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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인 일본도 균열 조짐…정보 권력 분산되자 민주주의 위험해졌다

입력
2025.01.11 04:40
13면

[같은 일본, 다른 일본] <130>
정보 권력의 이동, 폭력과 선동 위험이 모두 커진 한국과 일본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구성원 개개인의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해지고, 더 많은 사람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민주적 환경이 보장됨에 따라 오히려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정보 권력을 악용한 폭력과 선동의 위험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일러스트 김일영

구성원 개개인의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해지고, 더 많은 사람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민주적 환경이 보장됨에 따라 오히려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정보 권력을 악용한 폭력과 선동의 위험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일러스트 김일영

◇ 전 세계에서 증가하는 ‘친위 쿠데타’

지난해 12월 3일 대통령의 불법 계엄령 선포 이후, 한국 사회는 여전히 큰 혼란 속에 있다. 계엄령 선포 직후, 무장한 군인이 국회의사당으로 몰려드는 충격적인 장면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그러나 이 어마어마한 범죄의 장본인은 대통령이라는 직책 뒤에 숨어서 그 어떤 도덕적, 법적 책임도 지지 않겠다고 생떼를 쓰고 있다. 더욱이 사태 해결을 방해하는 여당의 일부 국회의원들, 무기력한 사법 당국의 대응은 불안을 키운다. ‘비상식적’이라는 단어조차 이 상황을 설명하기에 부족할 만큼 기괴한 현실이다.

지금 한국의 상황을 가장 적절하게 묘사하는 단어는 ‘친위 쿠데타(self-coup, 혹은 autocoup)’ 다. 현직 국가수반 혹은 정권의 최고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을 더 강화하기 위해 비합법적인 수단이나 무력을 동원해 기존 권력 체제를 전복시키는 행위를 뜻한다. 21세기 들어 전 세계적으로 친위 쿠데타는 증가 추세다. 한 연구에 따르면, 1980년대 이후 세계에서 발생한 31건의 친위 쿠데타 중 절반 이상이 2016년부터 2024년 사이에 일어났다.

다행히 이번 친위 쿠데타 시도는 초반에 좌절되었다. 헛발질 속에서도 수습 국면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하지만 역사를 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발생한 친위 쿠데타 중 80%가 전부 혹은 부분적으로 성공했다. 21세기에도 친위 쿠데타가 독재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수십 년 전 군사 독재 정권과는 영영 결별했다고 믿었던 한국에서 2024년에 이런 시대착오적인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자부심에 상처를 입은 한국 시민들에게 큰 위로가 될 수는 없겠지만, 친위 쿠데타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전근대적’인 사건은 아니다.

◇ 흔들리는 정보 권력, 정치적 불안정성의 증가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며 극렬 지지자들을 국회의사당 점거로 선동했던 사건이 있었다. 그가 또 한번 국민의 선택을 받아 곧 다시 미국의 국가 원수 자리에 오른다. 이 역시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가치와 신뢰를 뒤흔드는 일종의 ‘정변’이라고 생각한다. ‘빌런급’ 정치 지도자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나라가 전 세계에 한둘이 아니다. 왜 이런 인물들이 정치적 리더가 되고, 자격 없는 인물이 대중의 지지를 얻을까?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권력자의 횡포가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특정 지도자의 난감한 광기로 치부하기보다는, 구조적인 질문을 던질 때라고 생각한다.

21세기 들어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현상은 다양한 이유로 설명된다. 서구 국가들의 글로벌 영향력 감소, 권위주의 국가의 경제적 영향력 증가, 민주주의 가치의 훼손에 대한 국제 사회의 미온적 대응 등이 거론된다. 그러나 인터넷과 정보 환경의 변화를 연구해 온 입장에서, 나는 정보 권력의 지속적인 분산 경향이 이런 민주주의의 ‘이변’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이번 12·3 사태는 정보 권력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계엄령 선포 직후, 계엄군이 장악하려 했던 대상이 방송국이나 신문사가 아니라 유튜브 저널리즘과 같은 인터넷 기반의 플랫폼이었다는 점도 상징적이다. 불법 비상계엄 선포의 명분으로 부정선거 의혹을 들고나왔다는 점은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중 선동과 꼭 닮았다. 실은 지금 이 순간도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 사태의 디테일한 진전 사항이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있고, 개중에는 과거 소수의 엘리트만 접근할 수 있었던 고급 정보도 있다. 과거와 같이 중앙통제적 방식으로 정보를 관리하고 이를 통해 권력을 유지하려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시대착오적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 일본의 안정된 권력 체제도 균열 조짐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정치적 불안정성과는 거리가 먼 나라처럼 보인다. 지난 칼럼에서도 언급했듯이 평화헌법 덕분에 군부가 현실 정치에 개입할 여지가 구조적으로 차단되어 있으며, 의회 중심의 권력 구조와 선거 제도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국 시민의 열정적인 참여 의식과는 결이 다르지만, 일본 시민들 역시 나름의 민주주의의 경험과 성과를 차곡차곡 쌓아왔다.

물론 정치적 안정성이 반드시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고질적인 정치적 무관심이 문제로 지적되고, 자민당의 장기 집권이 사회의 건전한 변화를 저해한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에서 이식된 ‘외래종’이라는 한계를 고려하면,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비교적 잘 정착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일본의 안정적인 권력 구조에 균열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한편으로는 정권의 불투명성과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소셜미디어와 동영상 플랫폼이 정치권에 미치는 영향력이 눈에 띄게 커졌다. 예를 들어, 최근 권력 남용으로 의회에서 불신임을 받은 지방자치단체장이 재선에 성공한 사례가 ‘일본판 트럼프 사태’라고 불리며 논란이 되었다. 또, 지방 출신의 정치 신인이 유튜브나 틱톡 등 젊은 층이 선호하는 플랫폼을 활용해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두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사례들은 어김없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로 대표되는 새로운 정보 환경 속에서 전통적 권력 구조가 도전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 국가 권력과 정보 권력의 ‘디커플링’은 지속적으로 가속화

과거에는 국가 권력과 정보 권력은 사실상 동의어였다. 소수의 언론 매체와 협력하는 방식으로 국가 권력이 정보의 흐름을 통제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권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대량의 정보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빠른 속도로 대중에게 전달된다. 이 새로운 정보 환경에서는 권력이 입맛대로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국가 권력과 정보 권력 사이의 굳건했던 동맹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충분한 지지 기반이 없는 권력자들이 불안정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극렬 지지자를 동원하거나, 가짜뉴스 또는 친위 쿠데타와 같은 극단적이고 불온한 시도가 증가하고 있다. 한편, 정보 권력의 기득권층인 레거시 미디어가 국가 권력과 야합하는 경향도 세계 곳곳에서 보고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권력자의 반민주적인 선동에 무분별하게 반응하는 대중, 즉 ‘우민(愚民)’에 대한 우려는 또 다른 차원의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명언 'Scientia est potentia'는 흔히 ‘아는 것이 힘’으로 번역되지만,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을 고려한다면 이를 ‘정보는 권력’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정보 환경의 변화는 대의 민주주의에 내재된 모순과 취약성을 드러내며 기존 권력 구조를 뒤흔들고 있다. 새로운 정보 환경이 더 많은 사람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민주적인 환경을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탐욕스러운 권력에 의한 폭력과 선동의 위험도 키웠다. 이 새로운 정보 환경 속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어떻게 보호하고, 강화할 수 있을까? 우리 시대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과제다.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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