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부터 주문·결제까지 휴대폰으로… 고령층 식당 이용 '산 넘어 산'

2024.06.16 07:00

# 서울 사는 김선숙(62)씨는 최근 유명 식당에 갔다가 발길을 돌렸다. 맛집인데 줄을 선 사람들이 없어 기쁜 마음으로 들어간 김씨는 직원의 안내에 당황했다. 직원은 대기자가 15팀이 넘는다며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대기 예약을 걸어야 한다고 했다. 김씨는 "식당을 방문하면서 이런 앱까지 써야 할 줄은 몰랐다"며 "디지털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라 왠지 소외되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 퇴직자 김동하(80)씨는 최근 지인 모임을 위해 식당을 예약하려다 실패했다. 식당에 전화해 예약을 문의했는데, 자동응답시스템(ARS)에서 앱으로 예약하라고 반복했다. 앱 사용 방법을 몰랐던 김씨는 자녀에게 예약을 부탁했다. 김씨는 "매번 자녀에게 말하기도 어렵고, 앱 사용도 서툴러 식당을 이용할 때 불편함이 크다"며 "젊은 사람들이 가는 식당은 엄두도 못 낸다"고 했다. 전국 식당과 카페 등에서 휴대폰 앱 예약 문화가 확산하면서 고령층 불편이 커지고 있다. 디지털 기기로 주문하는 방식(키오스크)에서 나아가 휴대폰 앱으로 대기 예약하는 '모바일 줄 서기', QR코드로 메뉴를 주문하는 '모바일 주문하기'까지 보편화하고 있다. 16일 외식업계에 따르면 앱 예약·주문·결제 서비스를 도입하는 식당들이 많아지고 있다. 인건비를 줄일 수 있는 데다, 고객 편의성이 높기 때문이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유명 고깃집은 전화나 방문 예약을 받지 않고 앱으로만 예약 가능하다. 대기자가 많아 앱으로 예약하지 않으면 식당 이용이 불가능하다. 업계 관계자는 "유명 맛집들은 과거에 2~3시간씩 손님들이 기다렸지만, 앱 예약 서비스를 도입하고 난 뒤에는 줄을 서지 않아도 돼 손님들 불만이 줄었다"고 전했다. 직원 호출 없이 앱 메뉴 주문·결제 서비스도 일반적이다. 휴대폰으로 QR코드를 촬영하면 해당 식당 메뉴가 뜨고 이를 통해 주문하고 결제까지 한 번에 할 수 있다. 대학생 김모(24)씨는 "직원 눈치 보지 않고 천천히 주문할 수 있고, 자리에 앉아 결제까지 할 수 있어 편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앱 이용에 친숙한 젊은 세대와 달리 60대 이상 고령층은 식당 이용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앱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주요 식당 예약 앱인 '캐치테이블'과 '테이블링' 사용자 비중은 2030세대가 64.5%로 절반이 넘었고, 40대까지 포함하면 87.3%였다. 반면 60대 이상은 2%대다. 주부 권모(68)씨는 "디지털 기기가 원체 많아 식당에 들어가기가 겁난다"며 "직원이 주문받을 때는 양은 얼마나 되는지, 추천 메뉴는 뭔지,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지 물어보곤 했는데 그러지 못해 답답하다"고 했다. 디지털 약자 배려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령 특정 요일이나 시간대에 전화 예약을 받거나, 디지털 취약층에 한해 현장 대기를 별도로 허용하는 식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일상에서 IT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고령층 등의 정보소외가 심각해지고 있다"며 "정부가 정보소외 계층에 대한 규정을 만들고,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희소병 아들 엄마 "'못 고치는 병'이라 뒷전... 사지로 몰리고 있다"

