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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간 집밥만 먹고, 집콕했는데... 플라스틱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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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사지 않을 권리] <23>'플라스틱 집콕조사' 참여기
지난 8월 23일, 기자는 집 근처 마트에서 고민을 거듭했다. 저녁식사로 카레를 만들어 먹을 계획인데, 카레 가루는 물론 닭고기ㆍ양파ㆍ당근 모두 비닐과 플라스틱으로 포장돼 있어서였다. 비닐 아닌 포장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첫날부터 실패했다.
당시 기자는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서울사무소가 실시한 ‘플라스틱 집콕조사’에 참여하는 중이었다. 8월 23일부터 29일까지 일주일간 전국 841가구, 2,671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국내 시민참여 플라스틱 실태조사 중 가장 큰 규모였다. 참가자들은 매일 각 가정에서 배출한 플라스틱의 제품명ㆍ제조사ㆍ재질 등을 기록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인 이 조사는 기업에 책임을 묻는 취지였다. 소비단계에서 어떤 플라스틱이 얼마나 사용되는지 알아야, 어느 기업이 더 노력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어서다.
조사기간 발생한 일회용 플라스틱(비닐 포함)은 총 7만7,288개. 1인 가구가 평균 52.75개로 가장 많았고, 5인 가구가 1인당 24.35개로 가장 적었다. 전체 1인 평균은 28.93개였다.
참가자 박진감(23), 성현경(21)씨도 '제로웨이스트 실험실'을 위해 조사 과정을 공유했다. 기자의 집에서는 일주일간 25개의 플라스틱이 나왔다. 성씨는 26개, 박씨는 53개였다. 세 사람 모두 1인 가구다.
일주일간 자신의 생활을 되돌아본 참가자들은 “쓰지 않으려 노력해도 플라스틱이 계속 나왔다”고 한탄했다. 인스턴트 식품이 아닌 ‘집밥’을 먹을 때조차 일회용 플라스틱을 벗어날 수 없다.
박진감씨는 2일차에 애호박 찌개를 끓여 먹었는데, 재료인 애호박과 팽이버섯은 물론 반찬으로 곁들인 김도 모두 비닐 포장이었다.
조사기간 발생한 식품 포장재는 6만331개로 전체 플라스틱의 78.1%를 차지했다.음료 및 유제품류(2만5,126개)가 가장 많았다. 전체의 32.5%나 된다. 생수·음료수 대부분이 일회용 플라스틱 병에 담겨 있고, 유리 등 대체재를 쓴 제품을 찾기 어렵다.
성현경씨와 박진감씨는 조사기간 중 롯데칠성의 아이시스,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의 삼다수 등 생수와 음료수를 여러 차례 마셨다. 기자 역시 매일유업의 엔요 요구르트, 썬업 등 음료수를 마시며 플라스틱을 배출했다.
과자ㆍ간식류(9,977개, 12.9%)나 햇반 등 가정간편식류(5,888개, 7.6%)도 플라스틱 쓰레기 비율이 높다. 과자가 하나씩 낱개로 개별 포장되거나, 내부에 플라스틱 트레이를 쓴 경우가 많다.
성현경씨가 2일차에 먹은 오리온의 ‘오!감자 찍먹 양념바베큐소스맛’에도 플라스틱 소스통이 들어 있었다. 성씨는 “구입할 땐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쓰레기를 하나 더 만드는 상황이 돼 버렸다”고 아쉬워했다.
면류(3,203개) 역시 한 번에 여러 쓰레기를 낳았다. 기자는 3·4일차에 농심 신라면 블랙과 안성탕면을 끓여 먹었는데 겉봉지와 수프를 합해 각 4개, 2개씩의 비닐쓰레기가 나왔다. 재질도 대부분 복합재질(other)이라 물질재활용이 불가능한 쓰레기다.
배달용기도 자주 등장한 식품 포장재다. 총 5,985개로 전체의 7.7%를 차지했다. 6일차에 박진감씨는 친구들과 함께 초밥과 아이스크림 등을 주문해 먹었다. 배달용기만 4개가 나왔다. 초밥 외에도 곁들이 반찬을 각각 담아서 많아진 것이다.
아이스크림의 플라스틱 뚜껑, 펩시 콜라병, 일회용 수저, 치킨무 등을 합하니 이날 배달로 나온 일회용 플라스틱만 8개나 됐다. 박씨는 “빨대는 종이로 만들 수 있는데 아이스크림을 먹는 일회용 숟가락처럼 딱딱한 플라스틱의 경우 대체 가능한 물질이 있을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두 번째로 많이 나온 플라스틱 쓰레기 종류는 개인위생용품(1만1,320개)이다. 전체의 14.6%다. 특히 개인위생용품 중엔 마스크가 53.8%로 절반이 넘었다. 코로나19 장기화의 결과다. KF마스크와 비말차단 마스크는 참가자들이 거의 매일 배출한 쓰레기였다.
마스크는 주로 폴리프로필렌(PP) 등 플라스틱 합성수지에 철사(코 지지대)를 넣은 형태다. 하지만 감염예방을 위해 일반쓰레기로 버려야 한다. 걱정은 남는다. 성현경씨는 “폴리프로필렌을 소각하면 1군 발암물질(다이옥신)이 나온다고 학교에서 배웠는데 이렇게 배출하는 게 맞는지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3위는 일반포장재(3,179개·4.1%)였는데 여기에는 택배 포장에 쓰이는 비닐도 포함된다. 기자는 2일차와 3일차에 화장품ㆍ소형가전제품 택배를 받고 그 속에 있던 일명 ‘뽁뽁이’라 불리는 완충용 비닐(에어캡)을 배출했다. 재질은 저밀도 폴리에틸렌(LDPE)이다.
