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떨어진 러軍 자중지란… 항명에 자국 항공기 격추까지

입력
2022.04.0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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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첩보기관 "러, 지휘·통제 혼란 빠져"
일부러 포로, 우크라군에 합류하기도

30일 우크라이나 북동부 러시아 국경 인근 트로스티아네츠 마을에 구호물자를 실은 우크라이나군 전차가 들어서고 있다. 트로스티아네츠=EPA 연합뉴스

30일 우크라이나 북동부 러시아 국경 인근 트로스티아네츠 마을에 구호물자를 실은 우크라이나군 전차가 들어서고 있다. 트로스티아네츠=EPA 연합뉴스


러시아군이 자중지란에 빠졌다. 고질적 병참 문제로 사기가 크게 떨어지면서 하극상은 물론, 의도치 않게 아군을 공격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략 한 달이 넘으면서 러시아군 조직력이 얼마나 심각하게 무너졌는지 보여주는 정황들이다.

3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영국 정보통신본부(GCHQ)의 제러미 플레밍 국장은 “우크라이나에 주둔 중인 러시아군 사기가 크게 저하되고 잘 정비되지 않았다는 첩보가 이어진다”다고 밝혔다. GCHQ는 미국 국가안보국을 비롯, 호주ㆍ캐나다ㆍ뉴질랜드 정보당국과 기밀 정보를 공유하는 영국의 도ㆍ감청 전문 첩보기관이다.

플레밍 국장은 러시아 병사 중 일부는 자국 장비를 고의로 파손했고, 상관의 명령 이행을 거부하는 일도 잦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실수로 자국 항공기를 격추시킨 정황도 보고됐다. “사상자 수가 크게 늘면서 러시아군에 대한 지휘와 통제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졌다”고 플레밍 국장은 덧붙였다.

그는 사건이 벌어진 구체적인 날짜와 장소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우크라이나 정보당국과 외신에서도 전의를 상실한 러시아 병사들의 일탈 행위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최근에는 전투 중인 러시아 지휘관이 부대원들의 하극상으로 숨지거나, 러시아군이 “전쟁을 할 이유를 모르겠다”며 전차를 몰고 우크라이나에 투항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영국 가디언은 “급격한 사기 저하로 러시아 병사들이 전투 명령에 불복하고 탈영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심지어 우크라이나군에 사로잡힌 러시아 병사가 자국 군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겠다고 자원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이날 텔레그램에 “러시아군 포로 중 일부가 자발적으로 우크라이나군에 합류했다”며 “이들은 특히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의 경비견이나 다름없는 ‘카디로비츠(람잔 카디로프 체첸공화국 수장의 사병 조직)’에 대한 공격 의지를 불태웠다”고 설명했다.

러시아군 사기 저하에 관한 소식은 침공 이후부터 줄곧 이어져 왔다. 만성적인 식량과 연료 부족 등 병참 문제는 러시아군이 침공 35일이 지난 이날까지 우크라이나에서 이렇다 할 결과를 내지 못한 대표적인 패착으로 꼽혀 왔다. 다만 그간 민간인을 대상으로 약탈을 일삼거나 음식을 구걸해 왔다면, 이제는 군 내부에서 곪았던 문제가 터져 나오면서 기강해이로 여겨질 법한 일이 속출하는 셈이다.

러시아는 즉각 반박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무장된 러시아군은 전문적이며 우크라이나에서 임무를 상당히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면서 “서방은 계속 거짓말을 퍼뜨려 왔다”고 주장했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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