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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지니는 여러 신념의 페르소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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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드 크림(Mathilde Krim, 1926.7.9~2018.1.15)은 이스라엘 건국(1948)을 위해 테러도 서슴지 않던 시오니스트 준군사조직 ‘이르군(Irgun)’의 맹렬한 후원자로 흔히 기억되지만, 동시에 그는 1980년대 이후 HIV 보균자와 에이즈 환자들을 위해 국가보다 먼저 그 질병의 진실과 예방·치료에 기여하고, 동성애자에 대한 도덕적 낙인에 반발한 연구자 겸 활동가였다.
미국 뉴욕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센터의 바이러스 유전학자였던 그는 인터페론 등을 활용한 백혈병 치료 연구에 매진하던 1980년대, 에이즈가 ‘게이 암’이라고 불리며 동성애자와 약물중독자의 타락에서 비롯됐다는 광범위한 오해와 편견이 확산되자 1983년 연구자로서의 삶을 접고 영화계 거물이던 남편 아서 크림(Auther Krim)이 기부한 10만 달러로 에이즈 의료 재단을 설립해 초기 연구를 이끌었다. 그는 2년 뒤 관련 단체들과 함께 ‘미국 에이즈연구재단(Amfar)’을 창립해 2004년까지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에이즈가 동성애자 및 약물 중독자만 걸리는 질병이라는 오해 때문에 재단 간판도 내걸지 못하던 당시부터 그는 편견·오해와 싸우며 기금을 모으고 정부를 상대로 로비를 벌였고, 단체의 초대 국제(홍보)의장을 맡아준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폴 뉴먼, 우디 앨런, 조앤 리버스 등 스타들을 설득해 연구·홍보 기금 마련을 위한 다양한 행사를 꾸렸다. 민주당 재정위원장을 거쳐 영화사 오리온 픽처스 회장을 지낸 남편이 그의 주요 후원자였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스위스 제네바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유대인인 그는 이스라엘 건국을 방해하던 서방 및 팔레스타인 아랍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유대인 테러조직을 도와 무기 밀무역에도 서슴없이 가담했던 골수 시오니스트였다. 그는 2000년 빌 클린턴 미 정부의 대통령 자유메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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