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 방해하는 PVC랩…당신 냉장고 안에도 있다

입력
2021.09.15 04:30
소각하면 염소 배출,? 다른 플라스틱 재활용도 방해
포장 쉽지만.... 발암물질 원료, 가소제 유해성 논란
정부 규제 부실, 여전히 널리 쓰여
대체재 개발한 기업들 "PVC랩 퇴출해야"

[쓰레기를 사지 않을 권리] <19>PVC랩

편집자주

기후위기와 쓰레기산에 신음하면서도 왜 우리 사회는 쓸모없는 플라스틱 덩어리를 생산하도록 내버려두는 걸까. '제로웨이스트 실험실'은 그동안 주로 소비자들에게 전가해온 재활용 문제를 생산자 및 정부의 책임 관점에서 접근했다.

일반 가정용, 폴리에틸렌(PE)랩이다. 플라스틱 재질이라 적게 쓰는 게 좋지만, 그나마 업소용 폴리염화비닐(PVC)랩에 비견할 바가 아니다. PVC랩은 잘 늘어나고 잘 붙어서 포장이 쉽지만 발암물질을 원료로 사용하고 소각하면 염화수소가스가 나온다. 한지은 인턴기자

환경오염의 측면에서 보자면 플라스틱에도 등급이 있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플라스틱 재질 중에서 폴리염화비닐(PVC)이 "최악의 플라스틱"이라고 주장한다.

PVC는 불에 탈 경우 염화수소가스(HCl·물에 녹을 경우 염산)가 나온다. 이 HCL의 부식성이 매우 강한 탓에 PVC의 재활용이 매우 어렵고, 일반쓰레기로 소각할 때도 염소를 제거하기 위한 공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도 PVC는 우리 주변에서 여전히 널리 쓰인다. 환경부는 2019년 PVC를 포장재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지만, 의약품과 햄·소시지류(천하장사 소시지와 같은 상온 유통·판매 제품 한정), 마트용 축ㆍ수산물을 포장할 때는 허용했다. PVC랩은 잘 들러붙고 습기가 차지 않는데, 기능면에서 대체재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다양한 종류의 랩을 모아봤다. 왼쪽부터 크린랲의 가정용 PE랩, 삼영화학의 개량형(업소용) PE 퓨어랩, SK종합화학·크린랩의 개량형(업소형) PE랩, 삼영화학의 PVC랩이다. 한지은 인턴기자

그러나 PVC랩은 농산물, 공산품, 배달음식 등의 포장에까지 널리 퍼져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PVC 포장재(랩과 그외 포장재 총합) 사용량은 3,634톤이었다. 2019년(4,727톤)보다 소폭 줄었지만, 여전히 수천 톤의 PVC 포장재가 유통되고 있다.

PVC랩의 대체재를 만들고 있는 업계는 정부가 PVC랩 사용을 계속 허용하면서 대체재가 설 자리를 잃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개량형 PE랩, 조금 부족해도 괜찮아

개량형 PE랩(왼쪽 사진)과 PVC랩(오른쪽)을 늘려봤다. 여전히 PVC랩이 접착력과 신축성이 좋았지만, PE랩도 사용에 큰 불편함이 없을 만큼 제 기능을 했다. 한지은 인턴기자

한 관련 업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주요 업체들이 대형 유통업체에 판매한 내역만으로도 한해 PVC랩 생산량은 최소 1,500톤이다. 가장 보편적인 규격(폭 40㎝, 길이 500m)이 1개당 약 2.4kg꼴인데 이를 기준으로 한해 625만 개, 지구 둘레의 77% 이상을 감싸는 양의 PVC랩이 쓰이는 셈이다.

한국일보 기후대응팀은 랩 성능 확인을 위해 제품 4종을 선택했다. 우선 현재 널리 쓰이는 가정용 폴리에틸렌(PE)랩(크린랩) 1개와 업소용 PVC랩(삼영화학 썬랩) 1개를 택했다.

또 최근 새롭게 개발된 개량형 PE랩은 2종류를 택했다. 삼영화학의 '퓨어랩'과 SK종합화학·크린랩이 공동 개발한 다른 제품이다. 일반 PE랩의 제조 공정을 바꾸거나, 첨가제 배합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접착력과 방담성(放曇性·표면에 물방울이 맺히는 것을 방지하는 성질)을 높였다고 한다.

가정용으로 흔히 쓰이는 PE랩은 PVC보다는 재활용이 잘 되고, 실제 재활용 대상 품목이다. SK종합화학·크린랩 제품은 아직 상용화되지 않아 업체를 통해 샘플을 제공받았다.