택배 때문에 본의 아니게 비닐을 버리게 된 기자는 ‘인터넷 쇼핑을 줄여야겠다’고 자책했다. 하지만 요즘처럼 감염병이 유행하는 시기나, 외진 곳에 사는 가구의 경우 택배 주문이 불가피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비닐 말고 대체품을 사용할 순 없을까.
박진감씨도 같은 생각이다. 박씨가 4일차에 택배로 받은 쿠션도 투명한 비닐로 포장돼 있었기 때문. 그는 “쿠션은 박스 안에 그냥 넣어도 찢어지지 않을 텐데 왜 굳이 비닐로 포장을 했는지 의문”이라며 “오염을 방지하는 의도라면 종이 포장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고 했다.
그린피스는 가장 많이 배출된 식품 플라스틱(78.1%)의 재질을 집중 분석했는데 이 중 47.4%(2만8,627개)가 비닐류였다. 비닐은 이론적으로는 물질재활용이 되지만, 실제 처리과정에서는 고형연료(SRF)를 만들어 에너지재활용을 하거나 매립한다. 어느 방법을 택하든 환경에 악영향을 준다. 그린피스는 “SRF 소각 시에 유해 중금속과 발암물질이 방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지적했다.
식품 플라스틱 중 페트나 PP처럼 단일플라스틱은 46.3%(2만7,943개)였다. 물질재활용이 가능한 건 절반도 안 되는 것이다. 폴리염화비닐(PVC)도 단일재질이지만 염소(Cl) 성분 탓에 다른 플라스틱의 재활용을 방해하고 유해물질을 방출하기 때문에 단일플라스틱 비중에서 제외했다. 나머지 6.0%는 재활용이 어려운 복합재질(other)이나 바이오플라스틱 또는 재질이 불분명한 플라스틱이다.
재활용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소비자가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하는 것도 문제다. 4일차에 롯데제과 ‘짜먹는 민트쿠키 아이스’를 먹은 성현경씨는 분리배출을 하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품의 입구 뚜껑용 플라스틱(PE)이 몸체(other 비닐)의 재질과 달라 가위로 잘랐는데, 비닐이 뚜껑에 달라붙어 도무지 떨어지지 않았다. 무려 15분간 쓰레기와 씨름을 했다. 그런데도 도려낸 PE뚜껑이 너무 작아 재활용이 될지 의문이다.
2일차에 섬유유연제를 분리배출하던 박진감씨도 고생을 했다. 섬유유연제 통은 PP인데 겉을 둘러싼 라벨은 페트라 손으로 일일이 떼어냈다. 기자 역시 마지막 날 마신 썬업 주스(PP) 입구에 붙은 은박지를 떼어 내느라 쓰레기통 앞에서 시간을 보냈다. 분리배출의 기본 원칙인 '재질별 분리'만 실천하려 해도 도구와 인내심이 필요하다. 이렇게 처리한 플라스틱이 재활용의 최종 단계까지 도달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번 조사에서 집계된 제조사는 총 4,075개. 그런데 상위 10개사가 만든 플라스틱 양이 전체의 23.9%(1만8,502개)나 됐다. 소수의 대기업에 막중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배출량 상위 5개 기업(롯데칠성, CJ제일제당, 농심, 롯데제과, 코카콜라)에 플라스틱 사용량 공개 및 감축계획을 물었다. 모두 “감축 계획이 있다”거나 “계획 수립 중”이라고 답했지만, 목표연도와 감축목표량을 밝힌 건 4위인 롯데제과뿐이다.
롯데제과는 2025년까지 플라스틱 사용량을 현재보다 25% 줄인다는 계획이다. 3위인 농심은 “2024년까지 연도별 감축 목표치를 갖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목표 수치에 대해서는 “향후 지속가능보고서 등 형태로 공개를 검토 중”이라는 답변이다.
플라스틱 생산량을 공개한 것은 배출량 1위인 롯데칠성이 유일하다. 롯데칠성은 지난 7월 자사 웹페이지에 2018~2020년 3년간의 플라스틱 사용량을 공개했다. 하지만 롯데칠성은 아직 일회용 플라스틱 감축 로드맵이 없다.
5개 기업 모두 포장재 구조를 개선하고 재사용 플라스틱을 쓰는 등 여러 연구를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플라스틱 사용 총량 감축은 요원해보인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매출액 대비해서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는 개선율은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면서도 "솔직히 기업 규모가 커지고 있는데 플라스틱을 줄인다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의 기약 없는 약속에 소비자들은 답답할 뿐이다. 성현경씨는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갈 때마다 재질을 보고 재활용 여부를 따지고 있다”며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가치 있는 소비가 가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진감씨는 “기업이 진심으로 환경문제에 공감하고 노력해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도 플라스틱 실태를 파악하고 해결 방안을 찾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린피스는 “플라스틱 배출량 상위를 차지한 CJ, 농심 등 식품 제조사들은 코로나19 덕에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며 “식음료 업계는 플라스틱 사용량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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