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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재촉하는 멘델스존 '이탈리아'… 음악적 상상력으로 느끼는 '클래식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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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온도가 일상을 뒤흔드는 폭염이 역대 최장 기간 이어지고 있다. 클래식 음악도 온도로 표현할 수 있을까. 최근 한 지역 문화예술교육센터는 클래식 음악을 온도에 따라 분류해 바이닐 레코드(LP) 커버를 전시하고 음악도 들을 수 있게 했다. 전시된 앨범 중에는 북유럽 출신 피아니스트 비킹구르 울라프손의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아르보 패르트의 '슈피겔 임 슈피겔', 피아니스트 라두 루프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남긴 프랑크, 드뷔시 바이올린 소나타 앨범도 있었다. 우리가 주고받는 말과 행동, 표정에서 차가움과 따스함을 느끼듯 상상력을 자극하는 음악에서도 다양한 온도를 감각할 수 있다.
아이슬란드 출신의 비킹구르 울라프손은 '온도'를 주제로 음악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한다.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발표한 앨범 커버들은 빙하를 연상시키는 푸른색과 흰색, 혹은 무채색의 차가움으로 이미지를 이어 왔다. 북유럽 출신이라는 단어도 자주 언급됐는데, 결정적으로 선곡의 신선함과 해석의 담백함이 그의 청량한 이미지를 굳혔다. 울라프손이 처음 선보인 필립 글래스의 에튀드 앨범은 눈과 귀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미니멀리즘 대표 작곡가의 에튀드는 단순함과 고요함, 깊고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처럼 북유럽의 서늘함을 연상시켰다. 전체 20개 에튀드 중 순번을 달리해 연주한 울라프손의 스토리텔링은 이후 바흐, 드뷔시, 라모, 모차르트 앨범에서도 이어졌다.
물과 바람은 시원함의 상징이자 클래식 음악의 중요한 소재다. 모차르트와 슈베르트, 슈만은 그들의 가곡을 통해 물의 존재를 수없이 다뤘다. 특히 슈베르트의 테마는 물과 물레방아, 강물이 흘러가는 길에 따라 이어지는 방랑이라고 할 수 있다. ‘물 위에서 노래함’ 등의 가곡에서 오른손 피아노 연주는 쉼없이 흐르는 물을 노래한다. 여기에 인상주의 작곡가 드뷔시와 라벨이 빠질 수 없다. 드뷔시의 '바다'가 다소 느릿하게 움직이는 심연의 생태계를 묵직하게 그렸다면, 라벨의 '물의 희롱', 물의 요정 '온딘' 등은 빠르고 신비롭고 투명하다.
물을 위한 음악, '수상음악'을 쓴 헨델은 18세기에도 코즈모폴리턴으로 살았던 인물이다. 오페라의 나라였던 이탈리아에서 수학하고 독일 하노버의 궁정 카펠마이스터가 되지만, 더 넓은 음악시장을 찾아 휴가를 내고 영국 런던으로 가 버린다. 런던은 예산 규모가 큰 오페라 제작을 지원해 주기도 했지만 헨델은 무엇보다 이곳에서 쌓인 성공의 경험 때문에 런던에 더 오래 남고 싶었다. 하지만 그를 아끼던 앤 여왕이 사망하자, 자신이 떠나온 하노버의 선제후(選帝侯), 조지 1세가 영국의 왕으로 오게 됐다. 미움 받을 것이 두려웠지만 왕족의 뱃놀이를 위한 '수상음악'을 쓴 헨델은 오케스트라를 배에 띄워 연주하게 함으로써 조지 1세의 환심을 얻는 데 성공한다. 시대악기 연주단체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가 연주한 앨범의 전체 21곡을 들으면 물놀이를 하고 온 듯 더위 스트레스도 확 풀린다.
비발디의 '사계' 중 소나기가 퍼붓는 '여름' 3악장도 좋겠지만, 막스 리히터가 비발디의 작품을 재편성한 2012년 '사계'는 또 새롭다.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호프와 콘체르트하우스 캄머오케스트라 베를린의 뛰어난 연주는 인류가 사랑해 온 걸작에 대한 도전이자 기분 좋은 혁명이었다. 앨범 마지막 트랙에 신시사이저가 등장하는 리믹스 버전의 여름은 21세기 디지털 사운드가 만들어 낸 차가운 여름이다. 2022년 리히터는 같은 작품을 시대악기로 연주해 또 한 번 앨범을 발매했다. 치네케! 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리니스트 엘레나 우리오스테가 연주한 시대악기 버전은 좀 더 빠르고 가볍다. 거트현(동물의 창자를 꼬아 만든 현) 악기들은 볼륨은 작지만 '자연'에 가까운 음색을 갖고 있어 계절을 표현하는 작품에 더 잘 어울린다.
초가을로 향해 가는 지점에서 주저 없이 선택하는 음악은 멘델스존의 교향곡 4번 '이탈리아'의 1악장이다. 현악의 활기찬 에너지가 만들어 내는 청량한 바람은 더 이상 습하고 무더운 여름의 그 바람이 아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한 런던 심포니오케스트라 연주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최고의 멘델스존 앨범이지만, 파보 예르비가 지휘한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의 최근 연주 앨범도 추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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