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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을 지나며 클래식 음악은 '시간의 힘'을 배웠다

입력
2022.12.26 04:30
20면

편집자주

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내년 초 내한 신년 음악회를 여는 빈 소년합창단. ⓒLukas Beck

내년 초 내한 신년 음악회를 여는 빈 소년합창단. ⓒLukas Beck

2023년 1월부터 극장별로 꽉 채워진 공연 일정이 반갑다. 1월에는 빈 소년합창단의 신년음악회 소식도 있다. 매년 새해를 알리는 전령사 같은 무대였지만 3년 만의 내한 무대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2020년 2월부터 극장은 긴장과 규제 속에 움츠려야 했지만 어린 소년들의 합창단이 국경을 넘어와 공연해도 안전한 시대가 됐다는 증표처럼 보여 더 반갑다. 2023년이 되면 모든 것이 코로나19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가게 될까. 지나온 시간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언택트(비대면)' 시대는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시켰다. 회의, 강연, 업무, 학습, 공연 관람 등 기술적 환경만 갖춰지면 비대면 상황에서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사람을 마주하며 겪어야 했던 스트레스를 줄여줬고 동시에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숙제를 안겼다. 혼자 있는 긴 시간을 꽤 잘 활용한 사람들 중엔 다양한 요리에 도전한 사람과 책 읽기, 영화 보기, 오디오와 음반 구입, 악기 연주에 열중하는 사례가 눈에 띄었다. 특히 재택근무자 중 한때 첼로, 피아노, 기타 좀 경험해 봤던 직장인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연주에 집중하는지, 악기 수입사가 알려준 일렉트릭 기타 판매 수치를 듣고는 기절할 뻔했다. 이들은 유명 연주자의 주법 연구, 연주 영상, 자세 활용법 등을 알려주는 유튜브 채널을 보며 심화 단계에 들어섰다. 재미있어서 몰입하는 아마추어의 연습 시간은 밤낮, 주말까지 제한도 없었다.

넷플릭스가 팬데믹을 버티게 해줬다고들 하지만,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이 찾아 들은 유명 연주자의 연주 영상 조회수도 확실히 높았다.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연주 영상은 뉴스에서도 몇 번씩 회자될 정도로 화젯거리였고, 베를린 필하모닉 디지털 콘서트홀을 비롯해 클래식 연주 영상을 소개하는 특정 채널 애용자도 3년 동안 확연히 늘었다고 한다.

아쉬운 점은 세계를 깜짝 놀랜 클래식 아티스트가 등장해도 개개인만 관심의 대상이 될 뿐 클래식 음악이 소비되는 영역은 늘 한정적이라는 점이다. K팝과 한국영화의 선전에는 자본이 몰리고 시장이 커지는 게 눈에 보이는데 클래식 음악의 관심은 특정 연주자, 특정 오케스트라에만 쏠리고 범위를 넓혀가는 속도는 매우 느리거나 멈춰 있다. 순수예술의 한계인 셈이다. 그렇다고 소수지만 음악 애호가층을 넓힌 팬데믹 종식을 슬퍼해야 할까.

몇 년 전 세계적 카운터테너 안드레아스 숄과 클래식 음악이 현재에 미치는 가치와 영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독일에서도 인구의 10%만이 클래식 음악을 즐긴다고 하는데 17세기 바로크 시대를 상징하는 카운터테너로서 성공적 커리어를 쌓으며 현재와 매끄럽게 연결하는 그의 소통 방식과 철학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빠른 결과를 낳아야 하는 현재에, 느린 가치를 얘기하는 클래식 음악을 듣는 사람은 점점 더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재미를 느끼게 하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비디오 게임은 단 몇 분 만에도 바로 즐기고 몰입할 수 있을 정도로 직관적이니까요. 그런데 사람은 살아가면서 반드시 넘어야 하는 극복의 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극복해 가는 과정 속에서 도전과 용기, 끈기를 배울 수 있죠. 뭔가 성취해나가는 사람에게 있어서 중요한 '시간의 힘'을 경험하고 가르치는 것이죠. 그 경험의 시간은 결과적으로 우리를 좀더 나은 사람으로 이끕니다. 모두가 아티스트가 돼야 할 필요는 없어요. 혼자 곡 하나를 완주해내는 기쁨을 만끽하는 것도 좋겠고 누군가와 함께 듣고 조율해가는 합창단이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면서 음악적 앙상블을 이뤄내 보는 것도 좋겠죠. 음악적 조율 과정을 통해 우리가 쉽게 잃어가는 것들을 배우게 되거든요.”

4년 전 대화였지만, 그의 답변에서 답을 찾은 것 같다. 우리가 팬데믹을 지나오면서 경험한 시간은 불편함과 혼란스러움, 죽음과 고통의 시간으로만 기억할 순 없을 것이다. 그 과정을 극복하기 위해 견뎌낸 시간의 힘은 우리 몸에 면역력을 키워줬을 것이고 지루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내 편으로 삼는 동안 어느 분야의 애호가가 돼 있거나 전문가가 됐을지도 모른다. 잠시 멈췄던 시간으로 돌아보게 된 나의 내면과 주변은 이전과 어떻게 달라졌을까. 2023년이 기대된다. 3년 만에 듣게 될 빈 소년합창단의 음악은 어떻게 들릴지 몹시 궁금해진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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