클리펠-트레노네이 증후군. 유전자 변이로 혈관과 림프관이 기형적으로 증식해 과성장하는 질환이다. 10만 명당 1명꼴로 발병한다. 서이슬(40) 한국PROS환자단체 대표는 이 질환으로 10여 년 투병 중인 초등학생 아들이 있다. 지난 2월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시작된 전공의 파업 이후 아들에게 필요한 투약 검사는 기약 없이 미뤄졌다. 대한의사협회(의협)의 18일 집단휴진 예고에 서 대표는 희소질환 환자를 대표해 지난 13일 국회 앞에 섰다. 그는 "전공의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면, 내 아이는 영영 검사를 못하게 되나"라며 "전면 휴진을 당장 철회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본보는 서 대표를 따로 만나 의료 공백에 따른 희소질환 환자들의 피해 상황을 들었다. 다음은 서 대표와의 일문일답. -전공의 파업 이후 지난 4개월 어떻게 지냈나.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오른쪽 다리가 왼쪽에 비해 두 배 이상 크다. 척추측만증, 다리 출혈, 급성감염(봉와직염) 등의 치료를 수시로 받아야 한다. 증세 호전을 위해서는 임상시험 중인 약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투약을 위한 유전자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국내에선 서울아산병원 소속 교수 2명만이 하고 있다. 담당 전공의 파업 여파로 4월에 잡혔던 검사일이 5월로, 다시 8월로 계속 연기되고 있다." -투약 검사를 받지 못하면. "당장 생명이 위독해지지는 않는다. 이런 이유로 의료 공백이 길어지면서 희소질환 환자들이 더 소외되고 있다. 우리보다 치료가 더 급한 사람들이 많으니 만성적인 증상은 피해도 아니라고 여긴다. '어차피 못 고치는 병'이니 뒷전으로 밀린다. 하지만 희소질환 환자들은 제때 검사나 처치를 받지 못해서 치료 효과가 떨어지면 장기적으로 어떤 치명적인 위험이 초래될지 모른다." -구체적인 피해 사례는. "주기적으로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통해 병변 변화를 추적해야 하는 환자가 있는데 자신의 몸 상태를 알 수 없는 게 대표적이다. '악성종양으로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소견을 듣고도 추가 검사를 받지 못해 불안에 떠는 환자도 있다. 내 아들도 유전자검사뿐만 아니라 다리 길이 차이를 조절하기 위해 정형외과에서 성장판 시술을 받아야 하는데 치료 타이밍을 놓칠 수 있어 걱정스럽다. 모두 전공의들의 업무다." -의료계는 정부의 의대 증원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이미 의대 증원 방침을 확정했기 때문에 전면 철회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환자 입장에서는 지금보다 의사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들의 투약 유전자검사를 하고 있는 의사가 국내에서 단 2명뿐이다. 의사가 부족하니 환자들도 진료를 받기 어렵지만, 의사들도 업무가 과중된다. 멀리 보면 의사 수가 늘어나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당장의 치료가 시급한 환자들은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을 고집해 극단적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정부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정부가 의사를 대신해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정부가 의사 수를 선 긋듯 정해놓고 밀어붙이는 방식에 대해 비판할 필요가 있다. 정부 방침대로 의대 증원을 해도 과연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의사가 늘어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하는 대응은 환자 피해를 최소화하는 일이다. 의료 공백 장기화에 대비해 응급실, 중환자실, 분만실 등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는 정상 작동할 수 있도록 관련 입법과 진료지원 인력 합법화를 추진해야 한다. 전면 휴진 등 의료인 집단행동 재발 방지책도 내놔야 한다." -의료계 집단 휴진 강행 시 대응은. "주변에서는 '어디 가서 점거 농성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들이 나온다. 하지만 고소·고발 등 법적조치는 아직 고려하고 있지 않다. 여전히 환자만을 생각하는 의사들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들이 18일 휴진에 동참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희소질환 특성상 장기간 진료와 투약이 필요하다. 아들을 생각하면 해외 원정 치료라도 받고 싶지만, 당장 생업을 접고 이민을 갈 수 있는 가정이 몇이나 되겠나. 환자들이 사지로 몰리고 있다.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다."