랩으로는 스티로폼 그릇으로 받친 삼겹살을 감쌌다. 가정용 PE랩과 업소용 PVC랩 성능은 알려진 것과 같았다. 가정용 PE랩은 대형마트 등에서 사용하기 부적절해 보였다. 재질 자체가 셀로판지처럼 바스락거려서, 접착력이 크게 떨어졌다. 반면, PVC랩은 잘 늘어나고 들러붙어서 사용이 편했다.

개량형 PE랩도 사용 가능한 정도라는 판정을 받았다. 업소용 랩 포장기를 사용할 경우 큰 문제없이 포장을 할 수 있었다. 기자가 맨 손으로 포장을 했을 땐 포장이 잘 안 됐지만, 마트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포장기를 사용하니 말끔하게 붙었다. 마감부가 PVC랩보다는 매끈하지 못했지만, 포장 기능을 하는 데는 손색없어 보였다.

서울의 한 정육점에서 개량형 PE랩을 사용해 포장을 하고 있다. 정육점 관계자도 "PVC랩만큼 성능이 좋진 않지만, 환경에 좋다면 충분히 쓸 만하다"고 했다. 김현종 기자

습기 면에서도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일반적으로 랩을 만들 땐 플라스틱에 응결 현상을 방지하는 '방담제'를 섞는데, 플라스틱이 이를 얼마나 잘 흡수하느냐가 중요하다. PVC는 방담제를 문제없이 흡수하는 재질인 반면, PE는 방담제를 많이 흡수할수록 접착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개량형 PE랩을 개발한 삼영화학 관계자는 "일반 PE랩에 방담제를 많이 넣어 습기 문제를 해결하면 랩의 접착력이 떨어져 포장 상태가 유지되지 않는다"며 "개량형은 상충되는 성능 간 균형을 맞춰 개발했고 PVC 성능의 80%까지 따라갔다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재활용이 잘 되는 랩 개발을 장려하기 위해 기술개발사업을 진행하며 개량형 랩 성능이 PVC랩의 90~95% 이상 성능을 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업소용 랩 포장기를 이용해 개량형 PE랩으로 포장한 돼지고기 사진. 냉장고에 3시간 정도 넣어두니 표면에 다소 습기가 차긴 했지만(사진 왼쪽), 물방울이 응결돼서 떨어져 내릴 정도는 아니었다. 마감부도 풀림 없이 튼튼했다(오른쪽). 김현종 기자


재활용 불가, 소각하면 염산 나와

지난 1월 경기 고양시의 한 폐기물 선별장에 폐플라스틱이 쌓여 있다. 플라스틱은 같은 재질로 모여야 재활용이 가능한데, PVC는 모양과 질감을 다양하게 바꿀 수 있어 식별이 어렵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PVC랩이 포장 성능이 좋아도 퇴출해야 하는 이유는 많다. PVC는 재활용이 안 될뿐더러 다른 플라스틱의 재활용까지 방해한다.

모양과 질감을 다양하게 바꿀 수 있어 어떤 것이 PVC인지 알아보기도 어렵다. 폐플라스틱을 녹여 다시 플라스틱으로 만드는 ‘물질 재활용’을 하려면 같은 재질의 플라스틱끼리 모아야 하는데, 무더기로 버려진 플라스틱 더미에서 PVC만 골라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다.

‘에너지 재활용’도 불가능하다. 일반적으로 물질 재활용에 실패한 폐플라스틱은 모아서 ‘고형연료제품(SRF)’로 만들어 연료로 태운다. 플라스틱의 원료가 석유인 점을 이용해 폐플라스틱을 한데 모아 화력발전ㆍ시멘트 연료 등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PVC는 SRF로도 쓰지 못한다. 다른 플라스틱과 달리 염소(Cl) 함량이 높기 때문이다. 염소는 소각되어 수소와 만나면 염화수소(HCl) 가스가 나오는데, 이를 물에 녹인 것이 염산이다. 인체에 유해한 물질일 뿐 아니라 강한 부식성 탓에 공장 설비에도 지장을 준다. 환경부도 SRF의 염소함유량이 2% 이하가 되도록 규제하고 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이 경우 PVC 조각을 찾아 빼내야 하지만 식별이 어려운 탓에 되레 나머지 플라스틱 재활용까지 방해한다”며 “PVC를 전면 금지하는 게 최선이고, 사용을 해야만 한다면 분리배출 항목에서 아예 제외시켜 일반쓰레기로만 버리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반쓰레기도 버려도 PVC는 골칫거리이긴 하다. 일반쓰레기로 처리하면 매립하거나 소각하는데, 소각장들은 PVC의 유해물질을 줄이기 위해 공정을 이중삼중으로 거친다고 한다. 그러나 환경부가 2016년부터 3년간 전국 다이옥신 배출시설을 점검한 결과, 25개 사업장이 법정 허용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적발되는 등 유해물질 저감 조치가 적절히 이뤄지지 않은 사례도 적지 않다.

