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대들보 된 통영 '횟집 아들'

입력
2022.11.21 04:3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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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월드컵은 처음이지?] <2> '괴물 수비수' 김민재

한국 축구대표팀 김민재가 18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알 에글라 트레이닝센터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도하=뉴시스

한국 축구대표팀 김민재가 18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알 에글라 트레이닝센터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도하=뉴시스

2017년 8월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 한국과 이란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9차전이 열렸다. 0-0 팽팽한 균형이 유지되던 후반 9분 이란의 사이에드 에자톨라히가 한국의 젊은 수비수 머리를 밟은 뒤 퇴장당했다. 수적 우위를 점했지만 한국은 이날 무승부에 그쳤다. 그러나 중원의 핵심이었던 기성용이 빠진 당시 경기에서 한국은 아시아 최강 이란을 상대로 ‘실리 축구’의 진수를 보여줬다.

한국이 거둔 수확은 승점 1뿐만이 아니었다. 최소 향후 10년간 대표팀의 수비라인을 이끌 '괴물 수비수' 김민재(26·나폴리)를 발굴했다. 그는 성인 국가대표 A매치 데뷔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의 노련한 플레이로 상대 선수의 퇴장을 유도했다. 같은 해 10월 6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린 최종전에서도 그는 또 한번 완벽한 수비 실력을 선보이며 0-0 무승부를 이끌었고, 대표팀은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이천수 당시 JTBC 해설위원은 “21살의 괴물 수비수가 등장했다”며 “경험에 비해 침착하고 여유가 넘친다”고 극찬했다.

김민재(4번)가 2018년 8월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이란과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9차전에서 공중볼을 다투고 있다. 이날 A매치 데뷔전을 치른 김민재는 상대 선수의 퇴장을 유도하며 팀의 무실점을 견인해 '괴물 수비수'의 등장을 알렸다. 연합뉴스

김민재(4번)가 2018년 8월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이란과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9차전에서 공중볼을 다투고 있다. 이날 A매치 데뷔전을 치른 김민재는 상대 선수의 퇴장을 유도하며 팀의 무실점을 견인해 '괴물 수비수'의 등장을 알렸다. 연합뉴스

혜성처럼 등장한 괴물 신인에게 축구팬들의 관심이 쏟아지면서 그의 성장 스토리도 주목을 받았다. 경남 통영의 ‘횟집 아들’인 김민재는 풍족하지 못한 가정형편 탓에 선배들의 축구화를 물려받아 신으며 축구를 했다. 연세대를 2년 만에 중퇴하고 2016년 내셔널리그(3부 리그) 경주 한국수력원자력에 입단한 이유도 하루빨리 프로선수로 자리를 잡아 경제적 여유를 갖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그는 2017년 1월 K리그 최강팀인 전북 현대에 입단해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김민재는 부모로부터 충분한 경제적 지원은 받지 못했지만, 대신 유도선수 출신인 아버지와 육상선수 출신인 어머니로부터 건장한 체격(190㎝)과 뛰어난 운동신경을 물려받았다. 큰 체격에도 스피드가 빠르고, 정확한 판단력과 빌드업 능력까지 고루 갖춘 완성형 수비수다. 1990년대 한국 축구의 상징이었던 홍명보의 아성을 뛰어넘었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김민재(왼쪽 두 번째)가 2018년 5월 3일 K리그1 대구FC와의 경기에서 부상당한 뒤 그라운드를 빠져나가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김민재(왼쪽 두 번째)가 2018년 5월 3일 K리그1 대구FC와의 경기에서 부상당한 뒤 그라운드를 빠져나가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축구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등장한 김민재지만, 정작 러시아 월드컵 본선무대는 밟지 못했다. 2018년 5월 대구전에서 오른쪽 다리에 실금이 가는 부상을 당하며 최종명단에서 낙마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같은 해 열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참가해 손흥민 황의조 황인범 등과 함께 금메달을 합작했다.

이후 그의 축구 인생은 탄탄대로였다. 2019년 전북을 떠나 중국 슈퍼리그 베이징 궈안으로 이적했고, 2년 뒤인 2021년에는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연고를 둔 페네르바체에 입단하며 유럽 무대에 첫발을 내디뎠다. 특히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UEL) 데뷔전이었던 2021년 9월 17일 프랑크푸르트(독일)의 유효슈팅을 여러 차례 막아내며 1-1 무승부에 기여, 유럽 강호들의 눈에 띄기 시작했다.

김민재(오른쪽)가 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나폴리 스타디오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 경기장에서 열린 2022~23시즌 세리에A 엠폴리와의 경기에서 2-0 승리를 거둔 뒤 기뻐하고 있다. 나폴리=로이터 연합뉴스

김민재(오른쪽)가 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나폴리 스타디오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 경기장에서 열린 2022~23시즌 세리에A 엠폴리와의 경기에서 2-0 승리를 거둔 뒤 기뻐하고 있다. 나폴리=로이터 연합뉴스

결국 그는 올해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이탈리아 세리에A의 강호 나폴리로 옮겼고, 4개월 만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수비수가 됐다. 그는 올 시즌 팀이 치른 21경기 중 20경기에 풀타임으로 출전했고, 단단한 수비 덕에 나폴리는 개막 후 15경기 무패(13승2무)를 기록하며 선두에 올라 있다. UEFA 챔피언스리그(UCL)에서도 5승 1패 조 1위로 16강에 안착했고, 김민재는 세리에A 사무국 선정 ‘9월 이달의 선수’, 이탈리아 축구선수협회 선정 ‘10월 이달의 선수’로 뽑혔다.

이제 그의 앞에 놓인 과제는 생애 첫 월드컵에서의 활약이다. 2022 카타르 월드컵 1차전 상대인 우루과이의 신성 다르윈 누녜스(23·리버풀)를 UCL 조별리그에서 직접 상대할 정도로 경험치도 많이 쌓였다. 김민재는 “팀에서 좋은 경험을 했고, 나폴리에 가서 매 경기 고민 속에 치열하게 뛰었다”며 “팀을 위해 헌신할 준비가 돼 있다”며 4년 전 아쉬움을 털기 위한 각오를 밝혔다.

박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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