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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적의 소리를 담기 위한 음악가와 프로듀서의 사투

입력
2022.12.12 04:30
20면

편집자주

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톤마이스터 최진 감독. 한국일보 자료사진

톤마이스터 최진 감독. 한국일보 자료사진

요즘은 음원, 영상 사이트를 주로 이용해 음반에 대한 가치 판단이 이전과 조금 달라졌지만 음반에 담아온 레코딩의 역사는 여전히 보물상자 같다. 엄청난 문화유산을 전해주는 그 자체가 귀한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좋은 레코딩을 남기기까지의 과정은 또 다른 음악적 실험과 생산을 의미하는 작업물이라 지금도 멋진 이야기가 담긴다.

최근 발매한 음반 몇 개만 들춰 봐도 톤마이스터 최진 감독의 이름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소리의 장인’이라는 의미의 톤마이스터(tonmeister)는 현대 녹음 기술을 최대한 활용해 좋은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 레코딩 프로듀서와 엔지니어 역할을 겸하는 이들을 말한다. 독일 극소수 대학에서 1950년대부터 전공자 수준으로 악기를 다루고 음악 이론, 악기와 연주에 관련된 기술, 예술적 부분까지 관장할 수 있는 인물을 양성해 왔는데 이 과정을 거친 최 감독은 세계 음반시장에서도 첫손에 꼽히는 톤마이스터 중 한 명이다. DG, 데카, 워너클래식스 등 세계적 레이블의 굵직한 프로젝트는 물론, 고티에 카푸송, 엠마누엘 파후드, 다니엘 하딩, 정명훈, 정경화, 백건우, 조수미, 조성진, 임동혁, 손열음, 임윤찬 등 수많은 음악가들이 최 감독을 찾는다. 코로나19 팬데믹 중 주요한 온라인 공연 송출 관련 사운드 소스 대부분이 그의 손을 거쳐갔고 독일 오케스트라 최초로 3D 입체 음향 스트리밍을 목적으로 한 안드리스 넬손스와 게반트하우스오케스트라의 베토벤 교향곡 9번 첫 실황 녹음 역시 최 감독이 맡았다. 세계적 음악가와 소리의 장인들이 후대에 남길 기념비적 역사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최적의 소리를 전하기 위해 음악적으로, 기술적으로 연주에 개입해야 하다보니 녹음 과정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지난달 말 도이치 그라모폰 레이블에서 발매한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지휘자 홍석원, 광주시향의 '베토벤, 윤이상, 바버' 앨범은 통영국제음악당에서의 실황을 담아낸 앨범인 만큼 톤마이스터의 역할이 지대했다.

“홍석원 지휘자와 광주시향이 윤이상의 고향 통영에서 '광주여 영원히'를 녹음하게 되다니 각오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연주가 훌륭한 경우는 많이 있지만 가끔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결과가 나올 때가 있는데 이날 연주가 그랬죠. 지휘자와 교향악단과 작품이 한 몸이 되어 영혼을 쏟아부은 것 같은 음악이었다고 생각해요.”

톤마이스터 눈에 비친 임윤찬은 또 다른 매력의 소유자였다. “녹음 경험도 많지 않았을 텐데 18세가 아니라 1918년생이 아닐까 싶을 만큼 시대 전반에 대한 음악적 이해가 높았어요. 얼마나 많은 음반을 폭넓게 들어왔는지 레코딩에 적극적이었던 글렌 굴드 얘기도 많이 나눴는데, 완벽을 기하기 위해 톤마이스터의 의견을 묻고 진심으로 귀기울이고 조율해나갈 줄 아는, 협업이 매우 즐거운 아티스트였습니다.”

백건우의 최근 앨범 '고예스카스'에서 최 감독은 작곡가만의 ‘원색적’ 스타일을 표현하기 위해 피아노 브랜드부터 모델을 제안했고 건반에서 날것의 소리가 나올 것을 조율사에게 부탁해 해머의 강도, 타격거리 조율 등 최적의 음향 밸런스를 찾기 위해 몇 배의 시간을 더 들여야 했다. 어딘가 야하고 정제되지 않은, 다소 싸구려로 들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지점을 결국 만들었다며 연주자와 톤마이스터는 결과물을 들으며 함께 웃었다. 2020년 백건우의 '슈만' 앨범을 작업하다가 ‘유령 변주곡’ 최종 음원을 들으며 함께 오열했던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음악적 일탈을 시도한 것이다.

최진 감독이 녹음 과정에 참여한 조수미 새 앨범 '사랑할 때'. SMI 제공

최진 감독이 녹음 과정에 참여한 조수미 새 앨범 '사랑할 때'. SMI 제공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역시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 녹음을 위해 최 감독과 전국 각지, 오지를 찾아다니며 최적의 ‘녹음장소’를 찾기 위해 몇 년, 몇 시간의 공을 들였다. 조수미는 최근 앨범 '사랑할 때'를 제작하면서 또 다른 사투를 벌였다. 유럽 최고의 극장에서 노래하고 대륙 간의 이동을 하는 동안에도 각 트랙마다 예상했던 그림이 나오지 않으면 다시 편곡하고 작품과 목소리에 적합한 장르를 다시 찾기도 했다. 이런 앨범은 베토벤 같은 정격 레퍼토리 녹음과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는 동시에 흥미진진함이 있다.

이 과정에서 톤마이스터가 마주하는 것은 음악가들의 ‘진심’과 ‘최선’이다. 청중에게 어떤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가를 고민하고 방향을 맞춰가는 동안 음악으로 어디까지 솔직해질 수 있는지, 얼마나 최선을 다하는지, 궁극적으로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투명하게 비치기 때문이다. 음반이 그 기록의 산물이라고 할 때, 트랙 하나에 담긴 이야기가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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