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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주와 이예람이 박정훈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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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법원의 기적과 같은 판결
계엄 명령, 무기력했던 수뇌부
'민주주의 수호군'으로 변해야
지난 9일, 항명 및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해병대 박정훈 대령에 대한 1심 무죄 판결은 기적에 가깝다. 독자들은 당연한 판결이 웬 기적이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독립성이 결여되어 권력자 영향력에 길들여진 군 사법 체계에서 이와 같은 판결이 나왔다는 건 너무나 신선한 충격이다.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 해병대 사령관이 군검찰과 한편이 되어 박 대령을 항명 수괴로 몰아붙였음에도 무죄 판결이 나온 것이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사실 상명하복을 조직의 절대가치로 신봉하는 군 조직에서 박 대령과 같은 소신 있는 행동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일뿐더러, 군 지휘체계에 사실상 종속된 군사법원이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판결을 하리라는 기대도 난망한 일이었다.
2014년 폭행으로 숨진 고 윤승주 일병의 사인이 조작되고 진상이 은폐되는 충격을 겪고 사단급 군사법원이 폐지되는 군 사법개혁이 단행되었다. 그러나 2021년 고 이예람 중사가 성폭행과 2차 가해로 사망하는 사건을 처리하면서 군 사법 체계는 또다시 국민들에게 실망과 분노를 안겨주었다. 그래서 군의 성 관련 범죄와 사망사건에 대한 범죄는 군사법원이 아닌 민간 군사법원으로 관할권을 이관하기로 하고 고등군사법원도 폐지하는 더 강도 높은 군 사법개혁이 이어졌다.
우리 군의 사법 체계는 장병들의 뼈아픈 희생을 딛고 지휘권으로부터 독립하는 지난한 개혁의 역사를 써왔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법관에 대한 인사가 국방부 장관에게 귀속되어 있는 군사법원이라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가슴을 졸이는 날들을 기다려 마침내 박 대령의 무죄 판결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죽은 윤승주와 이예람이 살아 있는 박 대령을 구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도울 수 있는가”라는 한강 작가의 말이 떠오르는 지점이다.
지난해 11월, 대통령에게 불려 간 사령관들은 “계엄을 준비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부대 출동을 준비하겠다며” 순한 양처럼 대답했다. 12월 3일 밤에 전군 주요 지휘관이 모인 자리에서 김용현 전 국방장관은 계엄에 대해 “이제부터 전군은 장관이 지휘한다.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항명죄로 처벌한다”고 했을 때 이의를 제기하는 장군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참으로 절망스럽게도 단 한 명도 없었다!
막상 국회에 출동한 계엄군이 태업으로 저항하면서 국회를 제압하는 데 차질을 빚었던 것이지 계엄을 운용하는 군의 상부구조는 완벽했다. 작은 걸림돌조차 없었다. 그 배경에는 군 지휘권으로부터 독립적인 사법 체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장군들의 집단의식, 법이 아니라 힘이 곧 정의라는 편향된 정신세계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박 대령 판결로 상관의 위헌·위법한 지시에 대한 거부는 항명이 아니라는 명제가 확립되었다. 이를 통해 “까라면 깐다”는 식의 권위와 복종의 문화에 순치된 장군들이 미몽에서 깨어나 법의 지배를 향하는 의식의 정화가 시작되어야 한다.
박정훈 대령이 없었더라면 오직 진급과 출세를 향해 질주하다가 힘에 순치되는 우리 군의 장교단에 명예와 품격이 사라질 뻔했다. 좋은 보직과 진급 기회를 차지하기 위해 권력자에게 줄을 서고 영혼까지 바치는 행태가 당연시되는 병영에서 언제부터인가 품격과 명예, 법도가 사라졌다. 이런 절망의 늪에서 항명 혐의라는 불이익을 무릅쓴 한 장교에게 군사법원이 명예를 회복시켜 준 것은 국민들에게 큰 위로이자 울림이다. 호국의 간성이라 할 우리 군의 장교들에게는 시민에게 복종하겠다는 집단적 결의가 요구된다. 국민이 “당신들은 어떤 군이냐”고 질문하면 이제는 군 장교단이 “우리는 민주주의 수호군”이라고 당차게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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