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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의 '퍼프 워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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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퍼프 워크(Perp Walk)’는 수사기관이 호송 중에 범죄 피의자를 언론 카메라에 의도적으로 노출시키는 수사관행이다. 해석하자면 '피의자 포토라인에 세우기'. 퍼프는 ‘Perpetrator(범인)’의 약칭이다. 피의자를 ‘나쁜 놈’으로 낙인찍으면 수사·재판이 수월해지고 범죄예방 효과도 있다는 게 수사기관이 꼽는 순기능이다. 언론은 기삿거리를 얻고 대중은 범죄자가 망신당하는 걸 보면서 분풀이한다.
□ 중세 유럽의 공개 처형이 원조 격이다.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비참한 모습으로 형장에 끌려간 사형수는 처형 직전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했다. 1800년대 카메라 발명, 1900년대 TV의 등장으로 퍼프 워크는 미국에서 전성시대를 맞았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퍼프 워크 주인공은 1963년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을 라이플총으로 암살한 리 하비 오스왈드로, 경찰의 느슨한 호위를 받으며 호송되던 중 시민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 퍼프 워크는 논쟁적이다. 국민의 알권리와 언론·출판의 자유가 소중하다는 찬성론과 인권을 침해하고 무죄추정 원칙에 반한다는 반대론이 맞선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경찰과 언론이 밀착해 호송 정보를 노골적으로 공유하는 관행은 대체로 사라졌다. 퍼프 워크로 범죄자가 스타가 되는 엉뚱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1992년 잘 빠진 맞춤 양복을 입고 나와 카메라를 향해 웃어 보인 뉴욕 마피아 두목 존 고티는 대중문화가 사랑하는 아이콘이 됐다.
□ 불법계엄에 분노한 많은 이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퍼프 워크를 기대했다. 체포 장면을 기다리느라 잠을 설친다는 뜻의 ‘내란 불면증’이란 말도 생겼다. 체포 당일 퍼프 워크는 없었다. 공수처로 들어가는 뒷모습만 포착됐다. 치욕을 피하려는 윤 대통령 변호인과 역풍을 걱정한 공수처가 타협한 결과일 것이다. 뉴욕 경찰이 2011년 호텔 직원을 성폭행한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국제통화기금 총재에게 수갑을 채워 포토라인에 세웠을 때 찬반 격론이 뜨거웠다. 당시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일갈했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된다.” 퍼프 워크는 필요악인가, 아닌가. 윤 대통령 체포가 한국 사회에 논쟁거리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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