이한호 기자

지난 1월 11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일대가 실외 활동을 즐기러 나온 노인들로 붐비고 있다. 이한호 기자

※ [1000만 고령고객, 매뉴얼이 없다 ①-3] 스마트폰 빠삭한 75세 '젊은 오빠'도...키오스크, QR코드는 피하고 싶다 (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31415410004818 )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뭐라고? 잘 안 들려! 큰 소리로 얘기해 봐!

왜 어르신들은 꼭, 두세 번은 말을 해야만 알아들으실까? 또, 왜 그렇게 목소리는 기차화통을 삶아먹은 듯 큰소리인 걸까?

어르신을 고객으로 상대해야 하는 젊은이들은 일단 대화 시작에서부터 넘기 어려운 장애물과 맞서야 한다. 어르신 대부분이 목소리는 큰데, 정확히 듣지 못한다. 그리고 말투부터 뭔가 짜증 섞이고 못마땅해 보인다. 어리다고 무시하는 걸까? 아니면 그 어르신의 인성에 문제가 있는 걸까?

물론 인격 수양이 이유가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반응이 느리고 퉁명스러운 어르신의 대화 태도는 사실 '노화'라는 과정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초고령 사회 소비생활의 주축으로 떠오를 어르신 소비자를 파악하기 위해선, 나이가 들며 겪는 신체·정신적 변화인 노화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노화는 26세부터... 세 번의 변곡점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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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 등에 따르면 노화란 나이가 들어가면서 신체의 구조와 기능이 점진적으로 퇴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전보다 세포의 기능이 떨어지는, 질병이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미국 듀크대 댄 벨스키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인간의 노화는 26세에 이미 시작된다. 노화의 속도는 중년을 거쳐 노년에 이르면 점점 빨라진다. 스탠포드대 토니 와이스-코레이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노화는 34세, 60세, 78세에 세 번의 가속 페달을 밟는다. 30대 중반을 지나면 전에 없던 팔자 주름이 보이고, 환갑이 되면 다른 사람 말이 예전만큼 잘 들리지 않는 현상이 단순한 착각은 아닌 셈이다. 특히 60대 중반을 전후해서는 노화와 별도로 신체 안팎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에 대항하는 생리적 여력이 줄어드는 현상, 이른바 '노쇠' 현상이 발생한다.

통상 노인의 기준이 65세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민연금공단 등에 따르면 1889년 독일이 '철혈재상' 비스마르크 집권기 중 세계 최초로 연금보험을 도입하며 수급개시 연령을 65세로 정한 것이 시초다. 이 연령을 기점으로 질병 발생률이나 사망률이 급속하게 높아진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60세는 20대보다 3배 밝아야 글자 보여요"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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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노화가 시작되면 뭐가 달라지는 걸까? 눈은 신체기관 중에서 노화가 제일 빨리 오는 기관 중 하나다. 수정체 탄력이 떨어지고 얇아지면서 주변 물체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는 노안(老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어르신이 메뉴나 스마트폰 속 글자를 보려면 돋보기 안경은 필수다.

특히 동공 반응속도가 느려지면서 어두운 곳에서 사물 식별이 어려워진다. 60세인 사람이 글자를 읽으려면 20세 청년보다 보통 3배 더 밝은 불빛이 필요하다고 한다. 또 색상이 흐려보이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색상의 대비를 파악하기 더 어렵게 된다. 이전에는 파란색으로 잘만 보였던 교통 표지판이, 어르신들에겐 회색빛에 가깝게 보이기 일쑤란다.

청력도 마찬가지다. 달팽이관 내 신경세포의 수가 감소하면서 귀에서 전달되는 소리를 정확히 처리하지 못하게 된다. 고음역대 소리가 잘 들리지 않으면서 사람의 말소리가 중얼거리는 것처럼 들리는 게 대표적이다. 단어 식별에 중요한 자음이 보통 고음역대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점원의 말이 어르신의 귀에는 "우엉을 오와으일아요?"로 들리는 식이다. 어르신들이 고음의 목소리를 가진 여성이나 아동의 목소리를 더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또 어르신들은 뼈 밀도가 낮아지면서 계단을 오르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뼈가 약해지고 부러지기 쉽다. 특히 고관절과 손목 등이 다른 부분보다 노화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척추뼈 또한 노화에 취약한 곳 중 하나로, 척추뼈가 약해지면 머리가 자연스럽게 앞으로 기울고 음식 삼키기가 어렵다. 연골 손상으로 나타나는 관절염은 노년에 흔히 발생하는 질환 중 하나다.

노화보다 '노쇠'에 주목해야하는 이유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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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고령화 시대의 어르신 소비자를 이해하기 위해선 노화(aging)뿐 아니라 노쇠(frailty)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노화가 시간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라면, 노쇠는 비정상적인 노화 탓에 질병에 걸리기 쉬운 상태를 뜻한다. 노쇠가 진행되면 일상생활이 어려워지고, 간병인 등 타인에 의존하게 되는 상황에 처한다.

전문가들은 노화 및 노쇠 여부에 따라 어르신에게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가 세분화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영선 경희대 노인학과 교수는 "어르신이라고 모든 분들이 신체·인지 기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고, 스마트폰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어르신들도 많다"며 "선입견 없이 어르신의 특성을 이해하려는 산업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상우 동국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어르신 소비자를 세분화하는 기준은 '나이'가 아닌 '자유롭게 이동하며 노동·소비가 가능한지 여부'"라며 "이동이 어려워 집에만 계신 분들을 위해선 감성 돌봄서비스, 일할 여력이 있는 어르신을 위해선 노인 전문 금융상품이 많아지는 등 다양한 수요를 파악해 이에 맞는 상품과 서비스가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66세 최선희씨의 눈으로 본 소비 현장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31509310003029

▶스마트폰 빠삭한 75세 '젊은 오빠'도... 키오스크는 피하고 싶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31415410004818

▶'1000만 고령 고객, 매뉴얼이 없다' 이렇게 취재했습니다

https://preview-m.hankookilbo.com/News/Read/A2023031517460003108

이승엽 기자
이현주 기자
윤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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