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인질 석방 앞서 팔 군중 앞에 세워
"건강상태 유대인 학살 생존자 같다" 분노
"이스라엘 보수파 자극, 전쟁 재개 가능성"
트럼프 "가자 주민 이주, 서두르지 않겠다"

가자지구 중부 데이르알발라에서 8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인질인 엘리 샤라비(가운데)를 석방 전 무대에 세워 팔레스타인 군중을 향해 소감을 말하게 하고 있다. 데이르알발라=EPA 연합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휴전이 9일(현지시간)로 22일째를 맞았지만, 가자지구의 '불안정'은 여전하다. 다섯 차례에 걸쳐 하마스가 인질들을 풀어 줬으나 이스라엘 시민들의 분노는 더 커지고 있어서다. 가족의 사망도 모른 채 재회를 기대했던 석방 인질들의 안타까운 사연, 500일 가까이 붙잡혀 있었던 인질들의 앙상한 모습이 하마스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고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하마스의 인질 석방 속도가 기대보다 늦고, 석방 직전 인질을 팔레스타인 군중 앞에 세우는 행위도 향후 이스라엘의 '휴전 파기'를 유발할 수 있는 요인이다.
'가자지구 점령·소유'를 선언하며 전 세계를 발칵 뒤집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위험 요소다. 트럼프는 "가자 주민의 이주를 서두르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스라엘군이 강제이주 초안을 이미 마련한 것으로 알려져 불안감은 점점 증폭되는 분위기다.
아내와 딸 사망 모르고... "재회 기대"
미국 CNN방송은 8일 "하마스가 5차 인질 석방으로 이스라엘 남성 3명을 풀어줬다"며 "이들 중 2명은 가족이 몰살됐다는 사실을 모른 채 재회를 기대했다"고 전했다. 석방 인질 중 한 명인 엘리 샤라비(52)는 석방 직전, 하마스가 마련한 무대에 올라 팔레스타인 군중을 향해 '감사 인사'와 '휴전 협상 이행 촉구 선언문'을 읽은 뒤 "아내와 두 딸을 다시 만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490일 만의 가족 상봉을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온 뒤, 샤라비는 좌절했다. 2023년 10월 하마스의 공격 때 가족이 몰살된 사실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함께 석방된 오르 레비도 이스라엘 귀환 후 "아내는 어디 있냐"고 물었지만, 마찬가지로 그의 아내 역시 오래전 숨진 상태였다. 샤라비의 매제는 매형의 석방 전 영국 BBC방송에 "490일을 생존한 뒤, 그런(부인과 두 딸의 사망) 소식을 접한다는 건 또 다른 고문"이라고 말했다.
군중 속에 인질 세우다니... "휴전 협정 위반"
인질 건강 상태가 형편없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이스라엘 정부는 "8일 풀려난 3명 중 1명은 영양실조 상태"라고 설명했다. 기드온 사르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석방된 인질의 모습을 두고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 생존자들을 연상시킨다. 분명히 제대로 된 음식을 제공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격분했다.

이스라엘에 수감돼 있던 한 팔레스타인인(왼쪽)이 서안지구에서 8일 풀려난 뒤 환영을 받고 있다. 라말라=로이터 연합뉴스
하마스가 인질들을 무대에 세우는 행위도 논란이 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하마스의 '감사 인사 강요'를 '휴전 협정 위반'으로 규정한 뒤,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하마스의 비윤리적 인질 대우와 석방이 이스라엘 보수파를 자극하고 있다"며 "1단계 휴전 종료 후 전쟁이 재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하마스의 인질 석방이 더디다는 점도 '휴전 지속'을 장담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8일 추가 인질 석방을 위해 카타르 도하에 대표단을 파견했다. 휴전 협정에 따라 하마스는 다음 달 2일까지 인질 33명을 석방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15명만 풀려났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트럼프 '가자 구상', 속도 조절? 실행 준비?
트럼프 대통령의 '가자 구상'은 속도 조절에 나선 모양새다. 그는 7일 백악관에서 "가자 주민들의 이주를 서두르지 않겠다"고 밝혔다. 지난 4일 네타냐후 총리와의 정상회담 전후, '미국의 가자 장악·개발' 구상과 함께, '팔레스타인인의 영구 이주' 방침도 밝혀 큰 파문을 일으켰던 데에서 한발 물러선 셈이다.
하지만 순순히 믿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스라엘군이 이미 가자 주민 강제 이주, 사실상 '추방 작전'의 초안을 마련했다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7일 "이스라엘 국방장관에게 가자지구 주민을 라몬 공항이나 아슈도드 항구로 이동시킨 뒤 주변국으로 이주시키는 방안이 6일 보고됐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가자 구상' 실행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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