수술해 줄 의사 없어 병원 찾던 50대, 지방의료원장이 수술해 '구사일생'

의료계 집단 휴진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인천에서 50대 남성이 수술해 줄 의사를 찾아 헤매다 어렵게 지방의료원에서 응급 수술을 받고 목숨을 건진 사실이 전해졌다. 15일 인천의료원에 따르면,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은 13일 오전 7시쯤 천공성 급성충수염을 앓고 있던 50대 남성 A씨에 대한 응급수술을 집도했다. A씨는 현재 중환자실에서 회복 중이다. A씨는 10일부터 극심한 복통을 호소했다. 그는 요양보호사와 함께 종합병원을 찾아 천공성 급성 충수염 진단을 받고 입원했다. 그러나 치매를 앓고 있던 A씨는 무단 탈출을 시도하고 공격적인 성향을 보였고, 병원측은 수술을 취소하고 그를 퇴원조치했다. A씨는 가족과도 연락이 어려워 사회복지관의 관리를 받는 대상자였다. A씨와 동행한 사회복지사는 119에 연락해 여러병원을 찾았지만, A씨를 받아주는 병원은 없었다. 일부 병원에서는 "수술할 의사가 없다"는 답변을 해 수술을 거절했다. 또다른 병원은 A씨를 돌볼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를 들기도 했다. 당시 A씨는 장 폐색과 복막염이 진행돼 긴급 수술이 필요한 상태였다. 조승연 원장은 해당 소식을 듣고, 12일 오후 9시 수술을 직접 집도하기로 했다. 인천의료원은 당초 A씨의 건강 상태를 보고 상급종합병원 입원을 권했으나 자초지종을 전해 듣고 결국 환자를 받았다고 했다. A씨는 간신히 수술을 받고, 위기를 넘겨 회복 중이다. 조 원장은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의료계의 무기한 휴진 움직임이 이뤄지면서 환자를 안받으려고 하는 경향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특히 질환을 앓는 취약계층은 갈 곳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이어 "인천의료원 같은 공공병원에 대한 지원이 더욱 강화돼야 '응급실 뺑뺑이' 같은 현상이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환자 불편하더라도…" 의대 학부모들, 서울대 의대 교수들에 적극 투쟁 촉구

의대생 학부모들이 전면 휴진을 결정한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에 더 적극적인 투쟁을 촉구했다. 특히 "오늘의 환자 100명도 소중하지만, 앞으로의 환자는 1000배 이상으로 (중요하다)"며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15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대생 학부모 모임'이라는 인터넷 카페의 매니저는 전날 학부모 일동의 이름으로 '서울대 의대 비대위에 고함'이라는 글을 게시했다. 학부모들은 이 글에서 "최근의 의료 파탄 사태로 현 의료 시스템의 구조적·근본적 문제를 알게 됐고, 사방이 온통 불합리에 비과학적이고 심지어 비굴하기까지 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며 "지금껏 교수님들은 무엇을 하고 계셨나"고 지적했다. 학부모들은 교수들에 대한 비판을 이어나갔다. 이들은 "(전공의들이) 2월에 낸 사직서의 법률적 효과 여부로 토론하는 모습을 보며 실소를 금치 못한다"며 "전공의는 사람이 아닌가. 잘못된 법에는 저항해야 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국민의 도리인데 이를 방치하고 그 이익에 편승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비난했다. 학부모들은 17일부터 무기한 휴진을 예고한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 비대위에 "감사 이전에 실망과 허탈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들은 "의대 증원 문제에 대해 상당히 너그러운 입장이던데 아직도 정부 눈치를 봐야 하나, 권력에 굴종해야 취할 수 있는 숨은 과실이라도 있는 것인가"고 따졌다. 그러면서 "2025학년도 의대 교육이 (증원이 안 된) 서울대의 직접적 문제가 아니라서 그러신 건가, 본인들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신다면 서울대 비대위는 해체가 맞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휴진에 반발하는 환자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학부모들은 "환자들에게 죄송한 마음을 알고, 어떤 사리사욕이 없는 분들인 것도 잘 안다"며 "오늘의 환자 100명도 소중하지만, 앞으로의 환자는 1000배 이상으로 (중요하다), 당장의 환자 불편에도 지금은 행동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의대생, 전공의 단 한 명이라도 억압당하고 불이익에 처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해당 카페는 정부가 의대 입학정원 증원 규모를 발표한 직후인 올 2월 18일 개설됐다. 현재 회원 수는 1,600여 명이다. 지역과 휴대전화 연락처를 남기는 등 인증 과정을 거쳐야만 카페에 가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