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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심리 최고조 한국사회…정치·경제 불확실성이 불안 키워”

입력
2025.01.14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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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겪는 국민, PTSD로 이어질 수도
5명 중 1명은 사회불안장애 우려
“불안한 상황에 과몰입 말아야”


대한불안의학회 이사장인 인제대 일산백병원 이승환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9일 국민의 정신건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일산백병원 제공

대한불안의학회 이사장인 인제대 일산백병원 이승환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9일 국민의 정신건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일산백병원 제공


“한국 사회는 지금 불안 심리가 하늘을 찌를 정도로 최고조에 달한 상태예요. 이런 상황은 충동성‧공격성이 있는 사람에게 큰 영향을 주거든요. ‘묻지 마 폭력’ 등이 일어날 가능성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어서 우려됩니다.”

올해부터 대한불안의학회 이사장을 맡은 인제대 일산백병원 이승환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달 9일 “계엄 사태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등이 국민 정신건강에 큰 긴장과 불안을 불러오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실제 40대 남성의 마음건강 점수는 지난해 11월 평균 80점에서 계엄 사태가 발생한 12월 65점으로 크게 하락했다. 이 교수가 창업한 비웨이브에서 출시한 ‘마음결 미니’ 애플리케이션(앱) 건강 통계 결과다. 마음결 미니는 휴대전화 카메라로 심박 변이도를 측정해 정신건강 상태를 측정하는 앱이다.

“국민들이 정신적으로 힘들어하고 있다고 봐요. 저만 해도 가슴속에 무언가가 응어리 져서 풀리지 않는 것 같은 답답함이 있거든요. 트라우마를 앓는 국민들도 많아졌을 겁니다.” 군사독재 시절을 기억하는 중년층 이상이나 큰 사고를 겪었던 이들은 연이은 불안 사태에 즉각적이고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미디어를 통해 사고 장면에 반복 노출되는 청소년도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다. 이 교수는 “미성년자는 이러한 자극에 무방비 상태이기 때문에 정서적인 상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일어난 사고 등에 대해 설명해줄 필요는 있지만 사고 영상에 계속 노출되도록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트라우마는 과거 경험과 비슷한 순간이 발생했을 때 심리적 불안을 느끼는 증상이다. 이 교수는 “이러한 불안이 해소되지 못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PTSD의 대표적인 증상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먼저 꿈을 통해 트라우마를 반복적으로 경험한다. 북한이탈주민이라면 누구에게 쫓기는 꿈을 계속 꾸는 식이다. 트라우마를 겪은 환경엔 가지 않으려는 회피행동을 하고, 식은땀이 나거나 우울해하는 불안 증상도 나타난다.

“적당한 불안은 적정한 긴장을 통해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옵니다. 시험을 앞두고 있으면 불안하니까 공부를 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불안이 과하면 날 서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니까 범죄 등도 더 많이 발생해요. 한국사회는 안 그래도 불안 심리가 큰 사회였는데 이번 일을 통해 불안에 압도된 이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지난해 11월 대한불안의학회가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5명 중 1명(19.8%)은 사회불안장애를 호소했고, 강박 증상은 31.3%, PTSD는 25.8%가 경험한 적 있다고 밝혔다. 그는 “국민의 정신건강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라며 “사회불안장애만 해도 젊은층을 중심으로 향후 상황이 더욱 악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집에서 수업받는 등 사회생활과 사실상 단절됐던 당시 학생들이 사회적 상호작용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탓이다. 사회불안장애는 다른 이들 앞에서 당황하는 등 사회불안을 경험한 후 다양한 사회적 상황을 피하고, 그로 인해 사회적 기능이 저하되는 질환이다.

이 밖에 우울증 위험군은 전체의 18.0%였으며, 40대 남성(24.9%)과 30대 여성(24.3%)이 주요 위험군이었다. 자살을 생각해본 비율(자살생각률)은 응답자의 12.2%가 그렇다고 답했고, 특히 30대 남성(18.4%)에게서 가장 높았다. 그는 “자살률 통계에서 상대적으로 후순위에 있던 30대에게서 자살생각률이 높게 나타났다는 것은 그만큼 이들이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2023년 사망원인통계를 보면 2023년 자살 사망자 수는 1만3,978명으로, 전년보다 8.3% 늘었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 인구를 나타낸 자살 사망률은 27.3명으로 2018년 이후 가장 높았다. 연령별로 보면 80대가 59.4명으로 가장 높았고, 이어 70대(39.0명), 50대(32.5명)가 뒤를 이었다. 30대(26.4명)는 뒤에서 세 번째에 머물렀다.

이 교수는 불안 증세를 누그러트리기 위해선 “불안 상황에 과몰입하는 일을 멀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확한 정보를 얻고 대처하고자 뉴스를 봐야 하지만, 하루 종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들락날락하며 진행 상황을 시시각각 확인하는 것은 오히려 정신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와 함께 “불안 심리를 키운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외부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에선 자신을 이런 정보에 무분별하게 노출시키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불안한 감정을 해소할 수 있도록 지인을 만나거나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앞서 대한불안의학회는 행복수칙 8계명으로 △불안을 불안해하지 말자 △어쩔 수 없는 것은 내버려두자 △지금 여기 현재를 살자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자 등을 발표했다.

변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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