다만, 한국바이닐환경협회는 "일반쓰레기 안에는 PVC 외에도 음식물의 염분 등 염화수소의 원인이 다양하게 존재하며, 염화수소를 제거하는 기술 또한 널리 알려져있고 대부분의 시설에 적용되어 있다"고 말했다.

PVC 원료 자체가 발암물질

2007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서울환경운동연합 관계자들이 PVC의 프탈레이트 가소제 사용 제한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는 PVC 내 가소제 사용량을 일정 기준 이하로 규제하고 있지만, 매년 위반 사례가 적발되고 있다. 코리아타임스 자료사진

PVC는 인체 유해성 논란도 있다. 환경단체에서는 PVC의 원료가 발암물질이고 첨가물질 중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 있어 우려를 표하는 한편, PVC 업계에서는 '비합리적인 우려'라고 맞선다.

우선, PVC의 주요 원료인 염화비닐(Vinyl Chloride)은 1군 발암물질이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염화비닐이 사람에게 간세포암을 일으킨다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며 ‘사람에게 암을 일으키는 물질’로 규정했다.

다만 PVC 자체는 발암물질이 아니다. 한국바이닐환경협회는 "염화비닐이 발암물질인 것은 맞지만, 이를 원료로 만든 PVC는 완전히 다른 물질"이라며 "PVC 품질 검사 때도 염화비닐이 검출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IARC도 PVC를 발암물질로 지정하지 않고 있다.

PVC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첨가하는 가소제도 논란거리다. PVC는 원래 휘거나 늘어나지 않는 딱딱한 소재여서 부드러운 포장재로 만들어 주는 가소제를 첨가한다.

과거 이 가소제 중 내분비계 교란물질(환경호르몬)을 분비하는 '프탈산계' 가소제가 쓰이며 유해성 논란이 일었다. 간ㆍ신장장애ㆍ생식기형ㆍ내분비계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탓에 식품의약품안전처도 가소제 포함량과 관련된 규제를 만들었지만, 가구ㆍ전선ㆍ장난감 등 PVC를 이용한 제품군에서는 매년 기준치 위반 사례가 나온다.

다만, 포장용 랩 업계에서는 이 같은 우려 탓에 식용 랩에만큼은 프탈산계 가소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다만 식약처는 가소제가 없어도 섭씨 100도를 넘긴 환경에서는 랩을 사용하지 않도록 안내하고 있다.

“PVC 계속 허용해 대체재 경쟁력 떨어져”

지난 9일 방문한 서울 성동구의 한 마트에 농산물이 PVC랩으로 포장돼 있다(왼쪽 사진). 같은 날 서울 중구 방산시장에 과자모양의 석고방향제(오른쪽)들도 PVC로 포장돼있다. 법규상 PVC랩은 축·수산물 등 한정된 상품의 포장에만 이용하도록 돼있지만, 실제로는 품목 구분 없이 쓰인다. 이현지 인턴기자

환경부는 2019년 PVC랩을 ‘물기가 있는 축ㆍ수산물’ 등 한정된 대상에만 사용하도록 제도화했지만 시중에서는 품목 구분 없이 사용하고 있다.

마트에서는 PVC랩을 농산물이나 공산품 등에 사용하는 곳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사용금지 기준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개선명령이나 제조·수입·판매 중단 처분을 받을 수 있지만, 단속 자체가 이뤄지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 또 매출 10억원 미만의 사업체는 법 적용을 받지 않아서 소형 음식점·마트 등은 PVC랩을 사용해도 된다.

개량형 PE랩을 개발한 화학업체 관계자는 “PE랩을 개발했지만 마트ㆍ대리점에서는 ‘어차피 정부에서 단속을 안 하는데 왜 굳이 비싸고 성능이 떨어지는 PE랩을 쓰겠냐’고 한다”며 “PVC 포장재를 퇴출하겠다는 정부 방침만 믿고 투자를 한 것인데 결국 제살 깎아먹기가 되었다”고 했다.

현재 '폭 30㎝, 길이 500m' 기준, PVC랩의 가격은 9,900원, 개량형 PE랩(퓨어랩)은 1만2,000원이다. 업계에서는 개량형 PE랩 시장이 확대될 경우 랩 가격 또한 떨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홍수열 소장은 “마트뿐만 아니라 배달업체의 배달용기, 소형음식점 포장용기 등에도 여전히 PVC랩이 널리 쓰이고 있다”며 “대체재가 개발되고 있는 만큼 정부가 PVC랩을 금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 중 포장재 재질·구조 검토위원회를 통해 금지사항과 예외 허용 사항 등을 재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현종 기자
이수연 PD
이현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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